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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75화 (75/542)

〈 75화 〉 여름 외근­3

* * *

“다녀오셨어요? 국왕님께 호출되셨다면서요?”

국왕에게서 받은 메달과 티켓을 호주머니에 챙긴 레이시를 맞이해준 건 레이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미스트였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말해달라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호들갑이라며 꺄륵 웃다가 국왕에게 불려가서 겪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의외로 동네 아저씨 같으신 분이더라고요.”

“그랬나요?”

“네. 춘화를 보시다가 아샤가 거세시키겠다더니 다리를 오므리고 덜덜 떠시더라고요.”

“…….”

레이시의 웃음에 어색하게 웃는 미스트.

아직 업무시간이 아니니 조금 늘어질 수는 있다지만, 딸의 메이드를 불러놓고 춘화를 읽는 왕도 왕이고, 거기에다 대놓고 거세하겠다고 말하는 아샤도…….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가 아샤를 바라보자 아샤는 크게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고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반응에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레이시를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국왕은 자신의 후계자 문제를 덜어주고, 오라토리엄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도와주는 엘라를 좋게 생각하며 사랑하고 있으니 레이시에게 해가 될만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어떤 이상한 짓을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모로 가도 수도로만 가면 된답시고 이상한 것들을 시켜서 엘라와 레이시의 사이를 호전시킬지도 모른다.

엘라의 말을 들어보면 레이시의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런 건 차기 국왕이 정해진 후에나 할 수 있겠지만, 국왕이라면 모두 자신의 계획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강행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이상한 걸 받지는 않았냐며 레이시를 걱정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뭔가 이상한 스킬 보석을 주려고 하셨는데, 안 받았어요. 아직 임신은 좀…….”

남성으로 26년을 넘게 살고 여자로는 1년도 안 살았는데 다짜고짜 임신하라고 해도 곤란할 따름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아직은 조금 무섭다면서 배시시 웃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조금은 안심하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이제 다시 준비하자며 레이시에게 일을 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지시에 휴가가 끝났다는 걸 확실하게 느끼면서 조금의 아쉬움을, 그리고 조금의 축제에 대한 기대를 품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발하게 된 당일.

꽤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중간 경유지가 전부 도시이기 때문인지 그 거리를 이동하는 것치고는 짐이 적은 걸 본 레이시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과연 괜찮은 걸까 걱정하는 얼굴.

엘라는 마차 안에서 그런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는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를 불렀다.

“모자라면 다음 도시에서 더 많이 사면 되니까 마차 안으로 들어와.”

“아, 네!”

엘라의 말에 잠시 짐을 보다가 엘라가 말했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차 안으로 들어가는 레이시.

밖의 내리쬐던 햇빛이 거짓말처럼 시원한 마차.

창문을 열고 있는데도 에어컨을 튼 것처럼 시원한 마차 안에, 레이시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손을 창문에 반쯤 걸친 채 마차 안과 밖의 온도 차이를 느꼈다.

“어떻게 한 거예요? 집에 있는 마석으로는 이렇게 못 하잖아요.”

“집은 커다랗고 마차는 작잖아. 그래서 마석 효율을 늘려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작아요?”

가로 3m에 세로 5m, 높이 2.3m.

무슨 집이라도 되는지 문을 열면 신발을 놓는 곳이 있고 그 외에는 마음껏 누울 수 있게 침대가 바닥으로 깔려있으며 소형 와인 저장고와 책장이 달린 마차가?

바퀴가 6개에 말이 5마리, 그것도 자신의 말을 제외하면 전부 다른 말들보다 덩치가 1.5배 이상은 돼서 자신의 말이 겁에 질린 채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봤던 이 마차가?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이 정도면 국가의 공식적인 일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치고는 작은 편이라며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것보다 레이시가 할 일은 끝냈으니까 쉬자.”

