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40화 (40/542)

〈 40화 〉 경외의 야차, 아샤­2

* * *

레이시가 연무장을 뛰는 걸 모두 지켜본 경외의 야차, 아샤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연무장을 전부 뛰지 못해서 당황했다는 건 아니었다.

야차가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다른 야차를 몇 번 보지 못했었던 아샤로서는 알 수 없었으니까.

자신을 기준으로 모두를 보기에는, 기사로서 활동하는 시기가 길어서 무리고…….

다만 당황했던 건 레이시가 훈련을 너무 잘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한 바퀴에 1km는 되는 연무장.

열 바퀴를 뛰라고 시켰으니 10km의 마라톤인데 그걸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뛰었고 마지막 바퀴는 전력질주로 뛰었으니까, 체력적으로는 꽤 훌륭한 편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추가 과제를 시켜봤고 그 결과도 모조리 꽤 훌륭하게 통과했었다.

무게추를 잔뜩 넣어 100kg을 맞춘 나무 상자를 밀면서 20m 길이의 레일 걷게 한 것도, 중량 조끼를 입고서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 훈련도 통과했다.

그 외에 여러 신체 조건을 탐색했을 때, 몇몇 신체 조건은 다른 기사들이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어려운 과제도 통과할 정도로 꽤 훌륭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샤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미스트에게 듣기로는 화살에 맞고 도주하다가 실혈로 인해 기절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

화살을 보고 잡을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어째서……?

스킬도 있고, 전투에 대한 적응능력도 따져야 하니 신체능력이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레이시의 모습에 아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이시, 병사보다 조금 더 나은 기사들도 처리 못 하고 화살 맞고 기절했다며? 엘라가 그렇게 말했었는데?”

“네, 그랬어요.”

“……왜?”

저 정도 운동능력이라면 화살을 쏠 때 눈 질끈 감고 일직선으로 튀어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기술 같은 거 없이 멀리서 장대 같은 걸로 찌르기만 하더라도 칼을 든 사람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신체능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그런데 고작해야 병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라는 기사에게 당해서 울었다고?

아샤는 자신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일에 눈을 지그시 감고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은 다음 자신의 뺨을 때렸다.

일단 모르는 게 있으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낫지, 혼자서 고민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그늘에서 쉬고 있는 레이시에게 다가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레이시.”

“네?”

“너, 정말 기사들한테 당해서 실신했던 거야? 그게 아니라 사실은 곰 같은 거에 당했다거나 그런 거 아냐?”

“아, 아닌데요…….”

아샤의 말에 움찔 떨면서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그 모습에 아샤는 레이시가 정말 엘라나 미스트가 말한대로 기사들에게 졌다는 걸 확신하며 자신의 외뿔을 긁었다.

하긴 엘라가 부하가 아니라 메이드를 들인 거니까 기사에게 못 이겨도 상관 없나?

아니, 그렇게 따지면 미스트는……?

아샤는 계속해서 그런 의문을 품다가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레이시의 모습에 이내 혀를 차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임무고 자신의 임무는 레이시가 어떤 상황에서든 도망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게 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레이시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나는 아샤야. 지역에 따라서 아샤든 애시르든 야사든 여러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표준어 발음으로는 아샤야.”

“네, 아샤.”

아샤의 말에 만나서 반갑다며 환하게 웃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다시금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있는 레이시는 착한 사람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째서 엘라의 밑에 있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라, 엘라의 부탁이 없어도 지켜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메이드의 일을 할 때나 좋은 성격이지, 전투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성격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착한 녀석들부터 죽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자신의 뿔을 벅벅 긁으면서 일단 레이시에게 압박감을 주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날 부를 땐 스승님이라 불러.”

“네……?”

“스승님이라고 부르라고.”

“읏! 네, 네에에……, 스승님.”

눈살을 찌푸리자 크게 반응하며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속으로 욕을 내뱉으면서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레이시 같은 사람은 왕궁에 조용히 내버려둔 다음 자신이 지켜주면 될 텐데…….

자신의 근간을 이루는 감정인 경외를 곱씹던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레이시가 자신을 힐끗힐끗 살펴보자 강하게 혀를 찼다.

감정을 배신하는 일이든 뭐든, 일단 임무를 받았으니까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오늘은 됐으니 내일 보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 미스트를 쳐다봤다.

그러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수고했다고 칭찬하는 미스트.

