〈 125화 〉 수호신의 복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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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와 함께 바니복을 주문하고 완성될 때까지의 며칠이 흐르고, 레이시는 본선 대기실에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는 왜 이렇게 됐냐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멍하니 시간이 흘러가길 기다리고 있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면서 1차 심사가 10분 정도 남았다고 말해줬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눈을 흘기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미스 뭐시기 선발 대회때처럼 손을 흔들고 뭘 해야 하는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자 한숨부터 나와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작게 웃으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1차 심사의 경우에는 가볍게 인터뷰를 하고 끝나고 한 명, 한 명에게 큰 시간을 쏟지 않는다.
아마 5분 정도만 지나면 레이시의 차례는 넘어가겠지.
그러니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5분만 참으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울상을 짓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회자가 자기 이름을 호명하자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가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 앞에 나왔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진행자를 바라봤고, 진행자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본선에 진출할 정도라면 자기도 외모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건데 왜 저렇게 자신감이 없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진행자는 뭔가 일이 있겠지 싶어서 레이시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에……, 그러니까 저는 레이시에요. 종족은 야차입니다.”
“……끝?”
“네?”
“아~, 자기소개를 많이 해보지 않은 분 같아서요. 혹시 다른 참가자들처럼 직업이라거나 취미를 말해주실 수 있나요? 괜찮으시다면 출전 동기도 말해주세요!”
“직업은…….”
진행자의 질문에 루룬의 옆에 있는 특등석에 앉은 엘라를 힐끗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에게 이젠 말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시는 엘라의 대답에 쭈뼛거리다 진행자를 바라봤다.
“엘라 공주님의 메이드요…….”
“……예?”
잘못하면 레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도 불경죄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은 발언.
그렇기에 진행자는 다급하게 엘라를 쳐다보며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엘라는 다급한 진행자를 무시한 채 레이시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며 웃었다.
마치 대회에 나온 친구를 골리면서도 응원하는 것 같은 표정.
엘라의 표정에 진행자는 레이시의 말이 불경죄를 저지르기 위한 미치광이의 말도, 사람들의 호감을 억지로 사기 위해서 하는 거짓말도 아니란 걸 깨닫고 레이시를 쳐다봤다.
“취미는 산책이고 여기엔 공주님이 나가래서 나왔어요…….”
볼을 살짝 빵빵하게 만든 채 엘라를 노려보는 레이시.
진행자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다시 한번 식겁했지만, 엘라는 태연하게 손 키스를 날리면서 루룬에게 어떠냐고 물어보며 꺄르륵 웃기만 했다.
그러자 얼굴을 가리고 뭔가 웅얼거리는 레이시.
진행자는 가까이 있어서 들을 수 있었던 레이시의 웅얼거림에 얼굴이 뒤틀릴 뻔했다가 프로 정신을 발휘해서 억지로 웃기 시작했다.
한 나라의 공주를, 그것도 백성들을 위해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왕가에 충성을 바치고 몬스터와 탈영병, 산적들을 처리하는 공주를 바보니 변태니 하는 말에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 걸까?
웃자.
그냥 웃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인터뷰를 이어가자.
그리고 그런 진행자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는지, 엘라는 진행자를 눈을 가늘게 뜨다가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자 루룬에게 꽤 괜찮은 진행자라고 말했다.
“프로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죠.”
“그런 것치고는 레이시의 매력을 잘 못 끌어올리는 거 같은데? 뭐, 꽤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프로 의식이 좋다고 솜씨가 좋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대부분의 군인이 엘라보다 약한 것처럼.”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레이시의 스킬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어떤 칭찬을 받은 적 있냐고 물어보는 진행자.
레이시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답해주며 멍하니 사람들을 쳐다봤고 이내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냐고 물어보자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환하게 웃으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다음에 무대 아래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흐아! 이걸로 떨어질 수 있겠죠!?”
“……떨어지길 기대하시는 거야?”
“두 번째는 서로 대련하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엘라가 부탁한 일이니까 바로 항복은 안 하겠지만, 아마 못 이기지 않을까요?”
“아니, 너라면 그냥 상대방의 무기를 채찍으로 맞춰서 떨어트리면 끝날걸? 다른 여자들을 봤는데, 꽤 강하긴 해도 너랑은 힘 차이가 워낙 심하게 나서 네가 이길 거야.”
“에에……. 스승님, 그렇게 말 해주셔도 저는 자신감이 없는데요?”
무대 아래로 내려가자 레이시를 안아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제발 떨어지라면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왕 나갔으면 이기는 게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샤는 검무나 가벼운 대련은 모두 레이시가 이길 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샤 덕분에 무기를 방어하는 기술은 꽤 붙긴 했지만, 남을 때릴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도망치는 기술만 배웠고, 마음가짐도 어떻게든 무사히 도망치는 것을 목표로 각오를 다졌었으니까.
그렇기에 레이시는 그거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가죽 갑옷을 꺼내며 일단 해보라고 말했다.
안 되면 항복해도 괜찮으니 일단 해보는 게 좋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2차 심사에 나가게 되면 그렇게 해보겠다며 미네르바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엔 레이시가 신호를 주면 사람을 제압만 하는 거라며, 레이시가 한 말을 똑같이 말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유치원생이 말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사람을 패기만 패고 죽이진 않겠다고 말하는 미네르바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다가 잘 부탁한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2차 심사를 시작하자고 말하는 대회 스태프.
레이시는 스태프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미네르바와 함께 2차 심사장으로 올라갔고, 이내 상대로 나온 여자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무서워보이는 얼굴.
창을 들고 있는 그 모습에 레이시는 쭈뼛거리면서 긴장하기 시작했고, 상대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 낙승이라며 속으로 히죽 웃었다.
