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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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는 엘라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온 후, 엘라와 미네르바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혼자서 방에 들어가 침대에 엎드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베개에 고개를 파묻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가 자신의 과거에 대한 걸 알아냈다고 생각하고선,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옆에 앉았다.
미스트가 옆에 앉자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미스트에게 손을 뻗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손을 바라보며 싱긋 웃다가 조용히 자신의 이마에 손을 짚게 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미스트의 오른쪽 머리 옆을 만졌고, 손끝에 흉터의 감촉이 느껴지자 파르르 떨었다.
“저, 정말이에요?”
“어디까지 읽으셨는지 전부 이야기해주신다면, 말씀해드릴게요.”
“보고서, 전부……. 머, 머리에 수술을……, 받았다고…….”
“맞아요. 저는 어렸을 때 뇌에 수술을 받았어요. 제 성격 때문에요. 회복마법을 익히고 나서 다시 치료하려니까, 뇌가 수술에 적응해버려서 수술의 흉터를 제거하는 것 외에는 복구시킬 수도 없었죠.”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흠칫 떨더니 이내 눈에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처음 그 보고서를 읽었을 때 레이시는 솔직하게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어린아이가 동물을 죽일 이유가 없어서 죽이지 않았다고 머리를 째고 약물을 주사해서 뇌에 영구적인 손상을 주다니…….
심지어 그 영구적인 손상이란 일정한 주기마다 살인 충동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었다.
미스트가 사람을 죽이고서 그렇게 웃었던 것은, 그 뇌의 손상으로 인한 것으로 미스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충동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미스트의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회복할 수 있는 부분은 회복했답니다. 충동을 느끼더라도 그걸 그대로 표출하지 않아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다른 행동으로 그 충동을 억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가끔은 그런 식으로 표정을 뚫고 나온답니다.”
“미스트…….”
“네?”
“미안해요…….”
그런 것도 모르고 무서워해서 미안해요.
미스트의 말을 듣지 않고 궁금해해서 미안해요.
이제 앞으로 미스트를 볼 때 예전처럼 못 볼 거 같아서 미안해요.
레이시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사과의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미스트의 손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으며 레이시가 잘못되진 않았다고 말했다.
“레이시의 반응이 잘못된 건 아니랍니다. 사람을 죽이고 웃는 사람을 보고 멀쩡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흑……, 흐끅……. 그렇지만 미스트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레이시?”
“흡, 흐끕……!”
미스트가 자기 이름을 부르자 천천히 고개를 드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자기 얼굴을 바라보자 싱긋 웃으면서 다시 한번 자신은 괜찮다면서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이래서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눈을 가늘게 뜨면서 레이시의 눈가를 닦아주는 미스트.
다른 사람에게는 잘만 보여주던 이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던 이유는 레이시만은 이 저택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의 과거에 반응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엘라는 자신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지옥을 헤쳐나온 사람이며, 자신이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샤는 과거는 과거이며 지나간 일은 바꾸지 못하니, 지금이 더 중요하다며 지금의 자신만 보고 앞으로 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미네르바는 다른 무엇보다도 레이시를 소중하게 여기니까 자신의 과거 같은 건 아무래도 좋고, 자신이 레이시에게 어떻게 하는지만 신경 쓸 것이다.
하지만 레이시만은 달랐다.
레이시만은 이 저택에서 자신의 과거에, 그리고 자신이 숨기고 있던 얼굴을 보고 반응할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연신 쓰다듬어주면서 레이시가 자신을 바라보게 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차오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뭐, 늦든 빠르든 알아차릴 일이었죠. 레이시의 앞에서 연기하는 게 점점 힘들어졌었거든요.”
“연기……요?”
“네. 저, 장난기가 심한 성격이거든요. 요즘 들어 레이시에게 그걸 참는 게 점점 힘들어졌어요.”
분위기에 맞지 않게 농담을 건네며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농담에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보았고, 미스트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레이시?”
“느헤에……?”
입이 벌려져서 이상하게 대답하고 마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쿡쿡 웃으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전부 물어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무슨 수술을 받았는지, 신체적인 고통은 없는지, 그 외에 충동이 일어나면 해결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는지…….
레이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미스트에게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모두 대답해주었다.
머리에 받았다는 수술은 뇌에 각인을 새겨 놓는 수술이었다는 것, 신체적인 고통은 없지만 가끔은 정말 참기 힘들 정도로 충동이 들끓어서 연기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평소에는 여러 취미를 즐기면서 그 충동을 가라앉힌다는 것까지…….
“요즘에는 레이시를 놀리는 게 재미있어서 그걸로 참아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축제를 나가면서 그러질 못했으니까, 아무래도 힘들었어요.”
“……우으. 말장난은 되게 많이 했으면서.”
“그런 건 놀리는 게 아니잖아요?”
레이시를 침대에 다시 눕힌 뒤 레이시의 머리 옆에 손을 짚고 웃는 미스트.
레이시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미스트의 눈동자는 연기가 풀린 듯 사람을 죽이고 웃을 때처럼 공허하고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눈을 하고 있었지만, 레이시는 왜인지 그런 눈동자가 전처럼 무섭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똑바로 눈을 쳐다볼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을 죽이고 웃었던 그 이유를 알아서일까?
