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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57화 (57/542)

〈 57화 〉 사교계 데뷔?­2

* * *

무도회장의 안쪽은 꽤 화려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

영상으로만 봤었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있었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각자 손에 잔을 들고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

레이시는 전생이라면 이런 걸 직접 볼 수 없었을 거라며 중얼거리다가 엘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대 받으신 분이십니까?”

“아, 네! 여기 초청장이요.”

“확인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엘라님.”

레이시가 건넨 초청장에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하는 집사.

집사는 미네르바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미네르바를 잘 제어하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집사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춤 연습할 땐 미네르바가 오히려 좀 더 잘 리드해줬는데…….

예절 같은 부분도 편견이 없어서인지 미네르바가 좀 더 잘 배웠기에 레이시는 집사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의 뒤를 따라갔다.

“그럼 나는 새언니에게 인사하고 올 테니까, 너희들은 알아서 놀고 와.”

“저도 말씀이십니까?”

“응, 레이시는 신입이니까 시비를 걸거야. 그걸 막아줬음 좋겠네. 아샤는 나 따라 오고.”

“알겠습니다.”

엘라의 말에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레이시를 한가한 곳으로 데리고 가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여기에서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예법을 다 못 외웠거든요.”

“후후, 좀 많긴 했죠?”

“에헤헤…….”

“천천히 하다보면 잘 하실 거예요. 사료 주문이나 쓰레기 처리 주문은 잘 하시게 됐잖아요.”

“네에~.”

“술 드시겠어요?”

“아뇨, 이렇게 긴장된 분위기에서는 실수할 거 같아서요.”

그냥 가만히 서서 예법에 대한 것들과 춤에 대한 것을 떠올리려고 애쓰기만 해도 머리가 핑핑 도는데 술까지 마시면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다른 건 몰라도 민폐만큼은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레이시는 술잔을 거절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한 잔을 미네르바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잠시 술을 쳐다보다 한 입에 털어넣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괜찮은 거냐며 미네르바를 쳐다봤다.

“괜찮아요?”

“발효된 포도라면 꽤 많이 먹었었다. 다른 자매나 어머니가 잡아온 신랑감이 들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 냄새라면 이 정도는 괜찮다.”

“으응……. 그럼 다행이지만요.”

“후우, 그나저나 주인.”

“네?”

“5명.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적의도 있고……. 가리는 게 좋나?”

“에……?”

미네르바의 말에 다급하게 무도회장을 둘러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자신을 바라보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미네르바는 조심스럽게 날개를 펼쳐서 레이시의 몸을 가렸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당연히 저쪽에서도 알아차리겠죠?”

“아……!”

“지금은 시선이 사라졌다. ……그래도 가려두겠다.”

“네, 지금은 그렇게 해주세요.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게.”

“으, 으으……, 제가 뭔가 잘못했나요?”

“레이시는 잘못 없어요. 공주님이 잘못한 거지.”

“네?”

“그동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가리지 않고 많이 만났었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 레이시하고만 대화하겠다고 모든 만남을 거절했으니까 레이시를 질투하는 거예요.”

“히끅.”

미스트의 말에 딸꾹질 하며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저번에 미스트가 비슷한 말을 한 게 떠오른 레이시는 농담 아니었냐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설마요, 제가 왜 농담을 하겠어요? 몇 년간 전속 메이드는커녕 일반 메이드도 안 들이시던 분이 갑자기 전속 메이드를 들였는데 화제에 안 오를 리가 없잖아요.”

“…….”

“거기에다가 레이시 씨를 위해서 아샤 씨를 개인 기사로 들였으니 이런 사교계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레이시 씨를 주목하고 계실걸요?”

“……진짜요?”

“네, 아샤 씨. 사실 혼자서 군대가 출동해야 하는 괴물을 처리할 정도로 강한 기사거든요. 사냥 전적만 떼어놓고 보면 거의 신생 군대가 처리한 일과 맞먹을 정도예요.”

순수 무력만 따지자면 자신이 능숙하게 싸울 수 있는 영역이 다를 뿐, 엘라와 맞먹을 거라고 말하는 미스트.

언젠가 한 번 미네르바에게 들었던 말이라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죽겠다는 얼굴을 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를 보고는 작게 웃었다.

“후후, 레이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에게 보호 받고 있는 건지 아시겠어요?”

“우으…….”

“그럼 다른 사람들이 방해하기 전에 말을 못 걸게 해볼까요?”

“네?”

“저랑 춤춰요. 그러면 말을 걸지 못 할 거예요.”

레이시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춤추는 사람들 사이로 끼어드는 미스트.

레이시는 당황하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미네르바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자세를 잡았다.

“아으으……. 이야기하고 해주시지.”

“당장 이렇게 안 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걸렸을 걸요?”

“우으…….”

미스트가 곁눈질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을 보게 된 레이시.

딱 봐도 호의라기보다는 적대심이 가득한 반응이라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걱정하지 말라며 레이시의 귀에 속삭였다.

“저랑 춤춘 다음에 미네르바와 춤을 춘다면 공주님이 돌아오실 건데 그럼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다행이네요. ……소, 솔직히 저런 분들은 무섭거든요.”

딱히 자기 잘못은 없지만, 저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을 테니 가볍게 추궁당하는 것도 무섭다.

농담 소재지만, 남자는 여자가 바람을 피우면 여자를 미워하고 여자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남자가 바람피운 여자를 미워한다고 했으니까…….

……잠시, 그렇게 되면 엘라를 좋아한 저 여자분들은 어느쪽이지?

