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왕궁 생활의 시작3
* * *
“크네요…….”
“왕궁 내에는 왕족만이 지내는데 넓이는 제 2 내벽의 넓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니까. 어쩔 수 없이 건물 하나하나가 다 크고 넓어.”
“……그렇구나. 그나저나 이 저택을 받은 건가요?”
“응, 들어가자.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다 빠져나갔고 이제 우리 넷이서 사는 거야. 이 집에서.”
“넷이서…….”
엘라와 함께 이제부터 자신이 살 저택에 도착한 레이시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처음 집을 얻었다고 말했을 때 레이시가 생각한 건 5~6명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저택이었다.
꽤 빈약한 상상이지만, 사실 그것도 아파트에서 살았었던 레이시가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레이시의 상상력을 상상 이상으로 빈약하다며 비웃듯 엘라가 얻어 온 집은 2층에 사람이 40명이 들어가도 여유로울 것만 같은 대저택이었다.
……이런 곳에서 4명이서만 지내면 조금 쓸쓸하지 않을까?
크기에 압도된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저택에 들어갔고 이번에는 저택 안에 있는 가구들을 보고 웃는 얼굴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하면 단숨에 천만 원은 금방 깨질 것만 같은 가구들.
세계가 다르니까 천만 하랑이려나…….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쭈뼛거리며 저택에 들어갔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난 가볼게.”
“네?”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해야 해서.”
“그런…….”
“후우……, 더 있으면 떨어지기 싫을 거 같으니까 가볼게.”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다가 자기 마음도 흔들리기 전에 자리를 뜨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를 배웅하다가 엘라가 말을 타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자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엘라가 간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일 때문에 가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릴 줄이야…….
레이시는 엘라가 사라진 곳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역시 엘라는 대화가 필요하다며 고개를 저으며 저택으로 돌아갔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얼굴에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공주님에 관한 일은 잊고 우선 저택을 탐험할까요?”
“탐험이요……?”
“구조를 파악해야 하거든요. 설계도는 있지만, 실제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엔 꽤 차이가 있거든요. 앞으로 일해야 하니까 눈에 익히러 가요.”
“아…….”
“공주님이 돌아오시면 완벽한 메이드가 되어서 놀래켜주자고요?”
“네!”
미스트의 말에 설계도를 보면서 집의 구조를 파악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집에 밀회를 위한 비밀 문이라거나 책장 뒤에 있는 숨겨진 무기고를 보고는 감탄하면서 집의 구조를 익히는데 힘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뒤에서 조언을 해주다가 저녁을 먹을 때가 되어가자 부엌으로 들어가 식재료를 확인했다.
엘라가 이 저택에서 살겠다고 말한 덕분인지 상등품의 식재료로 꽉 채워져 있는 냉장고.
미스트는 이 정도면 한 일주일은 버티겠다고 생각하면서 요리를 시작했고 저택은 금방 맛있는 향기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야영할 때 먹던 것도 맛있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맛있는 향기.
후각을 녹여버린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맛있는 향기에 레이시는 저택의 구조를 익히다 말고 아래로 내려왔다.
“후후, 자리에 앉으세요. 준비 다 됐어요.”
“에헤헤……, 혼자서 준비하게 해서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대신에 레이시가 내일 사냥개를 받아 오시겠어요?”
“사냥개요?”
“네, 국왕님이 5마리의 사냥개를 하사하신다고 했어요. 레이시가 받아오세요. 레이시의 안목을 알 수 있겠네요.”
“……저, 테이밍 레벨도 1에다가 레어도도 1인데요?”
“저번에 확인하고 안 했었잖아요. 미네르바를 테이밍 한 걸로 꽤 올랐을 거예요. 그리고 스킬과 관계 없는 레이시의 안목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미스트의 말에 바짝 긴장하는 레이시.
이제부터 교육을 받는다는 생각에 레이시는 미스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쿡쿡 웃었다.
하지만 미스트는 레이시를 달래주지는 않았다.