그래서 미스트의 눈이 그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는 슬픈 눈이라는 걸 깨달아서일까?
어쩌면……, 서서히 전생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에는 사람을 죽이면 무조건 살인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 세상은 한국이 아니고 미스트가 엘라의 메이드가 된 이후 미스트가 죽인 사람들은 최소한 고의로 살인 미수를 저지른 범죄자.
그렇다면 미스트는 메이드인 동시에 사형집행인 같은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미스트는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자신을 희생해서 공무를 진행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스트의 눈을 똑바로 보다가 이내 미스트가 눈을 휘면서 꼬리를 살랑거리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미스트가 말한 놀리는 게 아니라는 말은, 잠자리에서 놀린다는 거구나…….
생각해보면 처음 잠자리를 가졌을 때도 미스트는 자신이 부끄러워하는 일을 주문했었다.
동굴에서 악마의 영향을 받아서 했을 땐 예외로 치더라도 그다음에 데이트한 다음에 했을 때도 부끄러운 걸 요구했었고…….
“…….”
“후후, 레이시는 못된 아이네요, 별로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뭘 말하는지 깨달아버리시곤…….”
“야, 야하지 않아요…….”
“정말요?”
“저, 정말이거든요?”
고개를 돌리면서 미스트의 말을 부정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렇게 나오면 자기도 방법이 있다며 작게 웃었고,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움찔 떨면서 조심스럽게 미스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노래를 부르기 전에 목을 풀 듯이 소리를 내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뭘 하는 거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를 보고 짓궂게 웃다가 레이시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 미약이 덜 빠졌나 봐요.”
“……에?”
“제가 레이시의 몸을 살펴봤는데 그런 식으로 변명하면 어떻게 해요.”
“드, 드, 들, 들었……!?”
“망을 봤거든요. 저랑 레이시의 관계라면 딱히 들려도 상관없잖아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턱을 드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잡더니 레이시에게 처음 이상한 성벽을 집어넣은 것도, 막을 찢은 것도 전부 자신이라며 그렇게 부끄러워하기엔 늦지 않았냐며 웃으며 레이시의 볼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얼굴을 붉히면서 똑같이 손을 뻗어 미스트의 뺨을 꼬집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평소처럼 부끄러워하자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레이시가 공주님에게 했던 말들, 전부 들었어요.”
“아, 아으으으으!?”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공주님은, 그리고 저는 레이시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레이시를 사랑해줄 거예요.”
뺨을 꼬집는 거로 모자라서 이제는 미스트의 어깨를 두들기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레이시가 뭔가를 잘못 배워서 나쁜 길로 들어가면 혼을 내주고, 잘한 게 있다면 칭찬해주겠죠. 그리고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저희도 영향을 받아 저희도 변할 거예요. 왜냐면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껴안고 서로를 보고 있잖아요?”
“……우, 우으으으…….”
“그러니 저희가 레이시가 변한다고 해서 레이시를 미워할 일은 없어요.”
다시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면서 발을 동동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스트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레이시의 양쪽 뺨을 잡았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미스트를 바라봤다.
“으뷰뷰뷰뷰.”
“레이시.”
“네?”
“하나 받았으면?”
“…….”
레이시를 바라보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 대답을 해달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자신이 엘라에게 했었던 말과 미스트가 한 말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다시금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 말들은 전부 잠자리에서만 얻을 수 있는 용기로 미친 척하고 한 말들.
맨정신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너무하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스트는 레이시의 저항을 가볍게 무시하고 자기는 원래 장난기가 심한 편이었다고, 그동안은 쭉 참은 거라고 말하며 계속해서 레이시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흑흑, 말 안 해주면 울 거랍니다?”
“거짓말!?”
“네, 거짓말이죠. 하지만, 레이시가 진심으로 저를 싫다고 말하면 정말 울지도 모르겠네요. 나쁜 아이……. 제 첫 눈물을 뺏어가려고 하고.”
“히이이익……!?”
레이시의 귀를 깨무는 미스트.
미스트가 사냥개들이 애정을 표현할 때처럼 가볍게 깨물고 계속해서 핥아대자 레이시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숨결에 싱긋 웃으면서 다시 한번 물어봤다.
“그래서, 레이시……. 대답은 안 해주실 거예요?”
“우, 우, 우우우……!”
“빨리요.”
“저, 저도…….”
“저도?”
“저도 미스트가 어떤 사람이라도 싫어하지 않아요…….”
“어머? 그럼 왜 제 옛날이야기를 듣고싶어 했나요?”
“그건, 미스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으니까…….”
쭈뼛거리면서 망설이긴 해도 착실하게 물어보는 말에 전부 대답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나요?”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걸요……?”
좋아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거나, 부정을 저지른다거나 하면 아마 사람들은 가장 먼저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할 것이다.
자신이 잘못 봤다.
혹은 자신이 모르는 사정이 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역시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레이시가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귀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레이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부탁할 건데요.”
“네?”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 대신에 다른 말로 해주세요.”
“…….”
미스트의 요구에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꽉 끌어안으면서 대답을 기다렸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체온에 숨을 몇 번이고 고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 미스트가 어떤 사람이라도 조, 조, 좋아해요…….”
“저도에요. 저도 레이시가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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