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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74화 (74/542)

〈 74화 〉 여름 외근­2

* * *

일.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생계활동을 의미하는 말.

전생에서야 노는 걸로 일을 버는 직업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지금 이 세상에도 가능한 일일까?

거기에다가 엘라는 연예인이라거나 개인 방송인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공주님인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라를 빤히 쳐다봤고, 엘라는 오렌지주스를 마시면서 레이시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놀러 간다는 데 일하는 거라고 해서 이해가 안 돼?”

“……그, 조금?”

“별거 아냐. 도시에서 축제를 열었을 때 왕족이 직접 방문하는지 방문하지 않는지에 따라 축제의 격이 크게 나뉘니까 방문해서 놀아주는 거야.”

“아…….”

시장 선거할 때 선거 유세를 떠는 것과 똑같은 일인가?

하긴 공주님이라고 하면 시장 정도의 위치를 지닌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가 말한 노는 게 일이라는 걸 간신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만큼 축제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축제의 절반 이상은 보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나름 쉬운 일로 골라줬네.”

“그런가요?”

“평소에는 히드라나 마에 물든 곰, 고블린들의 대침공, 영주 살해 후 병사들을 이끌고 도망치는 반란군 집단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축제에 다녀오는 것 정도야 쉬운 일이지. 아마 3개월이나 쉬었으니까 적당히 하라는 걸 거야.”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던가.

자신의 아버지가 직접 맡긴 일이니 자신에게 암살시도가 있다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분명 기묘한 짓을 해뒀을 게 틀림 없다.

없더라도 그렇게 생각해두는 게 정신건강에 몇 배는 좋다.

인정하긴 싫지만, 자신의 아버지는 배 안에 구렁이를 몇십 마리씩 집어넣고 돌아다니는 인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잔을 내려놓고 욕조에서 일어났고 레이시는 자리에서 일어난 엘라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벌써 나가시게요?”

“응, 오래 씻는 건 별로 안 좋아하거든. 레이시는?”

“그럼 저도 나갈래요.”

몸은 이미 다 씻었고, 일이 있다면 준비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를 따라 욕조에서 나와 몸을 닦았고, 옷을 입은 다음 아래로 내려와 미스트에게 가서 엘라의 일을 알고 있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스트는 축제에 가는 일이라면 알고 있다며 나중에 말을 두 마리 더 빌려와 달라며 부탁했다.

“말을요?”

“네, 오두마차를 준비할 생각이라서요.”

“으응, 그럼 제가 타는 말이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괜찮아요. 어차피 느긋하게 갈 거라 경보만 하는 거라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내일 그렇게 할게요.”

“네, 건초도 충분히 구해주세요. 중간중간 보충은 할 거지만 충분히 들고 가는 게 좋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레이시의 대답에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다가, 저녁 준비를 도와달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녁을 같이 준비했고, 그 후에 평소보다 약간 이른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레이시는 잠에서 깨자마자 동물들을 돌봐준 다음 미스트가 준비해준 주문서를 들고 말 사육소를 찾아갔다.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50대의 남성이 반겨주는 사육장.

레이시는 몇 번 본 얼굴에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했고, 사육장의 직원은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집에서 자고 있을 딸의 얼굴을 떠올리며 똑같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여기 주문한 것들입니다. 혼자서 들고 갈 수 있겠어요?”

“네에~, 그리고 혼자가 아니니까요.”

무게는 아무래도 좋았지만, 부피가 커서 혼자서 들기 힘든 건초.

레이시는 그런 건초들을 재주 좋게 자신의 팔 위에 쌓다가 쌓기 힘들어지자 미네르바에게 부탁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부탁에 남은 건초들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남성은 자기가 몰라봐서 미안하다며 껄껄 웃으면서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배웅해주었다.

“그럼 조심해서 가세요!”

“네에~.”

하지만 레이시를 배웅하자마자 기사가 시야 한구석에 보이자 남성은 떨떠름한 얼굴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그런 남성의 얼굴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얼굴을 다 가리시고.”

“응? 아, 나도 모르겠는데…….”

“……?”

한쪽 뿔이 인상적으로 삐져나온 걸 보고는 상대방이 누군지 금방 알아차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건틀릿으로 자신의 뿔을 긁다가 일단 국왕의 호출이니 건초는 내버려 두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얌전히 아샤를 따라가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를 힐끗 보다가 투구 안에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레이시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가정 아래에서 레이시가 국왕에게 호출당한 이유는, 아마 엘라와의 관계 때문일 건데 그 영감은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할 생각인 걸까?

카리스마라고 하던가?

별 다른 논리가 없어도, 그리고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낚는 능력이 출중했던 남성의 얼굴을 떠올린 아샤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레이시.”

“네?”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 어차피 공적인 일로 메이드를 호출하진 않으니까 대충 씹어.”

“노, 노력해볼게요.”

대통령이 자신을 불렀는데 그 말을 그냥 씹고 넘기라는 건가요?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잠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다시 뿔을 긁적이다 어깨를 으쓱이며 최대한 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공무 시간이 아니라니까 그냥 늙은 아저씨랑 이야기한다고 생각해.”

“……에, 네. 그래볼게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샤의 뒤에 서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이 영 못미더워 잠시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이내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문을 열었고, 레이시는 엘라를 따라와서 한 번 봤었던 커다란 방에 들어갔다.

20m는 될 듯한 길이, 그리고 5m는 될 듯한 높이.

레이시는 그 풍경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아샤가 자신을 부르자 정신을 차리고 아샤를 따라갔고 이내 왕좌의 뒤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벽부터 와인잔을 기울이며 외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을 보고 있는 한 장년을 발견했다.

“…….”

“…….”

“오! 왔는가!?”

“……뭡니까? 그거.”

“춘화라네.”

