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일상, 데이트, 일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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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험은 꽤 많은 정보를 준다.
예로 들어 요리하다가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으면 다음부터는 기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학습하게 되고 화상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면 되는지 배우게 된다.
그런 것처럼 이번 월경은 레이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레이시가 배운 것은 월경이 일어나는 일주일 내내 지독하게 아픈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한참 활동하는 점심 무렵보다는 자고 일어난 새벽 때 더 기분이 더럽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체적인 고통보다는 감정적인 변화가 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으, 으윽…….”
화장실에서 신음하면서 변기에 떨어진 애매하게 굳은 핏물을 보는 레이시.
소변이나 대변과 다른, 명백하게 이상한 감각.
자세히 설명하긴 싫지만, 뭔가 다른 생명체가 자신의 몸 안을 기어서 나가는 것만 같은 감각에 레이시는 한숨을 깊게 내쉬다가 조용히 휴지를 뜯었다.
말에서 낙마하고 하루 꼬박 쉬면서 몇 번인가 봤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광경에 레이시는 신경질적으로 휴지를 던진 다음 손을 씻었다.
“으으……. 이딴 걸 어떻게 견디는 거야?”
자신의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혼잣말로 투덜거린 레이시는 이내 한숨을 내쉬고 옷을 차려입었다.
평소에 개들과 말을 관리할 때 입는 두꺼운 바지에 질긴 천으로 만든 셔츠, 그리고 물릴 때를 대비한 가죽 장갑.
레이시는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예민해진 감각에 한숨을 내쉬다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레이시에게 다가가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면서 팔을 벌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를 꽉 끌어안고 싶다는 욕망이 있긴 하지만, 레이시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꾹 참고 있는 모습.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여전히 대형견 같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꽉 안아주었다.
“이걸로 참아주세요. 뒤에서 안기는 건 아직은 조금…….”
“……알았다.”
레이시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비다가 아쉽다는 듯 떨어지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뺨에 입을 맞춰준 다음 사냥개들에게 밥을 주고 말들의 상태를 살폈고 그게 끝나자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 입는 옷은 엘라의 메이드로서 입는 제복.
사육사 옷과 다르게 몸에 좀 더 달라붙고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바지에 레이시의 허리에 딱 맞춘 길이의 벨트.
적당히 몸매를 드러내는 셔츠에 베스트까지 입자 레이시는 약한 압박감을 느끼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머리끈을 꺼내 머리카락을 묶었다.
“후아…….”
엘라와 피크닉 가야 하는데…….
레이시는 오늘 일정을 떠올리다가 머리카락이 들러붙는 것도 짜증 나고 화나는 지금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산책을 하거나 밖에서 간식을 먹는 건 기분 좋은 일이긴 하지만, 혹시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낼까봐 두렵다.
사람이 언제나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지만, 욕심이라는 건 또 그렇지 않았기에 레이시는 잠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보면서 아프다면 안아서 데려다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고개를 가볍게 저은 다음에 싱긋 웃었다.
“그냥 날이 꽤 더워졌다 싶어서요.”
“그렇군. 한 달 뒤면 여름이라는 게 되는 것 같다. 그때는 하늘도 더워서 평소보다 더 높게 올라갈 수 있다.”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글쎄? 모르겠다. 100m 이상 올라가면 수직 거리는 잘 모르게 된다.”
“흐에엑, 100m…….”
사람이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수직거리는 11m가 한계라던가?
전생에 인기 있었던 밈을 떠올린 레이시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미네르바와 함께 저택으로 돌아갔다.
저택 안에서는 어제 말한 피크닉 때문인지 엘라는 엘라 나름대로 지도를 붙잡고 애쓰고 있었고 미스트는 미스트 나름대로 도시락을 만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할 일을 찾기 위해서 움직이는 레이시.
하지만 동물들을 돌보고 쓰레기를 버린 이상 레이시에게 할 일이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레이시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만 있게 되었다.
차라리 공부라도 할까…….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이상하게도 공부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긴 전생에서도 그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니까 별로 특이할 일도 아니려나?
