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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32화 (32/542)

〈 32화 〉 왕궁 생활의 시작­1

* * *

“슬슬 일어나자, 레이시. 오늘은 씻고 왕궁에 가야 하니까.”

“……아으.”

“무슨 얼굴이야? 그거.”

“저도 참 학습 능력이 없다 싶어서요…….”

미스트와 했을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달았을 건데 왜 이렇게 해버린 걸까?

레이시는 힘도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보고 얼굴을 가리다가 이내 손가락을 펼쳐서 사이로 엘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돌아온 엘라의 얼굴.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얼굴에 안심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손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무리.”

“아하핫!”

“웃으니까 말해두겠는데, 다리에 이렇게 힘 풀린 거 엘라 때문이거든요? 허벅지 안쪽에 이거 봐요.”

“응, 내 이빨 자국이랑 내가 새긴 키스마크네.”

“……이게 결정타였거든요?”

“응, 여기를 깨물었을 때 레이시가 내 얼굴에 성대하게…….”

“우와아악! 그딴 거 말하지 마요!”

“아하핫!”

농담과 함께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욕실로 들어가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에게 대체 왜 그런 농담을 하는 거냐며 이마를 부여잡다가 엘라의 품 안에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붙어 있으니 부끄러웠지만, 아무래도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미끄러질지도 모르고 엘라도 놓아주지 않아서 떨어지는 건 무리.

레이시는 그런 현실에 한숨을 내쉬다가 몸을 전부 씻고 엘라에게 안겨 얌전히 엘라가 씻을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은 왕궁에 갈 거야.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내가 옆에 있을 거고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은 내가 알려줄게.”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요?”

“국왕에게 갈 거거든.”

“갑자기 난이도 너무 올라가잖아요.”

“나도 공주인데?”

“……엘라는 엘라니까요. 그것보다 그러고서 공주로 생각하길 바라는 건 무리 아니에요?”

“왕궁 안에서는 나도 공주처럼 있는데?”

“거짓말.”

“아하하, 진짜야. 뭣하면 내기라도 할까? 레이시가 이기면 이번 일 끝내고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레이시와 한 달 내내 있어줄게.”

“엘라가 이기면요?”

“그러네……, 일 끝나고 돌아왔을 때 또 목줄 채워도 돼?”

“……으으으.”

그런 거라면 딱히 내기로 하지 않아도 해줄 건데…….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레이시는 엘라의 내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엘라를 끌어안았다.

“좋아요, 내기니까 무르기 없기에요?”

“그래.”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이미 자신이 이겼다는 듯 엘라에게 안겨 의기양양한 얼굴을 했다.

방금 했던 이상한 생각은 둘째치고 이런 내기는 자기가 대답만 잘하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종류의 내기.

아무리 엘라가 공주님 같아도 우기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엘라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배시시 웃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미소에 똑같이 웃으며 레이시를 마냥 귀엽게 바라봤다.

아마 어떻게든 자기를 공주라고 인정하지 않을 셈이겠지.

어떻게 이렇게 읽기가 쉬운 성격일까?

물론 그런 게 귀여운 거지만…….

엘라는 자신의 품에서 벌써 이겼다는 듯 구는 레이시를 보고 킥킥 웃다가 오늘은 힘 좀 써서 꾸며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레이시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옷을 입고 나온 두 사람.

두 사람이 여관에서 나오자 마차가 나와 두 사람을 기다렸고 레이시는 그 마차를 보고는 엘라를 바라봤다.

“타, 마중 나온 마차니까.”

“에, 에에……, 네.”

레이시는 마차 주변에 있는 기사들을 보고 움찔 떨었지만, 엘라의 말에 조심스럽게 마차에 다가갔고 이내 기사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후다닥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은 겁을 먹은 레이시를 반기는 건 침대보다 부드러운 소파.

레이시는 엉덩이에 닿는 감촉에 눈을 깜빡이다가 소파를 손으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다가 킥킥 웃으며 마부에게 출발해도 좋다고 말했다.

“참, 레이시에게 옷을 준비해줬으면 좋겠는데. 치마보단 바지가 좋고 3피스 슈트로. 메이드보다는 집사들이 입는 형식의 옷으로 해주고 채찍도 준비해줘.”

“네, 알겠습니다.”

“레이시는 왕궁으로 가면 다른 메이드들을 따라가서 옷을 갈아입어. 자, 이거. 내 문장이 있는 목걸이니까 이렇게 하고 있어.”

