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환생했는데 기껏 한다는 게 메이드3
* * *
“아……. 따뜻하다…….”
“후후.”
모닥불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스튜.
레이시는 그동안 휴대폰으로 백색 소음으로만 들었던 소리를직접 듣게 되자 뭐가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일단은 재미있었기에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온기.
할아버지 집에서 모닥불을 때서 커다란 솥으로 요리할 때만 느꼈던 온기에 레이시는 배시시 웃으면서 계속해서 모닥불의 온기를 즐겼고, 미스트는 모닥불에 정신이 팔린 레이시가 귀엽다는 듯 웃다가 스튜를 떠 건네주었다.
“여기 저녁 드세요. 참, 레이시 양은 오늘은 불침번은 서지 않으셔도 되요.”
“네? 왜요?”
“초보자시잖아요? 혼자서 불침번을 서는 건 꽤 지친 일이니까 저와 공주님이 번갈아가면서 할게요.”
“그, 그렇지만…….”
“이 부분은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 양보를 못 해드리겠어요. 죄송해요.”
“아…….”
미스트에게 스튜를 받으면서 불침번에서 제외된 이유를 묻는 레이시.
레이시는 혹시 자기를 배려해주는 거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미스트는 물을 긷거나 저녁을 준비하는 것과 다르게 불침번은 안전과 직접 연결된 일이라 초보자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여러 사람이 같이 불침번을 맡는 거라면 몰라도 혼자서하는 불침번이기에 더욱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논리적인 미스트의 대답에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엘라는 어딘가 실망한 것 같은 레이시의 반응에 그렇게 실망할 건 없다며 레이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뭐, 도시에 가서도 일은 많으니까 오늘은 푹 쉬고 도시에 가서 열심히 하자?”
“엘라는 제 몸에서 손 떼고 이야기하세요.”
“아핫!”
만난 지 이제 이틀이지만 레이시는 엘라에게 꽤 익숙해졌는지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엘라의 손등을 쳐내며 한숨을 내쉬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며 스튜를 마셨다.
“그럼 내가 먼저 불침번 설 테니까 두 사람은 일찍 자.”
“그러시겠어요?”
“응, 나는 늦게 자는 건 익숙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건 못하니까 말이야.”
먼저 불침번을 서겠다면서 지팡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우물쭈물 망설이다가 미스트가 자신의 손을 잡고 텐트에 들어가자 어쩔 수 없이 미스트의 옆에 누웠고, 미스트는 텐트가 조금 좁아도 참아달라며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텐트가 일인용이라 좁아도 참아주세요.”
“…….”
“레이시 양?”
“아, 아닙니당!?”
“네?”
“아뇨, 괘, 괜찮다고요.”
1인용 텐트였기에 서로 몸을 밀착하듯 꽉 끌어안아야 간신히 잘 수 있을 정도로 좁은 텐트.
원래라면 엘라와 미스트 둘이서 움직이니 텐트는 1인분만 있어도 됐기에 이렇다고 설명한 미스트는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자연스럽게 미스트의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지는 레이시.
양 뺨을 감싸는 부드러운 감촉과 코끝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향기에 레이시는 손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른 채 애매한 자세로 미스트를 끌어안았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점점 장난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엘라가 레이시를 건들었을 때 분위기를 타서 해버린 걸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레이시도 여성의 몸을 좋아하는 걸까?
여러 의미로 괜히 엘라를 따라다닐 수 있는 게 아니었던 미스트는 솟아오르는 장난기에 괜히 레이시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레이시의 허리를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미스트를 올려다봤다.
“좁아서요.”
싱긋 웃다가 담요를 가슴까지 올리며 눈을 감아버리는 미스트.
하지만 미스트는 그러면서도 레이시의 허리춤을 계속해서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손길에 바들바들 떨다가 얼굴을 푹 숙이며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환생해서 여자가 되었다고는 해도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아 레이시는 아직은 자기를 남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농밀한 스킨십을 받자 레이시는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몸으로 겪기 시작했고, 동시에 전생의 친구들이 여자친구랑 둘이 여행 갔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온 녀석을 보면 고자 새끼라고 욕한 이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부처거나 고자거나 둘 중 하나겠지.
……지금 나는 여자니까 후자이려나?
그런 이상한 생각에 레이시는 미스트가 크게 숨을 쉴 때마다 같이 흠칫거리며 미스트의 눈치를 보다가 미스트가 완전히 잠에 빠지자 속으로 불경을 외우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레이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레이시는 잠을 자지 못했다.
미스트가 숨을 쉴 때마다 뺨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가 떨어지고 조금만 뒤척이려고 하면 미스트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고 또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했을 땐 엘라가 텐트에 들어와 미스트를 깨워 같이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교대 시간이야.”
“아, 죄송해요. 텐트가 조금 좁아서 제대로 못 쉰 모양이네요.”
“…….”
“응? 레이시는 쉬어도 되는데.”
“아니, 엘라랑 자면 위험할 거 같아서요. ……여러 의미로.”
“…….”
“왜 시선을 피하는 거예요?”
“아, 아하하, 글쎄다?”
결국 자는 걸 포기하고 미스트와 함께 텐트에서 나오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가 텐트에서 나가자 레이시는 자도 되는데 왜 나오냐며 손을 내밀었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손을 빤히 바라보다 엘라의 얼굴을 보고는 그대로 모닥불 옆으로 가며 혀를 내밀었다.
