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90화 (90/542)

〈 90화 〉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도­2

* * *

멀리 떨어진 전등을 손도 안 대고 꺼버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다시 방이 어두워지자 움찔 떨었지만, 미스트가 자신의 양손에 깍지를 끼고 껴안자 금방 진정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미스트.”

“네?”

“미스트가, 죽인, 거죠? 그 사람…….”

“네.”

“즈, 즐거웠어요?”

“…….”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그럴 리가 없지 않냐며 거짓말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품 안에서 떨고 있는 레이시를 보자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짓말 같은 건 쉬울 텐데…….

엘라처럼 자신의 거짓말을 분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못 하겠는 걸까?

미스트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레이시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자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머리카락에 코를 파묻고 냄새를 맡았다.

“즐거웠어요.”

정신계에 직접 작용하는 공격에 대한 저항 스킬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레이시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은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이시의 귀에 계속해서 속삭였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그 모습도, 자기가 같은 곳을 빙빙 돌기만 할 뿐 도망치지는 못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절규하던 그 모습도, 마지막에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 때의 그 모습도……, 모두 즐거웠답니다.”

“읏……, 무, 무슨 사정이 있는 거죠……?”

“글쎄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말을 멈추고 레이시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자신의 코끝을 간질이는 미스트의 냄새에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볐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애교에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레이시가 말하는 그 사정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네요.”

“네?”

“사람을 죽인 사정이라면, 말씀해 드릴 수 있죠, 공주님의 명령에 따랐어요.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 웃고 있었던 사정을 말씀해 달라고 하시는 거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네요.”

미스트의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물고 망설이다가, 이내 깍지를 끼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가 용기를 내기 위해서 심호흡하자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조금은 망설이기 시작했다.

말해줬다가 레이시가 겁을 먹고 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부터가 자신이 레이시를 꽤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미스트는 내심 레이시가 용기를 내지 않아줬으면 바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시는 이미 내기 시작한 용기는 돌멩이가 굴러가듯 굴러가기 시작했고, 미스트에게 사람을 죽이고 웃고 있었던 사정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깍지를 풀고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고 자신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희 왕궁으로 들어가는데, 왕궁으로 돌아가면 국왕님에게 캘러미티 가문에 대해서 물어보세요.”

“캐, 캘러미티 가문이요?”

“네. 엘라 공주님의 암살 시도로 인한 왕족 시해 미수죄, 그 죄로 인해 멸문으로 끝나지 않고 정보마저 전부 사라져버린 가문이자 저의 가문이랍니다.”

“……!?”

미스트의 말에 풀어지고 있던 몸을 바싹 굳히는 레이시.

충격으로 경직된 레이시의 몸에 미스트는 이해한다면서 레이시를 끌어안은 채 레이시가 걱정할만한 일들에 대해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 괜찮답니다. 저는 엘라 공주님을 모시고 있는 몸이고, 그런 공주님을 시해하려고 한 가문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이 없거든요. 오히려 싫어하는 편이랍니다. 제가 공주님을 싫어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 정말이죠?”

“네에~. 저는 제 출생 때문에라도 제 가문이 정말 싫답……, 아하. 이래서는 레이시가 조사하는 재미를 빼앗는 말이 되겠네요.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미스트의 말이 끝나자 다시 켜지는 전등.

방 안은 불이 꺼지기 전과 다르게 피가 묻은 수건도, 더러워진 제복도 없이 말끔해진 상태였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깔끔한 옷을 입고 있는 미스트였다.

분명 자신을 끌어안을 때만 하더라도 어렴풋이 맨살인 걸 봤는데, 대체 언제 옷을 갈아입은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떨떠름한 얼굴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귓가에 속삭였다.

“나쁜 아이에게 주는 힌트는 여기까지랍니다. 나머지는 알아서 조사해주세요.”

“응힛!?”

귀를 약하게 깨물고 자리를 뜨는 미스트.

레이시는 잠시 귀를 붙잡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 미스트가 나가는 걸 보고 다급하게 미스트를 따라갔고, 엘라는 두 사람이 오는 걸 보고는 다른 일은 없냐고 물어봤다.

“네, 다른 일은 없어요. 이대로 왕궁으로 돌아가면 된답니다.”

“그래?”

“네.”

미스트의 대답에 레이시가 물어봤다는 걸 알아차리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에게 일이 없다면, 다른 곳을 들리지 말고 곧바로 수도로 가자고 말했고, 미스트는 엘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도로 돌아가는 동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았다.

휴우신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그와 정반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게 모두 느껴질 정도로…….

마치 부모님하고 싸우고 할아버지 집에 가는 명절날의 차를 탄 것 같다.

레이시가 그렇게 생각하며 침묵에서 오는 어색함에 몸을 비틀어대자 엘라는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작게 귓속말을 건넸다.

“우리 저택에 도착하면 바로 아버지에게 가자.”

“네?”

“미스트에 대한 걸 물어보려면, 아버지에게 가야하지 않겠어?”

“아…….”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에게 정말로 괜찮겠냐고 한 번 더 물어본 다음,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같이 이야기를 듣자며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 날, 저택에 도착한 엘라는 아샤에게 미스트와 미네르바를 부탁한 다음 레이시와 함께 자신의 아버지에게 찾아갔다.

“……뭐하세요? 아버지.”

“어, 그, 큼큼! 화가 안 났구나.”

알현실 구석에서 책상 뒤에 숨어있는 국왕.

