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이런 자신감은…….1
* * *
“그럼 내일 출발하자.”
“히이잉…….”
엘라의 말에 울상을 지으면서 산양에게 채울 고삐와 등자를 준비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렇게 싫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혹시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엘라를 바라봤다.
울상을 짓든 말든 이번 건 안 된다면서 단호하게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그럼 왜 물어봤냐며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입술을 가볍게 잡아당기면서 이것도 일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배그 영지를 다스리는 마케르크 가문이 왕가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말해주고, 그 대가로 상을 받는다.
일이라면 일이기에 엘라는 레이시의 볼을 자꾸만 잡아당기면서 엄살은 그만두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훌쩍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팔자에도 없는 미인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 셰런 미인 대회이니 뭐니 하는 건 그냥 이름만 미인 대회라 다행이었지만, 이제 가는 곳에서 하는 미인 대회는 얄짤 없이 미스 뭐시기를 뽑는 대회다.
“으, 으으으…….”
조별과제도 서로 떠넘기다 어쩔 수 없이 발표를 맡았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 가서 예쁜 척 해야 한다니…….
레이시는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려 얼굴을 찡그리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얼굴에 조금은 미안해지기 시작해서 눈을 피했다.
하지만 그렇게 눈을 피하는 것도 잠시, 엘라는 일이 우선이라며 레이시에게 준비하라고 말했고 미스트에게도 레이시를 꾸미라고 말했다.
“그 날에는 치마를 입어줬으면 해. 명령이야.”
“……우.”
“이번만큼은 안 돼. 일이니까.”
“알아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MT 때 했었던 여장을 여자의 몸으로 하고, 농촌의 어르신들에게 보여주는 거랑 똑같다.
레이시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다가 미스트를 바라봤다.
루룬의 말대로라면 레이시가 자신감이 없는 건 외모만으로 칭찬을 받고 이득을 본 경험이 없어서.
그걸 없애기 위해서는 칭찬을 해준다거나 그래야겠지만, 안타깝게도 엘라는 그런 면에 있어선 솔직하게 말해 별로 재능이 없었다.
애초에 잠자리를 가질 때도 칭찬하는 게 부끄러워서 끽해야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게 전부인데 외모만으로 이득을 보는 것 같은 칭찬을 해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런 종류의 말재주가 없는게 이렇게 아쉬운 일이 될 줄이야…….
엘라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꿍얼거리면서 짐을 챙기는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포옹에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참가할게요오……. 일이니까.”
“미안.”
“우으, 일인데 왜 미안해하는 거예요?”
“싫어하는 일이잖아.”
“괜찮아요. 근데……, 화살은 안 맞겠죠……?”
“뭐, 대회 자체는 평범한 미인 대회니까 그럴 일은 없지.”
“아하하하하……, 하하……, 하아…….”
농담하면서 웃다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어떻게 달래줄까 고민했지만, 다행히 레이시는 알아서 기운을 차렸는지 어차피 대회에 참가한 이후로는 밖으로 안 나가면 된다며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운 거니까 밖에만 안 나가면 되잖아요!”
“……풉.”
“나름 진지하게 고민한 결관데…….”
“그냥 밖에 돌아다녀, 알아봐야 얼마나 알아본다고 그래?”
“그치만, 미인 대회에는 안 어울리는데 외몬데 나가게 됐잖아요.”
“그럼 내기해볼까? 레이시가 이기면 뭐든 한 가지 들어줄게. 뭐 원하는 거 있어?”
“에에~. 딱히 없는 걸요?”
“그래? 그럼 내가 마음대로 골라서 선물 하나 줄게. 대신 내가 이기면 내가 놀려도 화내지 마.”
“에에…….”
엘라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는 레이시.
하지만 이번 내기는 저번 내기와 다르게 승산이 꽤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라의 내기를 받아들었다.
내기의 내용은 미인 대회가 끝나고 놀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5명까지만 놀린다면 엘라의 승리였고, 6명 이상이 놀린다면 레이시의 승리인 간단한 내기였다.
