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미인 대회는 무리에요4
* * *
이번에는 제발 평범한 다과회…….
평범한 옷과 평범한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
평범하다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번처럼 사냥만 안 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와 함께 사육사 일을 처리한 다음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에 기 싸움은 끝났는지 서로 사이좋게 옷을 고르고 있는 엘라와 미스트.
레이시는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며 어색하게 웃다가 두 사람에게 다가갔고, 두 사람은 레이시가 다가오자 카탈로그에서 그나마 수수한 옷들을 몇 가지 보여줬다.
“이 옷들로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저는 저게 그나마 무난해 보여서 좋아요.”
“응? 무슨 소리야?”
“네?”
“이거 다 살 거라고.”
“……네?”
“한 벌, 두 벌 사서는 뭐가 좋은지 모르잖아. 한 번에 한 10벌 정도 사서 입어 보고 마음에 안 드는 건 그냥 반품시켜서 가게에서 팔아버리게 하자.”
“그거, 진상 손님이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지. 왕족이 주문했었던 옷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디자인의 옷의 인기가 확 올라갈걸? 거기에다가 무난한 디자인의 옷이니까, 품질만 조금 낮춰서 중산층에다 팔겠지.”
“…….”
엘라의 말에 의심하는 눈으로 엘라를 쳐다보는 레이시.
하지만 엘라는 억울하다는 듯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며 레이시를 설득했고, 엘라의 말이 틀리지 않은 건지 미스트도 엘라의 말을 거들었다.
심지어는 둘 사이에 있던 아샤마저 엘라의 말이 맞다고 말하자, 레이시는 조금씩 의심의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는 안 된다는 듯 레이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유명 연예인이 자기네 제품을 입었다고 홍보하는 거랑 마찬가지인 걸까…….
그렇다고 하지만 주문하고 입어본 다음에 반품해버려도 좋다고 받아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쭈뼛거리면서 엘라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 다음, 미스트에게 다과회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라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도 레이시에게 나쁜 짓을 하진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주의하실 분이 있기는 하네요.”
“네?”
“마케르크 백작 가문의 영애요. 공주님의 전 여친 중에서 꽤 사이가 깊던 사람이에요.”
“어…….”
그거 파이트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건가요…….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스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쭈뼛거리면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췄다.
“루룬이 딱히 네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야. 주의하라는 건 걔 성격이…….”
“성격이 어떤데요……?”
“바이에 색정광. SM 마니아.”
“…….”
“나랑 사귀고 있을 때도 파트너의 수가 8명은 됐으니까, 아마 너를 보면 추파를 던질 걸?”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볼을 쪼물거리는 엘라.
엘라는 거의 100% 확률로 그럴 거라면서 애인이 걱정되서 이렇게 마음을 졸이게 될 줄은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한숨을 전혀 듣지 못한 채 눈을 깜빡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엘라가 지금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으니까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자 대체 전 여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계속 신경 쓰였다.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고 다닌 거예요…….”
“아하하……. 아무래도 다들 자극적인 사람이었지? 스트레스가 심한 일을 하다 보니까 평범한 사람하고 만나면 아무래도 싸우게 될 것 같아서.”
“전 딱히 자극적이지 않는데…….”
“음, 지금은 편견이었다고 반성하고 있어.”
그래도 편견이 늦게 깨져서 레이시와 만날 수 있었다며 웃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를 끌어안고 다시 한번 가볍게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애정행각에 한숨을 내쉬면서 주의해야 할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들었다.
루룬 마케르크.
엘라의 전 여친이자 변경백의 영애.
다른 귀족들과 다르게 더 많은 군사력을 지닐 수 있는 변경백 가문의 사람답게 군사에 대한 지식이 꽤 많은 사람으로 배그 영지의 실질적 지배자인 사람.
레이시는 이어지는 엘라의 설명에 엘라가 왜 루룬과 사귀었는지 알 것 같다며 엘라를 쳐다봤다.
“에휴…….”
“으윽.”
레이시의 한숨에 움찔 떨면서 시선을 피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한숨에 움찔 떨다가 한숨을 내쉬며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사과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딱히 화난 거 아니에요.”
“그럼……?”
“그냥 저보다 멋진 사람인 거 같은데 왜 헤어졌나 싶어서요. 엘라는 루룬 씨가 다른 사람하고 사귀고 있어도 딱히 아무 말도 안 할 거잖아요.”
“으으음.”
레이시의 말에 앓는 소리를 내는 엘라.
레이시가 하필이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자 엘라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를 껴안았다.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듣고 싶어?”
“우응…….”
엘라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한숨을 다시 깊게 내쉬다가 얼굴을 붉히며 뺨을 긁적였다.
“서로 군대를 보는 시선이 달라서 싸우고 헤어졌어.”
“네?”
“나는 군대는 치안 유지, 혹은 주변 안정화를 위해서만 써야 하니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고 루룬은 그래도 군사인 이상 물리적인 힘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며 힘과 규율을 중시했거든. 그거 때문에 토론하다 싸우고 헤어졌어.”
“화해하려고는 안 해봤어요?”