이제부터 레이시도 메이드니까 달래주는 건 일과가 끝난 후에 남는 시간에서만 달래줘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내일의 일정을 알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잠시 괜찮냐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첩을 들고왔다.
“죄송해요. 전부 기억할 자신이 없어서.”
“아뇨, 좋은 습관이네요. 그럼 계속 말할게요?”
“네.”
밥을 먹다말고 미스트의 지시를 필기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내일부터 꽤 빡세게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이내 각오를 다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 좀 일찍 잘게요. 내일 일이 많아서 좀 자야할 거 같아요.”
“네.”
새벽 4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스트의 말에 레이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자지 않으면 4시에 일어나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가볍게 씻은 다음 침대에 누웠고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를 가만히 보다가 레이시의 옆에 누웠다.
“으응?”
“주인은 같이 자는 거 싫나?”
“아뇨. 같이 자고 싶어요?”
“같이 움직여야 하니 같이 자고 싶다. ……주인이 늦게 일어나면 깨워주겠다.”
“아하하, 감사해요. 그럼 부탁할게요.”
자신만 도움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며 레이시를 끌어안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의외라는 듯 미네르바를 바라보다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네르바의 날개를 이불 삼아 잠에 빠졌다.
그리고 새벽 4시.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 일할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어디를 가나?”
“사육장이라는 곳으로 가요. 미스트가 큰 건물을 기준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줬으니까 금방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런가?”
“네.”
옷을 갈아입으면서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레이시.
우선 오늘은 사육장에서 사냥개를 다섯 마리 골라서 받아온 다음 개들을 위한 사육장을 치우고 말들에게 밥을 준다.
그리고 말의 털을 빗어준 다음 말의 편자를 확인하고 교체할 필요가 있다면 편자공을 부른다.
그것으로 오전의 일은 끝나니 점심을 먹고 개인 시간을 즐기다가 오후에 일을 새로 받고 움직이면 된다.
아마 경외의 야차라는 사람과 만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마지막으로 채찍을 챙겨 허리 뒤편에 고정한 다음 미네르바와 함께 사육장으로 움직였다.
“오늘 오기로 하신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메이드, 레이시님이십니까?”
“네! 헥, 헥…….”
“뛰어오셨군요.”
“네, 호, 혹시 지각했나요?”
“아뇨, 제때 오셨습니다.”
“휴우…….”
뭔가 비정상적으로 넓은 왕궁.
어제 몸으로 겪었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레이시는 지각하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따라 사육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들어가자 크게 소리치는 사냥개들.
레이시는 그런 사냥개들의 반응에 움찔 떨다가 이내 할아버지와 친구였던 멧돼지 사냥꾼들의 말을 떠올렸다.
분명 개라는 건 위계질서가 강해서 주인이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마음을 다잡고 개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점점 짖는 소리가 줄어드는 개들.
“……꽤 능숙하시군요. 설명을 듣기로는 테이밍 스킬을 얻은지 한 달도 안 됐다고 들었기에 제지할 준비를 했었는데.”
“아하하……. 저는 미네르바의 주인이니까요.”
“그렇군요, 하피를 통해……. 흐음, 여기에서 사냥개들을 골라서 가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빼놓은 사냥개들을 고르겠습니까?”
“……여기에서 고를게요.”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개들을 고르는 것까지 시험의 일환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사냥꾼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분명 사냥개들을 고를 때 모두가 강하고 공격성이 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었지…….
분명 전체를 조율할 경험이 많고 노련한 개가 한 마리, 적의 숨통을 끊을 강한 개가 한 마리, 모두의 뒤에서 전체를 살피는 체력이 좋은 개가 한 마리,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며 달릴 개가 한 마리…….
총이 있는 세상의 이야기니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팀을 짜는 건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레이시는 개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 애랑 저 애, 그리고 저 애랑 그 옆에 애랑 구석에서 혼자 있는 애로 괜찮을까요?”
“흐음……. 괜찮겠습니까? 저 구석의 애는 조금 거친 앱니다만.”