“그럼 가볼까? 내기가 어떻게 될지 확인하려면 네가 미인 대회에 나가야 할 테니까.”
“으윽. 계속 말하지마요. 지금이라도 도망치고 싶으니까.”
“이번에는 아샤도 안 도와줄 건데?”
“치사해.”
“킥킥!”
엘라의 웃음에 같이 배시시 웃다가 내일 떠날 준비를 끝내는 레이시.
여전히 작은 원룸 수준의 크기를 자랑하는 마차였지만, 저번보다 훨씬 가볍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마차.
이번에 하양이라는 이름이 생긴 산양을 보던 레이시는 대단하다며 산양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사료와 소금을 챙긴 다음 마부석에 올라갔고, 아샤는 레이시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마부석과 마차 안을 연결하는 작은 창을 열었다.
“그럼 간다?”
“응,출발해.”
그리고 엘라에게 출발하겠다고 말하는 아샤.
아샤는 혀 깨물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한 다음 레이시에게 고삐를 쥐어 줬고, 레이시는 조심스럽게 고삐를 잡고서 마차를 움직였다.
도시 안에서 운전할 땐 사람들도 많고 신호를 주는 사람도 있어서 꽤 긴장하면서 운전하던 레이시였지만 외벽을 빠져나가자 금방 졸리기 시작했고, 졸음운전만은 안 된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 아샤에게 농담을 건넸다.
“아샤, 아샤. 이거 마차죠?”
“응.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하양이가 끌고 있으니까 양차 같은 게 아닐까요?”
“……졸리지?”
“아, 아하하…….”
레이시의 농담에 조용히 육포를 건네주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반응에 씁쓸하게 웃으면서 육포를 입에 물었고,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자신의 뿔을 긁다가 그런 취향이었냐며 물어봤다.
“아저씨들이 할 법한 농담이었는데.”
“으윽…….”
“졸리면 이거 씹어.”
“에? 무슨 풀이에요?”
“잠깨는 풀.”
“헤에에~ 그런 풀도 있어요?”
아샤가 건네준 풀을 천천히 살펴보는 레이시.
둥근 잎에 털이 없고, 줄기를 꺾자 투명한 액체가 흐르는 풀.
전생에서는 없는 모습의 풀이었기에 레이시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풀을 입에 넣고 씹었고, 이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한 느낌에 입을 틀어막았다.
“잠, 확 깨지?”
“이, 이허 허 어허헤 힘호 히허요?”
“이런 거 어떻게 씹고 있냐고?”
레이시의 말을 해석해서 다시 물어보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천천히 입에 있는 풀을 껌처럼 씹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반응에 킥킥 웃다가 손가락으로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튕겼다.
“즙만 빨아 먹고 뱉어, 잎은 삼키면 배탈 걸려.”
“네헤에에…….”
“한동안은 계속 이런 길을 달려야 할 텐데 벌써 졸음운전은 안 되지. 그렇지?”
“아, 아하하…….”
“네가 꽤 익숙해져서 기승 관련 스킬을 얻으면 반쯤 졸면서 마차를 몰 수도 있는데, 아직 그렇게는 무리지?”
“네.”
“그럼 한 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자.”
“죄송해요.”
“아니, 대충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지금까지 도시 안에서만 운전했잖아.”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아샤.
아샤는 천천히 시간을 늘려가면 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노력하겠다며 기합을 넣고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동안 쉴 새 없이 잡담을 나눠서 그런지 길과 초원과 수풀만 보이는 레이시는 졸지 않고 아샤와 교대했고, 곧바로 늘어지게 하품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입을 막고 어색하게 웃더니 아샤의 눈치를 슬며시 살펴봤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운전하는 사람이 졸지 않게 도와주는 게 매너인데…….
다행히도 아샤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지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담요를 건네주었다.
“한 시간 뒤에 깨울 테니까 조금 자. 은근히 지칠 거야.”
“네. 고마워요.”
“뭘.”
흔들리는 마차가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아샤의 몸에 기대서 편하게 낮잠을 자는 레이시.
