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숲의 사냥꾼2
* * *
사냥대회를 위해 가꾼 숲이라고는 해도, 숲은 숲.
동물들이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그늘이 있었고 숲 안을 거닐고 있는 귀족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말 위에서 목표가 나타난다면 곧바로 조준할 수 있게 자세를 잡는 귀족.
주변 기사들은 이제 막 16살이 된 주군의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토끼가 발견되자 귀족에게 알려주었고 귀족은 곧바로 활시위를 잡아당기며 토끼를 맞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조준을 끝냈을 때, 갑자기 토끼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무언가에 강하게 짓눌린 듯 거친 단면을 보이고 있는 토끼의 목.
토끼의 머리는 허공을 빠르게 돌더니 툭 떨어졌고 귀족은 그 목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흠칫 떨었다.
꿀렁꿀렁거리며 으깨진 단면에서 피를 뿜는 토끼의 목.
“히익!?”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 그 모습에 귀족은 새된 소리를 내다가 토끼의 몸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봤고, 이내 헛구역질했다.
화살 같은 것으로 깔끔하게 죽은 것만 봤던 귀족에게는 너무나 자극적인 장면.
살과 뼈가 쥐포처럼 짓이겨져 땅에 끈적하게 붙었고, 그때의 충격 때문에 빠져나온 건지 반쯤 터진 내장과 살점들이 붙어있는 광경.
귀족은 그런 토끼의 사체에 계속 헛구역질하다가 이내 무언가 이상한 걸 깨닫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기사들에게 무슨 소리가 났냐고 물어봤다.
분명 자신이 볼 때는 살아있었던 토끼였다.
그렇기에 화살을 활시위에 걸고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목만이 허공을 날아다니고 몸통은 짓이겨져서 곤죽이 되어있었다.
무언가가 토끼를 죽였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숲 안은 고요했다.
딱 하나,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제외하면.
“후~ 후으응~……, 구후으응~.”
낮게 깔려서 철을 긁는 듯이 소리를 내는 부엉이의 울음소리.
어디에서 울려서 어디로 퍼지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소리에 귀족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기사를 보다가 불안함을 억지로 무시하며 숲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더 참혹한 모습에 이제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반쯤 으깨진 머리가 바위 깊숙하게 박혀 죽어버린 사슴.
네 발로 선 채 등이 전부 너덜너덜하게 떨어져서 가죽과 근육, 척추로 가려져 있을 장기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양.
몸에 정체불명의 구멍이 나서 몸이 걸레짝이 되어 나무에 데롱데롱 매달려있는 멧돼지.
“후우우웅~ 우으응…….”
그 시체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보이는 건 나무 위에 쪼그려 앉아 울음소리를 내는 하피가 있었고, 귀족은 그 하피와 눈을 마주치자 터져 나오는 비명을 목 안으로 삼켰다.
전신에 피를 묻힌 채 사슴의 목을 물어뜯고 있는 하피.
목이 말랐던 건지 연신 목울대를 꿀렁이면서 피를 마시고 있는 그 모습에 귀족은 손끝을 덜덜 떨다가 하피가 입을 벌려 사슴을 놓자 자연스럽게 그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입으로 물고 버텼다는 게 안 믿길 정도로 커다란 사슴.
저 정도 크기면 120kg에서 130kg 사이일까?
경추가 부러져 축 늘어져 있던 사슴을 보던 귀족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하피가 사라진 걸 보고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제자리에서 날아갔다고 해도 최소한의 소리는 나야 할 건데 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
혹시 하피가 자신을 습격할지도 모른다며 겁을 먹은 귀족은 기사들과 함께 숲 안을 샅샅이 살펴보다 이내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자, 기사들에게 숲을 빠져나가자고 했다.
실적이 없는 건 부끄러웠지만, 이런 숲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하자 기사들은 귀족의 말에 조심스럽게 동의하며 숲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네르바는 입가를 대충 닦다가 다시 한번 날갯짓했다.
깃털의 구조 덕분에 아무런 소리 없이 숲 안을 날아다니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냈고, 이내 그 소리에 반응한 동물의 머리를 발로 강하게 짓밟아 으깨 죽였고 스킬을 사용했다.
