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환생했는데 기껏 한다는 게 메이드1
* * *
“어라, 자는 건가요?”
“응, 피곤했나 봐.”
레이시가 잠들고 나서 10분이 지나지 않아 들어오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가 무슨 옷을 좋아할지 몰라 바지와 치마를 전부 들고 오다가 침대에서 곤히 자는 레이시를 보고 자는 거냐고 물어보다가 엘라가 레이시가 입고 있던 옷을 건네주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달으며 쓰게 웃었다.
“레이시 양을 건드셨네요?”
“데헷.”
“뭐, 레이시 양은 공주님의 취향에 적중하니까 건들 거라고는 대충 예상했어요. 하지만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다른 귀족 가문의 영애들과 다르게 레이시 양은 헤어질 때 그 이유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거 같은데.”
“응, 그래서 레이시가 자기 전에 그거 때문에 혼났어.”
“아하하…….”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쓰게 웃다가 레이시를 평소에 상대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한 엘라의 잘못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고,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곤히 잠을 자는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만지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미스트의 말대로 레이시를 성격 좋고 순진한 변경의 귀족 영애쯤으로 생각한 자신이 잘못한 일이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었기에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계속해서 만지다가 레이시가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 올리자 미스트에게 질문을 건넸다.
“미스트. 레이시가 내 곁에 있으려면 뭘 해야 할까?”
“으음, 레이시 양이 해야 할 일이요? 아니면 공주님이 해야 할 일이요?”
“내가 할 일만.”
“국왕님과 여왕님의 설득, 그리고 왕실의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른 귀족 아가씨들이 레이시 양을 질투해 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야겠네요. 그 외에도 레이시 양에게 메이드 교육을 시킨다거나? 하지만 레이시 양이 그걸 전부 견딜 수 있을까요?”
“역시 그게 문제일까?”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네요. 레이시 양이 그렇게 귀여웠나요?”
“응.”
엘라의 질문에 곧바로 막힘 없이 대답을 내놓는 미스트.
미스트는 엘라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필요한 것을 말해주는 것만으로 레이시를 엘라의 곁에 두는 건 힘들 거라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약하게 뺨을 긁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미스트는 엘라가 상상 이상으로 레이시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걸 깨닫고 꽤나 놀랐다.
그동안의 다른 여자를 안았을 때와는 정반대의 반응.
미스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계속해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반응에 뾰로통하게 미스트를 노려보다가 이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솔직하게 말해서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걸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제 딱 한 번 했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른 여자와 할 때처럼 자신의 몸을 건든다거나 그런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족감에 멈출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고, 또 끝나고 나서 레이시와 대화하는 것도 꽤 즐거웠다.
자신이 평범한 귀족이 아니라 왕족인 게 아쉬울 정도로.
엘라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면서 그렇게 혼잣말 하듯 말해줬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말에 놀란 눈을 하고 엘라를 바라봤다.
조금 마음에 드는 여자애가 있어서 오래 교제하고 있어도 조금만 잘못될 기색이 보이면 바로 헤어지고서 어차피 놀이였다고 말했으면서 왕족이었다는 게 아쉬울 정도라고 말하다니…….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꼬리를 살랑하게 웃었고 엘라는 그런 미스트의 웃음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손가락 끝에 마력을 모아내 미스트의 이마를 향해 쏘아냈다.
“아핫, 공주님이 부끄러워하시다니 의외네요.”
“시끄러워. 나도 사람이라고. 부끄러워하거나 그런 건 당연히 하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저 말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안 놀라겠어요?”
“시끄러워어어어.”
미스트의 말에 자그마한 마력탄을 자꾸 쏘아내며 부끄러움을 감추는 엘라와 그런 엘라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손바닥으로 마력탄을 막아내며 레이시가 입을 옷을 옆에다 개어두는 미스트.
미스트는 한참 엘라의 반응에 농담하면서 미소를 짓다가 엘라의 배에서 꼬륵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밥을 해오겠다며 주방에 들어갔고 엘라는 자신을 놀리는 미스트의 행동에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다가 이불 안으로 완전히 숨어버린 레이시를 보고는 키득 웃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놀림 당하는 데 완전히 뻗어버렸네?”
작게 귓속말을 하면서 장난치듯 레이시의 귀를 간질어 보는 엘라.
레이시는 잠에 빠진 와중에도 뭔가 귀를 간질이자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뒤척였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쿡쿡 웃다가 가방에서 책을 꺼낸 다음 레이시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상태에서 레이시가 일어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꽤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엘라는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자 몸을 뒤척이며 자세를 바꾸다가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자 그대로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편하게 누워있는 것도 잠시, 환생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는 음식 냄새에 눈을 비비면서 천천히 일어났고 이내 자신의 눈앞에 엘라의 얼굴이 보이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다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으걋!?”
“푸하하핫! 재밌네.”
“재, 재밌다니……! 깜짝 놀랐잖아요!? 씻는 거 아니였어요!?”
“응, 씻고 나와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네가 입을 옷도 준비했는데 네가 자서 책을 읽고 있었지. 저기에 있는 옷 중에 적당히 골라 입어.”
레이시의 반응에 킥킥 웃으면서 읽던 책을 덮는 엘라.
레이시는 태연해보이는 엘라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다가 레이시가 자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며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개인 옷을 보여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뭔가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대로 자버렸었구나.
레이시는 자신의 멍청함에 감탄하다가 가장 위에 올라가 있는 속옷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팬티를 입었고 이내 브래지어를 보고는 움찔 떨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 엄마 것을 본 거 외에는 실물은 처음 보는 브래지어.
