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애완동물 get!1
* * *
“헤에에, 전보다 큰 도시네요.”
“나중에 수도에 가면 이것보다 몇 배는 높은 성벽도 보게 될 거야.”
“이것보다 더 커요?”
“응. 수도의 성벽은 성벽 위를 마차로 달릴 수도 있어.”
“……마차가요?”
“응, 대포나 투석기, 발리스타 같은 공성 병기를 옮겨야 하니까. 그 외에도 비룡이 날 수 있게 보강된 도로라던가, 그런 것도 있고. 아, 성벽 위에 병사들을 위한 식당도 있어. 매번 음식을 올려보내면 귀찮고 비효율적이고.”
“그 정도면 그냥 성벽에 도시가 있는 거네요.”
“뭐, 그렇겠네. 아하하하.”
묘지에서의 일을 뒤로 하고 새로운 도시로 간 레이시 일행.
레이시는 전보다 높고 두꺼운 성벽에 감탄하다가 말을 타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고 전과 다른 도시 안의 풍경에 감탄했다.
전에 있었던 도시가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면 지금 여기에 있는 이 도시는 판타지 만화 속의 중세 도시 같은 느낌.
미스트 같은 수인도 있고 드워프도, 엘프도 있으며 판타지스러운 동물들도 많은 도시 풍경.
그러고 보니 엘라가 이 도시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었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엘라.”
“응? 뭐가?”
“저번에 이 도시에는 애완동물을 많이 판다고 했었잖아요. 그거 왜 그런 거예요?”
“아, 그거? 이 도시를 세운 초대 영주가 전설적인 테이머였거든. 그래서 테이머들이 모였고 이런 시장 환경이 만들어진 거지.”
“그렇구나.”
“그래서, 어떤 종류의 애완동물을 가질래? 개나 고양이? 사냥개라면 수도에 잔뜩 있으니까 고양이나 다른 동물이 괜찮을 거 같은데.”
“3개월 뒤에 헤어진다면서요?”
“잘못했다니까.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헤어질 때까지요?”
“하아…… 몇 년간 우려 먹히겠네.”
“몇 년이나 있을 거예요?”
“흐으응…….”
“……말 안 할게요.”
레이시를 가만히 바라보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잘못이니 따로 뭐라고 할 수도 없네.
그런 생각에 엘라는 머리를 거칠게 긁다가 미스트에게 눈짓했고 미스트는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급스러워 보이는 여관을 가리킨 다음에 손가락을 두 개 펼쳤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예약 부탁할게. 나는 레이시랑 도시 좀 돌아다닐게.”
“네. 천천히 둘러보시고 오세요.”
“들었지?”
“에, 에헷…….”
엘라의 말에 조심스럽게 엘라의 눈치를 보는 레이시.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놀렸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었기에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키득 웃으면서 레이시를 놀리듯 말을 이어갔다.
“아까 너무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난 딱히 신경 안 쓰니까 편하게 있어. 애초에 내 잘못이고.”
“……에, 으음, 미안했어요.”
“흐흥, 그럼 데이트 해줘.”
“네에.”
말을 길게 늘이면서 엘라의 말에 대답하는 레이시.
엘라는 그게 레이시 나름의 애교라는 걸 눈치채고는 다시 웃음을 터트리다가 레이시와 함께 기초적인 교육이 끝난 동물들을 파는 곳으로 갔다.
“시장이 엄청나게 크네요.”
전생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시장.
한국의 5일 장 같은 곳이 다른 나라의 전통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기준이 낮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끝이 안 보이는 시장에 레이시는 한참을 멍하니 서서 시장을 구경했다.
말과 사냥개는 기본이고 대형 고양잇과 동물, 맹금류에 곰, 심지어는 판타지 게임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동물까지…….
그런 것들을 구경하자 레이시는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자신이 판타지 세계관에 왔다는 걸 실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동물은 있어?”
“네?”
“아, 구경 중? 좀 더 구경해.”
“그, 죄송해요.”
“이런 거로 미안할 건 없지. 그래서, 신기해?”
