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경외의 야차, 아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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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아샤는 기사단 숙소에서 눈을 뜨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무슨 일이세요? 대장?”
“시끄러워, 대장은 무슨 대장이야. 앞으로 몇 주 뒤면 대장 아니야.”
“그래도 대장은 대장인 걸요.”
“시끄러워.”
자신이 소속된 기사단의 부대장의 인사에 눈살을 찌푸리는 아샤.
부대장은 아샤의 반응에 문제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말했지만, 아샤는 남에게 상담해서 될 일이 아니라며 일축하면서 부대장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인수인계를 위한 서류.
부대장은 그 서류를 보자 울상을 지었지만, 아샤는 그런 부대장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믿고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아샤 대자아아앙~.”
“시끄러.”
“그래서 진짜 무슨 일이에요?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에요?”
“아니, 메이드에게 스위치를 만드는 일이거든.”
“아……, 그 레이시라는 메이드요?”
아샤의 말에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안쓰럽다는 얼굴을 하는 부대장.
경외라는 감정에 정반대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에 부대장은 아샤에게 술을 마시러 갈 건지 물어봤고 아샤는 그런 부대장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기분 나쁠 땐, 술 마시는 거 아냐.”
“그럼 나중에 기분 좋은 일 생기면 마셔요. 그 때는 한 턱 낼게요.”
“내가 내야지, 등신아. 대장 되면 돈 깨지는 곳이 많아지니까 아꼈다가 너 써.”
부하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숙소를 나서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의 훈련을 위해서 아침 일찍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저번에 부탁받았던 물건들을 보따리에 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전 7시 반이 되자 엘라의 저택으로 갔고 저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이시를 보고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스위치를 강제로 새긴다.
그건 곧 트라우마를 억지로 때려넣어서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아샤는 당장이라도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레이시가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자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먼저 간 곳은 왕궁 내에 있는 식당.
왕궁에서 일하는 남작 이하 귀족이나 평민들, 혹은 기사처럼 단체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식사를 모두 책임지는 곳이었다.
“멜리아! 편지 받았었지?”
“아, 아샤! 화장품 주세요!”
“……넌 대답보다 화장품이 먼저야?”
“에헤헤, 브린트리즈 특제 화장품을 수도에서만 지내는 제가 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샤니까 가끔 이렇게 구해주는 거지! 그러니까 화장품!”
“하아, 여기. ……너, 너무 위계질서가 없는 거 아냐?”
“아! 여기 계신 분이 레이시죠? 그렇죠?”
“네? 아, 네! 제가 레이시에요!”
“좋은 이름이네요! 앞치마는 이거 입고요, 저 상자들을 옮겨주시면 돼요! 참! 저는 멜리아라고 해요! 이 식당의 화덕을 담당하는 핫 파트 섹션 셰프에요!”
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면서 레이시에게 일을 시키는 멜리아.
레이시는 그런 멜리아의 모습에 당황하며 아샤와 멜리아를 번갈아보다가 아샤가 턱짓하자 상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꽤 힘든 일이긴 했지만, 몸이 전생의 몇 배는 강해진 데다가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많이 해본 일이라 어렵지 않게 하는 레이시.
멜리아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는 칭찬하면서 꺄륵 웃었다.
“우와! 레이시! 되게 세네요! 생긴 건 저보다 연약하고 어디 귀한 가문의 영애처럼 생겼으면서!”
“에헤헤, 일단은 야차니까요?”
“아샤 씨처럼 흉흉해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시끄러. 일 갔다 오는 김에 화장품도 사준 사람에게 못 하는 말이 없지?”
“아하하, 잘못했어요. 이거 드세요. 육포에요.”
“하아아……, 그러니까. 아니. 아니다. 그럼 레이시, 다음 훈련하러 가자.”
“네? 네.”
육포를 받고 한숨을 내쉬다가 피식 웃으면서 육포를 무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샤가 발걸음을 옮기자 아샤의 뒤를 따라갔고 이내 식당에서 한 것처럼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왕궁 청소라거나 동물들을 돌보는 것, 그리고 물건을 옮기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둥의 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라 꽤 즐겁긴 했지만, 레이시는 이런 게 대체 무슨 훈련이 될까 싶어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레이시의 이마를 가볍게 튕기며 식당으로끌고 갔다.
“내가 사는 거니까 다 먹어.”
“죄송해요. 미네르바 것도 사게 해서…….”
“한 명 사주든, 두 명 사주든 똑같아. 거기에다가 어차피 월급을 받아도 다 못 쓰니까 이런 식으로라도 돈을 써야지.”
“한 달에 얼마 받으시는데요?”
“기본 2400만. 보너스 포함하면 년에 3~4억 받으려나. 목숨 수당도 있으니까.”
“…….”
“넌 150만쯤 받지?”
“겨, 견습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참고로 그 밥 4만 5천 하랑짜리다.”
“……감사합니다.”
킥킥 웃으면서 사과를 육포와 함께 으적으적 씹어먹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모습에 아샤는 밥을 안 먹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샤는 그런 것보다는 멜리아가 개인적으로 만든 육포가 맛있다며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자 작게 웃는 레이시.
