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이것이 스킬이다![희망편]1
* * *
“아하하…… 아직 화나셨어요?”
“으그그그.”
여관에서 뒤처리를 하고도 20분 정도 쉬고 난 다음 밖으로 나온 레이시와 미스트.
레이시는 허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건지 미스트를 끌어안고 절뚝거리며 걸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둘러 부축해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는 레이시.
마치 고양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하악질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기에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아직 화가 덜 풀렸냐고 물어보며 남은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마지막에 달래주다가 레이시가 깨물어 흔적이 남아있는 가슴골.
레이시는 미스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살피다 몰래 셔츠의 단추를 풀어 레이시의 흔적이 남은 가슴골을 보여주자 당황하며 옷을 가려주다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투덜거렸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는데 화 안 날 거 같아요?”
“죄송해요. 조금 흥분해서.”
“아직도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아…….”
몸은 스킬 덕분에 완전히 회복했지만, 격한 운동을 한 다음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 때문에 좀처럼 걷지 못하는 레이시.
다리와 허리가 골고루 맛이 가버린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몸이 이런데 화가 풀리겠냐며 다시 한번 노려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으며 엘라와 약속한 곳으로 갔다.
주변 건물과 비교한다면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여관의 모습.
레이시는 그런 여관의 모습에 잠시 감탄하다가 미스트의 부축을 받으며 여관에 들어갔다.
그러자 두 사람을 반겨주는 직원들.
여관의 직원들은 두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면 벌을 받기라도 하는 건지 허리를 90도로 숙인 채 큰 목소리로 인사했고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당황하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저 사람들 왜 저래요?”
“공주님이 여관을 빌리신 거니까 그런 거겠죠? 평생 동안 왕족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아…….”
미스트의 설명에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하긴 할아버지의 농장이 tv에 나오면서 엄청 유명한 일류 아이돌과 찍은 사진을 톡으로 보내줬을 때 나도 놀랐었지.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미스트의 말을 이해한 레이시는 떨떠름한 얼굴로 직원들을 보다가 부축을 받아 위로 올라갔다.
문을 열자 보이는 건 책을 읽고 있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와 미스트가 오자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반기다가 창문 밖을 보고는 쇼핑을 참 길게도 했다며 두 사람을 놀렸다.
하지만 장난스럽게 놀리는 엘라의 말투와 다르게 목소리는 조금은 차갑고 짜증이 섞여 있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목소리에 움찔 떨면서 조심스럽게 미스트의 뒤로 숨었다.
“뭐야~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응? 나 혼자 외로웠다구~.”
“으, 으읏……, 죄, 죄송합니다.”
“응? 아냐, 화 안 났어. 그냥 스킬 쇼핑이 그렇게 재미있었나 싶어서 말이야. 재미있었어?”
“그게, 그러니까.”
“죄송해요, 공주님. 레이시와 놀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라서 제가 여기저기 끌고 다녔네요.”
“아하핫, 거짓말. 둘이서 즐기고 왔지?”
레이시가 자신의 뒤에 숨자 살짝 앞으로 나오며 엘라에게 사과하는 미스트.
하지만 엘라는 미스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곧바로 눈치채고는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다가 레이시를 끌어안고 침대에 앉아 레이시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엘라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레이시의 몸에 남은 냄새를 맡았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몸을 비틀었다.
“흐응~ 씻은 냄새. 역시 하고 왔지?”
“그! 무슨! 자, 잘못 했으니까!”
“화는 안 났는데? 애초에 잘못한 일도 없잖아?”
“그, 그럼 놔줘요!”
“싫어~. ……이대로할까?”
“저 죽는다고요!?”
몸에서 비누 냄새가 난다며 속삭인 다음에 질투심을 그대로 드러내며 이대로 해버리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엘라.
엘라는 이러면 레이시가 부끄러워하며 화를 낼까 생각했지만,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시달렸던 것을 떠올리고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그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무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잠시 황당하다는 듯 가만히 있다가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에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엘라의 시선을 피했다.
메이드 교육은 늦게 받았다지만, 자신의 명령대로 메이드 학교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의 전속 메이드가 된 미스트가 메이드의 자세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건…….
“얼마나 괴롭힌 거야……?”
“저, 그게…… 아하하.”
엘라의 질문에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는 미스트.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대답에 레이시를 침대 위에서 반쯤 실신시켰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다.
“저녁 먹을래? 아니면 지금 쉴래?”
“…….”
처음에는 자신을 혼자 내버려 두고 미스트와 했다는 사실에 예쁜 사람이 대쉬하면 누구와도 하는 거냐며 레이시에게 질투심을 냈지만, 이제는 안쓰러움만 느끼는 엘라.
엘라는 미스트가 만족할 때까지 시달렸을 레이시가 불쌍해졌는지 조심스럽게 지금 당장 쉴 건지 밥을 먹을 건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질문에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잘 모르겠지만, 저렇게 미묘한 시선으로 보는 걸 보니 다 들킨 것만 같다.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얼굴을 붉힌 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다가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자 조심스럽게 밥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까까지는 부끄러움과 사라지지 않는 자극 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꼈지만, 엘라가 물어보자 배가 급격하게 고파진 레이시.
레이시는 아까까지 도망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밥을 요구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져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엘라의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질투심이 가득했는데 이렇게 귀엽게 굴어버리니 화를 못 내겠다.
하악거리던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자기 무릎 위에 앉는 것 같은 레이시의 모습.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를 뒤에서 꽉 끌어안으면서 볼에 입을 맞추며 저녁을 먹자며 종을 흔들었고 그러자 점원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들어왔다.
“밥 먹고 싶어. 레이시, 뭐가 좋아?”
“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씹는 게 좀 있으면 좋겠어요. 상큼한 것도. ……과일?”