공주의 메이드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대회니까 조금 거칠게 굴어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상대방은 창을 들고 레이시에게 다가갔고, 레이시는 그런 상대방의 모습에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이내 아샤의 흉내를 내보자고 생각했다.
아샤는 무서우니까, 아샤의 흉내를 내면 항복해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머릿속으로 아샤를 떠올리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흐으읍…….”
“하아앗!”
“저리 꺼져!”
채찍으로 상대방의 창끝을 쳐버리며 거칠게 욕하는 레이시.
아샤의 말투, 억양을 완전히 흉내낸 그 모습에 엘라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심사장 뒤편에 있는 아샤를 쳐다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행동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반응과 다르게 그들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레이시를 쳐다봤다.
레이시에게 느껴지는 강한 압박감.
맹수와 눈을 마주친 것 같은 감각에 사람들은 레이시가 야차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기 시작했고, 레이시의 뒤에 있는 미네르바를 어떻게 테이밍 했는지 이해했다.
저렇게 강하니 하피를 가볍게 테이밍 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레이시의 상대를 쳐다봤고 레이시의 상대였던 사람은 부러진 창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렇게 얼떨결에 미네르바의 도움 없이 3차 심사까지 가게 된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에게 흉내 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바니복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에 허탈하게 웃으면서 미스트의 손을 바라봤다.
검은색 레오타드에 스타킹, 그리고 기타 장식들…….
언제 왔는지 특등석에서 내려온 엘라는 미스트의 손에 들린 걸 보고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를 보고 2차 심사 때 했었던 레이시의 행동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하하하! 아까 그거 아샤 흉내 낸 거지!?”
“부우……, 알잖아요.”
“아하핫! 꽤 잘하던걸?”
“칭찬하면서 옷 벗기면 모를 줄 알아요?”
“이제 꽤 익숙해졌네?”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면서 셔츠의 단추를 한 번에 풀어헤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볼을 빵빵하게 만들다가 미스트의 지시에 따라서 옷을 벗고 속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어깨를 그대로 드러내는 옷이라 브래지어를 끈이 없는 것으로 바꿔서 갈아입는 레이시.
레오타드 너머로 팬티가 노출되면 안 되기에 팬티도 벗은 다음 하반신에 테이프를 붙이게 되었고, 레이시는 그 감촉에 얼굴을 붉히고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자 검은색 팬티스타킹을 내미는 미스트.
레이시는 자기와 다르게 아무렇지 않아 하는 미스트의 반응에 볼을 부풀리며 미스트를 노려봤지만, 계속해서 알몸으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스타킹을 신었다.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솔기 라인이 없는 옷을 만들 수는 없었는지 솔기 라인이 그대로 살아있는 스타킹.
레이시는 그 솔기 라인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뭔가 솔기 때문에 몸매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거 같다.
그런 건 착각이 아니었는지 미스트가 스타킹을 똑바로 입혀주겠다면서 조금씩 잡아당기자 다리 라인이 솔기 라인을 따라서 확 살아나기 시작했다.
“우으으으……! 진짜아아…….”
“아하하, 조금만 참아주세요.”
레이시가 부끄러워하자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레오타드를 건네는 미스트.
레이시는 TV에서나 봤었던 옷이 자기에게 내밀어지자 얼굴을 붉히면서 레오타드를 입기 시작했다.
장골의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레오타드.
어깨도, 쇄골도, 척추선의 형태도 훤히 드러나자 레이시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쭈뼛거리면서 몸을 가리려고 애쓰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웃으면서 계속해서 꾸미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꼬리가 긴 베스트를 꺼내는 미스트.
마치 제비의 꼬리처럼 엉덩이 바로 위에서 양쪽으로 길게 갈라진 베스트의 모습에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스트가 팔을 벌리라고 말하자 얼굴을 붉히며 팔을 벌렸다.
그러자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귀엽다고 속삭이면서 베스트를 입혀주기 시작했다.
평소에 입던 것과 다르게 옆가슴만 살짝 가리고 가슴을 가운데로 모아주면서 오히려 가슴을 강조하는 베스트.
레이시는 가슴골이 생기면서 가슴이 강조되자 부끄럽다는 듯 손으로 가슴을 가렸지만, 미스트는 계속하겠다며 목에 칼라를 채운 다음 리본 넥타이를 매주었다.
그 다음에는 양손에 커프스를 채워주었고 레이시를 껴안더니 엉덩이에 바니 테일도 달아주었다.
“이제 하이힐이네요.”
“으으으…….”
의자에 앉아서 미스트에게 발을 내미는 레이시.
미스트는 이번에는 굽이 높으니 조심해서 걸으라며 주의를 준 다음 하이힐을 신겨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을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꼴로 사람들 앞에 나가야 한다니…….
사람들이 쳐다보면 아무 생각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다가 엎어질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설마, 부엉이랍시고 지금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설마 그러겠냐며 토끼 머리띠를 찬 다음에 쭈뼛쭈뼛 일어났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일어나자 걷는 연습을 하자며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보는 레이시.
처음에는 발목에 걸리는 자신의 하중이 낯설어 어색하게 걸었지만, 레이시는 그 느낌에 금방 적응해서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예쁘네요.”
“우우우……. 정작 저는 부끄러워 죽겠거든요?”
“아하핫! 귀여우셔라. 그럼 직원분께서 부르시는 거 같은데, 나가볼까요?”
“……네에.”
미스트의 말에 정신을 차리자 노크 소리가 들려오는 대기실의 문.
레이시는 노크 소리에 이제 조금만 더 부끄러워하면 끝난다는 생각에 얼굴을 붉히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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