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이런 자신감은…….4
* * *
엘라가 레이시가 달거리에 욕을 한 다음 날, 레이시는 다시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셋째 날에도, 넷째 날에도 이어졌고 레이시는 점점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칭찬을 한쪽 귀로 듣고 반대쪽 귀로 흘리고 있는 거지만.
“오늘도 예쁘시군요. 조금 있으면 헤어져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하하, 감사합니다.”
매번 이런 칭찬을 신경 써서 부끄러워하면 몸이 못 견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도 기쁘지만, 자기가 들었을 때 제일 기쁜 칭찬은 엘라나 미스트, 미네르바와 아샤가 칭찬해 주는 거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칭찬받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점점 엘라가 원하던 방향과 다른 식으로 멘탈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자기 외모에 대해 인식하기보다는 애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칭찬은 있으면 좋아하지만, 나쁜 말을 해도 ‘소중한 사람이 아니니까.’라면서 태연하게 무시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을 깜빡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건 개인적으로도 기쁘고, 레이시의 인생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는데…….
엘라는 마차 안에서 복잡한 얼굴을 한 채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으음~ 뭐, 좋지 않나요? 귀족들의 이간질에 흔들리지 않게 됐잖아요.”
“아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어요. 이 정도로 했는데도 이렇다는 건 레이시가 자기 외모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인 거예요. 저희가 아무리 칭찬해줘도 사람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 거기에다 공주님이 레이시의 외모만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딱히 없긴 한데…….”
내심 레이시가 자기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며 장신구로 치장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엘라의 표정에 싱긋 웃으면서 좋게 생각하자며 입을 열었다.
“미인 대회에는 나갈 수 있게 됐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그렇지…….”
자기 외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가든,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든 미인 대회에 나가게 되었으니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볼 순 있지.
미스트의 말에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눈을 깜빡이다 한숨을 깊게 내쉬며 책을 펼쳤다.
펼친 책은 사람을 칭찬하는 법이 적힌 책.
이런 책, 읽어봐야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공부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런 생각에 엘라가 금방 책에 집중하자 미스트는 작게 웃다가 레이시를 꾸밀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자기라면 미인 대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레이시를 고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쩔지 모르니 꾸며줘야겠지.
일단 무리해서 힘을 줄 필요는 없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꾸며볼까…….
그런 식으로 생각하던 미스트는 아샤가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두들기자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연 다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앞에 병사. 마케르크 가문의 병사인 거 같은데 호위 받을까? 아니면 상인들하고 갈까? 어떻게 할래?”
“응? 상인들하고 가. 상인들하고 가면 따라올 수밖에 없거든.”
“그래?”
“응.”
엘라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 한숨을 내쉬는 아샤.
결국 병사들에게 말하는 건 자기에게 떠넘기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에게 고삐를 넘긴 다음에 마차에서 내려 병사들에게 갔고, 마케르크 가문의 병사들은 아샤가 다가오자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자기들이 호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샤는 엘라는 지금 오랜만의 여행에 흥을 내고 있으니 호위들과 함께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거절했고, 병사들은 아샤의 거절에 당황하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들은 루룬에게서 어떻게든 아샤를 호위하고 오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그리고 루룬은 자기가 세운 계획에서 벗어나는 짓을 했다간 반드시 벌을 주는 사람이었다.
엘라와 함께 오지 않는다면 자기의 체면이 병사들이 멋대로한 판단 때문에 먹칠 당했다면서 벌을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십인장을 바라봤고, 십인장은 병사들의 시선에 조심스럽게 상인들과 함께 가는 건 허락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엘라에게 갔다오는 시늉을 한 다음 고개를 끄덕이는 아샤.
병사들은 생각보다 호위할 사람이 늘어났지만, 루룬이 엘라와 함께 올 걸 명령했지 누구를 추가로 호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은 없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엘라에게 인사하러 갔다.
루룬이 준비해준 궤짝과 함께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마차의 문을 두들기는 병사.
미스트는 마차의 문을 열고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고, 십인장은 이번에 엘라를 호위하게 되었다며 목적을 밝힌 다음 루룬의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마차의 위에 있던 미네르바에게 궤짝을 받아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마차 위에서 낮잠을 자던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비비며 아래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이내 병사 둘이 들고 있는 궤짝을 한쪽 발로 잡아 마차 위로 올렸고, 이내 마부석에 있는 레이시의 옆에 앉았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루룬 마케르크 님에게는 그대들의 공을 확실히 말해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호위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네르바의 모습에 움찔 떨다가 미스트의 말에 금방 흥미를 끊고서 호위를 준비하러 가는 병사들.
미스트는 꽤 잘 훈련된 병사 같지 않냐며 작게 웃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병사들을 힐끗 바라보다가 흥미없다는 듯 손짓했다.
“병사에게 중요한 건 유연함과 인성이야. 규율만 따르려고 그러면 못 써먹는다고?”
“루룬 님에게 그런 말을 하면 다시 싸우게 될 거예요.”
“아니, 지금은 서로 활동하는 영역이 다르다고 인정하고 있으니까 싸우지는 않아.”
“그런가요?”
“응.”
자기 영역은 개인의 무력이 훨씬 중요한 영역이며 루룬의 영역은 집단의 규율이 더 중요한 영역.
