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숲의 사냥꾼1
* * *
레이시가 엘라의 품 안에서 위로를 받고 있을 때, 미네르바는 눈을 차갑게 한 채 미스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고 있는 미스트와 정반대로 여유 하나 없이 들끓는 충동을 가라앉히는데 여념이 없다는 얼굴.
미스트는 그런 미네르바의 얼굴에 아샤가 뭔 소리를 했구나 싶어서 어깨를 으쓱였다.
“아샤 님이 뭐라고 하셨던가요?”
“……사냥대회에.”
“네?”
“아샤가 사냥대회 때 날뛰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고 들었다. 정말인가?”
“사냥대회에서 주목을 받고 싶은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레이시를 괴롭힌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건가요?”
어느 쪽이 중심인지에 따라서 자신의 대답이 달라질 거라고 말하는 미스트.
미네르바는 그런 미스트의 질문에 당연히 후자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영역을 침범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먹을 것도 아닌데 죽이는 건, 상대방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는 거밖에 더 되나?”
“아하하, 그러네요. 그런 이유라면 괜찮아요. 오히려 제가 레이시에게 말해서 제약을 풀어드릴 수 있을 정도로 부탁하고 싶네요.”
“그건 내가 하겠다.”
“그럼 다른 부탁이 있다는 거네요?”
“그래, 주인에게 그 로라라는 년이 가지 못하게 막아줬으면 한다.”
“미네르바가 다칠 건데요?”
“신경 쓸 거 같나?”
“하긴, 그러겠네요.”
미네르바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그렇게 해주겠다고 말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를 계속 자신의 옆에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각오를 다지는 건, 자신의 몸에 봉인이 걸리기 전 이후로 처음.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반드시 그 로라라는 녀석을 비웃어주겠다고 각오를 다진 다음, 침대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그렇게 하겠다며 밖으로 나가는 미스트.
미스트가 나가고 잠시 후, 레이시가 들어오자 미네르바는 눈을 깜빡이다 팔을 벌렸고 레이시가 자신의 품에 들어오자 날개와 팔로 레이시를 끌어안으며 침대 위를 뒹굴었다.
“후우우…….”
“졸려요? 낮잠, 조금 잘까요?”
“그러고 싶다.”
“아하하, 그럼 조금만 자요.”
미네르바의 말에 작게 웃으면서 눈을 감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다가 조심스럽게 눈을 감았고, 다음날부터 미스트와 붙어 다니는 레이시를 보고 저택 입구를 지키기 시작했다.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그 로라라는 년은 사냥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매번 저택에 찾아올 거고, 매번 레이시에게 시비를 걸 것이다.
그런 미네르바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지 저택 입구를 지키고 몇 분이 흐르자 로라가 찾아오더니 미네르바를 보고 입술을 뒤틀었다.
가학심, 우월감, 뒤틀린 자존심.
저런 눈빛을 한 녀석들은 대부분 자신의 알량한 힘을 믿고 나대다가 죽었던 녀석들이었기에, 미네르바는 속으로 로라를 실컷 비웃으면서 로라를 쳐다봤다.
그러자 로라는 자연스럽게 미네르바를 부르더니 그대로 미네르바의 뺨을 후려쳤다.
“하, 이 짐승이……. 공주님을 뵈러 왔지만, 아버지께서 말한 것도 있으니 참을까?”
주먹을 쥐더니 그대로 미네르바의 배를 강하게 때리는 로라.
무방비하게 배를 그대로 맞았지만, 미네르바는 아무렇지 않은 듯 로라를 쳐다봤고 로라는 미네르바의 반응에 혀를 차다가 미네르바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 때리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많이 해봤는지 때려도 티가 안 나는 곳만 때려대는 로라.
하지만 미네르바는 로라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그대로 받아냈다.
그러자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이 마음에 든다는 듯 로라는 땅바닥에 무표정으로 엎드려있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밟으면서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며 킥킥 웃었다.
“아, 혹시나 공주님에게 말하면 네 주인이 멀쩡하지 않을 거야. 알겠지?”
“…….”
“뭐, 멍청한 짐승은 아닌 거 같으니까 그냥 가줄게. 아, 맞아.주인이 죽으면 거두어줄까? 킥킥! 너도 그런 열등종 아래에 있긴 싫을 테니까 말이야.”
킥킥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놀리다 자리를 떠나는 로라.
미네르바는 로라가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고 저택을 바라봤다.
그러자 미스트가 창문에서 수신호를 보냈고 미네르바는 미스트의 수신호를 따라가 몸을 씻고 멀쩡한 척 굴었다.