미스트는 잔뜩 긴장한 레이시를 보고는 저렇게 보여도 착한 사람이니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몸 곳곳이 자잘한 흉터로 가득하고 살기를 풀풀 풍겼는데 착한 사람이라니…….

중간중간 배려하듯 움직인 걸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싱긋 웃으며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먼저 욕실에 들어가는 레이시.

방에 딸린 작은 욕조에 미네르바가 같이 들어와 조금 갑갑했지만,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약속을 잘 지켰으니 어쩔 수 없다며 목욕물에 같이 몸을 담갔다.

“흐아아…….”

“괜찮나?”

“네, 오랜만에 운동하는 것 같아서 조금 개운하네요.”

“주인은 몸을 움직이는 걸 싫어할 줄 알았다.”

미네르바의 말에 미네르바의 의도를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눈을 마주치는 레이시.

레이시는 잠시 미네르바의 뺨을 쓰다듬다가 사람과 싸우는 건 싫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해할 수 없다.”

“아하하…….”

“적은 죽인다. 그러지 않으면 주인이 죽는다. 그건 싫다.”

“그러네요. ……그래도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는 게 좋아요. 싸우는 건 싫거든요.”

“……알았다.”

레이시의 대답에 레이시의 품에 안기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자기보다 큰 미네르바가 안기자 작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다가 눈을 감았다.

그냥 평범하게 주먹질을 주고받는 거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한국이 아니라 주먹질을 주고받기 전에 칼빵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워서 뭔가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엘라 혼자 그런 위험한 곳에 내보내는 게 더 싫어서 이렇게 훈련을 받는 거지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미네르바를 보고 작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훈련은 하루에 2시간이었다.

새벽에 사육사의 일을 하고, 훈련을 한 다음, 미스트에게서 집안일과 왕궁에서의 일을 배운다.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규칙적인 일정을 지닌 레이시는 일주일 동안 그 일정을 잘 지켰고 아샤와도 점점 친해져서 아샤의 살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샤의 살기는 자신에게 향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어울리지 않게 전투에 나가는 걸 개의치 않아 할 뿐이니까.

“그럼 오늘은 체력 훈련은 그만하고, 채찍을 써보자.”

“네, 스승님.”

“사과 올려둘 테니까 하나씩 쳐내면 돼.”

오늘도 아샤에게서 훈련을 받는 레이시.

일주일 동안 몸을 쓰는 방법을 배운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약간 긴장하면서 채찍을 꺼냈고 아샤는 3m 거리에 사과를 하나씩 올리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딱봐도 너무 긴장해서 몸이 굳은 모습.

하지만 저 정도로 몸이 굳지 않으면 훈련하다 실수할 거라고 생각한 아샤에게 사과를 한 번 놓치면 벌을 줄 거라며 가볍게 쏘아붙였다.

검지를 강하게 튕기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말에 ‘푸흡­’하며 웃더니 이내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으며 한 번에 하나씩 사과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쌔액­하는 채찍 특유의 소리와 함께 사과가 부서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산산조각 난 사과가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채찍을 회수했다.

그리고는 상을 바라듯 아샤를 바라보는 레이시.

아샤는 부서진 사과를 말에게 줄 사료통에 넣은 다음 레이시의 이마를 검지로 가볍게 튕겼다.

“아야!”

“이 정도는 할 줄 알았으니까 상 안 줄 거야.”

“에에에…….”

생각보다 좀 더 잘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할 줄 알고 있었다.

신체능력은 어지간한 기사보다 뛰어나고, 레어도와 레벨이 1밖에 안 되지만 채찍 관련 스킬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이 정도는 그냥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정도로 전쟁터에서 안전하게 도망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아샤는 결국 한 가지 시험을 더 치게 하자고 생각하며 철제 투구를 주웠다.

그리고 투구를 훈련용 목각 인형에 씌우는 아샤.

“아까와 똑같이 해봐. 대신 이번엔 이걸 치는 거야. 알겠지?”

“네……?”

투구를 손등으로 툭툭 치며 웃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채찍을 쥔 손에 힘을 주다가 아샤가 목각인형 곁에서 비키지 않자 당황하면서 아샤를 바라봤다.

저기에서 저러고 있으면 자칫 잘못하면 채찍에 맞을 텐데 왜 저기에서 버티고 있을까?

“저, 저기 안 나오면 위험해요. 스승님.”