“네, 신기하네요. 저 뱀은 어떻게 하늘을 날고 있는 걸까요? 뱀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물이잖아요? 날갯짓도 안 하잖아요.”
“아, 저거? 날개 아냐. 굳이 따지자면 피뢰침 같은 거야.”
“네?”
“저 날개로 바람의 정령이 내뿜는 마력을 모으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모은 마력으로 부유하듯 날고 있는 거고.”
“헤에에…….”
엘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감탄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신비한 동물들에게 정신이 팔려서인지 엘라가 깍지를 끼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동물들을 구경했다.
퍽 귀여운 모습.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웃다가 레이시의 손가락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계속해서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했다.
“와아…….”
그렇게 한 시간쯤 시장을 돌아다녔을 때, 레이시는 마음에 드는 동물을 발견했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레이시가 바라보던 건 검은 깃털이 인상적인 대형 부엉이.
날개를 펼치지 않았는데도 어지간한 성인보다 큰 키에 붉은색과 황금색이 섞인 눈동자를 하고 있던 부엉이는 레이시가 자신을 쳐다보자 고개를 돌려 레이시를 바라봤다.
부엉이는 처음에는 가만히 눈을 마주치다가 이내 머리를 시계방향으로 180도 회전시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그런 부엉이의 행동에 놀라며 움찔 떨다가 꺄르륵 웃었다.
“아하하! 엘라, 봤어요?”
“응, 봤어. ……멋지네. 그러고 보니까 매는 가족 중에 키우는 사람이 있는데 부엉이는 모르겠네. 키워볼까?”
“……네? 저 부엉이를요?”
“응. 한 번 시도해볼래? 그동안 말에게 테이밍하면서 테이밍 스킬의 레벨은 올랐지?”
레어도는 아직 1인 그대로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겠지만, 스킬의 레벨 자체는 올랐을 테니 길들이는 시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에게 시도만 해도 괜찮으니 한번 해보자고 말하며 상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상인은 엘라의 말에 정말로 시도할 생각이냐며 떨떠름한 얼굴을 했고 엘라는 그런 상인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해치기라도 해?”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무척 얌전한 아이입니다. 다만, 저 부엉이, 테이머로 꽤 유명한 모험가가 왔을 때도 테이밍 되지 않았습니다.”
“으응? 계약 조건이 까다롭다거나 그래?”
“아뇨,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 게 자신을 풀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족쇄를 풀어줘도 움직이지 않더군요.”
“……으으응?”
상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라.
조건이 까다로운 것도 아니고, 공격성이 강한 것도 아닌데 왜 실패하는 걸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엘라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일단 위험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좋다며 레이시에게 한 번 테이밍을 시도해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쭈뼛거리면서 상인을 바라보는 레이시.
상인은 엘라와 레이시 덕분에 홍보가 잘 되고 있으니 마음대로 만져봐도 좋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상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사육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레이시가 들어가자 고개를 아래로 숙이면서 눈을 마주치는 부엉이.
레이시는 생각보다 커다란 부엉이의 눈에 움찔 떨다가 조심스럽게 목덜미를 쓰다듬다가 이마를 맞대고 테이밍을 사용했다.
“후우우…… 테이밍…….”
천천히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드는 레이시.
말과 연결할 때와 다른 건 뭔가 막 같은 것에 막힌 듯 좀 더 막연하게 연결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
레이시는 그런 감각에 눈을 깜빡거리다 부엉이를 쳐다봤고 부엉이는 그런 레이시를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러자 레이시는 왠지 모르게 부엉이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어어…….”
“어때? 할 수 있을 거 같아?”
“으, 으음…… 지금은 무리에요.”
“그래? 수고했어.”
부엉이에게서 떨어지면서 부엉이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불가능하다는 건 조건에 따라서는 나중에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이상한 건 이제 막 스킬을 4개, 그것도 하나는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거고 나머지 3개는 랭크 업도 겪지 못한 기초 스킬을 가지고 있는 레이시가 가능한 걸 어째서 다른 사람들이 못했던 걸까?
