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사교계 데뷔?1
* * *
정원에서 엘라가 아이야트의 초대장을 받고 5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그동안 다른 왕자나 공주가 와서 엘라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고, 레이시는 점점 복통이 줄어드는 걸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
레이시는 저택에서 평온한 얼굴로 아샤와 월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 그걸 왜 나에게 물어보는 거야? 네 몸이니까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 거잖아.”
“에, 에헤헤……. 죄송해요.”
“그래서 요즘 피는 얼마나 새냐? 감기몸살 같은 건?”
“거의 없어요.”
“그럼 대충 끝난 거네. 대충 날을 봐도 6일 정도 흘렀고. 그래도 모르니까 생리대는 하루 정도는 더 해. 운동도 가볍게 산책만 하고. ……근데 씨발, 난 기산데 왜 의사 짓을 하고 자빠진 거야?”
엘라가 불러서 왔더니 한다는 일이 레이시의 상담역이라니…….
딱히 싫은 건 아니었지만, 어째선지 이 사람들과 있으면 점점 기사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에 아샤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이마를 붙잡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레이시가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하자 아샤는 언제 짜증냈냐는 듯 레이시를 바라보면서 이것저것 확인하며 레이시의 상태를 살펴주었다.
“배랑 허리에 핫팩은 붙이고 있냐?”
“아, 네. 붙이고 있어요.”
“오늘이나 내일까지는 계속 붙여. 그리고 내가 건네준 보충제는? 먹고 있어?”
“네. 꼬박꼬박 먹고 있어요.”
“그건 한 달 내내로 먹어, 없어지면 구해줄 테니까 말하고. 너 피 많이 흘리더라. 나중에 훈련하다가 머리 어지럽다며 비틀거리면 혼낸다.”
“에헤헤, 네에~.”
“하아……. 씨발, 내가 보모도 아니고…….”
거칠긴 해도 걱정이 먼저 앞서는 아샤의 욕설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자신의 직업이 언제 기사에서 보모가 됐냐며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레이시의 몸을 마저 보살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잘 어울리지 않냐고 아샤를 놀리는 엘라.
아샤는 엘라의 웃음에 똑같이 웃다가 중지를 올려줬고 엘라는 그런 아샤의 대답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핫! 기사가 주군한테 엿 먹인다!”
“주군도 주군다워야 주군이지 씨발. 뭔 크싸레 같은 년이 돈 좀 준다고 주군이래.”
“나는 크레이지도, 싸이코도 아닌데? 레즈는 맞지만.”
“지랄도 그 정도면 절하고 배우고 싶을 정도다, 이 씨발년아.”
“절 해주면 가르쳐줄게.”
“염병.”
말을 해봐야 자신만 손해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됐다면서 중지를 한 번 더 치켜세워준 다음 자신을 불러낸 미스트를 바라봤다.
그러자 잠시 레이시의 눈치를 보다가 한 종이를 탁자에 올려두는 미스트.
왕가의 인장이 찍힌 걸 보면 국왕의 명령서일까?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보기 드물게 심호흡하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설명했다.
“공주님. 저번에 아이야트 왕자님께 초대를 받으신 무도회가 있지 않습니까?”
“아, 응. 안 간다고 했을 건데……, 아무래도 안 받아준 모양이네.”
“네. 아무리 그래도 이성을 잃고 류테인 백작을 협박한 건 너무했다며 무도회에 참석하시라는 명령입니다.”
“……흐으응.”
미스트의 말에 혀를 차는 엘라.
확실히 그땐 조금 이성을 잃었었지…….
빠르게 자기반성을 마친 엘라는 레이시를 뒤에서 끌어안으면서 한숨을 내쉬며 사과했다.
“같이 가줘야 하겠네. 미안.”
“네? 아, 아뇨. 저는 괜찮아요.”
엘라의 사과에 자기는 전속 메이드니 괜찮다고 말하는 레이시.
조금 포장해서 말하자면 전생의 비서 같은 직업인데 고용주가 파티나 회식에 가자고 말하면 자신의 일정은 뒤로 미루고 얌전히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다.
거기에다가 사람이 많은 게 조금 서툴 뿐이지, 아예 못 있겠다는 건 아니었기에 레이시는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며 웃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역시 이때까지 만났던 다른 귀족 여자들과는 다르다.