“에? 엘라는요?”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문장이나 다름없으니까 괜찮아. 혼자서 준비 잘하고 올 수 있지?”

“어, 어린애가 아니니까 그런 취급은 그만두세요.”

“어린애 취급이 아니야, 애인 취급이지. 왕궁에 온 적도 없는 애인이 혼자서 왕궁을 돌아다녀야 하는데 걱정을 안 할 리가 없잖아.”

“……으으으.”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고 앓는 소리를 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킥킥 웃다가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춘 다음에 레이시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아직 붉은색 멍이 들어있는 레이시의 목덜미.

엘라는 레이시의 목을 쓰다듬다가 그곳을 손끝으로 간질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가락에 집중하다가 조심스럽게 엘라를 밀어냈다.

“부, 부끄러우니까 만지지 마세요.”

“왜? 새겨줄 때 떠올라?”

“…….”

“하아아……, 마차 안에서 조금만 더 할까?”

“미쳤어요……?”

“아, 진심으로 경멸하는 표정이네. 농담이야.”

“적어도 아무도 없는 마차로 해주라고요…….”

“아, 그 부분이 문제였어?”

“다른 부분도 문제지만, 그 부분은 엘라가 계속 요구할 거 같아서 포기하기로 했어요.”

“아하핫, 그래? 그럼 다음에는 그렇게 해볼까?”

“……젠장.”

바보 같은 짓을 한 거 같다.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마차의 창문으로 밖을 쳐다봤다.

그러자 도시 안에 성벽이 있는 걸 보게 되었고 레이시는 눈을 찌푸리다 엘라를 쳐다봤다.

“왜 성벽 안에 또 성벽이 있는 거예요?”

“응? 이거 중벽이야. 앞으로 한 곳 더 가야 해.”

“네?”

“저건 외벽, 이건 중벽. 그리고 제 1 내벽과 제 2 내벽이 있는데 우리는 제 2 내벽까지 갈거야.”

“성벽이 하나가 아니었어요?”

“수도는 크기 자체가 다르니까 말이야.”

“그래도 그렇죠, 이건 좀……, 무서울 정도인데요?”

“아하하, 그런 소감은 또 처음이네. 멋지다거나 중후하다거나 안심이 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야.”

“그야 그렇겠죠.”

대체 어떻게 20m에서 30m나 되는 성벽을 여러 겹으로 쌓은 걸까?

레이시는 이해가 안 되는 풍경에 눈을 깜빡이다 엘라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자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렸다.

신기한 걸 봤으니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건데 왜 이렇게 놀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엘라가 손을 펼치자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며 엘라에게 안겼고 엘라가 자신의 등을 토닥이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엘라를 꽉 끌어안았다.

낮잠을 즐겨 자는 편은 아니지만, 피로가 몰려오자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져 눈이 저절로 감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레이시는 엘라의 품에서 완전히 잠에 빠졌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작게 웃으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다 입을 열었다.

“조금 천천히 가자.”

“네? 하지만 국왕님과 만나는 시간이 앞으로 3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만…….”

“그래서?”

“네?”

“내가 알현을 신청했나? 아니지? 그 망할 귀족들이 내게 뭔 소리를 하려고 아버지를 통해서 나를 불러낸 것뿐이야. 내가 귀족들의 눈치까지 봐가며 휴식을 취해야 하는 사람일까? 응? 이번에만 하더라도 도시를 빙빙 돌면서 도적집단과 탈영병 집단을 처리했는데?”

“…….”

“어떻게 할래? 귀족을 따를 거야? 왕가를 따를 거야?”

“……돌아가겠습니다. 다만 저도 30분 정도가 한계입니다.”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해.”

레이시를 볼 때와는 다르게 차갑게 식어버리는 엘라의 눈빛.

엘라는 마부에게 귀족의 편이냐 왕가의 편이냐 몰아붙이며 다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압박했고 마부는 그런 엘라의 눈빛에 흠칫 떨었다.

말의 고삐를 잡고 있어 고개를 뒤로 돌리지는 못하지만, 뒤로 돌리는 순간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드는 압박감.

어쩔 수 없이 마부는 30분 정도 늦게 왕궁에 들어가겠다 말했고 그 순간 언제 압박감이 있었냐는 듯 주변은 다시 부드러운 공기로 가득 찼다.

