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 요새 도시로2
* * *
미스트의 상체를 단번에 삼켜버릴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상어.
레이시는 그런 상어를 보고 당황하며 다급하게 미스트를 불렀다.
그러자 상어에게서 눈을 떼고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반응에 뭐하는 거냐며 상어를 쳐다보라고 소리쳤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상어에게서 몸을 완전히 돌렸다.
그리고 실선이 빛났다.
“흐에……?”
야차가 되고 신체 능력이 모두 월등히 강화되었기에 볼 수 있었던 실선.
태양빛을 받았는지 찬란한 은색이 나던 그 실선은 그대로 상어의 몸을 통과했고, 상어의 몸은 그 실선을 따라 쩍 갈라져 몸이 반으로 갈라져 미스트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바다에 떨어졌다.
붉은 핏물을 하늘에 흩뿌리며 처참하게 바다에 꽂히는 상어였던 것.
레이시는 그 시체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속이 안 좋아진 듯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배멀미? 아니면 다른 거?”
“다, 다른 쪽이요…….”
“이거 마셔. 속 좀 나아질 거야.”
레이시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따뜻한 음료를 건네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음료수를 다급하게 마시면서 속을 진정시켰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멋쩍은 듯 뺨을 긁었다.
“미스트의 무기가 좀 그렇긴 해.”
“아샤는 미스트가 무슨 무기를 쓰는지 알아요?”
“거의 다 써. 일단 거의 모든 스킬을 다 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저렇게 와이어나 독을 사용할 때면……, 솔직히 말해서 전쟁에 뼈가 굵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들지.”
살이 녹아버린다거나, 칼이나 창으로 베인 것과 다르게 내장의 움직임이 그대로 보인다거나 하니까 평범한 군인도 토해버리고 만다.
와이어나 독이나 장기전을 생각하지 않고 일격필살을 전제로 하는 무기니까.
그렇기에 아샤는 레이시에게 보기 힘들면 안 봐도 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속을 진정시키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미스트가 메인으로 나오는 축제인데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미스트가 춤추는 걸 다시 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상어의 몸에서 나오는 핏물 속에서 즐거운 듯 춤추기 시작했다.
몸을 빙글빙글 돌릴 때마다 너풀거리는 치맛자락.
파란색이 인상적인 치마에는 붉은색이 물들며 흔들거렸고 레이시는 그 모습을 보고 숨을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미스트의 몸짓에 몰두했다.
분명 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한 장면인데 도통 눈을 뗄 수가 없다.
평소와 똑같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미소를 입에 머금은 채 춤추는 미스트.
죽을 걸 알면서도 수면에서 뛰어올라 미스트를 물려고 하는 상어.
그러고 보니 투우사들의 천이 붉은색인 건, 소가 아니라 사람을 흥분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던가?
그런 사소한 잡학을 떠올리던 레이시는 미스트의 춤이 멈추자 그제야 멈췄던 숨을 다시 내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해변에서부터 크게 울리자 아샤는 레이시의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레이시의 속이 괜찮은지 물어봤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상어의 사체.
얼음 아래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얼음이 사라지면 내장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걸 볼 수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레이시가 감당할 모습은 아니었기에 아샤는 걱정된다는 눈으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네, 괜찮아요.”
“눈을 못 떼던데?”
“솔직히……, 넋 놓고 봤어요. 아하하…….”
“음, 자주 있는 일이야. 평소에는 사냥 같은 걸 전혀 못 하는 아낙네도, 축제의 열기에 타서 사냥 대회 같은 걸 보기도 하거든.”
“그런가요?”
“응. 사람들은 휩쓸리기 쉬우니까 말이야.”
레이시가 혹시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레이시의 평범한 반응이라고 말하며 다시 음료수를 건네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배려에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는 괜찮으니 평소처럼 대해주라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시끄럽다는 듯 손짓했다.
“나는 엘라랑 영주 만나고 올 테니까, 너는 미스트랑 이야기하고 와. 슬슬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하거든.”
“네, 그…….”
“응?”
“기, 기념품 사가도 괜찮아요?”
“……여기 특산품은 저기로 가면 있을 거야. 도시 순찰할 때 있었어. 꽤 투박한 거지만, 장식하면 볼만하겠더라.”
“감사합니다~.”
레이시의 말에 입술을 샐쭉거리다가 한숨을 내쉬며 엘라를 쳐다보는 아샤.
엘라는 아샤의 품에 뭐가 있는지 파악했는지 능글맞게 웃으며 아샤를 쳐다봤고 아샤는 엘라의 시선에 벌레를 씹은 얼굴이 되더니 얼른 가자며 엘라의 손을 잡고 영주에게 갔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네르바에게 손을 내미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을 잡더니 허리가 아픈 거면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레이시는 그건 부끄러우니 그냥 팔짱을 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안 부끄럽다.”
“제가 부끄러워요.”
부축을 받는 거야 농사를 도와주다가 허리를 삐끗해 여러 번 받아봤지만, 공주님 안기로 안기는 건 레이시가 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거라 싫었다.
부축을 받는 게 마지노선이다.
그렇게 말하자 미네르바는 잠시 샐쭉거리다가 레이시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자 언제 삐쭉댔냐는 듯 헤실거리며 레이시와 함께 미스트에게 갔다.
“저……, 미스트?”
부스에서 멍하니 서서 있는 미스트.
전신에 묻은 피를 닦지도 않고 멍하니 있는 그 모습에 레이시는 쭈뼛거리면서 미스트를 불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평소에 보여주는 미소를 보여줬다.
“레이시, 왔나요?”
“네, 저……, 안 닦으세요?”
“아하하,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춤추는 건 오랜만이라 긴장했나 봐요.”