“네, 괜찮아요.”
레이시의 요청에 눈을 크게 뜨다가 의외로 레이시의 안목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육장의 직원.
마지막에 요청한 개가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팀을 만들었다.
사냥개들로 사냥을 해본 경험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한 걸까?
역시 엘라의 메이드라는 걸까?
직원은 엘라의 소문을 떠올리며 레이시를 바라보다가 이내 레이시가 요청한 개들에게 목줄을 채운 다음 레이시에게 데려다줬고 레이시는 한 마리씩 테이밍하기 시작했다.
꽤 순조롭게 되는 테이밍.
레이시는 순조로운 테이밍에 안심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냥감의 목숨을 끊을 사냥개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작게 으르렁거리다가 이내 레이시에게 달려드는 마지막 사냥개.
자신은 다른 사냥개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사냥개는 레이시의 목을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지 마라.”
하지만 그 순간 사냥개는 미네르바의 발에 짓밟혀 땅바닥에 꽂혔고 그 탓에 사냥개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미네르바가 힘을 주자 가볍게 살을 찢고 안으로 들어가는 미네르바의 발톱.
개는 처음 짓밟혔을 땐 미네르바의 행동에 분노에 가득 찬 소리를 내지르다가 미네르바의 발톱이 뼈까지 닿자 낑낑 울며 항복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자 아까부터 일부러 미네르바를 방치하던 레이시는 그제야 미네르바를 말렸다.
“이, 이제 괜찮아요.”
“……정말인가?”
“네, 괜찮아요. 후우…….”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속이 안 좋아졌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사냥개를 차갑게 내려보는 레이시.
사냥개는 개보다는 늑대에 가까우니 거칠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할아버지의 친구의 말을 떠올린 레이시는 바닥을 누운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개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린 다음 계약을 맺었다.
그렇게 다섯 마리의 개를 전부 테이밍한 레이시.
레이시는 사육장의 직원에게 붕대를 받아 개를 치료해준 다음 사냥개들을 개집에 넣고 마구간에 가서 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말의 편자를 살펴보는 건 처음이지만, 한 달 동안 말과 같이 다니며 친해진 덕분에 꽤 편하게 말의 편자를 확인한 레이시.
미스트가 가르쳐준 정보와 비교해보며 편자의 상태를 확인한 레이시는 편자공에게 보낼 편지를 쓴 다음 미스트에게 검수받았다.
“그러니까 발굽이 꽤 길어서 발굽의 손질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적었어요. 그리고 엘라의 말은 오른쪽의 편자가 꽤 많이 상했어요. 못이 빠질 것 같았어요. 그 부분도 갈아달라고 말했어요.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 될까요?”
“으음, 제대로 공주님의 이름과 호칭도 적었네요. 이 부분만 고치면 될 거 같아요.”
“네? 어느 부분이요?”
“레이시가 스스로를 낮춰 적은 곳이요. 엘라의 메이드인 레이시는 편자공보단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으니까 당당하게 요청하셔도 괜찮아요.”
“아하……. 어렵네요. 에헤헤…….”
“충분히 잘하셨어요. 이 호칭 부분도 제가 모르겠으면 존댓말로 적으면 된다고 말한 걸 지키다가 그러신 거고요. 익숙해질 때까지는 이렇게 편지를 쓰면 될 거예요. 오늘은 휴식하세요.”
“에? 오후의 일은요?”
“오늘 오시기로 한 경외의 야차가 일이 생겨서 내일 오신다고 했거든요.오늘은 휴식이에요.”
“으응……, 그럼 부탁할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네.”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안심하면서 방으로 돌아갔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뒤를 따라가다가 그대로 레이시를 껴안았다.
“앗? 으응? 참, 사냥개를 다룰 때 감사했어요. 인사가 늦었네요. 죄송해요.”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래도요. 고마웠어요.”
“그러면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다.”
“네……엣!?”
“후우, 흐웃…….”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레이시를 침대로 밀치고 뺨을 쓰다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를 보면서 불안함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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