“하긴 딱딱한 빵하고 스튜만 먹었으니까 그게 땡기긴 하네, 들었지? 준비해와. 10분 기다려줄게.”
“넵!”
“참, 술도 가져와. 도수는 약한 걸로.”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의 직원들.
레이시는 그런 그들의 얼굴에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걱정했지만, 엘라는 그런 그들의 얼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레이시에게 애정표현을 이어갔다.
자신의 다리 사이에 레이시를 앉힌 다음 볼에 입을 맞추면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보는 엘라.
레이시는 애정표현과 관련된 부분은 이제는 포기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스튜에 넣은 고기와 스튜에 적힌 빵만 먹은 걸 떠올리고는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일단 씹는 맛이 있는 게 좋을 것 같고, 고기와 말린 야채만 잔뜩 먹었으니까 상큼한 것도 먹고 싶다.
그렇게 말하자 레이시는 자기가 과일을 먹고 싶어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그거 좋다며 눈웃음을 지으며 직원들에게 명령했다.
10분 내로 식사 준비와 세팅을 끝내서 들고 오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리를 잘 못하는 편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한 시간 정도 걸리지 않나?
10분 안에 요리를 내올 수 있을까?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본 적은 없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면 파인 다이닝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잠시 엘라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엘라는 레이시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꽉 끌어안더니 레이시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원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10분 안에 전채요리 정도는 나오니까 나랑 있어.”
“에?”
“그래서 무슨 스킬을 산 거야? 하나는 내가 추천한 채찍 스킬일 거고.”
스킬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며 레이시를 껴안고 있던 팔에 힘을 푸는 엘라.
엘라는 손을 까딱거려 그림자를 움직이더니 소파를 끌고 와 레이시를 앉혔고 미스트는 엘라의 행동을 보고는 다른 소파를 들고 와 레이시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쇼핑의 결과물에 대해 말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레이시는 그 분위기에 다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야 엘라의 돈으로 스킬을 산 것이니 엘라에게 말해주는 게 맞지만, 하필이면 사버린 스킬이 그렇고 그런 스킬.
거기에다가 그 스킬을 실험할 겸 교육을 한다고 미스트가 다른 여관으로 끌고 가 그렇고 그런 짓까지 해버렸는데 그걸 전부 말해야 한다니…….
레이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얼굴을 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다시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래 만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봤었던 레이시라면 멀쩡한 스킬을 샀을 경우엔 그냥 그대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말하기 꺼려지는 야한 스킬을 샀다는 거고, 그 스킬 때문에 미스트와 그대로 여관에 갔다는 이야기겠지.
엘라는 질투심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레이시에게 말해주지 않으면 몸을 꽁꽁 묶어서 자신이 밥을 먹여줄 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너무하다는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다.
하지만 엘라는 이번에는 아무리 귀엽게 굴어도 안 봐줄 거라며 능글맞게 웃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발을 동동 구르던 걸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엘라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으니 그런 거겠지…….
레이시는 해탈한 듯 작게 포기한 웃음을 짓다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무슨 스킬을 샀는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해주었다.
그러자 엘라는 자신의 예상대로였다며 한숨을 내뱉다가 조심스럽게 레이시를 보며 질투심을 드러냈다.
“흐응…….”
“우, 우읏…….”
“그럼 레이시는 미스트의 걱정대로 아무하고나 할 거야?”
“미, 미쳤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나랑 미스트가 대쉬했을 땐 그대로 받아줬잖아?”
“그건…….”
“그건?”
“……그러네요? 왜일까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긴 했다.
엘라는 반쯤 자신을 억지로 덮친 거고 미스트는 배낭여행을 갔다가 만난지 2일 된 여자와 지쳐 쓰러질 때까지 한 거니까.
원래 자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
레이시는 막상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엉뚱한 얼굴을 하는 레이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 으음…… 아마 두 사람이라서……?”
“응?”
“뭐랄까…… 저희 숲에서 만났었잖아요?”
“그렇지.”
“그때 저, 멧돼지의 머리를 부숴서 죽였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절 아무렇지 않게 대해줘서? 그리고 그 뒤에도 저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고. 그래서 두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요?”
“…….”
“아, 에헤헤…… 좀 이상하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두 사람은 편해서 그런 걸까요? 두 사람이니까, 괜찮다는 느낌이네요.”
이상한 걸 발견하고 억지로 대답을 끼워맞추듯 더듬더듬 말하는 레이시.
이내 레이시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레이시는 자기를 덮쳐도 좋다고 말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는 걸까?
만약 이런 말을 한 이유가 전자라면 밥을 먹고 바로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씻고 나서 하는 게 좋을까?
과연 어느 쪽일까…….
엘라는 목숨이 걸린 듯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다 레이시를 바라봤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뺨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일단 키스 정도만 하고 나중에 좀 더 생각해볼까 고민하며 천천히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소파의 남는 부분에 자신의 무릎을 올리고 당황하는 레이시의 턱을 잡고 웃는 엘라.
하지만 그 순간 엘라를 방해하듯 직원이 노크하며 요리를 들고 오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직원의 행동에 혀를 가볍게 찼다.
“쯧……. 뭐, 오늘은 레이시가 무리라고 했으니까 참아볼까? 그러니까 레이시도 아까처럼 날 유혹하는 걸 자제할 것.”
“네, 네에에!? 제가 뭘 했다고요!?”
“응, 존재 자체가 꼴려.”
“……!?”
직원 때문에 분위기가 깨지자 혀를 차면서 자리에 앉아 샐러드를 먹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황당하다는 듯 항의하다가 이내 자신의 배에서 꼬륵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쭈뼛쭈뼛 자리에 앉았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며 키득키득 웃으며 레이시에게 과일을 먹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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