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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13화 (113/542)

〈 113화 〉 국왕의 제안­3

* * *

국왕의 말에 관자놀이에 검지를 올리고 생각하는 자세를 하는 레이시.

귀족이 되라는 말보다는…… 낫나?

아니, 갑자기 미인 대회에 나가서 이기라니.

아무리 엘라나 미스트, 미네르바와 아샤가 아껴준다고 해도 거기에 나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의식 과잉이 아닐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다가 잠시 후 머리를 긁적이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하지만 엘라는 레이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진지한 얼굴로 미스트에게 레이시라면 이길 수 있지 않겠냐며 물어봤고, 미스트는 3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가만히 있던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말에 레이시가 1년, 2년에는 지는 거냐며 당장에 올해에도 이길 수 있다며 이상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자 머리를 부여잡고 어지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레이시.

국왕은 그런 엘라 일행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셰런 미인 대회의 기원부터 이야기해주었다.

“뭐, 평범한 미인 대회는 아니니까 안심하게나!”

“……네?”

“셰런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있는가?”

“아뇨,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셰런이란 우리나라의 초대 왕비님의 성함이라네.”

“네?”

“그분께서는 한 마리의 짐승과 같이 영토를 확장하던 맹장이었던 초대 국왕님을 훌륭한 정치인으로 가르치셨지. 그리고 그때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주변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것, 즉, 평화의 마음이었지. 그 이후 우리는 셰련님을 기려서 왕족의 곁에서 일하는 사용인 중 주인을 잘 보좌하는 사람을 골라 상을 내려준다네.”

“어……, 그럼 미인 대회가 아니지 않나요?”

사용인 기능 대회라거나 그렇게 불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국왕을 쳐다봤고, 국왕은 레이시의 시선에 소탈하게 웃으면서 그 부분은 셰련을 기리기 위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분을 단순히 보좌, 사용인이라고 말하면 죄송스럽지 않은가? 개국공신 중 가장 큰 공헌을 하신 분인데. 그래서 미인 대회라고 부르는 걸세. 셰런님의 미모는 당대 제일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니 딱 좋은 이름이지.”

“아하, 그렇구나.”

하긴 위인의 특징을 따서 대회를 여는데 사용인 기능 대회라고 말하기는 조금 그렇겠구나.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이해했다는 듯 쭈뼛거리면서 자기가 그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거냐고 물어봤다.

자신도 엘라의 사용인이기는 하지만, 역시 엘라를 보좌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미스트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 그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마찬가지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요리에 세탁, 청소, 서류 작업, 돈 계산과 일정 관리, 거기에다가 화장이나 기타 등등 그 모든 것을 처리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말하자 국왕은 셰런 미인 대회의 심사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그렇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아까 말했든 평범한 미인 대회는 아니라네.”

“네?”

“왕족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 왕족을 얼마나 보좌해줬는지 그걸 보고 판단하지, 그 사람의 능력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네. 한 마디로 베스트 페어 상 같은 거로군. 거기에다가 부하에게 상을 주기 위해 여는 대회나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네.”

“헤에…….”

점점 미인 대회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니, 미인 대회에서 멀어지는 수준이 아니라 사용인 기능 대회와도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점점 자신의 중요함이 떨어지자 긴장이 풀리는지 레이시는 처음 미인 대회에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훨씬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의 말을 들어보면 셰런 미인 대회는 왕족이 다른 왕족에게 자신이 이만큼 일했으니 자기 사람에게 상을 주면 어떻겠냐고 의논하는 대회 같았다.

그런 대회라면 아무래도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보다는 엘라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가 더 중요하겠지.

“으응, 엘라, 죄송해요.”

“응? 뭐가?”

“엘라가 한 일로 제가 일방적으로 이득을 얻는 거잖아요. 죄송해요.”

“아……, 그런 의미? 괜찮아. 레이시가 없었어도 해야 할 일이었고, 레이시가 그 상을 받으면 원래는 못 받는 것들도 받을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도 이득이 있거든.”

