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경외의 야차, 아샤1
* * *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신기하세요?”
“네. 정말……, 신기해요.”
미스트가 말을 걸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을 둘러보는 레이시.
허공에 떠다니는 유리판과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마법진, 로브를 입은 사람들과 판타지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수정구까지.
레이시는 이 세상에 와서 제일 판타지스러운 걸 봤다며 속으로 호들갑을 떨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레이시가 수인족이었다면 꼬리를 마구 세차게 흔들고 있지 않았을까?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웃다가 이 모습을 엘라가 못 봐서 정말 아쉽다고 생각했다.
엘라가 봤다면 레이시를 놀리는 엘라와 부끄러워하는 레이시를 보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쪼그려 앉아 수정구를 빤히 바라보는 레이시를 보며 미소를 짓다가 로브를 입은 사내에게 신청서를 내밀었다.
“사용할 수 있나요?”
“넵!”
미스트의 말에 군기가 바짝 든 대답을 하는 사내.
그리고 그런 사내를 보는 신입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자작 이상의 귀족을 봐도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선배가 왜 한낯 메이드에게 저렇게 존대를 사용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신입은 미스트가 레이시에게 가자 조심스럽게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러자 사내는 그런 신입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다가 신청서에 미스트의 이름을 쓰고는 미스트에게 다가가 미스트에게 미스트도 스킬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으음, 그러네요. 레이시는 이 시설을 사용할 방법도 모를 테니 제가 시범을 보여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내의 말에 그러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자신이 먼저 사용할 테니 자신을 따라 하면 될 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기심과 기대에 잔뜩 빛나는 눈동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눈동자에 이때까지 봤던 레이시의 얼굴 중에 가장 애 같은 얼굴이라며 작게 웃다가 레이시에게 스킬을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기본적으로는 저희가 스킬 가게에서 했던 것과 똑같아요. 여기에 손을 올리고 주문을 외우는 것만 제외하면요.”
“주문이요?”
“네, 스킬 가게에 있는 건 그 방에 초대된 사람들은 모두 사용할 수 있게 손바닥을 올리고 마력을 주입하기만 하면 되지만, 여기에 있는 건 단순히 그러면 마력을 거부하고 작동하지 않거든요.”
“주, 주문……!”
“후후, 주문이라고 해도 별 거 아니랍니다. 그저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직원분과 대화를 나누면 된답니다.”
미스트는 주문이라는 말에 레이시가 크게 흥분하자 진정시키며 시범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이름이 미스트인 것을 밝히고 사내가 대답하자 스킬을 확인해주면 좋겠다고 말했고 사내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수정구.
신입은 그런 수정구의 모습에 이런 건 처음 본다며 당황하다가 이내 방 안에 있는 유리판에 스킬의 정보가 인출되자 멍하니 입을 벌렸다.
깨알 같은 작은 글자로 빼곡하게 정보가 적히는 유리판.
스킬의 개수를 의미하는 카운터의 숫자는 쉬지 않고 올라가다가 한계를 맞이했는지 error라는 글자를 내보냈고 유리판에 적힌 글자가 깨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스킬이 1000개가 넘어가면 이런 식으로도 읽히지 않게 할 수 있답니다.”
“엑.”
미스트의 말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실망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에 이 마도구가 완벽하길 바란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의 어깨가 아래로 가라앉자 뺨을 쪼물거리면서 사과했다.
“죄송해요. 실망했어요?”
“아, 아하하……, 아뇨.”
……머테리아 후작이라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구해준 것도 생각해보면 미스트였지.
악마를 소환해서 처리했었다는 미스트의 말을 떠올린 레이시는 미스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메이드가 악마를 소환하고 기사들을 처리할 수 있는 걸까?
레이시는 그런 생각에 쭈뼛거리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싱긋 웃더니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럼 스킬 확인하고 오세요. 저는 저기에 계신 직원과 이야기하고 올게요.”
“아, 네.”
미스트의 행동에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의 행동을 머릿속으로 똑같이 따라해보다가 미스트와 대화하던 사내가 다가와서 수정구로 안내해주자 긴장한 채 미스트와 똑같이 입을 열었다.
“저, 저는 레이시. 엘라의 메이드인 레이시에요. 이번에 스킬을 확인하러 왔어요.”
“스킬 감별가인 젠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이 방에서 본 것은 모두 비밀에 붙일 것을 신께 맹세합니다. 그럼 스킬을 확인하겠습니다. 마력이 조금 빠져나갈 테니 이상한 감각이 들어도 안심해주세요.”
“넷!”
상대방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신의 몸에서 뭔가 조금 빠져나가는 걸 느끼자 수정구를 바라봤고 수정구는 밑의 마법진처럼 무지갯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레이시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고 젠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엘라의 측근답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측근이라고 해봐야 미스트 한 명 밖에 없긴 하지만…….
그렇게 잡생각을 하다가 유리판에 글자가 출력되기 시작하자 젠은 레이시에게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스킬의 감별이 끝났습니다. 수정구에서 손을 떼셔도 괜찮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양피지에 정보를 적어드리겠습니다. 출력비는 3만 하랑입니다. 출력해드릴까요?”
“네! 아, 아니. 미스트에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 네.”
3만 하랑이라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닐 텐데?
젠은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레이시가 신입 메이드라 아직 돈이 없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계승권이 없다고 해도 공주의 메이드이니 치장비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
젠은 싱그러운 연두빛의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미스트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레이시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어지간한 귀족 가문의 영애들보다 사람의 눈을 끄는 외모다.
야차라는 게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경외의 야차처럼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던 젠은 미스트에게 돈을 받아오는 레이시를 보고 작게 웃다가 미스트와 눈을 마주쳤고 그대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레이시에게 관심을 가지는 순간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듯한 눈.