별거 아니라는 듯 너스레를 떨면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대답에 다행이라는 듯 웃다가, 와이어에 대한 걸 떠올리고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기 위해서 미스트와 눈을 마주쳤고 그 순간 흠칫 떨었다.
평소에 보여주는 부드러운 눈빛이 아니라 아무런 감정이 없는 기계 같은 눈빛.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혼 안까지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그 눈빛에 레이시는 움찔 떨면서 미스트에게 건네주던 수건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미스트는 자신이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재빠르게 가면을 다시 썼다.
“아직 아프신 건가요? 마사지, 해드릴까요?”
“에? 아, 아하하. 아무래도 그런가 봐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까 본 게 너무 무서워서 상어 눈이랑 미스트의 눈을 착각한 걸까?
레이시는 미스트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와 다시 자상하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배시시 웃자, 똑같이 배시시 웃으면서 뺨을 긁었다.
아무래도 피곤한 게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기지개를 켜면서 나중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주겠다며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고 싶으니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뭔가 평소와 다른 미스트의 모습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단순히 옷을 갈아입는 걸 보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저, 기념품 사러 갈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미네르바, 꼭 데리고 가시고요.”
“네에~.”
미스트의 말에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배시시 웃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와 둘이서 가는 거냐고 한 번 더 확인하더니, 레이시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기쁜 듯 크게 날갯짓하며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럼 빨리 가자.”
조금이라도 더 길게 둘이 있고 싶다.
미네르바가 그렇게 속삭이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에게 인사한 다음 아샤가 가르쳐준 골목으로 갔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
레이시는 그런 거리를 보고 과연 자신이 특산품을 구경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이내 용기를 내서 비교적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는 아이들이 만든 물건이 주로 있는지, 대로로 보이는 가게의 물건들보다는 조악한 물건이 많았다.
솔직히 장식품으로 두기에도 조금 꺼려지는 물건들.
레이시는 그 물건들을 보고는 역시 이런 건 세상이 변해도 안 변하는구나 싶어 어색하게 웃다가 대로로 가보자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는 좋다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고 걷기 시작하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콧노래를 흥얼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못 말린다는 듯 웃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한 30분은 그냥 물건을 구경만 하고 돌아다니는 레이시.
그러다 레이시는 액자에 장식된 그림을 보고 감탄하면서 살 기념품을 정했다.
“이거 얼마에요?”
“10만 하랑입니다.”
“에, 여기요!”
한 달 월급의 1/25이나 하는 비싼 액자.
하지만 소라나 조개껍질을 잘게 부숴 모자이크하듯 그린 바다의 그림이 너무 매력적이었기에 레이시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고, 상인은 비싼 그림을 덮썩 사는 레이시를 보고 감탄하다 레이시의 가슴에 있는 문양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
오라토리엄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문양.
왕가의 문양과 엘라의 문양.
눈앞의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왕가, 그것도 엘라와 깊은 관계를 지닌 사람이라는 건 확실했기에 상인은 자신이 받은 돈을 보다가 이내 덜덜 떨기 시작했다.
“저, 저어, 손님.”
“네?”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네? 딱 10만 하랑 드렸는데요?”
“아하하, 그림을 착각해버렸지 뭡니까! 아하핫!”
“아아……, 여기 물 드시면서 하세요.”
“감사합니다! 저……, 공주님에게는 잘 말씀드려주세요.”
“네? 네, 좋은 그림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할게요!”
상인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2만 하랑을 돌려받는 레이시.
레이시는 좋은 그림을 구했다며 싱글벙글 웃다가 슬슬 돌아가자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액자를 들고 오는 동안에 미스트는 간이 부스 안에서 난감하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엘라의 다음 행선지는 돌아오는 길에 있는 도시, 포트리스.
요새라는 이름답게 몬스터의 총공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도시였고, 고블린의 대군이 생겼으니 도와달라고 요청을 받은 상태였다.
엘라도 그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는 길에 처리하고 오겠다고 했으니 자신도 포트리스에 가서 몬스터를 죽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상어를 죽이는 정도로 얼굴이 이런 식으로 일그러지다니…….
난감하다.
레이시가 편해져서 그런 거겠지만, 문제는 레이시는 자신의 이면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살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아마 몬스터를 아무리 사냥해도 레이시는 뭔가 죽이는 것에 익숙해질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메이드로서의 표정을 지어봤다.
보는 사람이 어떤 기분을 지니고 있든, 보는 순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완벽한 미소.
메이드 육성 기관에서 꽤 힘들게 연습했고, 사감도 처음 보는 완벽한 미소라고 했으니 아마 이 미소 자체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레이시가 너무 편해져서 표정의 연기가 풀린다는 것.
“난감하네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자기세뇌를 시작하는 미스트.
이런 방식 외에는 해결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조금 갑갑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미스트는 그렇게 레이시가 오기 전까지 자기는 메이드라고 계속해서 자기세뇌를 시작했다.
그리고 레이시가 돌아왔을 때, 미스트는 다시 완벽한 메이드의 연기를 시작하며 레이시에게 다음 일을 가르쳐주었다.
“좋은 액자네요.”
“에헤헤, 그렇죠? 저희 집에 장식해요!”
“네, 그렇게 해요. 참, 레이시. 저희 포트리스라는 요새 도시에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 도시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어요.”
“무슨 일이 있는데요?”
“고블린들의 대군이 평소의 4배 규모로 생겼단 모양이에요.”
“……네?”
“저희는 지원군으로 그 요새로 가게 되었어요.”
싱긋 웃으면서 포트리스로 가게 된 이유를 말해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하는 미스트의 말에 멍하니 미스트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