“으아아!”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고 뒤로 누워버리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당황하며 발을 버둥거리다 그대로 마차 안을 뒹굴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나름대로의 항의였지만, 엘라에게는 애교로만 느껴졌는지 엘라는 아이처럼 키득키득 웃기만 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같이 웃으면서 엘라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그러자 미스트를 도와 물건을 들고 오다가 뒤늦게 마차에 탄 미네르바가 샐쭉한 얼굴로 레이시의 품에 파고들었고, 미스트는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담요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랑 아샤가 먼저 마차를 몰게요.”

“아, 죄송해요…….”

“됐어. 출발할 건데, 멀미나거나 하면 말해. 쉴 테니까.”

“네에~.”

미스트의 말에 레이시가 몸을 일으켜 세우자 육포를 뜯으면서 얌전히 누워있으라고 말하는 아샤.

아샤는 어차피 어려운 일도 아니니 얌전히 있으라며 마차에 연결된 고삐를 잡았고, 레이시에게 움직이니 혀를 조심하라고 말한 다음 고삐를 약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자동차에 탔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감촉에 레이시는 작게 소리를 내다가 꺄르륵 웃으며 흔들리는 마차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렇게 내벽 2개와, 중벽, 그리고 외벽을 통과한 레이시는 창문 너머로 숲이 이어지는 걸 보다가 천천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의 날개로 레이시를 덮어주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날개가 이불처럼 자신의 몸을 덮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눈을 비비다가 미스트가 자도 된다며 말하자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흐아아아암……, 죄송해요오오오…….”

“아뇨, 공주님은 이미 주무시고 계시니까 괜찮답니다.”

“어…….”

마차에 탄 사람의 매너가 자동차를 탄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뒷좌석 같은 거니까 그래도 괜찮은 건가.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꾸물꾸물 미네르바의 품에 파고들어 천천히 잠에 빠졌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네르바, 레이시가 완전히 잠들었나요?”

“그렇다.”

“흐응, 그럼 깰 거 같으면 말해주세요.”

“알겠다.”

레이시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지 약간은 딱딱한 말투.

하긴 저 정도면 미네르바치고는 꽤 우호적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자신의 눈으로 레이시가 자는 걸 한 번 더 확인한 다음에 자신의 옆에서 마차를 몰고 있는 아샤에게 레이시와 국왕의 대면에 대해 물어봤다.

“정말로 별 일 없었나요?”

“응. 언제나처럼 성희롱하고, 딱 엘라의 메이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시켰지. 사심을 완전히 지우고 보면 딱 그 정도의 일이야.”

엘라를 배려해서 쉬운 일을 선택해 건네주고, 신뢰도를 위해서 엘라의 메이드에게 일을 몰래 맡겼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하나 없다.

하지만 국왕을 아는 두 사람으로서는 오히려 완벽했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기 시작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의심되는 상황.

방공호의 감찰이라는 것도, 그를 위해 입장 티켓을 건네주는 것도, 뭔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떨떠름하다.

마치 원래는 이해할 수 없는 수학문제가 너무 쉽게 풀려서 답을 의심하는 것 같이…….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잠시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입을 열었다.

“둘로 찢어지자.”

“네?”

“너랑 엘라랑 알아서 귀족의 일을 처리해. 내가 쟤 뒤를 봐줄 테니까.”

“으음,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어요?”

“어차피 이번 일은 위험한 일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늙은이들 말 맞춰주는 게 끝일 건데. 내가 붙어있을 이유가 있어?”

“그건 그렇죠.”

“그럼 그렇게 하자. 어차피 그 영감탱이 머릿속은 누구도 못 읽어.”

미스트가 어릴 때 받았던 교육과 타고난 성격 때문에 미쳐있다면, 국왕은 너무 이성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이성적으로 미쳐버리고 만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그런 짓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닥치는 사건에 대비하는 게 최선.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을 몰았고 미스트는 아샤의 제안에 고맙다며 싱긋 웃었다.