아샤가 먹고 있는 건 전부 자신이 도와준 곳에서 받았던 것으로, 아샤가 개인적으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얻은 것들이었다.
자신과 미네르바에게는 초고급 요리를 사줬으면서 그런 것들이 더 좋다니…….
레이시는 아샤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계속 웃으면서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부끄러움과 함께 죄책감이 올라와 검지로 레이시의 이마를 튕겼다.
“아얏!”
“웃지 마. 그래서, 오늘 만나 본 사람들은 어땠어?”
“전부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지? 그 사람들 얼굴은 외우는 게 좋을 거야. 왕궁에서 살 거면 나름 도움이 되는 녀석들이니까.”
육포와 사과를 전부 먹은 다음 식탁 위에 발을 올리고 꼬는 아샤.
레이시는 뭔가 어두워 보이는 아샤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샤가 자신을 쳐다보자 아샤의 말대로 하겠다며 미네르바와 밥을 먹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밥을 전부 먹자 아샤는 이번에는 낮잠을 자자면서 자신만이 아는 낮잠 명소로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공원.
아샤는 공원에 있는 큰 나무 위에서 대충 자리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모습을 어색하게 바라보다가 나무 아래에서 미네르바의 품에 안겨서 잠들었다.
오랜만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바쁘게 일해 금방 잠드는 레이시.
아샤는 실눈으로 레이시를 힐끗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이 앞으로 할 행동을 떠올리고는 자신을 작게 욕했다.
강제로 트라우마를 심겠다니,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아무리 레이시가 엘라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고, 이 훈련을 통과하면 위험한 곳도 따라갈 수 있게 되겠지만, 이런 걸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 아니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원해서 해주는 일이지, 절대적으로 옳은 일은 아니다.
전쟁터에서는 전투에 미쳐서 자신의 목숨마저 도외시하는 녀석들만 나오면 되는데,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상대가 원했다고 해도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는 녀석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자신의 몸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곪아 터지는 걸 느끼며 가볍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아……,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멈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여기에서 멈출 거였으면 레이시를 훈련시켜주겠다고 말해서는 안 됐다.
어차피 나쁜 짓을 한 번, 두 번 하는 것도 아니니 여기에서 한 번 더 나쁜 짓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착잡한 마음을 억지로 감추면서 레이시의 뺨에 차가운 물을 건네주었다.
“야, 일어나.”
“흐냥!?”
“귀여운 척 그만하고 일어나. 이제 마지막 훈련할 거니까. 거기에 앉아. 그리고 훈련하기 전에 말하는 건데……, 아니, 아니다. 그냥 앉아.”
“흐에……? 네?”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서, 일부러 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며 레이시를 바라보는 아샤.
낮잠을 잘 자다가 깨어난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분위기에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샤가 우울해하고 있는 거지?
같이 낮잠을 잘 잤을 텐데…….
레이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아샤는 5m정도 거리를 벌리더니 단검을 꺼내들었고, 이내 레이시가 아무리 둔해도 알아차릴 정도의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레이시.
요 며칠동안 쉬지 않고 훈련한 덕분인지 레이시는 꽤 훌륭한 반응을 보였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좀 더 망설이다가 일부러 상처가 남도록 채찍 끝을 잡았다.
그러자 따끔한 감촉과 함께 흐르는 피.
레이시는 잠시 자신이 뭘 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 아샤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는 다급하게 아샤에게 달려가 손을 치료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손길을 뿌려치더니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때리고, 짐승이 위협할 때처럼 긁는 목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다.
“진정해.”
“하, 하지만 아샤 손이! 피, 피가!”
“시끄러워! 진정하라고! 이……! ……이 씨발년이! 훈련한다고 했을 때 나를 뭐라고 부르라고 했어!? 처맞을래!?”
“힉!?”
레이시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자신이 하는 행동을 깨닫고 순간 말을 더듬는 아샤.
하지만, 여기에서 망치면 지금 이 모든 일이 망치는 것이기에 아샤는 계속해서 레이시를 압박했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이제부터 자신이 살기를 쏘아냈을 때 떠올랐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시켜서 다치거나 죽으면 그 사람들을 영영 못 보게 될 거라는 공포심을 심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욕설을 섞어가며 레이시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압박에 어떻게 할 줄 몰라 발을 구르다 아샤가 물어보는 것에 횡설수설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대답은, 울음기가 잔뜩 섞여서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지만, 공포심만은 확실히 심어진 모습이라 아샤는 입술을 꽉 깨물고 차분해진 목소리로 레이시에게 속삭였다.
“앞으로 너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제압하지 못하면 그 인간들의 얼굴을 다시는 쳐다볼 수 없다고 생각해. 살아남아도 팔다리의 힘줄이 잘려서 변태 새끼의 노리개가 될 뿐이겠지. 그러면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다시는 못 보는 거야. 알겠어?”
“히끅……! 히끅……!”
“……알겠냐고!”
“네, 네헷!”
