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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86화 (86/542)

〈 86화 〉 요새 도시로­1

* * *

“…….”

“어, 음……. 괜찮아?”

“못 일어나겠어요.”

“…….”

레이시의 말에 찔리는 구석이 많아 입을 다무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크게 헛기침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허리가 아파요.”

“크흡!”

“씻어야 하는데 못 일어나겠어요.”

“그, 그래도 내 사랑은 전해졌잖아.”

“덕분에 죽을 거 같아요.”

“……레이시가 귀여워서 이성을 잃었어, 화해 섹스이기도 했고…….”

“……하아.”

엘라의 마에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빙글 돌리는 레이시.

아기처럼 몸을 뒤집을 뿐인데도 레이시는 허리에서 통증이 올라와 눈살을 약하게 찌푸렸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크게 헛기침하면서 약상자에서 파스를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레이시의 허리에 파스를 붙여주는 엘라.

레이시는 접착성을 가진 면 특유의 느낌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허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하자 한숨을 내쉬며 엘라를 쳐다봤다.

“저, 다친 건 아니겠죠……?”

“응, 그건 아니야. 그 부분은 확실히 느끼면서 조절했거든. 그리고 만약 다치더라도 미스트에게 부탁하면 전부 회복할 수 있고.”

“…….”

마법의 편리성 때문에 플레이의 강도가 그렇게 에스컬레이트하게 올라간 건가…….

레이시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하복부를 쳐다봤다.

분명 해가 전보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걸 보면 하루를 꼬박 잔 게 분명한데 아직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덜덜 떨리고 있는 하복부.

근육통에 걸렸을 때 나오는 수전증 비슷한 반응에 레이시는 대체 얼마나 거칠게 했으면 이러냐며 엘라를 흘겨보았다.

야차가 되고 나서 처음 겪는 근육통.

100kg의 짐을 몇 번이나 들고 날라도, 100m 전력 달리기를 수십 번 해도 멀쩡했던 몸이 이렇게 되자 레이시는 슬슬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 처음으로 근육통이라는 거 겪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그, 잘못했습니다……. 레이시가 너무 꼴려서 순간 이성을 잃었습니다.”

“으으……, 됐어요. 이번에는 저도 잘못했으니까…….”

“에헤헤…….”

레이시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꽉 끌어안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포옹에 눈을 감고 얌전히 안겨 있다가, 이내 배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움찔 떨며 일단 씻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

“계속 이, 이걸 꽂아둘 수도 없고요…….”

“으음, 그건 그렇지.”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허리가 빠져 일어서지도 못하는 레이시를 안아 드는 엘라.

레이시는 다른 것도 아니고 섹스 때문에 자신이 남에게 안겨 다니는 신세가 되자 얼굴을 가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전생의 자신은 여자에게 맨날 사기만 당하거나 어장만 당하는 불쌍한 청년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음탕해진 걸까…….

20년 넘게 쌓아왔던 도덕심이 무너지는 걸 느낀 레이시는 엘라의 얼굴을 보자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덕심이 무너지는 건 무너지는 건데, 왜 엘라의 얼굴을 보자 그게 기쁘게 느껴지는 걸까?

이대로 가다간 정말 동인지에서 나오는 변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조심스럽게 엘라에게 고개를 파묻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포옹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욕실에 들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미스트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는 데 어떻게 할래? 보러 갈까?”

“허리가 괜찮을까요……?”

“음, 파스 붙였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목욕하기 전에 파스를 붙여도 괜찮아요?”

“응? 뭐, 한 장 새로 붙이지. 비싼 것도 아니고.”

“대충이네요.”

“원래 대충해도 되는 일은, 대충하는 게 좋아.”

레이시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의 로브를 푼 다음 허리에 붙인 파스를 떼어주는 엘라.

엘라는 욕실에 들어가고 어제 레이시의 몸에 쏟았던 흔적을 자신의 손으로 치워주었고, 레이시는 자신의 몸에서 나온 그 흔적들을 보고 기겁하면서 엘라를 쏘아봤다.