“네?”

“휴가야. 베스트 페어 상 같은 거라고 했잖아. 그 상을 탄 왕족과 그 사용인들은 그들의 인연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휴가를 갈 수 있어. 보통 왕족은 마음 편한 휴가를 얻는 게 힘들지만, 셰린 미인 대회의 상은 아예 편하게 쉴 수 있어.”

그러고 보니 10년 일하고 3개월 휴가를 얻었다고 했던가.

미스트가 엘라가 본격적으로 휴가를 탐하기 시작한다면 좀 더 나을 거라고 말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고된 행군인 건 달라지지 않는다.

당장에 자기도 산양을 테이밍하기 전까지는 엄청 고생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하자 엘라가 갑자기 대회에 흥미를 보인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해 레이시는 작게 웃으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피식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뭐, 나는 레이시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내 눈치를 봐서 그렇게 부정하지는 않을 거야. 문제는……, 귀족들이네.”

“에……. 또, 그…… 사냥……인가요?”

“아니, 아니. 그런 험악한 건 아니……, 아니, 더 험악한 건가?”

“네?”

사람을 죽이려드는 것보다도 더 험악하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바짝 긴장하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피했다.

그러자 더욱 긴장하며 미네르바의 손을 잡는 레이시.

그렇게 긴장하고 있던 도중 엘라의 입에서 왜 험악한 일이 되는지 그 이유가 나오자 황당하다는 듯 엘라를 쳐다봤다.

“전 여친들이 질투하는 게 문제네.”

“…….”

“…….”

“……엘라, 바보. 사람 겁 먹게 하고 한다는 소리가…….”

“크흠. 할 말이 없네. 조금 문란하게 지내긴 했지.”

크게 헛기침하면서 과거를 반성하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쳐다보다가 하층민 사냥처럼 험한 일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며 미소 지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러자 이야기는 끝났냐고 물어보는 국왕.

국왕은 밑준비에 2년에서 3년 정도는 걸릴 테니 그동안 더욱 사이를 돈독하게 해서 약혼 정도는 해달라며 엘라와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국왕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전생에서도 농촌 봉사 활동 가면 자기 딸과 만나달라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지.

대부분은 나만 볼 떄면 1년 365일 24시간 일에 빠져사는 워킹홀릭이라거나 40대를 넘은 노처녀라 나이가 아무래도 무리여서 트라우마였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아직 그런 관계는 아니니 참아달라며 국왕을 말렸고, 국왕은 레이시의 말에 그 말이 언제까지 갈 거 같냐며 킥킥 웃었다.

그러자 손가락에 마탄을 장전하고 쏠 준비를 하는 엘라.

엘라는 자기는 저택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고, 국왕은 그런 엘라의 말에 일주일 뒤에 레이시와 다과회에 출석하라고 말했다.

“전에도 종종 데리고 간 것 같지만, 대등한 참가자로서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하거라.”

“미스트가 준비 다 할 테니까 미스트와 이야기하세요.”

“딸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은 아비의 마음을 모르는 거니……?”

“으, 징그러.”

“……집사여, 너무하지 않은가?”

“손이나 쉬지 마십쇼.”

“아하, 아하하하…….”

뭔가 엘라와 미스트와는 정반대인 것 같은 국왕과 집사.

레이시는 역시 국왕이 아니었다면 동네 아저씨 같다고 생각하고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국왕은 레이시의 모습에 다시 한번 레이시를 자신의 며느리로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왕자의 배우자라고 한다면 레이시는 부족한 부분 투성이었지만, 엘라의 배우자라고 한다면 레이시가 딱이다.

그렇게 생각한 국왕은 레이시에게 손을 흔들었고, 엘라는 국왕의 인사에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였다.

“아빠하고 오래 이야기하지마, 아저씨 옮아.”

“그거 옮는 거였어요?”

“옮아.”

뾰로통한 얼굴로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얼굴에 자기 아버지를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며 엘라를 걱정했다.