전에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있다며 엘라는 싸우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그럼 다행이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는 레이시에게 병사들이 출발하면 출발하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하양이에게 소금 결정과 당근을 먹여준 다음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 즈음.
레이시는 병사까지 합류한 야영지의 모습에 꽤 북적거린다고 생각하면서 미스트를 도와 저녁 준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저……, 저녁 준비가 아직 안 되셨다면 이거 드시겠어요? 미스트…… 선배가 만들어주셨어요.”
“아, 감사합니다!”
원래 계획이 엘라를 데리고 빠르게 도시로 가서 도시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호위하는 것이었기에 이틀 분량의 비상식량밖에 준비해오지 않은 병사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조리가 된 요리를 먹는데 비상식량으로 배를 때우기 싫었던 병사들은 상인들과 식료품의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고, 레이시는 그런 모습을 보다가 미스트에게 부탁해서 스튜를 좀 더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병사들에게 가져다주는 레이시.
병사들은 레이시의 말에 환하게 웃다가 스튜를 받았고 레이시는 그런 병사들에게 수고해달라며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멍하니 레이시를 바라보는 병사들.
병사들은 레이시의 녹색 머리카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근처 상인에게 레이시의 정체를 물어봤고, 상인은 병사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입을 열었다.
“보면 모릅니까? 메이드잖습니까?”
“아, 아니. 그, 그건 아는데…….”
“아, 혹시 반하셨습니까?”
“……솔직히, 네. 아름다운 분이네요. 나긋나긋하고.”
“포기하십쇼. 공주님의 애인이신 듯 하더군요.”
“……예?”
“공주님의 애인쯤 되시는 것 같더군요. 식사시간마다 옆자리에 앉히시곤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드시는데, 레이시 양에게서 눈을 떼지 않더군요.”
상인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엘라가 레이시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허리를 끌어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엘라를 쳐다보는 병사들.
그런 병사들의 눈은 레이시가 엘라의 손등을 때리며 잔소리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엘라가 볼을 꼬집히고 있어도 헤실헤실 웃기만 하자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루룬과 엘라가 사귀고 있을 때의 엘라와는 아예 다른 사람 같은 모습.
그때의 엘라는 뭔가 잘못 건들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이 위험하고 음험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엘라는 왕족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평범한 여자 같은 모습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조금은 본능적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왕족이 아니라, 모험가 같은 모습의 엘라.
병사들은 엘라와 레이시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자기들끼리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남의 연애사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일이기도 하고, 만약 정말로엘라의 여자 친구라면 일개 병사로서는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렇게 생각한 군인들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면서도, 호위 대상에게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며 레이시에 대한 흥미를 끊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엘라는 씩 웃으면서 레이시를 놀렸다.
“군인들도 네가 좋은 것 같은데?”
“네? 저는 엘라가 좋은데요?”
“……저 군인들, 레이시에게 첫눈에 반한 거 같아.”
“저는 엘라가 덮치는 바람에 첫눈에 반할 틈도 없었지만요.”
“…….”
“그래도 사랑해요?”
칭찬 세례에 완벽하게 해탈해버린 레이시의 반응.
엘라는 너무나 강해진 레이시의 멘탈에 눈을 마사지하다가 한숨을 내쉬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번에는 엘라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튜 그릇을 받아들고 엘라의 입에 수저를 가져다줬다.
“아앙~.”
“허……?”
“책만 읽으면 눈 아플 거예요. 거기다 마차가 좋다고 해도 흔들리니까 멀미도 날 거고요. 오늘은 제가 밥 먹여드릴 테니까 책 읽지 말고 얌전히 주무세요.”
레이시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는 엘라.
엘라는 누가 레이시를 이렇게 만들었냐며 속으로 항의했다가, 레이시가 수저를 자신의 입가에 가져가고 애교를 부리듯 입을 벌리라고 말하자 얼굴을 붉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의기양양해서는 아까와는 반대로 엘라를 먼저 놀리기 시작했다.
“엘라, 이럴 때는 정말 귀엽네요.”
“윽……, 시, 시끄러워!”
“에헤헤, 빨리 아앙~ 해요. 저, 팔, 아프니까요.”
“크으으……! 아, 아앙…….”
“헤헤…….”
한참을 앓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레이시에게 패배하고 마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에게서 승리하자 배시시 웃으면서 자기가 한 말대로 스튜를 전부 떠 먹여주었고, 엘라는 레이시가 헤실거리면서 자기를 쳐다보자 한참을 부르르 떨다가 과일을 입에 물고는 레이시의 뒷목을 잡고 거칠게 키스했다.
엘라는 마치 화풀이를 하듯 레이시의 입술을 훔치고 입에 넣어둔 과일을 레이시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레이시가 그걸 먹을 수 있게 볼을 잡고 레이시의 입을 움직이게 했고, 레이시는 입안에 퍼지는 상쾌한 레몬의 향기에 움찔움찔 떨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떨어졌다.
“으, 으으으으……!”
“흥! 나한테 이기려고 하다니……. 아직 멀었거든!?”
“좀 져주면 안 돼요!?”
“싫어!”
애처럼 싸우면서도 서로 떨어지지는 않는 엘라와 레이시.
미스트와 아샤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못 말린다는 듯 혀를 차면서 농담을 주고받다가 미네르바가 레이시에게 가자 엘라에게 루룬이 보낸 궤짝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엘라를 불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