그리고 그러기를 며칠 째.
사냥대회 날짜가 곧바로 앞으로 다가왔고 레이시는 미스트와 함께 사냥개들을 데리고 본격적인 훈련을 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언제나처럼 로라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아니, 언제나처럼은 아니었다.
늘 맨손으로 두들겨 패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단검이라는 도구를 쓰고 있으니까.
“아아~ 너무 걱정하지 마, 죽이진 않아. 후후. 다만, 주제도 모르는 네 주인에게 경고할 뿐이지.”
칼날을 손톱으로 튕기며 킥킥 웃는 로라.
미네르바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눈에 보이는 곳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미네르바의 기대를 배신하듯 로라는 미네르바의 눈 위를 칼로 가볍게 그었고 미네르바는 꽤 따끔한 감각이 들자 눈을 찌푸렸다.
피부에 핏방울이 자그마하게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한쪽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흘러내리는 피.
피부가 얇고 혈관이 모여있는 약한, 오로지 남을 괴롭히기 위해 공격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찢었다.
자신의 몸에 난 상처에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피 때문에 안 보이기 시작한 한쪽 눈을 감은 채 로라를 올려다봤다.
“네 주인에게 전해. 얌전히 짜져서 공주님의 눈밖에 나라고.”
“…….”
“흥, 오늘은 이만 돌아가볼까? 내 활을 정비해야 하거든.”
여전히 무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미네르바를 보고 콧방귀를 뀐 채 자리를 떠나는 로라.
미네르바는 로라와 주변 기사들이 발걸음을 옮기자 언제나처럼 무표정으로 일어나 손바닥으로 눈을 닦았다.
금방 다시 피가 흘러넘쳐 안 보이기 시작했지만, 미네르바는 계속해서 피를 닦으며 저택으로 갔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굳어버렸다.
입을 벌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멍하니 미네르바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빨래를 바닥에 던지고 손수건으로 베인 부분을 눌러줬다.
“아, 아아……!”
“괜찮다. 크게 베인 건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쩌다 다쳤어요!?”
“……주인.”
“빨리 말해요! 이거 넘어져서 찢어진 거나 그런 게 아니잖아요!”
“내일 사냥대회. 마음껏 날뛰고 싶다. 허락해주겠나?”
“좀 조용히 해요! 그것보다 상처를 신경 쓰라고요!”
꽉 막고 있어도 찔끔찔끔 흐르는 피.
레이시는 대체 왜 피가 안 멎는 거냐며 울먹거리다 미스트가 약을 들고 오자 미네르바의 손을 잡아 이마로 옮긴 다음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멎는 피.
약에 막혀서 피가 안 흐르는 것 같았지만, 레이시는 일단 피가 멎었으니 됐다고 생각하고는 급하게 수건을 가져와 피투성이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피를 얼마나 쏟은 건지 수건 하나를 완전히 다 버리고 나서야 깨끗해지는 미네르바의 얼굴.
레이시는 조심스럽게 붕대를 꺼내 미네르바의 이마에 둘러주면서 다시 한번 누구에게 베였는지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말할 수 없다는 동작.
하지만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대답에 단번에 미네르바의 이마에 상처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고 조용히 미네르바를 껴안았다.
“제가 맞으면 되는데 왜 그랬어요……? 네? 왜 미네르바가 저를 대신해서 칼에 베인 거에요?”
“주인이 다치는 것보다는 내가 다치는 게 회복이 빠르니까.”
레이시의 등을 끌어안고 속삭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고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손찌검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못되어 먹은 녀석의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 한다면 그냥저냥 넘길 수 있다.
할아버지의 농장에 찾아온 대기업의 사람들 중에서 그것보다 더한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피를 보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와 눈을 마주치고 살짝 피가 묻어나오는 붕대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미네르바. 로라죠……?”
“…….”
“제가 로라에게 항의하려고 한다면, 막으실 거죠?”
“그렇다.”
“그러면요……, 이제는 참을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해주세요. 다치지만 말아주세요.”
끝끝내 로라를 이겨달라거나, 복수해도 좋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 다치지만 말라고 말하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약간은 아쉽다는 듯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자신의 몸에 힘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걸 느끼며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래, 절대로 다치지 않겠다.”
“약속이에요. 사냥대회 때도, 다치지 마세요…….”
미네르바의 이마를 계속해서 쓰다듬다가 울먹거리면서 떨어지는 레이시.
