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이세계라는 실감4
* * *
“주인.”
“…….”
머테리아 후작이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있는 방으로 갈 때,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몸을 흔들어봤다.
하지만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아무리 흔들어도 잠에서 깨질 않았다.
야영 때 조금만 뒤척거려도 좁게 해서 미안하다며 잠에서 깨어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가 무언가 약을 먹었다고 확신하며 이런 저런 가구를 들어 문을 막고 창문을 열었다.
그런 다음 레이시를 이불을 돌돌 마는 미네르바.
창문이 큰 걸 확인한 미네르바는 불행 중 다행이라며 천천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자신이 우선시해야 하는 건 뭘까?
일단 적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최소한 여기가 숲 안이라면 하나씩 떨어트려 죽이겠지만,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면…….
“쉐이프 시프트.”
도망친다.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미네르바는 커다란 부엉이로 바뀐 다음 레이시의 몸을 잡고 그대로 창문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문이 박살나며 들어오는 머테리아 후작과 기사들.
미네르바는 그런 후작과 기사들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날아갔고 머테리아 후작은 눈을 가늘게 뜨다가 지팡이를 미네르바에게 겨눴다.
“흥. 기껏해야 하피 주제에. 디스펠!”
갑자기 부엉이가 날아가서 놀라긴 했지만, 원래는 하피였으니 변신 마법이라도 사용한 거겠지.
빠르게 상황판단을 끝낸 머테리아는 그대로 미네르바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부엉이의 형태가 크게 흔들리며 공중에서 비틀거리는 미네르바.
머테리아의 기사들은 재빠르게 창문에서 뛰어내려서 미네르바가 떨어지면 제압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허공에서 변신을 풀고 그대로 레이시를 안고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머테리아는 꽤 한다며 피식 비웃더니 미네르바에게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머테리아의 마법을 피하며 엘라와 미스트에 대한 걸 생각했다.
희망적으로 생각하면 레이시가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으니 금방 돌아올 거라고 믿고 시간을 벌면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으려나?
미네르바는 그렇게 생각하며 좀 더 높은 곳으로 날았고 레이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으, 으윽…….”
“일어났나? 주인.”
“……에? 하, 하늘!?”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 인간들이 주인을 공격하려고 했다. 지금은 도주하고 있다.”
“에? 에엑!?”
미네르바의 말에 당황하면서도 일단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는 레이시.
레이시는 바닥을 내려보다가 기사들이 무기를 빼들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미네르바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저 사람들은 적의를 보내고 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연정의 야차가 보냈던 경고는 저들의 저 행동을 의미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침을 삼키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명령을 내려달라는 듯 쳐다봤다.
“도, 도망쳐요. 엘라랑 미스트가 있는 곳까지 도망쳐요!”
“알았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도망치자.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곧바로 도망치자고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 쪽 방향으로 도망쳐서 두 사람과 합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늘려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았고 미네르바는 날개에 마력을 모으더니 그대로 날갯짓했다.
그러자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처음 느껴보는 속도감에 덜덜 떨면서 아래로 내려다봤고 이내 크게 소리쳤다.
“화, 화살!”
“…….”
레이시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을 때 보인 건 수많은 화살들.
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화살을 본 미네르바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그대로 아래로 수직으로 하강하며 화살들을 피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꽤 많이 스치고 몇몇 개는 그대로 직격해버린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기사들이 화살을 장전할 때 그대로 골목길에 숨어 자신의 허벅지에 꽂힌 화살을 부서트린 다음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레이시를 살폈다.
“읍…… 으윽! 아, 아파…… 아파아…….”
어깨죽지에 화살이 꽂혀있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 화살을 잡더니 레이시에게 속삭였다.
“주인, 입 꽉 물어라.”
“윽, 으븝……!”
“화살을 뽑는다. 도망치려면 필요한 일이다.”
미네르바의 말에 당황하다가 입술을 꽉 깨무는 레이시.
그러자 미네르바는 단숨에 레이시의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아아아악!”
“저기다!”
“힉!?”
분명 아플 거라고,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각오를 다졌는데도 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트럭에 치였을 때와 다르게 고통이 지독하게 느껴지자 레이시는 발을 버둥거리다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그런 레이시의 울음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레이시의 울음소리를 듣고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미네르바와 레이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숨을 참고 덜덜 떠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끌어안고 다시 날아올랐고 레이시는 땅에 보이는 기사들의 모습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어째서?
왜?
레이시는 갑자기 일어난 사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네르바를 꽉 끌어안았고 미네르바는 기사들을 피하는 동시에 성벽을 쳐다봤다.
다행히 궁수는 배치되지 않은 성벽.
미네르바는 거기까지 파악하자 성벽 위에 착지한 다음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그대로 다시 비상했다.
공기를 찢어버리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성벽 위에서 사라지는 미네르바.
기사들은 미네르바와 레이시가 엘라와 미스트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치자 당황하며 머테리아를 바라봤고 머테리아는 귀찮게 한다고 혀를 차며 왕자가 지원해준 암살자를 불렀다.
“엘라를 제압할 수 있는 거겠지?”
“주의만 제대로 끌어주신다면 마법사 살해의 단검으로 찌르겠습니다.”
“흥, 전투로 외모가 상하는 건 싫으니 빨리 쫓는다! 저쪽은 부상자가 있으니 우리가 더 빠르다! 사냥개를 풀어라!”
“알겠습니다!”
머테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라타는 기사들.
레이시나 미네르바와 다르게 숲의 지리에 대해 숙지하고 있는 기사들은 여유와 확신으로 가득 찬 채로 사냥개들을 데리고 말을 몰았다.