그러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과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사과에 화를 내지도 못하고 한숨을 연거푸 내쉬다, 이내 미스트가 한다는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뭔지 물어봤다.

“레이시는 휴우신에 케밥이 많은 이유 알고 있어?”

“아, 아샤가 말해줬어요. 분명 무녀님께서 상어를 학살해서라고 하셨죠?”

“응. 그런데 그 상어가 왜 올라오는지 알아?”

“글쎄요?”

“그거 영역 다툼에서 패배해서 연안으로 올라오는 상어야. 그러다 보니 원양에 가서 볼 수 있는 상어보다는 약한 개체가 많지. 그래도 식인 상어라 위험하지만……. 하여튼 그래서 바다 위에서 상어를 사냥하는 걸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바다는 여전히 안전하다는 걸 알려줘.”

“오오~, 그런데 미스트는 괜……. 아, 미스트니까 괜찮으려나…….”

“아무래도 그렇지?”

미스트가 상어에게 당하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안 된다며 킥킥 웃는 엘라.

엘라는 씨 서펜트나 크라켄이 아니라면 미스트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입히는 것도 무리라며 웃다가 구경하러 가겠냐고 물어봤다.

“으응, 보고 싶어요.”

상어 사냥이라 조금 무서울 것 같지만, 미스트가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보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컸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싶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의 녹색의 머리카락을 감겨주었다.

“꽤 볼만할 거야. 축제니까 일부러 화려하게 나갈 거거든.”

“그런가요?”

“응. 나는 그냥 마법으로 바다를 증발시킬 뿐이고, 아샤는 수심 5m까지라면 그냥 풍압으로 짓이겨버릴 거니까 별로 화려하진 않거든. 미네르바는……, 어떻게 보면 화려하긴 하겠다. 수직하강하면서 상어를 낚아채면 말이야.”

“아하하…….”

엘라의 말에 미네르바의 사냥을 떠올렸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에게 몸을 맡기는 레이시.

엘라는 자신의 품에 얌전히 안기는 레이시의 몸을 깨끗하게 씻겨주면서 때때로 입을 맞춰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빨리 축제를 보러 가자며 주제를 돌렸다.

하지만 허리가 빠져서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레이시가 엘라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고, 결국 레이시는 몸을 깨끗이 씻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몸 곳곳에 엘라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그럼 갈까?”

“씨이잉…….”

똑바로 서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어쩔 수 없이 엘라에게 기대서 움직이는 레이시.

엘라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는 레이시가 귀여워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자신은 격식을 차린 옷을 준비하고, 아샤에게는 마차를 몰게 하고, 미네르바에게는 레이시를 맡기고…….

그렇게 준비를 끝내자 아샤는 마차에 오르려는 레이시를 안아서 올려주며 사과했다.

“그, 미안해……. 내가 그 망할 국왕놈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서…….”

“아, 아뇨! 엘라에게 허락을 받았으니까 괜찮아요.”

“그, 아니, 미안.”

“괘, 괜찮아요!”

서로 사과를 반복하다 엘라가 뭐하냐며 키득키득 웃자 그제야 레이시를 마차에 태우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가 귀엽지 않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엘라의 질문에 가운데손가락을 올려주며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췄다.

“출발한다.”

“그래, 잘 부탁해. 레이시가 허리가 아프거든.”

“……씨발.”

옆에 앉아서 떠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는 아샤.

엘라는 그런 아샤의 반응에 꺄르륵 웃으면서 천천히 몰아달라고 다시 한번 부탁했고 아샤는 엘라의 부탁에 고개를 뒤로 돌려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마차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으음, 주인, 이 정도면 괜찮나?”

“아, 아으으윽! 시원해애애애…….”

“으음, 정말 이런 거로 시원해지나?”

“조금은요. 후아아아…….”