“으음……. 우리 둘 다 SM플레이를 좋아하다보니까 좀 과격하게 갈 때도 있거든. 그런데 약간의 앙금이라도 있어 봐,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정작 화가 풀렸을 때는 둘 다 다른 애인을 만들고 끼고 돌아서 화해는 했는데 흐지부지하게 됐어.”
“……엘라, 변태.”
“아, 아니! 지금은 레이시만 볼 거야!”
“흥…….”
엘라의 말을 전부 듣고나자 괜히 긴장했다며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레이시는 뭔가 안심이 되면서도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에 엘라를 노려보다 고개를 돌렸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당황하며 레이시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혀를 빼꼼 내밀더니 배시시 웃었고, 엘라는 자기가 놀림당했다는 사실에 피식 웃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레이시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그런 거로 놀리지 마.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베에, 싫어요.”
생리중이라 그런지 장난기가 강해진 레이시.
엘라는 이런 레이시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레이시가 진짜로 미워하면 어쩌냐며 걱정했었던 자신의 모습이 퍽 웃겨 한참을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엘라는 옷을 주문하고 국왕과 연락하며 다과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며 레이시와 같이 나갈 다과회에 대비했다.
그리고 5일 후, 레이시는 다과회에 나가는 마차에 올라탄 채 긴장한 얼굴을 했다.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떻게 긴장을 안 할 수가 있어요?”
평소라면 산책하며 갈 거리인데도 마차를 타고 움직이는 엘라 일행.
레이시는 그 이동 방식에 자신이 이제부터 다과회에 참석한다고 실감하면서 바들바들 떨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모습에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긴장되면 부적이라도 줄까?”
“네?”
“아랫배에 음문 새기면 긴장은 사라질 거야.”
“그야 그러면 긴장은 안 하겠죠! 근데 다른 게 엉망진창이잖아요!”
“풋! 그렇지? 너무 긴장하면 반대로 다른 게 엉망진창이 되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우우우우…….”
엘라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옆자리의 미네르바에게 안기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벌써 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울상 짓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밖을 쳐다봤다.
다른 다과회와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초대했고 홍보도 거의 하지 않은 다과회인데도 온 한가한 사람들.
왕족이 여는 다과회랍시고 아무 생각도 안하고 참석하겠다고 말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한심하다는 듯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귀족들을 보고는 혀를 찼고, 자신을 마중하러 사람들이 나오자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자, 레이시, 내려와.”
평소와는 다르게 먼저 내려서 손을 내미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정말로 괜찮은 거냐며 엘라를 쳐다보다가 엘라가 손을 내민 채 계속해서 웃자 쭈뼛거리면서 손을 내밀었다.
“후후, 이러니까 네가 공주님이 된 거 같네.”
“정장이니까 왕자님이 아니라요?”
“이렇게 귀여운 왕자님이 어디에 있어? 공주님이지.”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다과회장에 들어서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태평하게 농담을 하면서 자신을 데리고 움직이자 안심하면서 엘라를 따라갔고, 엘라는 레이시가 긴장을 풀고 자기를 따라오자 레이시를 옆에다 두고 귀족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대부분은 그저 자기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레이시를 의무적으로 칭찬하는 귀족들.
레이시도 그걸 느꼈는지 귀족들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으며 귀족들에게 고맙다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인사를 받아주길 30분.
다들 인사를 끝냈는지 엘라와 레이시에게 오는 귀족들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조금씩 줄어드는 귀족들의 모습에 안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그렇게 긴장했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귀족에겐 좋은 기억이 전혀 없어서요…….”
처음 만난 귀족은 자기에게 화살을 쏘고 죽이려 들었지,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은 사냥대회를 구실로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다.
어떻게 귀족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지닐 수 있을까?
자기가 귀족들을 상대로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건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았을 때밖에 없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레이시가 만난 귀족다운 귀족은 전부 자기를 죽이려 들었구나.
어째 좀 이상할 정도로 긴장하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배려가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다과회가 끝나면 저택에서 작게 파티라도 하자며 웃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더 힘내보겠다고 말하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사람들이 안 보는 사이에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온 귀족을 바라봤다.
“으윽…….”
“오랜만이시네요. 공주님.”
“루룬……. 그래, 오랜만이네.”
“당신이 레이시 양? 생각보다도 아름다우신 분이시네요.”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온 사람은 루룬 마케르크.
레이시는 루룬의 말에 움찔 떨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를 받아주었고, 루룬은 레이시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며 레이시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후후, 귀엽네요. 엘라가 좋아하는 이유를 대충 알겠네요.”
“……에?”
“푸훕,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당신은 엘라의 취향이긴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거든요. 저는 거칠게 하는 걸 좋아하는데 당신에게는 그러지 못할 거 같아서요.”
나긋나긋하게 웃는데도 뭔가 위험한……, 휘말리면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루룬.
레이시는 그런 루룬의 분위기에 움찔 떨면서 루룬을 쳐다봤지만, 루룬은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며 싱긋 웃으며 레이시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에게 마케르크 가문의 루룬이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하아아……. 그래, 루룬, 부군께서는 잘 지내시나?”
“네, 공주님이 언제 저희 영지에 방문하기를 기대하는 중이랍니다.”
“한 번 뵙도록 하지.”
서로 웃는 얼굴로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게 인사하는 엘라와 루룬.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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