……그래서 대체 뭘 하면 좋을까?
훈련도 금지라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러 갈 수도, 운동할 수도 없었기에 한참이나 멍하니 미네르바의 허벅지에 앉아있는 레이시.
엘라는 천장의 얼룩이라도 보는 것 같은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를 불렀고 레이시는 엘라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달려갔다.
“이거 정원 지도인데 어때?”
“……? 밑에 눈금자가 이상한 거 같아요!”
“응? 뭐가? 정상인데?”
“1cm에 2m라고 적혀있는데요?”
지도의 크기는 대략 40x60cm.
눈금자대로라면 80x120m라는 엄청난 크기의 정원이 되기 때문에 레이시는 이런 크기의 정원이 어디에 있냐며 웃었다.
국제경기에 쓰이는 축구장보다 넓은 정원이라니.
대체 꽃이 얼마나 있고 그 꽃을 관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는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엘라가 자신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이 어색해지자 피식 웃으면서 나중에 확인하자고 말했다.
“두 눈으로 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니까 나중에 확인해볼까?”
“…….”
“왜? 내기라도 할까?”
“아뇨……, 이번에도 제가 질 거 같으니까 안 할래요.”
“후후, 성장했네.”
이번에 내기를 하면 또 뭐를 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시선을 피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재미있다는 듯 웃다가 어디에서 쉬면 좋을지 물어봤다.
“여기는 중간 크기의 나무가 여러 개 있고 이 커다란 원에는 인공 호수 한가운데에서 쉴 수 있어. 호수에는 정자도 있으니까 그늘도 충분하고 물도 투명해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볼 수있을 거야.”
“엘라는 어디에서 쉬고 싶어요?”
“나? 레이시가 쉬고 싶은 곳이면 좋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레이시가 곤란해하겠지?”
“에, 에헤헤…….”
“호수에서 쉬자. 나무 그늘도 좋지만, 오늘은 햇빛이 강하니까 말이야.”
“네에~.”
“그럼 슬슬 가볼까?”
“벌써요?”
“음, 마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꽤 거리가 있거든. 가는데 20분 정도 걸리니까 거기에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돌아올려면 일찍 가는 게 좋을 걸?”
“……그렇구나. 한동안 왕궁 안을 돌아다녀서 엄청 크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뭔가 실감이 잘 안 드네요.”
“킥킥! 그래? 그럼 나중에 왕궁 탐방이라도 할까? 낮잠 자기 좋은 곳을 몇 군데 알고 있거든. 같이 가서 낮잠 자자.”
“헤에에~, 좋아요. 약속한 거예요?”
“그래, 미스트,마차는 언제 와?”
“10분 내로 오는데 한 번 확인할까요?”
“응. 부탁해.”
어느새 도시락을 다 만들었는지 도시락통에 보온마법과 보관마법, 그리고 흔들림 방지 마법을 걸면서 엘라의 질문에 대답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고 미스트는 저택 밖을 바라보다가 레이시의 시선에 눈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마주쳤다.
마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껏 물어보라는 듯한 얼굴.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얼굴에 어색하게 웃다가 지금은 다들 평소보다 부드럽게 대해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어 늘 궁금해하던 걸 물어봤다.
“저기, 미스트.”
“네?”
“혹시 미스트는 분신술도 쓸 수 있어요?”
“……?”
“푸훕!”
레이시의 질문에 눈을 깜빡이며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레이시에게 다시 물어봤고 엘라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핫! 미스트가 당황한 건 되게 오랜만에 보네! 왜 그런 걸 물어본 거야?”
“……그게, 손이 되게 빨라서요. 눈 돌리면 식사 준비 끝났다고 하고, 쓰레기 버리고 오면 청소랑 빨래 다됐다고 말하고. 그래서 몸이 한 5개는 되는 거 같아서요.”
“아, 아하……. 그런 거였나요? 뭐, 간단한 업무라면 이렇게 분신술을 쓸 수 있긴 한데…….”
“으아아앗!? 진짜다!?”