“좋아, 오늘 훈련은 끝이야. 넌 채찍 휘두르고 pt하는 것보단 사람들하고 잔뜩 미련을 만들어. 그래서 다쳐서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
아샤의 말에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아샤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레이시를 보고 누구에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욕설을 혼잣말로 퍼붓다가 보따리를 풀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줄 걸 다 건네준 다음, 마지막으로 남긴 건 간식과 담요.
아샤는 담요를 레이시의 무릎에 조심스럽게 펼쳐 준 다음에 우는 게 진정되면 돌아가라고 말한 다음 자리를 떠났고, 레이시는 아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자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들릴까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우는 레이시의 모습.
아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레이시의 모습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옆에서 갑자기 인기척이 생겨나자 돌멩이를 주워 던지며 욕을 퍼부었다.
“나와, 사람 기분 잡치게 해놓고 뭘 쳐다보고 있어?”
“아하하……, 들켰나요?”
“시끄러워. 하여튼 훈련 방향은 정했으니까 나중에 저 울보나 데리고 돌아가.”
“네, 수고하셨어요. 아샤.”
“닥쳐. 씨발…….”
언제봐도 마음에 안 드는 년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자리를 뜬 다음 내일 있을 훈련을 위해서 레이시와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하며 레이시가 삶에 대한 미련을 얻을 수 있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꽤 잘 통했는지 첫 훈련 이후 레이시는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많은 친구를 만들었고 채찍질에도 힘과 기술이 붙기 시작했다.
하는 행동들이 조금 방어적이긴 했지만, 만약 엘라와 미스트, 두 사람과 붙어 다닌다면 레이시가 자기 몸을 지키고 도망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상관없는 부분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채찍을 휘두르기 전 집중할 때마다 움찔움찔 떠는 레이시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레이시가 원하는 대로 실력을 쌓았다고는 했지만, 역시 못 할 짓을 해버린 느낌이다.
레이시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아샤는 레이시가 시킨 훈련을 다 소화하자 오늘은 추가 훈련 없이 해산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귀신처럼 몰려드는 기사들.
레이시의 연병장에서의 일정을 외운 기사들은 레이시가 아샤에게 인사하자 곧바로 몰려가서 데이트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레이시, 오늘 시간 있어? 좋은 카페를 알았는데 같이 갈래?”
“아, 아하하, 죄송해요. 미스트와 나중에 가볼게요. 괜찮으시다면 알려주시겠어요?”
“응? 아니, 나는 레이시랑 둘이서…….”
“멜리아 씨 도와줄 시간이 되었네요. 가볼게요.”
혀를 빼꼼 내밀고 도망치는 레이시.
주변 기사들은 레이시의 거절에 낄낄 웃다가 혼자 남은 기사를 위로해주었고 레이시는 그런 기사들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 내가 남자였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안 믿겠지. 뭐.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샤가 짜준 다른 일정이 떠올라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 레이시, 어서 와!”
“죄송해요, 늦었나요?”
“아냐, 딱 맞춰 왔어. 우리 쪽 남자들도 레이시를 본받으면 좋을 텐데.”
“뭐? 너무하네! 이거 우리가 옮겼거든!?”
“아하하하, 저분들도 열심히 하시는걸요. 불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기도 하고.”
“여기에서 우릴 이해해주는 건 역시 레이시밖에 없다니까!”
“시끄러! 레이시가 옮기는 양의 절반도 못 옮기면서!”
“아니, 한 번에 상자를 6개씩 옮기는 레이시가 이상한 거잖아…….”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것보다 나, 끝내주는 카페를 알게 됐는데 다음에 같이 가볼래?”
“미스트에게 알려주시면 다음에 같이 가볼게요.”
왕궁의 식당에서도 데이트 신청을 받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상하게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하다가 멜리아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상자를 한 손으로 받아내면서 멜리아를 안아주었다.
“괜찮으세요?”
“앗……, 고마워.”
“아니에요. 금방 옮길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레이시는 작은데 꽤 믿음직스럽네.”
“그렇게 작진 않은데…….”
“아하하, 저기 있는 못 미더운 남자들보다 훨씬 멋져.”
“에헤헤, 그럼 옮길게요.”
레이시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면서 진지하게 여자끼리의 데이트도 고민해보는 멜리아.
왕궁 내 스킬 판매소에 가면 자신의 월급을 8년 동안 꾸준히 저금하면 여자도 그걸 달 수 있는 스킬을 살 수 있다던데 레이시 정도라면…….
“저기요?”
“네? 아! 미스트님, 무슨 일이세요?”
“아뇨, 레이시는 어디에 있나요? 엘라 공주님과 관련된 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데…….”
“금방 데려올게요!”
작은 몸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무거운 상자를 옮기는 레이시.
멜리아는 그런 레이시를 보면서 굳이 그런 스킬이 없어도 여러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면 가볍게 한 번 만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뜨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유령이 나타나듯 갑자기 나타난 미스트가 멜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레이시에게 엘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말하는 미스트.
멜리아는 갑자기 나타난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다가 아까까지 머릿속을 꽉 채우던 부끄러운 상상을 지우며 레이시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 걸까?
멜리아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이시의 모습에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조용히 머릿속 일정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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