성욕이 그대로 드러난 엘라의 얼굴.
텐트 안에 있었다면 무슨 험한 꼴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니 그냥 밖에 있겠다고 말한 다음 미스트의 옆에 앉아서 담요를 덮었고, 미스트는 투덜거리는 엘라와 단호하게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를 보고 어색하게 웃다가 레이시의 옆에 앉고 차를 건넸다.
“저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신 건가요?”
“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아하하, 괜찮아요. 좁은 곳에서 그렇게 엉켜있으면 자기 힘들잖아요.”
“…….”
자기 때문에 잠을 못 잤다면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사과에 당황하며 손을 젓다가 이어지는 미스트의 말에 얼굴에 닿았던 감촉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러자 미스트는 자기 때문에 잠을 못 잔 거 같으니 사과를 받아주라며 레이시를 보고 웃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사과에 당황하다가 어색해진 분위기에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멈췄다.
타닥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타는 모닥불과 꽤 쌀쌀한 숲속 바람.
레이시는 대화가 멈춰 침묵이 흐르는 곳에서 멍하니 모닥불을 보다가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자 움찔 떨면서 고개를 돌렸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긴장하자 안심하라며 동물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괜찮아요. 사슴이거든요.”
“네? 어떻게 알아요?”
“울음소리로요. 이 울음소리는 사슴이네요.”
“멧돼지나 늑대 같은 게 아니라요?”
꽤 험악한 울음소리였기에 레이시는 울음소리의 주인이 늑대 같은 맹수라고 생각했지만, 미스트의 입에서 나온 동물의 이름은 그런 레이시의 예상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슴.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면서 정말이냐며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숲 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레이시가 미스트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사슴 특유의 뿔이 언뜻 비치다가 숲 안으로 도망가는 것을 보게 됐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맹수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미스트의 말대로 사슴이 있었다는 것에 감탄했다.
“후와……, 진짜 사슴이었네요.”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불안하면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겠냐며 다시 한잔 차를 건네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엘라 공주님과 잤을 때 어땠나요?”
“푸후우웁!”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스트의 질문에 입에서 차를 토해내며 연달아 기침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레이시 양이 잠들었을 때 제가 옷을 들고 왔었잖아요. 그때 알몸으로 자는 레이시 양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했었어요. 어땠나요?”
“에, 아, 아아…… 그, 그, 그게!”
싱긋 웃으면서 질문을 이어가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장난를 이어나갔다.
“공주님은 꽤 만족하셨다고 하셨는데 레이시 양은 어떨는지 모르겠네요.”
“……!?”
“으음~ 혹시 레이시 양은 아직 부족하시다던가?”
은근슬쩍 레이시에게 몸을 붙이고 귀에다 속삭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가슴이 자신의 팔에 닿자 움찔 떨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엘라가 레이시를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톡하고 찌르면 레이시만의 색이 손 안에서 피어나는 것만 같아서, 계속해서 만지고 놀고 싶어하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매력을 뒤로 하고 봐도 왕궁에서는 볼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라 계속 같이 있고 싶다.
알 건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물들지는 않은 순수한 모습.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혹시 정말로 그런 거냐며 레이시와 눈을 마주쳤고, 레이시는 자애롭게 웃는 얼굴로 야한 말을 하는 미스트의 말에 당황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 그게! 그러니까…… 에, 엘라가 억지로…….”
“네?”
“그러니까 가, 갑자기 몸을 원한다 뭐한다 하더니…… 위에 올라타서…….”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반응에 미스트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괜히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스트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시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으으으! 저 놀리시는 거죠!?”
“아핫! 화나셨나요?”
“으그으으윽……!”
레이시가 화를 내자 레이시를 꼭 끌어안으면서 레이시에게 사과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사과에 버둥거리면서 얼굴을 붉혔지만, 미스트가 계속해서 자기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자 결국 몸에서 힘을 빼고 미스트에게 안겼다.
그러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한번 레이시에게 사과했다.
“후후, 죄송해요. 너무 놀렸죠?”
“으으으…….”
미스트의 말에 신음하며 미스트를 올려다보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키득키득 웃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모닥불이 꺼지지 않게 지켰고, 레이시는 미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 나긋나긋한 미스트의 목소리에 중간부터 미스트에게 기대어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얼마나 깊게 잠들었는지 새벽에 해가 뜨기 시작해 엘라가 나와서 볼을 쿡쿡 찔러대도 미동도 안 보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다가 레이시의 어깨에 덮어두었던 담요를 치우며 레이시를 깨웠다.
“레이시 양, 이제 일어나셔야 해요.”
“흐에?”
미스트의 말에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라며 입술의 침을 닦는 레이시.
미스트는 레이시의 반응이 귀여운지 키득키득 웃다가 잘 잤냐며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잤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죄, 죄송해요! 언제부터 잤어요!?”
“얼마 안 됐어요. 한 시간 정도 주무셨네요.”
하늘이 새까만 색일 때 잔 것 같아 곧바로 사과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가 미스트 혼자 불침번을 지키게 했다는 사실에 잔뜩 당황했지만, 미스트는 그렇게 길게 잔 건 아니라며 레이시를 다독인 다음에 오늘은 자기랑 같이 말을 타자며 말의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스트가 레이시를 뺏어간다고 투덜거리는 엘라.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투덜거림을 가볍게 받아넘기더니 말 위에서 레이시를 끌어안은 다음 레이시에게 고삐를 쥐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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