“디바우러…….”
날개에 문신이 생기더니 스킬의 효과가 몸에 깃드는 걸 느끼는 미네르바.
스킬을 사용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기묘한 공복감이 몸을 감싸고 돌자 미네르바는 다시 한번 부엉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갯짓하며 동물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번 사냥대화에 참가하는 귀족은 총 10명.
못해도 그들이 한 마리씩 죽일 수 있게 동물을 총 40마리 정도 풀어놨다고 하니, 이미 절반은 죽였다.
남은 동물들은 쉽게 죽지 않는 멧돼지나 늑대, 그리고 곰이니 차근차근 죽여도 되겠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게 하고, 그 소리를 울리게 하고, 어둠에서 움직이며 겁먹게 하자.
그렇게 사냥감들을 겁에 질리게 해서 공복감을 달래자…….
빨아먹은 핏물이 섞인 침을 삼킨 미네르바는 다시 숲속을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보이는 사냥감들을 일부러 죽이지 않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가죽을 발톱으로 찢고, 손톱으로 양 눈을 후벼 파버리고, 높은 곳에서 떨어트리고…….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먹지도 않을 동물을 괴롭히고 있자 미네르바는 몇몇 귀족들과 마주쳤고 미네르바는 그들을 보고는 나무의 그림자에 숨은 채 히죽거리며 웃었다.
키드득 키드득.
이빨을 가는 소리와 쇳소리가 섞인 기묘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귀족을 똑같이 바라보는 미네르바.
이번에 만난 귀족은 인내심이 부족했는지 피투성이의 미네르바를 보자 비명을 지르면서 말을 돌렸고 미네르바는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사람들을 보고 본능이 가슴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나약한 사냥감.
자신을 견제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치는 겁쟁이.
그렇게 생각하자 미네르바는 포식자의 본능을 따라서 그대로 날아올라 귀족이 타고 가는 말의 머리 위에 올라타 쪼그려 앉았고 귀족은 소리없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미네르바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아, 아, 아아아아악!?”
크게 휘청이더니 말에서 떨어지는 귀족.
다행히 근처에 있던 기사가 그를 붙잡아 자신의 뒤에 태워 땅을 구르는 일은 없었지만, 귀족과 기사는 심장이 떨어지는 게 무슨 감각인지 느끼며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숲의 그림자 때문에 얼굴이 안 보였지만, 쭉 찢어진 입과 광기 어린 안광에 귀족은 소리치지도, 화를 내지도, 반격하지도 못하고 미네르바의 얼굴을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쇳소리가 잔뜩 섞인,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날아올랐다.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미네르바.
귀족과 기사는 그런 미네르바를 보고 괴물이 나타났다며 다급하게 숲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그들은 먼저 숲을 빠져나온 귀족들과 만나게 되었다.
하나 같이 미네르바와 만났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던 그들은 마지막으로 빠져 나온 귀족과 기사를 보고는 괜찮은 거냐며 안부를 물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대체, 대, 그, 뭡니까?”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며 물어보는 귀족.
그러자 먼저 나온 귀족이 아직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에 있는 사람은 엘라였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주변 귀족들의 목소리가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엘라와 그런 엘라의 뒤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미스트.
귀족은 그 두 사람을 보자마자 왕궁 내에 떠돌던 소문을 떠올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류테인 가문의 영애가 엘라가 새로 들인 메이드를 질투해서 평민 사냥을 한다는 소문.
그 메이드는 사육사로 하피와 사냥개를 길들였고 왕국 최강의 기사라고 불리는 아샤에게서 훈련을 받고 있다는 소문도…….
그 두 소문을 떠올린 귀족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한 가지 생각에 이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좋아서 여기저기서 귀여움을 받고 있다고 해도 야차는 야차.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거기에다가 그 엘라의 총애를 받는 메이드니 평범한 메이드일 리가 없다.
그 증거가 방금 그 하피가 아니었을까?