“괜찮으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휘둘러.”

“아, 아니…….”

“못 휘두르면 벌이야.”

“……엑.”

레이시의 걱정에 레이시를 놀리듯 킥킥 웃으면서 검지를 튕기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어떻게 할지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샤와 함께 훈련하면서 아샤가 어느 정도로 강한 사람인지는 확실히 느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에게 채찍을 휘둘러도 괜찮은 건가……?

적을 가정하고 훈련한다고 해도 아샤는 자신에게 잘 대해주던 사람인데?

그런 생각에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자 레이시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곤란해했고, 옆에서 레이시를 본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전력으로 채찍을 휘둘러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저 아샤라는 사람은 강함만 따지자면 엘라나 미스트, 두 사람과 동급이다.”

“정말요……?”

“그래. 주인이 원한다면 동귀어진해서 죽이겠지만, 주인에게 돌아오는 걸 전제로 한다면 도망친다는 선택지 밖에 없을 정도로 강하다.”

“……농담으로라도 그러진 말아주세요. 그, 그럼 칠게요!?”

“그래, 걱정하지 말고 있는 힘껏 휘둘러.”

조금 과격한 미네르바의 말에 잔소리한 다음, 그대로 채찍을 휘두르기 위해 팔을 뒤로 당기는 레이시.

그리고 그 순간, 아샤는 눈을 부릅뜨면서 살기를 쏘아냈다.

3m 정도 떨어져 있음에도 거리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레이시가 자신의 눈으로 죽음이란 환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살기.

레이시는 그런 살기에 생각하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 그대로 채찍을 휘둘렀고 레이시가 휘두른 채찍은 큰 반원을 그리며 투구에 내다 꽂혔다.

공기가 터지는 소리도 나지 않는 채찍질.

레이시는 정신을 차리자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채찍질에 힘이 실리지 않았나 싶어 당황하며 나무 기둥을 바라봤고, 이내 멍하니 입을 벌렸다.

“흐음, 역시 그게 문제려나…….”

짐승이 할퀸 것 같은 흔적을 남기고 산산조각난 투구.

아샤는 약간 멍멍해진 한쪽 귀를 막은 채 목각 인형의 머리 부분을 손으로 쥐어봤고 목각인형이 썩은 나무처럼 뜯어지자 레이시의 문제점이 뭔지 깨달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역시 스위치가 문제네…….”

“스위치요?”

“응. 내 개인적인 지론이지만 전사는 크게 2종류로 나뉜다고 생각하거든.”

“스킬인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입을 여는 아샤.

“이 세상에서는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녀석들이 있어. 예로 들면 미스트, 그 꺼림칙한 년은 태어나길 살인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태어났어. 그 녀석은 그냥 그런 녀석이거든.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나도 후자고, 미네르바도 마찬가지로 후자일 거야.”

“……흥.”

아샤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레이시를 끌어안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신을 끌어안자 아무래도 아샤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거짓이었다면, 미네르바가 불안해하면서 자신을 안지 않았을 거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미스트는……?

정말로 미스트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인 걸까?

그런 생각을 이어가자 레이시는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혀를 차며 레이시의 주의를 끈 다음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반대로 죽기에는 미련이 너무 강해서 상대방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어. 엘라는 이쪽. 그 증거로 엘라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면 죽이지 않고 끝내는 편이야. 다만 사람을 죽여야 하는 때가 온다면 그저 죽일 뿐이지만. 너는 아마 이쪽의 사람이겠지.”

“아…….”

“아마 기사에게 당했다는 그때, 네 뒤에 있는 미네르바가 널 데리고 도주하지 않았다면, 넌 그 채찍으로 기사들을 죽였을 거야.”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로 정신이 망가졌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샤는 레이시가 침묵하자 어깨를 으쓱이면서 레이시의 앞으로의 훈련을 가르쳐주었다.

“하여튼 네게 전투 훈련은 쓸모가 없겠다.”

“네?”

“내일은 오전 8시까지 저택 앞에서 기다려, 다른 훈련 하자.”

“……그, 아, 네. 스승님. 오전 8시죠?”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손을 흔들거리면서 인사해주는 아샤.

레이시는 그런 아샤의 인사에 역시 말이 험할 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똑같이 손을 흔들다가 이내 아샤의 훈련이 뭘지 궁금해하며 저택으로 돌아갔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