피를 흘리고 있는 사냥감이다.
쉽게 찾을 수 있겠지.
그리고 조금 상할지는 모르겠지만, 머테리아가 레이시를 안는 것에 질려버린다면 자신에게도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기사들은 이런 즐거운 일도 없다며 사냥개 전용 피리를 불면서 숲으로 들어갔다.
“…….”
“아, 아파…… 아파아아……. 어, 어째서!? 왜!?”
그리고 그런 숲 안에서 레이시는 벌벌 떨고 있었다.
밥을 먹다가 정신을 잃었다 싶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들고 화살을 쐈다.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믿기 싫은 현실에 레이시는 눈물을 삼키며 덜덜 떨었고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를 날개로 품어주며 토닥여주었다.
“상처, 묶겠다.”
“흐끅, 아, 아픈 거 싫어…….”
“묶지 않으면 더 아프다.”
“으끅……. 흐끅…….”
미네르바의 말에 덜덜 떨면서 자신의 어깨를 손으로 만지는 레이시.
그러자 레이시의 손에는 피가 묻어났고 레이시는 끈적거리는 피에 이를 다다닥 떨었다.
이거 꿈이 아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쳐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한국 같은 곳이 아니라 경찰 같은 게 올리도 없다.
아니, 상대방이 경찰 비슷한 일을 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자신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경찰에게 노려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자신이 이세계에 왔다는 걸 실감하며 울먹거리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어깨를 묶어준 다음 귀를 쫑긋 세웠다.
“……개들이다. 주인. 도망친다.”
“힉……! 시, 싫어……, 싫어…….”
미네르바의 말에 들리는 컹컹거리는 소리.
레이시는 그 소리에 실금하면서 바들바들 떨었고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자신을 봉인에서 풀어주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준다는 걸 느낄 수 있는, 마음씨가 착한 좋은 주인.
하지만 전투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그런 주인을 데리고 어떻게 도망갈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강에 가서 몸을 적셔 냄새를 지울까?
그러면 자신은 괜찮지만, 주인은 과다출혈과 저체온증에 걸린다.
개들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후속 추격은 뿌리치지 못할 거고 어쩌면 그 두 증상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각.
자신이 싸우고 주인 혼자 도망치는 건?
……숲에 추격자가 몇 명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하는 건 무리다.
무엇보다 지금 주인의 정신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
그런 상황에서 혼자 도망치라고 한다면 도망치다 말고 정신이 완전히 망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방안도 기각.
그렇다면 주인의 옷을 벗겨 다른 곳에 묶어둔 다음에 날아다니며 도망칠까?
마찬가지로 저체온증은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소변이 묻은 바지의 냄새가 피냄새보다 더 강할 테니 속일 수 있을 것이다.
속이지 못하더라도 두 방향으로 추격자를 나눌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정신을 못 차리는 레이시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나무에 묶더니 그대로 레이시를 껴안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무 사이를 빠르게 비행하며 도망치는 미네르바.
한참을 도망치던 미네르바는 자신의 품 안에 있던 레이시의 말수가 줄어들자 눈을 찌푸리며 동굴 안으로 도망쳤다.
……사냥개가 있는 상태에서는 위험한 행동이지만, 주인의 몸상태를 살피는 게 먼저다.
합의 하에 이루어진 테이밍의 효과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동굴 안에서 레이시의 몸상태를 살펴봤고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새하얗게 질린 입술에 한껏 느려진 반응, 날개로 감싸주고 있음에도 다다닥 떨리는 이빨까지.
과다출혈의 초기 증상.
아무래도 화살을 잘못 맞은 모양이라 미네르바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이내 사냥개의 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입술을 꽉 깨물고 동굴 입구를 바위로 막았다.
이런 운에 맡긴 행동을 하다니…….
미네르바는 자신의 행동이 퍽이나 웃겨서 헛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기사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이끼를 뜯어 레이시를 숨긴 다음 전투의 준비를 했다.
입구가 열리는 순간 그대로 날아가 죽일 것이다.
레이시를 최대한 숨겨야 하니 머테리아라고 불린 사람을 어떻게든 잡아채 멀리 떨어진다.
그렇게 하면 레이시가 살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심장이 크게 뛰는 걸 느끼며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이내 입구가 열리자 크게 포효하며 앞으로 날아갔다.
“아이 오브 토네이도!”
동굴의 벽을 거칠게 긁어가며 날아가는 미네르바.
먼저 투입된 사냥개들은 그대로 풍압과 벽 사이에서 짓눌려져 편육이 되었고 미네르바는 동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화살을 보고는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그러자 남아있던 마력들이 바람처럼 휘날리며 화살을 쳐냈고 미네르바는 곧바로 기사와 전투를 시작했다.
혼자서 수십 명을 상대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싸우는 미네르바.
하지만 레이시를 지키면서 싸워야 하며, 그 때문에 높이 날 수 없다는 제약 때문인지 미네르바는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내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평범한 하피가 아니군. 큭…… 테이밍 되지 않았다면 전멸 당했겠어! 아하하핫! 주인의 명령이 없다면 적을 죽일 수도 없다니! 참으로 불쌍한 녀석이로군!”
“…….”
사냥개들 같은 경우에는 레이시와 미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죽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되도록 죽이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나눴기에 죽이지 않던 미네르바.
하지만 이대로라면 레이시를 지키지 못한다는 생각에 미네르바는 사람을 죽이자고 생각한 다음 자신에게 달려오는 기사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피가 거칠게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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