젠은 그런 미스트의 눈에 다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자신의 약지를 가리켰다.
자신에겐 약혼자가 있으며 자신은 엘라에게 거역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젠.
미스트는 그런 젠의 변명에 한숨을 내쉬며 레이시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젠이 엘라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자신의 정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이렇게 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되려나…….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중에 레이시에게 레이시의 외모에 대해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종이를 들고 쪼르르 달려오는 레이시에게 팔을 벌려주었다.
그러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미스트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종이를 들고 한참이나 알지 못하겠단 얼굴을 하다가 미스트가 계속 팔을 벌리고 있자 안기라고 하는 거냐며 얼굴을 붉혔다.
“사,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냥 껴안는 건데 뭐 어때요?”
“그, 그치만…….”
“얼른요. 팔 아프잖아요.”
“……아으으.”
레이시가 부끄러워하든 말든 팔을 벌리고 얌전히 있는 미스트.
레이시는 자신이 안기지 않으면 미스트가 언제까지고 저럴 거란 걸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미스트에게 안겼다.
그러자 레이시를 품에 안은 채로 소파에 앉아 레이시가 들고 있던 종이를 건네받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행동에 투덜거리다 미스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스킬을 보자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종이로 향했다.
“예상대로 채찍질은 1레어도 1레벨인 채네요. 뭐, 이제부터 사용방법을 배우면 될 거예요.”
“으응. 네.”
“그리고 테이밍은 레어도가 올랐네요. 견습 테이밍이 아니라 그냥 테이밍. 미네르바의 덕분일 거예요.”
“그렇다. 그러니 여기에 안겨라.”
“어머, 그럼 종이가 잘 안 보일 건데요?”
“흥, 어차피 너라면 그 종이를 다 외웠을 테다.”
아까부터 레이시가 미스트에게 안겨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얌전히 있다가 레이시를 빼앗아 안아드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나중에 저택으로 돌아가면 안아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미네르바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레이시를 바라봤다.
하지만 저택에서 나올 때 내건 조건이 조건이었기에 미네르바는 다시 죽은 듯 조용히 레이시의 옆에 섰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를 보고 연신 사과하다가 다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의 끝까지는 레벨이 10이 됐네요. 레어도가 올라가지 않는 이상 이 스킬은 발전이 없겠네요.”
“……바, 밤일로 깨달음을 얻긴 싫어요…….”
“아하하. 그런가요?”
“부끄러우니까 넘겨요…….”
“그럼 연정의 야차인데……, 레벨이 4가 됐네요. 으음, 레어도가 높아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잘 안 느네요.”
“레어도가 높으면 스킬 레벨이 안 오르나요?”
“아무래도 요구하는 것들이 많죠. 그래도 레어도 5 정도면 그럭저럭 흔한 스킬인데…….”
“그거 미스트의 기준이죠?”
“아하하, 그럴지도요.”
자신에게 있어서 레어도 5 정도의 스킬은 흔한 편이다.
각 가문의 비전 무기술이 대략 레어도 5정도의 스킬이니까, 타인이 비전 무기술을 사용하는 걸 보고 파악하고 습득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습득한 스킬은 자신의 스킬들에 의해서 강제로 개발되어 레벨 10의, 오의까지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미스트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엘라의 기준으로 레이시를 바라봤다는 걸 깨닫고 레이시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사과할 필요는 없다며 당황해하며 손을 휘저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을 충분히 즐기다 다음 스케쥴을 떠올렸다.
“그럼 슬슬 경외의 야차 씨를 보러 갈까요?”
“네?”
“오늘 오후에 2시간 정도 시간을 비워뒀어요. 훈련을 받아보죠.”
“……아, 네!”
미스트가 말한 다음 스케쥴을 듣고는 바짝 긴장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레이시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는 왕궁 내에 있는 연병자에 갔다.
주변에는 기사들이 갑옷을 입고 훈련하며 큰 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레이시는 바짝 긴장한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레이시는 알고 있을까?
멧돼지를 으깰 정도의 각력이 있는 레이시가 여기에 있는 기사들 태반보다는 강하다는 걸.
미스트는 자신에게 있는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레이시를 힐끗 보다가 경외의 야차를 발견하고는 웃으면서 인사했다.
“하, 뭐야……, 벌써 왔어?”
“약속한 시각보다는 조금 일찍 나오는 게 예의라서요.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글쎄. 어떤 거 같아?”
“후후, 평안하게 지내신 것 같네요.”
“……넌 이게 평안하게 보이냐? 눈병 걸렸어?”
“……히끅.”
흉터가 가득한 구릿빛 피부에 회색의 머리카락.
한쪽 뿔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뿌리를 제외하면 썩둑 잘려있고 남은 한쪽 뿔도 레이시의 것과는 다르게 거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친 언동.
상처가 아프지도 않은지 팔뚝에 남은 덜 아문 상처를 보여주는 야차의 모습에 레이시는 딸꾹질하며 야차를 바라봤고 야차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씩 웃었다.
“아하, 너구나. 엘라의 새 메이드가”
“아하하, 귀엽죠? 이름은 레이시라고 해요.”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그것보다 레이시……, 라고 했지?”
“힉!? 네, 넷!?”
“우선 뛰어볼까?”
“네……?”
“연병장 10바퀴. 시간은 넉넉하게 이만큼 줄 테니까 빨리 뛰어 봐.”
싱긋 웃으면서 모래시계를 뒤집는 경외의 야차.
레이시는 그런 야차의 말에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안 뛰냐는 야차의 재촉에 다급하게 연병장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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