그러자 마부의 머릿속에는 저절로 엘라에 대한 소문이 스쳐지나갔다.

불과 다섯 살 때 귀족들의 습격을 받았지만, 역으로 그들 모두를 죽이고, 10살 무렵에는 캘러미티라는 희대의 암살자 가문을 멸문시켜버린 희대의 흑마법사.

남들을 다스리는 자로서의 의무감을 가지고 일반 백성들이나 귀족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고, 차기 국왕은 자신보다는 다른 남매들이 더 어울린다며 스스로 태자 자리에서 내려올 정도로 왕족으로서의 의식만은 완벽한 공주.

하지만 그러한 것들의 반동 때문인지 여자임에도 여자를 사랑하며, 그마저도 평범한 사랑이 아닌 일그러진 형태의 사랑하지 못하게 된 여자.

그런 것들이 떠오른 마부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일부러 말을 더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그러자 엘라는 원하는 대로 레이시를 충분히 재운 다음 왕궁에 도착했고 엘라는 사람들이 몰려오자 레이시를 깨웠다.

“레이시, 일어나.”

“흐베……. 저, 잤어요?”

“그래, 잤어. 침까지 흘리며.”

“흐에!?”

“후후, 피곤했어? 이렇게 세상 모르게 자고 말이야.”

“으, 으으…… 죄송해요.”

“뭐, 어쩔 수 없지. 레이시가 너무 귀여워서 밤을 새우면서 했었으니까.”

“……그거는 제 잘못 아니잖아요.”

“흐응? 좋다고 매달린 사람은 누구였더라?”

“윽……!”

“킥킥, 뭐, 그만 놀고 내려가자. 좀 늦었으니까.”

“네에…….”

레이시가 창문 밖을 보지 못하게 시선을 잡아끌다가 문을 여는 엘라.

엘라는 먼저 마차에서 내려와서 레이시에게 손을 내밀었고 레이시는 엘라가 묘하게 자신을 배려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밖을 쳐다봤다.

“어버버…….”

“괜찮아. 신경 끄고 따라와. 중간까지는 같이 갈게.”

“네, 네에…….”

여관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인사했을 때 이후로 사람들이 이러는 거에 대해서 안 놀라려고 했는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엘라의 손을 잡고 따라갔고 엘라는 어린애처럼 변한 레이시의 모습에 새롭다며 킥킥 웃다가 미스트를 찾았다.

“미스트!”

“네, 공주님.”

“미네르바는?”

“제가 머무는 방에 기다리게 했습니다. 나중에 레이시 양과 함께 알현실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레이시, 레이시는 3층에 d의 14번 방에 들어가. 거기에서 미네르바랑 같이 옷을 입고 나와, 나는 미스트랑 같이 옷 갈아입고 올게. 미스트, 사람들은 미리 불러뒀지?”

“네, 레이시 양을 꾸밀 분들과 공주님을 도울 분들까지 모두 준비해뒀습니다.”

“좋아. 그럼 레이시 30분 뒤에 만나자. 내기, 잊지 않았겠지?”

“아! 네! 에헤헤…….”

벌써 자신이 이겼다는 듯 배시시 웃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 귀엽다고 웃다가 미스트가 궁금해하자 킥킥 웃으며 레이시와의 내기를 말해주었다.

“힘을 줘야겠네요.”

“흠~ 싫지만 말이야, 오늘은 힘 좀 써줬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공주님. 맡겨만 주세요.”

엘라의 말에 환하게 웃으면서 대신 오늘은 힘을 내달라고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사악하게 웃기 시작했고 미스트도 부업할 때의 얼굴이 되어 사악하게 웃었다.

“엣취!”

“……아픈가? 주인.”

“아, 괜찮아요. 간지러워서 그랬어요. 그나저나 하루 외박했는데 미리 말 못해줘서 미안해요. 미네르바.”

“나는 테이밍 된 하피니까 명령으로 괜찮다.”

“아하하……, 어떻게 그래요. 죄송해요.”

“…….”

“그나저나 미네르바의 날개는 따뜻하네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게요.”

“알았다.”

엘라와 미스트가 어디서부터 꾸미면 좋을지 의논하고 있을 때, 로션을 바르고 빗질만 한 상태로 전부 다 꾸몄다며 미네르바와 이야기를 나누는 레이시.

레이시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은 상상도 못 한 채로 미네르바의 날개에 안겨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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