“그건 보면 압니다.”

투구를 벗으면 눈을 가늘게 뜨는 아샤.

국왕은 차가운 아샤의 시선에 움찔 떨다가 조심스럽게 책을 집어넣은 다음 집사에게 부탁해서 세 사람에게 의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차례대로 자리에 앉는 아샤와 레이시, 미네르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국왕은 크게 헛기침하면서 무게를 잡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었다.

술 마시면서 야한 잡지를 보다가 폼을 잡는 청년회장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국왕의 모습.

의외로 친근한 국왕의 모습에 레이시는 긴장을 풀면서 국왕을 똑바로 쳐다봤고 국왕은 레이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샤, 자네와는 꽤 다르게 생겼구만. 얼굴은 그렇다쳐도 뿔이나 눈동자나…….”

“국왕님.”

“응?”

“자매도 아닌데 닮았을 리가 없잖습니까? 그래서 왜 레이시를 호출하셨습니까? 저를 호위로 지명한 건 제가 엘라의 기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레이시는 일개 메이드. 국왕님이 직접 만나뵈어야 할 정도의 중대한 일은 없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평소와 다르게 사무적인 말투로 국왕을 바라보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말투에 자신이 보는 사람이 정말 아샤가 맞는 거냐며 눈을 깜빡이다가 국왕이 한 종이를 꺼내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테이블을 바라봤다.

“스킬 보석?”

“음. 엘라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안 받아줘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라네.”

“무슨 스킬인가요?”

“여자끼리 임신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라네. 하하! 신의 기적을 그대로 담은 스킬 보석이라 구하느라 꽤 애먹었다네!”

“…….”

“…….”

“아샤여? 나는 국왕이다만?”

“아, 그렇습니까? 저는 또 병사에게 성희롱하는 아저씨로만 알고 처단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엘라처럼 강하지 않아서 자네 주먹 한 방이면 영영 못 일어나고 만다네.”

“걱정하지 마시죠. 군부대 내 성범죄자는 그냥 고환 양쪽을 으깨고 끈으로 그것과 말을 연결한 다음, 말을 달리게 해서 신체 결손을 일으킬 뿐입니다. 죽지는 않습니다. 전쟁이나 작전 중이라면 즉결 처형입니다만, 지금은 그런 시간이 아니니까요.”

입을 함부로 더 놀린다면 진심으로 해주겠다는 듯 국왕을 쳐다보는 아샤.

국왕은 그런 아샤의 시선에 자신의 엉덩이 뒤쪽이 바짝 당기는 느낌에 다리를 오므리고 어색하게 웃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크게 헛기침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국왕.

국왕은 이 보석은 원한다면 레이시에게 줄 수 있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임신이라니, 아직 생각도 안 하던 행위다.

“아, 아직 엘라랑 그런 관계는 아니니까요.”

“그런가? 쩝……, 그럼 딸 아이와 잘 지내주게. 그 애가 그런 성격이 된 건 내 잘못이 50%는 차지하니 말일세.”

“으, 으음…….”

이런 이야기는 좀 서툴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국왕이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자 자기야말로 잘 부탁한다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여기에서 다시 부탁하면 영원히 서로 부탁만 하고 답장은 못 듣겠다는 걸 깨달은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시의 부탁을 받아주었고 이내 다른 물건들을 꺼냈다.

국왕이 책상에서 꺼내, 레이시에게 건네준 건 하나의 메달과 여섯 장의 티켓.

메달이야 왕가의 문양이 새겨진 걸 보면 왕가를 위해 일하는 메이드에게 주는 신분증 같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티켓은 대체 뭐인지 알 수 없었다.

적혀 있는 건 [무녀 유희 입장용 티켓]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

레이시는 일단 티켓을 받아들이고 국왕을 바라봤고 국왕은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엘라가 휴가를 끝내고 처음 가는 도시는 남쪽의 항구 도시인 휴우신이라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무녀의 쉼터]에 가게. 그리고 가게의 주인장에게 그 티켓을 건네주게나.”

“네……?”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네. 자네가 엘라의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약하니 부탁하는 일이라네.”

“……저, 음, 약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있나요?”

“그렇다네! 일이 조금 특수해서 매번 감찰인을 정하고 보내는 게 무척이나 힘들다네. 자네 정도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걸세.”

“위, 위험한 건가요? 감찰하는 사람을 보낼 정도로…….”

“응? 그건 아닐세.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쓰는 대피소라네. 엘라나 미스트, 그리고 자네의 옆에 있는 두 사람처럼 너무 강하면 몬스터가 몰려나오면 그 몬스터를 학살하고 따분하다고 말할테니까 대피소를 제대로 감찰할 수 없겠지 않는가.”

“아하, 그렇구나.”

하긴 엘라는 쓰나미가 몰려와도 태연하게 처리하겠지.

미스트도 마찬가지고, 미네르바는 하늘로 날아가버릴 거고 아샤라면 파도를 타서 그대로 도망치지 않을까?

뭔가 보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광경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티켓을 받아들었고 국왕은 레이시가 티켓을 받아들자 레이시의 손을 잡으며 악수했다.

“그럼 잘 부탁하지!”

“네, 있는 힘껏 해볼게요!”

“하하, 일단 축제를 즐기는 일이니, 적당히 힘을 빼고 즐겨도 된다네. 굳이 따지자면 축제를 즐기는 걸 우선시 해주게.”

“에헤헤, 네에~.”

국왕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티켓과 메달을 챙기는 레이시.

국왕은 그런 레이시를 보며 참고로 메달은 로라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왕가의 이름으로 보고 있다는 걸 나타내는 메달이니 늘 챙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국왕의 말에 발을 삐끗하다 미네르바를 잡고 버텨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오라토리엄의 국왕이자 엘라의 아버지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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