“아하하……, 신기하신가요?”
“신기해요!”
“뭐, 그래도 레이시가 생각하는 분신과는 꽤 느낌이 다를 거예요. 이거 일일이 조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술이거든요.”
“헤에에에……, 그래도요!”
“킥킥! 그래서 그게 그렇게 궁금한 거야?”
“네!”
레이시의 힘찬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엘라.
엘라는 한참을 재미있다며 웃다가 미스트가 마차가 왔다고 말하자 도시락을 들고서 마차에 올라타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이시, 이거 들고 가세요. 여분의 속옷이랑 여분의 옷이에요. 물수건도 들었고요. 탈취제도 있어요.”
“아……, 그, 고마워요…….”
“몸 상태가 나빠지면 곧바로 돌아오세요. 공주님도 저도 레이시의 몸 상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네에.”
그리고 레이시가 마차에 타자 옷가지를 챙겨주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배려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다 미스트가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미소를 짓자 똑같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런 두 사람을 질투하듯 마차의 문을 닫고 마차를 출발시키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뚱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엘라에게 사과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사과에 투덜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드에게까지 질투를 느끼게 될 줄이야, 나도 참…….”
“아, 아하하……. 죄송해요.”
“그래도 지금부터는 나와 데이트하는 거니까 나만 신경 써.”
“그럴게요.”
“흐응, 그럼 옆에 앉아. 마주 보고 앉는 것도 좋지만, 옆에 앉는 게 더 좋아.”
“에에……, 네.”
엘라의 말에 마차가 멈출 때 잠시 일어나서 엘라의 옆에 앉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옆에 앉자마자 그대로 레이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고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으며 엘라의 뺨을 조심스럽게 찔러봤다.
그러자 감았던 눈을 뜨고 입술을 샐쭉하게 내미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손가락을 깨무는 흉내를 내더니 레이시가 놀라며 손을 빼자 레이시의 눈높이까지 손을 들고 작게 흔들었다.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가 했던 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못 만난 만큼 한 동안은 계속 붙어있을 거라던 말.
레이시는 엘라와 깍지를 끼자 엘라가 그걸 빈말로 한 게 아니란 걸 깨닫고는 마른침을 삼키며 엘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스트도 제대로 답해줬고 엘라도 어제 하루 내내 곁에서 안 떨어지고 잘 돌봐줬으니까 이번에도 뭔가 말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되게 부끄러운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꼭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각오를 다지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엘라를 불렀다.
“저기, 엘라.”
“응? 왜?”
“저기, 그게, 그러니까…….”
각오를 다져도 아무래도 말하기 부끄러운지 쭈뼛거리면서 깍지를 끼고 있는 손에 힘을 주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를 눕혀주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그러니까!”
“응?”
“저, 좋아해요……?”
“……이제 와서?”
“아, 아니!? 그러니까!”
레이시의 질문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보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역시 부끄러운 짓은 하는 게 아니었다며 횡설수설하다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 킥킥 웃기 시작했다.
되게 뜸을 들이길래 뭔가 엄청난 질문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고작 사랑하냐고 물어보는 거라니…….
조금은 놀려볼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짐짓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네, 어떨까?”
“웃!?”
그러자 곧바로 반응하는 레이시.
자기가 한 질문이 혹시 엘라를 귀찮게 한 걸까 싶었던 레이시는 엘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웃음을 참다가 레이시를 부드럽게 끌어안고 입술을 겹쳤다.
레이시가 도망치지 못하게 등을 꽉 끌어안고, 자신의 애정을 표현하듯 레이시의 부드러운 아래쪽 입술을 약하게 깨문 다음 레이시의이빨을 혀로 핥는 엘라.
엘라는 자신의 인내심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입을 맞추고 레이시의 입안을 자신의 것이라 마킹하듯 혀로 핥다가 숨이 가빠지자 살짝 떨어졌다.
그러자 붉어진 얼굴로 엘라를 쳐다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얼굴에 능글맞게 웃다가 다시 레이시에게 다가가 레이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하아아……, 모자라?”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