움직이는 마차 안에서 엎드려 미네르바에게 허리 마사지를 받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약상자 안에 있던 마사지 책을 보고는 레이시의 허리를 풀어주었고 레이시는 자신의 허리를 꾹꾹 눌러주는 미네르바의 마사지에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오오오오…….”

“나는 주인의 미네르바니까.”

레이시의 칭찬에 좀 더 집중해서 허리를 마사지해주는 미네르바.

엘라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누가 공주인지 모르겠다며 킥킥 웃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갔고, 이내 행사장에 간 엘라는 마차에서 내려 레이시에게 들어가자고 말했다.

그러자 이제는 나름 멀쩡하게 걸으면서 나오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괜찮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보자, 미스트, 축제 의상을 입고 있을 테니까 레이시가 가장 먼저 봐줘.”

“네!”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기대감을 품으면서 간이 부스에 들어갔다.

이 세계의 축제에서는 대체 뭘 입는 걸까?

무도회나 다과회 때 입는 옷은 자주 봤지만, 축제 의상은 처음이었기에 레이시는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미스트를 불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목소리에 웃는 얼굴로 커튼을 열어주었다.

“와아…….”

그리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복장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평소에는 날이 아무리 더워도 정통 메이드복을 입고 노출 하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던 미스트.

하지만 그런 평소의 복장과는 정반대로 미스트는 어깨와 가슴의 윗부분, 그리고 등이 전부 노출된 파격적인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플라멩코 드레스처럼 된 치맛자락은 미스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크게 찰랑거리며 보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

마치 투우사가 사람들과 투우를 흥분시키기 위해서 깃발을 흔드는 것처럼, 미스트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는 치맛자락.

레이시는 그런 치맛자락을 보면서 멍하니 입을 벌렸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괜찮으신 건가요? 공주님이 어제 레이시 양이 기절하셨다고 했는데.”

“아, 앗! 넷!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후후.”

미스트의 스킨십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헛기침이 작게 웃으면서 이제 곧 축제가 시작될 테니 배에 올라서 구경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가 태워준 배에 올라타 미스트와 함께 바다 중앙에 갔고, 미스트는 피가 담긴 병을 집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특등석에서 잘 봐주세요.”

“네? 앗!?”

레이시가 뭐라고 하기 전에 배에서 뛰어내리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가 바다에 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난간에 기대 미스트를 바라봤지만, 미스트는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바다 위를 걸었다.

발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바닷물이 얼어붙으며 발판이 되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광경.

레이시는 그 광경에 다시 한번 넋을 잃고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를 보고는 힐끗 웃다가 이내 바다 가운데에 서서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눈꽃이 생기듯 얼어붙는 바다.

지름 10m의 넓은 발판이 생기자 미스트는 발판에 있는 구멍에 들고 온 피를 콸콸 붓기 시작했다.

바다의 푸른색에 천천히 흩어지는 붉은색.

붉은색이 점점 퍼지기 시작하자 바다에서는 상어 특유의 등 지느러미가 나와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지느러미를 보고는 춤을 추듯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해변의 북소리.

사람들은 그런 북소리에 묘한 열기를 띠고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그런 사람들의 열기에 호응하듯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탓탓­거리는 소리를 내며 짧고 빠르게 얼음과 부딪치는 미스트의 하이힐.

사람을 흥분시키는 너풀거리는 치맛자락과 점점 미스트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상어의 지느러미.

파도를 가르는 그 흉악한 모습에 사람들은 언제 상어가 튀어나올까 긴장하면서 미스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고, 미스트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서 싱긋 웃으면서 슬슬 사냥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후후, 그럼 시작해볼까요?”

스텝을 멈추는 것으로 상어들에게 신호를 주는 미스트.

상어들은 미스트가 스텝을 멈추자 미스트가 자신들의 정체를 느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면서 수면에서 뛰어올라 미스트에게 자신의 흉악한 입을 들이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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