……물론 이때까지 만났었던 다른 귀족 여자들이 전부 자신이 만드는 공에 관심이 있었단 걸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던 거겠지만.
이것도 반성.
엘라는 짧게 반성한 다음 미스트에게 레이시가 입을 옷을 준비해뒀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몇 벌 허공에서 꺼내주었다.
“레이시가 바지와 셔츠로 된 것을 좋아해서 그런 옷들로 준비해봤어요.”
미스트가 꺼낸 옷은 레이시가 평소에 입고 있는 제복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평소에 입는 바지에 셔츠, 조끼에 코트처럼 생긴 겉옷을 한 벌 추가한 것이니까.
다만 평소보다 장식이 많고 하네스가 달렸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한 마디로 원래 입던 옷보다 좀 더 불편해 보였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엘라에게 귀족들은 저런 옷을 입고 춤을 추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춤이라고 말하기에도 뭣한 게, 길거리에서 추는 춤이 더 나아.”
“네?”
“자기들도 옷이 불편한 걸 알고는 대충 이런 자세로 손을 잡고 스텝을 밟는 게 전부거든. 이딴 걸 춤이라고 말하면 공연단에서 춤추는 건지 아기가 걷는 걸 도와주는 건지 하나만 하라고 욕할걸?”
“아, 아하하…….”
“일단 입어 보고 와.”
“네에~.”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하네스를 입는 건 힘들 테니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싱긋 웃으며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무도회에서 입는 옷이라 그런지 편의성보다는 미적인 감각에 중시한 옷.
바지는 각선미를 강조하듯 살에 착 달라붙었고 셔츠도 마찬가지로 몸에 딱 맞춘 느낌이라 기지개를 켜면 치골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다.
“으으…….”
무도회의 목적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해서 대시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이런 옷이 기본인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하네스를 들고 미스트를 불렀다.
“셔츠랑 조끼, 입으셨나요?”
“네, 그런데 이거 조금 작은 거 아닌가요?”
“아하하, 딱 맞는걸요? 그럼 잠시만요…….”
하네스를 들고 레이시의 뒤에 서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모아 위로 틀어 묶은 다음 하네스를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레이시의 목에 두꺼운 초커를 채웠다.
“으, 으응……?”
“하네스가 밋밋해서요.”
싱긋 웃다가 레이시에게 입힌 하네스의 벨트와 초커를 잇는 체인을 다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자신의 목에 채워진 초커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러고 보니까 이걸 찼을 땐 엘라랑…….
……생각하지 말자.
아무래도 십 며칠 동안 운동도 못 하고, 사람하고 만나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구경만 한 스트레스가 성욕으로 발산되는 거겠지.
레이시는 자신의 성욕에 그렇게 변명한 다음 코트를 입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모습에 박수치며 웃었다.
“잘 어울려요.”
“으응, 고마워요. 그런데 하네스를 입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없어 보이는데.”
형사들이야 겨드랑이에 홀스터를 끼우고 무기를 수납하기라도 하지 자신은 그런 것도 없는데 왜 입는 걸까?
레이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싱긋 웃으면서 팔을 들어보라고 말했다.
“하네스가 가슴 때문에 옷이 뜬 부분을 잡아줘요. 매력적인 액세서리이기도 하고요.”
“그렇구나…….”
“드레스라면 원피스 형태니까 이렇게 될 일도 없지만, 치마는 싫으시죠?”
“아, 아하하……. 치마는 역시 조금…….”
사준 옷이 있긴 하니 그건 몇 번인가 입어 보겠지만, 아무래도 명령이 아니라면 입기 싫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자 미스트는 이해한다면서 단화를 내밀었고 레이시는 단화를 신고 아래로 내려갔다.
“어때요?”
“응, 예쁜데?”
“엘라는 맨날 그 소리네요.”
“좋으면서.”
레이시의 대답에 킥킥 웃다가 레이시의 초커를 매만지며 춤을 연습해보겠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얼굴을 붉힌 채 엘라의 손을 떼어내며 발을 밟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은 거냐며 엘라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엘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어렵지 않다며 자세를 잡았다.