아샤는 자기 어깨에 기대어 자는 레이시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를 한쪽 팔로 끌어안으며 마차를 몰았다.
한쪽 팔 때문에 조금 자세가 불안하게 변했지만, 기술로 어떻게든 떼우고 레이시를 껴안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포옹에 좀 더 편하게 잠을 자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창을 닫았다.
“그럼 나도 잘게. 일 생기면 말해.”
“잘 거면 얌전히 자라. 시끄럽게 굴면 길바닥에 버린다.”
“아하핫!”
아샤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담요를 끌어올리는 엘라.
아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미스트가 작은 창을 통해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며 마차를 몰았다.
그리고 레이시가 자는 걸 보고 일부러 10분 정도 늦게 깨우는 아샤.
어차피 시계도 없겠다, 조금 늦게 깨워도 별 상관 없겠지.
힘든 것도 나밖에 없고.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와 함께 마차를 몰았고 얼마 안 가 마차는 야영지에 도착했다.
이미 선객이 있는지 몇 개의 마차가 있는 야영지.
레이시는 그 모습에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아샤에게 왜 다른 사람들도 있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 레이시에게 중간 야영지에 온 적 없냐고 물어봤다.
“도시하고 거리가 애매모호하게 먼 곳에는 이렇게 상인이나 용병단들이 야영지를 만들어. 수가 많아지면 몬스터든 도적이든 쉽게 못 덤비니까.”
“아하…….”
“그 전에는 번화가 쪽으로만 달렸었지?”
“네.”
“그럼 이런 거 모를 수도 있지. 이번에는 이런 거 꽤 많이 보게 될 건데……. 흐음……. 오늘은 내가 규칙들을 가르쳐줄 테니까 보고 배워.”
“네에.”
변경백의 영지로 가는 길은 포장만 되어있다 뿐이지 발전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요새 도시 포트리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포트리스는 주변 귀족들이 몬스터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 귀족들이 모여서 만든 도시.
당연히 도시와 도시 사이의 연결이 잘 이어져 있는 상태고 실제 주변 귀족들과의 사이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배그는 조금 사정이 다르다.
혹시 외적을 막기 위해서 국왕의 영지 근처에 일부러 만든 도시.
국경 근처에 많은 도시를 만들 수 없으니 주변 도시와는 똑 떨어져 있었고 스파이나 다른 문제들 때문에 주변 도시와의 연결도 적었다.
그러다보니 생긴 게 이런 집단 야영지.
아샤는 규모가 커지면 산적이든 몬스터든 야영지를 덮치기 어려워지니 이렇게 모이게 되었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하다가 아샤가 시키는 대로 마차를 몰았다.
“자세히 보면 나무에 명패가 걸려있지? 숫자에 막대기를 꽂지 않은 곳엔 주차해도 좋다는 거야.”
“그럼 주차하고 막대기를 꽂아야겠네요?”
“응. 꽂는 건 대충 나뭇가지면 괜찮아.”
아샤가 가르쳐주는 대로 나뭇가지를 꽂아두는 레이시.
레이시는 나뭇가지를 꽂은 다음 마차를 지정된 자리에 주차했고 아샤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인사하는 이유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해.”
“어……, 그럼 가서 엘라의 메이드라고 소개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그리고 접근하지 말아달라고 말해야 해. 안 그러면 친분을 쌓겠답시고 달려들거든.”
“으으응…….”
“경험담이야.”
경험담이라는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왕궁에서의 일을 떠올려보는 레이시.
어떤 면에서는 귀족들보다 더 하다고들 하는 상인들이 상대라면, 확실히 아샤의 말대로 그렇게 인사하러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가 가르쳐주는 대로 상인들에게 인사했고, 상인들은 레이시의 인사에 아쉽다는 듯 마차를 쳐다보다가 레이시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자리를 떴다.
그러자 다시 한번 어색하게 웃으면서 마차로 돌아가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돌아오자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인사에 터벅터벅 걸어가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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