뭔가 볼케릭이라는 왕자와 대화할 때와는 다르게 꽤 편한 듯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지는 엘라와 국왕.

레이시는 가족과 그렇게 험하게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레이시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다른 가족의 사이만큼은 된다며 레이시의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줬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야. 사이가 적당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정말요?”

“응, 레이시는…… 어, 되게 나쁘게 들리는데 오해하지는 마?”

“네?”

“레이시는 가족이 없으니까, 가족끼리도 나랑 너처럼 사이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보통이야.”

“그, 그런가요?”

엘라의 말에 움찔 떨다가 자신이 전생했다는 걸 떠올리고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어색한 웃음에 한숨을 내쉬다가 아빠가 워낙 부끄러운 말을 해서 짜증 났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애초에 나랑 레이시의 이야기잖아. 나는 레이시와 이야기해서 정하고 싶어. 사소한 거라도.”

“……에헤헤, 그건 그러네요.”

“그렇지?”

“뭐, 엘라가 전에 여친을 워낙 많이 사귀어서 힘들어지는 것 같지만요.”

“……으윽.”

레이시의 말에 입술을 샐쭉거리면서 레이시를 흘겨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시선에 킥킥 웃으면서 자기는 모른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휘파람에 한숨을 내쉬다가 고개를 돌렸다.

애초에 스트레스를 모두 여자와 노는 것으로 푼 과거의 자신이 잘못한 일이니까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레이시가 투덜거리면 투덜거리는 걸 받아주고, 불안해하면 안심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밖에 답이 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다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엘라가 삐진 듯 샐쭉거리자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의 볼에 입을 맞췄다.

“농담이에요. 삐졌어요?”

“…….”

레이시의 애교에 눈을 깜빡이는 엘라.

엘라는 한참을 한숨을 내쉬다가 레이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반격했고 레이시가 화들짝 놀라자 씩 웃으면서 부끄럽냐고 레이시를 놀렸다.

그러자 아까와는 반대 상황이 되는 두 사람.

엘라는 얼굴을 붉히고 목을 가리는 레이시를 보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아직 자기를 놀리려면 100년은 멀었다고 대답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투덜거리면서 미스트와 미네르바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 저택으로 들어가는 엘라 일행.

엘라는 저택으로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의 뒤에서 자신을 삐진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레이시를 보고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며 소파 옆자리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러자 쭈뼛거리면서 옆자리에 앉는 레이시.

엘라는 기지개를 켜다가 미스트에게 차를 부탁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차와 다과를 준비해서 두 사람에게 가져다줬다.

“그나저나 셰런 미인 대회인가……. 나는 나갈 줄 몰랐는데.”

“에? 왜요? 미스트랑 엘라랑 잘 어울리는데.”

“으음……, 어울리긴 하는데 미스트는 출신이 출신이라서 못 나가. 그리고 우리는 셰런 미인 대회에 나가기에는 조금 애매하지.”

“네? 왜요?”

“셰런 미인 대회는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키우는데 의미가 있는데 미스트랑 나는……, 어, 서로 약점을 보완하지도 못하고 장점을 키우지도 못하잖아.”

그냥 서로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지.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무래도 그런 건 아니라고 말헀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럼 자신하고는 그런 상에 잘 맞는 거냐고 물어봤다.

내심 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하길 바라면서 하는 질문.

하지만 엘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뭐, 레이시하고는 어울리지?”

“구체적으로 뭐가요?”

“속궁합이 쩔잖아.”

“푸흐으으으읍!? 켁! 컥! 커흡!?”

“……왜 그래?”

“그걸 말이라고……!? 케흡! 아, 코에서 물 나와!”

“푸흡! 아, 생각난 김에 할래. 거부권 없어.”

“네에!? 으꺙!?”

레이시를 소파에 눕히면서 키득키득 웃는 엘라.

엘라는 아까 자기 과거를 가지고 놀린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면서 레이시의 목덜미에 키스하며 레이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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