그러자 토할 거 같으니 자신에게는 연기하지 말라며 눈살을 찌푸리는 아샤.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말에 잠시 자신의 눈을 가리더니 음험해진 눈으로 아샤를 바라봤다.

“이런 눈이 좋으신가요?”

“…….”

“아하하, 죄송해요. 이런 눈은 아무래도 죽여도 좋은 상대가 아니라면 유지할 수가 없네요.”

그러나 그런 눈을 한 것도 잠시, 미스트는 눈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싱긋 웃었고 아샤는 그런 미스트의 눈빛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태생적으로 연기를 할 수 없는 야차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짓으로 둘둘 둘러도 멀쩡하게 있을 수 있는 미스트는 상성이 안 좋다.

특히 자신처럼 공포와 존경심을 먹이로 삼는 야차는 더더욱.

……레이시는 사랑을 먹이로 삼던가.

나중에 야차로서의 본성을 깨닫고, 그 사랑이 섬세하게 분화된다면 레이시는 어떤 감정을 먹게 될까?

그렇게 분화되기 전에 죽는 야차도 많지만, 레이시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테니 감정의 분화가 일어나겠지.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아샤는 미스트가 웃으면서 차를 건네자 차를 마시면서 정신차렸다.

하긴, 나중의 일을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차를 마시면서 마차를 모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엘라 일행은 해가 지기 전에 중간 경유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했어.”

“흐베에…….”

“계속 그렇게 자면 나중에 밤에 자기 어려워지니까 일어나.”

“후아아아아아~, 네에.”

“엘라는 여관 예약하러 갔고 미스트는 물건 보충하러 갔어. 넌 나랑 마차 주차하고 말 상태 확인하자.”

“네에.”

엘라와 미스트가 마차에서 내리자 레이시의 어깨를 툭툭 건들면서 레이시를 깨우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행동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샤는 레이시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다가 레이시에게 고삐를 건네줬다.

“괜찮을까요?”

“응?”

“저, 운전할 줄 모르는데.”

“말 탈 줄 알잖아. 그럼 감으로 잡아. 말들도 훈련을 받았으니까 몬스터나 도적에 쫓기는 상황만 아니라면 너도 몰 수 있어.”

“그래요?”

“자신감 좀 가져라. 너, 어지간한 기사보다 힘도 강하고 운동능력도 좋거든? 그리고 넌 테이머라서 기승 스킬이나 테이밍 스킬이 없는 다른 사람들보다 말에 대해서 잘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냥 적당히 감으로 몰아도 괜찮아. 할 수 있을 거야.”

“으으응…….”

“하아, 그리고 위험해지면 내가 제어할 테니까 일단 해봐.”

“네, 스승님.”

아샤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고삐를 가볍게 잡아당기는 레이시.

그러자 마차는 다그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은근히 편하게 몰 수 있는 마차의 감각에 멍하니 소리를 냈다.

이 정도라면 아샤의 말대로 은근히 편하게 몰 수 있을지도…….

자동차를 떠올려서 너무 긴장한 걸까?

하긴 생각해보면 자동차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몰고 다니는 거지만, 마차는 말이 몰고 다니는 거니까 마부는 말의 상태만 신경 쓰면 되고 마차의 움직임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자신감을 얻어서 주차까지 시도했고, 주차까지 완벽하게 성공하자 기쁜 듯 배시시 웃었다.

“이거 봐요!”

“그래, 그래. 잘했네.”

레이시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주다가 말의 상태를 살피고 오라고 말하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들의 몸 상태를 살펴본 다음, 편자까지 모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아샤에게 돌아갔다.

“다 확인했어?”

“네!”

“그럼 여관으로 가자. 엘라가 기다릴 거야.”

“네에~.”

아샤의 말에 쫄래쫄래 따라가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스트와 했던 말을 어떻게 전해줄까 고민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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