레이시는 잠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곱씹다가 저 사람들의 적의가 자신에게 쏟아졌던 걸 떠올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해보면 엘라를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없구나.

“공주님 생각해요?”

“읏.”

“후후, 레이시는 얼굴에 다 드러나니까요.”

“정말요?”

“네. 공주님과 레이시를 비교했죠?”

“그……, 네. 에헤헤…….”

미스트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어떻게 말해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공주님을 질투나게 해볼까요?”

“네?”

“후후, 이리로.”

춤을 추면서 위치를 옮기는 미스트.

미스트는 자연스럽게 2층에 있는 엘라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해 엘라를 바라봤고 아이야트와 대화하고 있던 엘라는 미스트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걸까?

미스트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라면 다른 왕족이 접근했을 때밖에 없었기에 엘라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빠르게 주변을 훑어봤다.

하지만 몇 번이고 무도회장을 훑어봐도 무도회장 안에는 왕족으로 보이는 손님은 없었다.

아니, 왕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까, 지위가 높거나 작위가 높은 사람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미스트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는 사람들뿐.

그렇기에 엘라는 미스트에게 왜 자신을 바라보냐며 눈살을 찌푸렸고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레이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미스트.

미스트는 무도회장에서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엘라에게는 잘 보이는 위치에서 엘라에게과시하듯 입술을 겹쳤다가 레이시의 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마치 죄를 지은 듯 얼굴을 붉히고 주변을 살피다 미스트의 옆구리를 찔러댔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손을 잡고 사과하며 다시 한번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미스트는 엘라를 바라보며 여유 넘치는 미소를 지었고 엘라는 그제야 미스트가 자신을 도발하고 있단 걸 알아채리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살기가 넘치는 미소.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미소를 여유롭게 받아넘기더니 마지막으로 레이시를 꽉 끌어안은 다음, 레이시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번에는 미네르바가 레이시를 에스코트하듯 베란다에 데리고 오더니 저번 낮잠의 복수를 갚아주겠다는 듯 레이시의 뺨을 붙잡고 키스했다.

“으읍.”

날개가 있다는 장점일 십분 활용하여 과감하게 레이시와 입을 맞추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미스트와는 다르게 레이시의 입안으로 혀를 집어넣고 마구 훑다가 레이시의 침을 삼키며 떨어졌고 이내 엘라를 바라보며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마치 레이시는 자신의 주인이며 자신은 레이시의 펫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미네르바의 행동.

엘라는 그런 미네르바의 도발에 재밌다는 듯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엘라 아가씨, 벌써 가시게요?”

“아뇨, 제 메이드가 이런 곳이 처음이라 난감해하는 거 같아서요. 조금 도와주게요.”

“아……, 그 소문의 야차 아가씨 말인가요?”

“네.”

“엘라 아가씨는 그런 분들과 연이 많네요.”

“후후, 매번 밖으로 나돌아다니니까 그런 거겠죠. 그럼 도와주러 갈게요.”

“아, 저도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기씨가 요즘 한 메이드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문이 들려와서 만나보고 싶었어요.”

“…….”

아이야트의 부인인 레베카의 말에 눈을 깜빡이는 엘라.

레이시의 스킬은 레이시에 대한 호감을 품기만 하면 발동이 되는 패시브 스킬이니까 레베카도 레이시에게 호감을 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레이시를 보여주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엘라는 레이시가 미스트와 그리고 또 미네르바와 키스하며 장난쳤던 것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비틀었다.

먼저 자신을 도발한 건 레이시다.

그러니 지금부터 자신이 할 행동은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아샤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레베카의 말 상대가 되어달라고 말한 다음 1층으로 내려가 레이시가 있는 곳까지 갔다.

미스트와 미네르바, 두 사람과 춤을 춘 다음 귀족들에게 붙잡혔는지 미스트의 뒤에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아주는 레이시.

아마 지금 만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레이시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사람이겠지.

레이시에게서 꼬투리를 잡으려는 사람은 저 멀리 있고…….

엘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본 다음 레이시가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살펴봤다.

처음에는 조금 꺼려하는 듯하다가 상대방이 뭔가 말하기 시작하자 맞장구쳐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스스로 정원을 가꾸신다니 정말 대단하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비료도, 물도, 식물에 알맞게 정확하게 줘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거잖아요. 그 노력을 매일 같이 들이신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 세계의 귀족 여자의 취미는 그렇게 다양하지 않는지 할어버지나 할머니들이 예전에 했었다던 취미와 비슷했고 레이시는 그런 주제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년에 3개월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상대하면서 그런 취미를 어디에서 칭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경험은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 레이시의 호감을 사러 갔던 여자들은 오히려 레이시에게 호감을 품기 시작했고 은근슬쩍 스킨십까지 시도하기 시작했다.

부채로 레이시의 손등을 가볍게 터치한다거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거나…….

전부 레이시가 메이드이니 아무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들.

거기까지 생각한 엘라는 이제 안 봐도 충분하다며 레이시에게 다가가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지만, 제 메이드를 돌려받아도 괜찮을까요?”

“앗! 네, 공주님. 실례했습니다.”

“아뇨. 괜찮답니다. 저희 메이드에게 사교계의 즐거움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손을 약하게 잡아당기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저택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를 따라갔다.

“어라? 저희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하지만 엘라를 따라간 곳은 무도회장 구석에 있는 프라이빗 룸.

엘라는 레이시가 자신을 따라오자 문을 잠그고 싱긋 웃더니 레이시를 벽에다 밀쳤다.

“응, 잠시 좀 더 놀아보게.”

“에? 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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