소리없이 날아오르고 자신과 사냥개들이 동물을 발견하기도 전에 숲 안의 동물을 모두 학살하고서 소름끼치는 웃음을 흘리던 하피.
그 하피의 목줄을 꽉 잡고 있는 게 레이시라는 메이드라면…….
거기까지 생각한 귀족들은 레이시를 사냥하겠다고 나선 로라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 커다란 팻말에 적힌 자신의 스코어를 보고는 이를 갈기 시작했다.
전원 0점에 레이시의 이름에만 100점 넘게 올라가 있는 점수.
누구 하나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았지만, 귀족들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해망상을 선택했는지 자신의 점수를 보고 다들 비웃고 있다고 생각하며 로라에게 항의하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창피를 준 건 레이시지만, 레이시에게 항의하기에는 뒷배가 너무 강했다.
거기에다가 레이시의 뒤를 봐주고 있는 엘라의 얼굴은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이었기에 귀족들은 차마 레이시에게 항의하겠단 소리는 하지 못하고 로라에게 분노를 풀기 시작했다.
나오기만 하면 자신에게 이런 창피를 준 로라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길길이 날뛰는 귀족들.
엘라는 높은 곳에서 그런 귀족들을 보고는 한심하다며 한숨을 내쉬다 미스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거래는 끝냈어?”
“네, 끝냈답니다.”
엘라의 질문에 종이 한 장을 내미는 미스트.
그 종이에는 류테인 백작 가문의 인장과 함께 로라를 죽이지 않는다면 로라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무시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가문의 안녕을 위해 딸을 팔았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류테인 가문을 크게 비웃은 다음에 종이를 다시 미스트에게 건네주었다.
“분신은 편하네.”
“공주님도 배워보시겠어요? 공주님의 재능이라면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됐어, 나는 너처럼 쓸데없는 스킬을 익히는 재능은 없거든.”
미스트의 말에 손을 휘저으며 자신은 적을 부수는 스킬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며 손에 든 컵을 대충 던지는 엘라.
땅에 떨어지는 순간 고급스러운 잔이 산산조각났지만, 엘라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숲 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튀어나온 사람은 기사까지 포함해서 총 30명.
하지만 숲 안에 느껴지는 인기척은 23명.
레이시와 아샤, 그리고 미네르바를 제외하면 20명.
로라가 기사 4명과 함께 들어갔으니까 15명 정도는 불법으로 사냥터에 잠입했다는 걸까?
이런 일을 한 번, 두 번 해본 것 같지는 않으니 사냥개들이 저들을 발견하긴 힘들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잠시 도와줄까 고민하다가 이내 아샤가 있다는 걸 떠올리고는 손톱으로 의자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샤가 있으면 인간 사냥꾼들이 몇 명이 있든 간에 별로 위험이 되지 않겠지.
거기에다가 별 다른 훈련을 받지도 않은 평민을 흔적 없이 사고사로 위장하는 것에 특화된 녀석들이 아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아샤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려서 기절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자신이 아샤에게 인간 사냥꾼들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미스트.”
“네, 연락하고 올게요.”
“……하아, 미리 말해주지.”
“어머? 말해드렸는데 기억하지 못하실까봐 걱정하시던 거 아니였나요?”
“아니, 아예 말 안 했구나라고 생각했지.”
“제게 명령하셨잖아요?”
“……그랬어?”
“아무래도 화가 나셔서 기억 못하시는 거 같네요.”
“…….”
미스트의 말에 한숨을 내쉬면서 얼굴을 가리는 엘라.
미스트는 부끄러움에 발버둥 치는 엘라를 보자 의외의 일면을 봤다며 키득키득 웃었고 엘라는 미스트의 웃음에 손가락을 펼치고 마탄을 쏘아냈다.
“웃지 마!”
“아하핫! 그렇게 말씀하시면 싫어도 웃게 되잖아요~.”
“아아아악! 진짜! 빨리 연락하기나 해!”
“네에~. 알겠어요.”
손바닥으로 마탄을 막은 다음 눈을 살며시 감는 미스트.
엘라는 그런 미스트를 보다가 짜증 난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시 의자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