레이시는 이걸 자신이 입어야 한다는 생각에 브래지어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었고 엘라는 뒤에서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보다가 입을 줄 모르는 거냐며 엘라를 뒤에서 끌어안더니 능글맞게 웃으면서 레이시의 손에 든 브래지어를 받아들었다.
“이건 어떻게 입는 건지 모르겠어?”
“…….”
엘라의 말에 엘라를 흘겨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배시시 웃더니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에게 브래지어를 입혀주었다.
“혼자 입을 땐 후크를 연결한 다음 뒤로 돌려, 그리고 후크 옆에 있던 줄을 잡아당기며 조이는 거야. 너무 조이면 숨 쉴 때 불편하니까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만 조이는 게 요령이라면 요령이겠네.”
“으으……. 고맙네요.”
“아하하, 아직 삐진 거야?”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다가 스스로 손을 뒤로 움직여 매듭을 묶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행동에 아직 삐진 거냐며 웃다가 레이시를 끌어안으면서 사과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사과에 한숨을 내쉬며 바지를 골라 입었다.
“미안해, 레이시가 아직 사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걸 잊고 그런 말을 해버렸네. 설명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하아,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에요. 괜히 삐져있던 것 때문에 그러지……. 으으, 그러니까 좀 떨어져요. 언제까지 달라붙어 있을 거예요?”
“으음…… 레이시가 날 보고 웃어줄 때까지?”
“…….”
아무렇지 않게 부끄러운 말을 하는 엘라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엘라를 바라보는 레이시.
이렇게 쳐다보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끼겠지 싶어 한 행동이었지만, 엘라는 그런 레이시도 마냥 귀엽다는 듯 허리를 끌어안으며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고 레이시는 엘라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행동을 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나를 볼 땐웃어주면 좋겠는데, 안 될까?”
손은 입고 있던 옷을 뒤로 잡아당기며 못 움직이게 한 다음 벽으로 밀어붙이고 레이시를 압박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의 목덜미를 핥다가 레이시의 눈을 바라보면서 웃어주겠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는 엘라의 얼굴에 딸꾹질하다 엘라가 점점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런 레이시를 구해주듯 미스트가 주방에서 나오며 저녁이 다 되었으니 밥을 먹고 이야기하자고 말했고,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혀를 차면서 레이시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옷을 입혀주었다.
“칫…….”
“휴우…….”
“우후후, 좋을 때 방해했네요. 죄송해요.”
“아뇨!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작게 웃다가 자기가 방해한 거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소리치면서 주방으로 달려갔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뒷모습을 보다가 제대로 방해했다며 미스트의 옆구리를 찌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스트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인사한 다음 주방으로 들어가 레이시에게 스튜와 빵을 주었고 레이시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엘라를 힐끗 쳐다봤다.
레이시가 밥을 먹어도 되는 거냐며 들뜬 얼굴로 있을 때 입술만 움직여 아직도 레이시를 데리고 가고 싶은 거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의 질문에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미스트를 쳐다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시선에 쓰게 웃다가 레이시에게 말을 걸었다.
“레이시 양, 들어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식사하시면서 들어주시겠어요?”
“네? 아, 그럴게요.”
“우선 저희가 레이시 양에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때까지 레이시 양과 같이 있기 위해선 레이시 양의 신분이 확실히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 지금 이 근처에 있는 도시에 가서 레이시 양의 스킬을 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스킬……? 아, 아아……! 괜찮아요.”
미스트의 말에 잠시 멍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환생하면서 얻었던 지식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생과 다르게 이 세계에서는 스킬을 사거나 팔 수도 있고 살인 경력 같은 것도 알 수 있기에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반드시 스킬을 확인해야 했다.
다소 특이한 요소라고 생각했지만, 스킬이 이 세상의 주민등록증이나 범죄이력기록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고맙다고 말한 다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3달 정도는 수습 메이드로 지내게 할 것 같아요. 수도로 돌아가는데 그 정도 걸릴 것 같거든요. 그리고 수도로 돌아가면 레이시 양이 공주님과 함께 머물지 말지 정해주세요.”
“네?”
“공주님에게는 사람이 적으니까 레이시 양에게는 부디 공주님의 곁에 머물어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귀족 사회라는 게 그렇게 깔끔한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레이시 양이 공주님의 곁에서 이것저것 보시고 견딜 수 있다면 공주님의 곁에서 계속 머물러주세요.”
“아…….”
미스트의 말에 엘라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엘라를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짐짓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겨우 몸을 한 번 섞은 사이라 너에 대해서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너처럼 순수한 성격이라면 많이 울 것 같거든. 아마 수도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정말 많이 힘들 거야.”
“그렇다고 그…… 그걸 하자마자 헤어지려고 했다고……. 으, 아니다. 그 이야기는 이제 안 할래요.”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래?”
“……메이드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할게요.”
처음에는 약간 짜증을 내려다가 이내 남에게 화를 내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 레이시.
레이시는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빵을 만지작거리다가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가 여전히 약간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자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 애처럼 배시시 웃다가 술집 아저씨처럼 능글맞게 웃으며 레이시에게 달라붙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버둥거리다가 미스트에게 도와달라고 말했지만, 미스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두 사람을 그냥 바라만 봤다.
결국 엘라에게 안겨서 먹여주는 밥을 먹게 된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를 내버려 둔 미스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다가 이내 엘라가 이제 자러 가자며 레이시를 꽉 끌어안자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다시 엘라에게 안겨 잠에 빠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