레이시이기에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엘라는 그렇게 생각하다 레이시가 사육장에서 나오자 수고했다며 볼에 입을 맞춰준 다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일단 다음에 다시 한번 더 테이밍 시도해볼래?”
“어…… 네. 그럴게요.”
“그렇다고 하니 며칠만 테이밍 시도를 막아줬으면 하는데, 이 정도면 막아줄 수 있을까?”
“……! 네! 그렇게 합죠!”
레이시의 대답에 상인에게 돈을 쥐어주며 예약하는 엘라.
엘라는 일주일 뒤에 다시 시도하겠다고 말한 다음 시장 입구에 맡겨둔 말을 타고 미스트에게 예약을 부탁했던 여관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왜 지금은 무리라고 말한 거야?”
“네? 아…… 부엉이요?”
“그래. 지금 이루어주기 힘든 일을 부탁했나?”
“그러니까, 엘라와 미스트가 도와줘야만 할 것 같아서요.”
“으응?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으응,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데 말에게 테이밍을 걸었을 때와 다른 느낌이었어요. 말과 연결되었을 땐 곧바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는데 부엉이와 연결했을 땐 뭔가…… 배리어에 감싸진 것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저주 같은 게 걸린 게 아닐까……해서요. 제 착각일 수도 있지만요.”
“흐음…….”
레이시의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말을 몇 번 곱씹듯 중얼거리다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대형 동물을 길들일 수 있을 정도로 실력과 경험을 쌓은 테이머라면 레이시가 느꼈던 그 감각을 동물이 거부하고 있던 것으로 느낄 것이다.
그러니 족쇄를 풀어줘도 테이머를 거부하고 계약하지 않는 것처럼 느꼈겠지.
레이시가 초보자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걸까…….
엘라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이시를 칭찬하면서 만약 정말 저주에 걸렸다면 레이시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정말요? 고마워요.”
“뭘, 그나저나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좋겠는데.”
“네? 뭔데요?”
“그동안 캠핑하면서 꽤 참았거든.”
“…….”
“왜 그런 얼굴이야? 난 한창 때의 아가씨라구!”
한창 때…….
여러 의미가 담긴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엘라의 시선을 피했고 엘라는 자신이 얼마나 참았는지 알고 있냐며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기에 오기 전 도시에서 참았고, 야영하면서 몸을 만지려던 걸 참았고, 키스하고 싶은 것도 전부 참았다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대체 뭘 말하는 거냐며 엘라를 노려봤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괜찮아?”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으으.”
“뭐 어때서 그래? 레이시를 안고 싶어. 레이시가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고 레이시가 귀여우니까, 내 곁에 두고 계속해서 몸을 탐하고 싶어.”
“…….”
엘라의 말에 귀까지 새빨갛게 된 채 엘라를 노려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부끄러워하는 거냐며 능글맞게 웃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고개를 홱 돌리고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끊어버렸다.
이대로 대화를 계속하면 엘라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말 테니까 대화를 안 해야지.
그런 애 같은 해결방법에 엘라는 겨우 생각해낸 게 그거냐며 꺄르륵 웃다가 여관에 도착했다며 말에서 내렸다.
“말은 묶고 들어와.”
“네.”
여기까지 무사히 왔으니까 안심이네.
설마 미스트가 있는 곳에서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레이시는 엘라의 명령대로 말을 묶고 여관에 들어갔다.
그러자 허리를 90도로 숙인 직원이 레이시를 반겼고 레이시는 그런 직원의 인사에 어색하게 웃다가 직원이 알려준 방까지 올라갔다.
직원이 알려준 방은 또 최상층.
레이시는 엘라가 높은 곳을 좋아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방문에 노크한 다음 방에 들어갔다.
“들어갈게요.”
“그래.”
엘라의 대답에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레이시.
그와 동시에 레이시의 목에는 목줄이,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졌다.
“……에?”
“그럼 아까 말한 대로 안아도 되지?”
“잠……!”
당황한 레이시가 반응하기 전에 침대에 레이시를 밀쳐두고 그대로 레이시의 위에 올라타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목에 채운 목줄에 그림자로 긴 끈을 연결한 다음 그대로 레이시의 입술을 훔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