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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3 (31/31)

[에필로그 3]

“일찍 왔네?”

3시간짜리 수업을 두 개나 연달아 듣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와 정원의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수업이었기에 점심을 막 지나는 시간이었다. 출근한 형제들이 집에 있을 리는 없겠다 싶어 낮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다.

따뜻한 봄 향기는 조금의 언질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제 눈앞에 앉아 있는 형제도 그랬다.

익숙한 테이블과 의자가 정원에 가지런히 꺼내져 있었다. 물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이훈과 이온이었다. 이온은 의자에 앉아 몸을 돌려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는 여름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

아이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일찍 오셨네요.’하고 물었어야 했지만, 시간이 멎은 것만 같았다. 이상했다. 봄을 맞이하기 위해 인사하는 나무와 새싹 그리고 꽃들이 형제의 주변을 빛으로 감싸는 기분은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리 와.”

발걸음을 떼어 내는 아이를 묵묵히 바라보는 이훈도,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이온도 여름의 움직임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는 두 개의 전공 서적이 들어 있는 가방끈에 손을 올리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일찍 오셨네요?”

입가를 머물던 말이 잔디를 밟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자 터져 나왔다.

“형이 갑자기 정원을 가꾸고 싶다고 해서.”

이온은 여름의 가방을 끌어 내려 옆에 올려 두고는 아이를 빈 의자에 앉혔다. 마치 여름의 자리를 미리 남겨 둔 것처럼 절묘했다. 아이는 이온의 말에 작게 나 있는 밭을 바라보았다. 잔디와는 달리 짙은 색이 그 존재를 드러냈다.

“새싹이 돋았어요?”

정원에 나 있는 작은 밭을 가꾸는 건 이훈의 유일한 취미였다. 그마저도 늦겨울에 한 번 씨앗을 뿌리고 말았지만 한 번씩 산책하며 바라보는 정원은 아름다웠다.

“꽤 많이. 물 주는 건 네 몫이잖아.”

“물 줘도 안 자라는 건 안 자라요…….”

“그래도.”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이훈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뜨겁지 않은 해가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여름은 땀이 서린 손을 허벅지에 닦아 내고는 제 앞에 밀어 준 시원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볼이 가득 부풀고 목구멍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며 공기가 빠져나갔다.

이훈의 한 손이 아이의 하얀 볼을 부여잡았다. 놀란 두 눈과 시선이 마주할 때 그는 아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붉게 모인 아이의 입술에 입을 맞닿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볼에 쥔 손에 힘을 주어 아이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들어간 이훈의 혀가 입 안을 아득하게 헤집었다.

닿지 않는 곳까지 희롱하듯 핥아 올리는 이훈의 것에 여름의 허리가 곧게 펴지고 앞으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등을 받쳐 오는 이온의 손바닥이 아니었다면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흐, 하아…….”

그의 입술이 떨어지고 아이는 벅차던 숨을 빠르게 내쉬었다. 갑작스럽게 당한, 입맞춤은 여름이 놀란 가슴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하게 했다. 이훈은 젖은 여름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이며 의자에 등을 편히 기댔다. 할 건 전부 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여름은 이제 갑자기 왜, 하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저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려 했을 뿐이었다. 이온은 그런 여름의 머리를 쓸어 보이며 차가운 냉수를 한 잔 더 따라 줄 뿐이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잡음만 가득한 정원은 안온했다.

“……그래서 뭐가 자랐는데요? 꽃이에요?”

형제의 알 수 없는 애정 공세가 끝나고 겨우 진정한 여름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이제는 허벅지 위에 올린 손이 떨리지 않았다.

“그건 앞으로 네가 잘 키워야 알 수 있지.”

“제가 어떻게 키워요…….”

식물을 키워본 적 없는 저에게 이훈이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여름은 아주 조금 부담되었다.

“지금처럼 물을 주고, 들여다보고. 그렇게 관심을 주면 되지.”

옆에 앉아 있던 이온이 허벅지 위에 올려져 있는 여름의 한 손을 가져가 제 뺨에 붙였다. 이온의 뺨은 따뜻했다.

“그러면 언젠가 꽃을 피울 거야.”

사랑을 주고 물을 주며 또 매일 들여다본다면 꽃이 피어나겠지. 그건 네가 피운 거야. 올라가는 이온의 입꼬리를 따라 뺨에 붙어 있는 여름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뛰는 심장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기대해야겠네.”

이훈 역시 이온과 닮은 얼굴로 미소 지어 보였다. 혼자 자라날 수 없는 꽃과 같은 생명체처럼, 이제 형제는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여름의 저의 물이고 햇볕이 되길 바랐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서로의 맹목적인 애정이 만나 사랑을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네, 열심히 사랑해 줄게요.”

<아기 광공 삼 형제> 에필로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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