엘라는 자신의 아버지이지만, 태클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한심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국왕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국왕은 자신이 지레 겁을 먹고 숨었다는 걸 깨닫고 크게 헛기침하면서 다시 책상에 앉아 두 사람에게 마실 것을 건네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지금부터 위엄있는 척 해봐야 늦었어요. 편하게 있어요. 어차피 다른 눈들도 없고.”

“크, 크흠. 그래. 고맙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레이시가 미스트의 본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해서 데려왔어요.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아버지에게 가는 게 훨씬 편하니까요.”

“……그거, 진심인가?”

“네? 네…….”

한참 폼을 잡다가 저번에 봤을 때처럼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변하는 국왕.

하지만 엘라의 이야기를 들은 국왕은 레이시를 보며 다시 진지한 얼굴이 되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국왕의 표정 변화에 잠시 멈칫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레이시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국왕.

국왕은 한숨을 내쉬고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내 한 서류 뭉치를 꺼내서 레이시에게 건네주었다.

“으음, 솔직히 말하자면. 아, 그러니 엘라의 아비된 입장으로서 말하자면 나는 내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이런 흉흉한 것을 알고 싶게 하고 싶지 않네.”

“네……?”

“세상에는 모르는 게 훨씬 나은 일들이 있다네. 예로 들어서 사실 푸딩의 원형이 피를 굳혀서 만든 괴상한 음식이었다는 것들 같이, 알게 되어서 괜히 찝찝해지는 것이 있지. 그리고 이 안에 든 서류는 그런 종류의 것이라네.”

“…….”

“그리고 이런 걸 궁금해한다는 건, 미스트가 원래의 얼굴을 잠시나마 자네에게 보여줬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냥 모르는 척하세. 먼저 결혼한 인생 선배로서 말하자면, 아내의 의외의 일면은 그냥 묻어두는 것이 좀 더 좋을 때도 있다네.”

국왕은 레이시에게 서류를 건네주면서도 레이시가 그 서류를 읽지 못하게 막았다.

알아도 큰 도움은 안 되고, 미스트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평소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국왕.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말에 잠시 긴장하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캘러미티 가문 보고서]를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국왕의 말대로 여기에서 이걸 펼치지 않고 덮어버린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안 생기겠지.

하지만 이미 대화를 피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두 번이나 겪은 레이시는 이번에는 꼭 대화를 해보고 싸우든 말든 하기로 마음을 먹고 보고서의 페이지를 넘겼다.

“우웁……!”

그리고 서류의 첫 장을 읽자마자 레이시는 곧바로 헛구역질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서류의 첫장에 있는 건 캘러미티 가문의 지하에 있던 고문 실험실의 사진.

왕족을 시해하려고 한 범죄자 가문을 조사하기 위해서 최상급의 도구만 사용했고, 그 때문에 보고서의 사진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한 화질을 자랑했다.

그리고 레이시는 너무나 선명한 사진 때문에 직접 뱃가죽이 뜯어지고 내장을 밖으로 쏟아내고 있음에도 숨을 헐떡이며 살아있는 사람을 본 것처럼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국왕.

“보시다시피 캘러미티 가문은 사람을 좀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서 사람을 살려놓는 기술을 극한으로 발달시킨 가문이지. 그 사진은, 지하실에 들어가자마자 발견한 것으로 아마 그들은 엘라를 붙잡았으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일세.”

“저, 자, 잠시……, 우웁……!”

“집사, 통을.”

“네. 여기에 있습니다.”

“웨에에에엑……!”

국왕의 말에 사진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토해내고 마는 레이시.

레이시가 토할 것이라고 예상한 집사가 빈 통을 건네준 덕분에 바닥에 쏟는 불상사는 면했지만, 레이시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속에 있는 것을 전부 게워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왕은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보고서를 대신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 서류에는 캘러미티 가문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에 대해서 적혀있었고, 레이시는 하나의 가문이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창백해진 얼굴로 국왕을 바라봤다.

“그들의 목표는 궁극적인 암살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네. 그러기 위해서는 밀의 종을 개량하듯, 각각의 종을 뒤섞는 일은 기본이요, 몬스터와 인간을 강제 교배시켜 몬스터의 특징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도 개의치 않았지.”

“하, 하악……, 히이…….”

“미스트는 그런 캘러미티 가문에서 완성품으로 태어났다네. 천악인이라는 호칭을 얻게 한 특별한 재능에, 종 단위로 개발되어 수인이면서 수인이 아닌 종족. 거기에다가 1000년 넘게 이어진 캘러미티 가문의 근원이 담긴 교육을 모두 소화해낸 암살에 대한 재능까지……. 어떻게 보자면 미스트는 캘러미티 가문, 그 자체지.”

국왕의 말에 떨리는 손길로 서류를 넘기는 레이시.

그러자 첫 장에 보인 사진은 마치 애교라는 듯 그것보다 더욱 잔혹한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 교배장이라는 종을 개량하기 위해 마련된 건물의 사진, 고독의 술을 사용하기 위해 아이들을 가둬놓고 서로 죽이게 해서 살아남게 만든 흔적, 약물 훈련을 견디다 못해서 끔찍하게 변형된 사람의 모습, 인체 개조를 위해서 실험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 사람의 신체를 이어붙인 것까지…….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잔혹한 실험들.

레이시는 아까 토해서 속을 비워낸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미스트에 대한 보고가 나오지 않자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보고서의 끝까지 읽어냈다.

그리고 보고서의 끝에서 나오는 미스트 T 캘러미티에 대한 보고서.

캘러미티 가문에서 미스트에 대한 기록을 필사한 그 보고서를 보자 레이시는 곧바로 그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고, 이내 할 말을 잃은 채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