엘라는 벽에 기대서 두 사람의 모습을 힐끗 엿보다가 벽에서 등을 떼고 거실로 돌아갔다.
“그럼, 우리는 우리대로 움직이자.”
“네.”
“나는 나대로 준비할 테니까,대회 끝나면 미스트, 네가 교육해주라.”
“후후, 험한 일은 제 몫이네요. 하아~ 어쩔 수 없네요.”
엘라의 말에 옷을 개며 웃는 미스트.
엘라는 그래서 싫냐며 미스트를 쳐다봤고 미스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은 한낱 메이드이니 마음껏 명령을 내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 날, 엘라는 레베카를 보며 살의를 약간 섞은 시선을 보내면서 자신의 기분이 언짢다는 걸 알려줬고 레베카는 그런 엘라의 시선에 잠시 고민했다.
류테인 백작은 권력이 크지는 않지만, 무척 부유한 인물이라 그나름대로 꽤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마냥 무시할 수 없어서 엘라와 만나게 해줬는데 로라가 엘라가 아끼는 레이시를 건드리고 말았다.
아직까지 정식적으로 항의하지 않은 걸 보면, 레이시가 스스로 이야기를 크게 만들 생각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일단 이 일로 엘라가 아이야트가 아닌 다른 후보자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레베카는 조심스럽게 엘라의 기분을 살폈고 엘라는 레베카와 주변 귀족들의 시선에 혀를 차면서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고 꼬았다.
평소에 신는 구두가 아닌, 밑창에 철판이 깔린 진흙투성이의 군화.
옷도 파티나 다과회에 참석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활동성과 실용성을 중시한 코트와 바지였고, 그런 엘라의 겨드랑이에는 단검 2자루가준비되어 있었다.
“에, 엘라야?”
“……아, 네? 무슨 일이죠? 다들 그렇게 벙쪄서.”
발뒤꿈치로 케이크를 으깨며 레베카의 부름에 답하는 엘라.
엘라는 눈웃음을 지으며 애교를 부리듯 대답했지만, 레베카와 그 주변 귀족들은 그런 엘라의 모습에 화가 나도 단단히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하하, 무슨 일이냐니까요? 자, 사냥하는 걸 봐야죠? 안 그래요?”
“……그러네. 집사, 신호탄을 쏴주세요.”
“참, 새언니, 내기 하나 할까요?”
“응? 뭐니?”
“이번 사냥대회에서 레이시가 이기면, 제가 무슨 일을 하던 조용히 입을 다물고 계셔주세요. 이견은 받지 않을 생각이지만요.”
킥킥 웃더니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미스트에게 손을 내미는 엘라.
그러자 미스트는 엘라에게 음료수가 든 병을 내밀었고 엘라는 병나발을 불면서 레베카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 순간, 연기하던 것이 풀리며 차갑게 변하는 눈동자.
사람을 죽여도 여럿 죽이겠다 싶은 그 얼굴에 레베카는 자신이 얻은 레이시의 정보를 떠올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렴. 대신 테이블에 발을 내려줬으면 좋겠네.”
“아, 그럴게요.”
레베카의 말에 발에 힘을 주면서 그대로 테이블을 부숴서 발을 내리는 엘라.
엘라는 주변 귀족들이 작게 비명을 지르자 낄낄 웃으면서 음료수를 입에 머금고 저 멀리 있는 레이시와 로라를 쳐다봤다.
“잘도 왔네, 열등종.”
“…….”
“……어딜 귀족을 노려보는 거야?”
“가볼게요.”
“…….”
자신을 무시하는 레이시의 태도에 혀를 차다가 이내 자신의 뒤에 있는 기사들을 보고 피식 웃는 로라.
자신의 뒤에 있는 녀석들은 평민 사냥을 수십 차례나 한 전문 살인마들이고 숲 안에도 자신들의 협력자가 있으니까상대가 야차라고 해도 간단히 죽일 수 있겠지.
거기에다가 저 레이시라는 야차는 전투를 싫어하고 평화주의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 같으니 다른 때보다 더 쉽게 죽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로라는 레이시보고 먼저 들어가라며 킥킥 웃었고 레이시는 로라의 말에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네르바.”
“그래.”
“마음껏 움직이셔도 좋아요. 아샤도 제 곁에 있으니까,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요……. 그러니까 제발다치지만 말아주세요.”
“알겠다, 주인.”
마음껏 움직여도 좋다는 허락과 다치지 말라는 상냥한 명령.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숲 안에 들어갔고…….
“우훙~ 후후으응~.”
부엉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대로 사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