“레이시는 슈트를 입었으니까 남성 파트를 추면 되겠네. 오늘은 기본적인 것만 배우고 다른 건 아샤한테 배워. 아샤도 남성 파트의 춤을 추니까.”
“네에~.”
“……씨발.”
“어허, 춤 선생!”
“기사거든, 이 썅년아!”
“킥킥! 그럼 일단 어떤지 봐봐.”
숨을 가볍게 내쉬면서 천천히 발을 움직이며 레이시를 리드하는 엘라.
엘라는 숫자를 세면서 발을 움직였고 레이시는 엘라의 목소리에 맞춰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둘, 둘, 넷.”
“웃, 아, 아으.”
발을 밟지는 않았지만, 엘라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보이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가르치는 것이 꽤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야, 레이시.”
“네?”
“엘라의 발이 아니라 엘라의 눈을 봐야지.”
“그치만 그러면 발을 밟을지도 모르는데요?”
“아래는 대충 감각으로 때려 맞춰. 눈을 보면 할 수 있을 거니까.”
“으, 으응……, 발 밟기 전에 먼저 사과할게요.”
“괜찮아. 초보잔데 뭐.”
아샤의 말에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시선을 위로 들어 눈을 마주치고 엘라의 리드를 따르는 레이시.
그러자 레이시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형은 외우지 못했지만, 착실하게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춰서 따라가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이건 그나마 좀 낫다고 생각하며 레이시에게 자잘한 조언을 계속해주었다.
“고개 들어. 얼굴을 안 보면 못 맞춘다니까?”
“네, 네엣!”
“발을 밟을 걸 너무 의식하고 있잖아. 너, 그렇게 엘라의 발이 좋아?”
“아뇨!”
“발을 바라보면 네 스텝에 네가 꼬여서 넘어져서 상대가 다치니까 상대방 눈을 봐. 발 밟으면 나나 엘라가 머리를 숙이면 끝나지만, 넘어지면 그 정도로 안 끝나.”
“네!”
아샤의 조언에 따르며 점점 파트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춤을 추게 되는 레이시.
엘라는 이 정도면 무도회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아샤를 보며 레이시에게 여자 파트를 가르쳐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샤는 정말 자신이 춤 선생으로 알고 있는 거냐며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지랄해도 해줄 거잖아. 그럼 그냥 하자.”
“……씨발! 야, 한 번만 해줄 거야.”
“에헤헤, 네에~.”
아샤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해맑은 레이시의 얼굴에 한숨을 내쉬다가 레이시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충 가르쳐주기만 하려고 했지만, 레이시가 의외로 춤을 잘 흡수하자 완벽함을 가해서 이런저런 팁까지 레이시의 몸에 새겨주는 아샤.
그렇게 하나씩 가르치다 보니 결국 아샤는 무도회 당일까지 레이시의 춤 상대가 되어주었고 엘라와 미스트는 그런 아샤를 놀리며 마차에 올라탔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아, 아하하……, 죄송해요.”
“씨발 엘라 썅년, 씨발 미스트 개년.”
말의 고삐를 잡고 살기를 뿜어대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반응에 쭈뼛거리며 사과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사과에 레이시를 빤히 보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휴……, 네가 미안해할 게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 쯧!”
자기가 완벽함을 노리고 레이시에게 손을 떼지 못하고 계속 붙잡고 있어서 놀림 받은 게 문제지, 레이시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꽤 빠르게 흡수해서 자신을 자극했으니 칭찬해줘야 한다면 칭찬해줘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에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더 알려준 다음 무도회가 열린다는 제 2 내벽 안쪽 건물에 앞에 마차를 주차했다.
“공주님, 으득으득, 나오시죠.”
“풉, 푸핫! 아아, 수고했네, 나의 기사 아샤여. 킥킥……!”
다른 사람들 앞이라 욕을 퍼붓지는 못하고 존댓말로 엘라를 부르는 아샤.
엘라는 분노를 억지로 삼키는 아샤의 목소리와 말투에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다가 미스트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고 이내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가자, 레이시. 손, 잡아줘.”
“네, 넷!”
엘라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손을 잡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크게 긴장하지 말라며 무도회장에 발을 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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