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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1 (29/31)

<아기 광공 삼형제 에필로그>

[에필로그 1]

“흐, 흣……. 응, 아!”

미래관 지하 주차장. 분명 여름은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대학교의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나오던 길이었다.

형제가 마련해 준 핸드폰으로 이온의 전화는 타이밍 좋게 걸려 왔고, 미래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듣고 뛰듯이 달려간 참이었다.

형제는 늘 다른 차를 몰곤 했기에 넓은 지하 주차장에서 이온을 찾는 건 쉽지 않았으나, 그는 그럴 여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미리 나와 아이를 맞이했다. 이온이 등딱지에 붙듯이 꽉 메고 있던 여름의 가방을 받아 들고는 조수석 문을 열어 주는 것까지는 순조로웠는데.

“소, 소리…… 응! 아! 들킬, 들킬 것 같, 흥, 흐읏!”

운전석의 운전자 품 안에서 반나체의 상태로 울고 있는 여름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 어땠어?”

아이의 허리선을 손바닥으로 훑으며 좁은 내벽을 쑤시고 있는 이온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윤 비서의 차를 타고 등교를 한 여름이었으나, 형제의 마중에 혼자 집을 나선 건 처음이었다.

그런 여름이 궁금하기도 지켜보고 싶기도 했던 이온이었기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냥, 그랬, 응, 아…….”

꼿꼿하게 발기했던 여름의 성기에서 사정액이 튀어 올랐다. 이온의 허벅지 옆에 꿇어앉아 그의 성기를 받으니 닿지 않았던 곳까지 긁어 대는 기분에 배뇨감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사람이 없는 지하 주차장일지라도 누가 볼까 두려운 건 두려운 거였다. 아래를 다 벗고 남자의 성기를 꽂고 있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힘들게 들어온 대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벌써 이렇게 조이면 어떡해.”

그런 여름을 알고 있는 이온은 아이의 안에 비비듯 밀어 넣어 허벅지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제 품 안에서 덜덜 떨며 몇 번인지 모를 사정을 하는 여름의 따뜻한 기운만이 궁금증도 갈증도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무서…… 무서운데, 그만, 아, 아!”

“응, 조금만 더 하자.”

여름의 하얀 등을 두르고 있던 손을 풀고는 축 늘어지고 서기를 반복하는 여름의 성기를 쥐었다. 기둥을 흔들면 흔들수록 백탁액으로 엉망이 되는 건 이온의 앞섶이었다.

이온이 허벅지를 들어 올려 추삽질을 반복할수록 여름의 머릿속은 쾅 하고 울렸다. 갈 것 같다, 쌀 것 같다는 말은 애초에 내뱉지도 못했다.

“오늘 어땠는지는 나중에 들어야겠네.”

이후 아이는 제 형의 품에서 뺨을 적셔야 했고, 그런 동생이 넘어가지 않도록 꽉 잡은 형의 웃음소리만이 주변을 울렸다.

***

여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한의 창립 기념일 행사에 참석한 그해, 대학교에 합격했다. 1년도 넘는 시간을 노력한 결과였지만 막상 대학교에 합격한 여름은 입학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단지 학교에 혼자 다녀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이는 대학교 합격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형제에게 받은 축하가 합격보다 더 값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깊은 겨울, 여름은 우물쭈물하며 형제에게 대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형제는 얼싸안을 듯 반겼으나, 그들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이에게 여름의 의사는 무시당했다.

‘다들 미친 거야?’

윤서였다. 윤서는 형제가 저를 환영하지 않는 줄도 모르고 가끔 놀러 와 저녁을 얻어먹고는 했다. 그날도 그랬다.

‘합격을 하고도 안 가겠다고? 그럼 왜 그 시간 동안 공부를 한 건데?’

‘차 이사님.’

‘여름이 너, 형들한테 효도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럼 대학교에 가서 번듯한 직업이라도 얻어야지. 가만히 있는다고 네 형들이 좋아하겠어?’

좋아했다. 이온은 그렇게 대꾸하려다 꾹 참아야 했다. 이미 윤서의 말이 여름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형제가 출근하면 여름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가 윤서였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아이를 다루는 법도 설득하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형제 사이에 무슨 효도예요. 그리고 안 바쁘세요? 왜 자꾸 오시지.’

이온은 거센말을 뱉지 않으려 어금니를 꽉 물었다. 윤서의 말에 형제는 그녀를 막아서려 했으나, 이미 여름의 동공이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설득당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태워 주는 차 타고 등하교 다 할 거면서. 무서울 게 뭐 있겠어.’

윤서의 말에 틀린 점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남과 대화하는 게 무서우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해결하면 끝이다. 이제는 형제와 떨어져 있어도 불안에 잡아 먹히는 일이 없었기에. 여름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섣불리 생각한 것 같아요.’

여름의 말은 합격한 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뜻이었다. 형제는 속으로 탄식을 삼켜야 했다. 윤서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게 아니었다. 무뢰배처럼 벨을 누를 때도 무시했어야 했는데. 이미 여름이 속으로 결심을 내리고 난 뒤였으니,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래. 언제까지 네 형들 품에서 울 수는 없는 거잖아.’

윤서는 입가를 가리며 생긋 웃었다. 틈 없는 한 씨 형제에게 된통 먹이는 방법은 아이에 관한 것밖에 없었다. 물론 여름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비웃음 가득한 윤서의 얼굴은 아이가 아닌 형제만이 눈치챌 수 있었다.

***

“형, 형. 오늘 닭발 먹으러 정문 앞 포차 간다는데. 같이 가실래요?”

가방에 넣기에는 크고, 손에 들기에는 무거운 전공 책을 품에 안은 여름은 제 어깨에 내려앉는 무게에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분명 같은 과 남자 동기이리라고 여름은 속으로 확신했다.

“……무슨 행사 같은 거야?”

오늘 수업은 바로 직전에 끝났다. 집으로 곧장 향하려던 참에 만난 이름 모를 동기였다. 다 같이 닭발을 먹으러 포차에 간다니 짜인 행사인가 싶어 여름은 의아했다.

“아니요. 그냥 같은 학번끼리 놀고먹는 거죠. 형은 한 번도 오신 적 없잖아요. 그러니깐 꼭 가야 해요.”

여름은 동기의 팔을 떼어 내고는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뒤따르는 남자 동기로 추정되는 이는 계속해서 쫓아오고 있었다. 갈 거죠, 하며 재촉 어린 말을 반복해서 뱉고 있었다.

같은 학번이라면 꼭 참석해야 하는 자리인 건가, 가지 않겠다고 직전에 다짐해 놓고서는 흔들리고 있었다. 괜스레 전공 책을 끌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빠!”

미래관에서 빠져나오고 정문의 방향으로 걸으려던 참이었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한 무리가 여름의 눈에 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앞에서 오빠라는 호칭으로 여름을 부른 이는 전공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함께했기에 익히 알고 있는 이였다.

“오빠 오늘 갈 거죠? 닭발 먹으러 포차요. 혁재 새끼가 아직 말 안 했어요?”

그녀는 단숨에 여름의 앞에 다가와 물었다. 뒤를 따르던 남자 역시 그녀를 보고는 여름의 뒤에 멈추어 섰다. 여름은 그제야 저에게 닭발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던 동기의 이름이 혁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했거든. 근데 형이 안 가신대.”

“헐, 또 왜요! 오늘은 진짜 다 모이기로 했단 말이에요. 절대 빠지면 안 돼요. 절대!”

나는 몰랐는데……. 여름은 그렇게 말을 하려다 제 자리에서 방방 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애초에 같은 학번이 전부 모일 정도면 사람이 많다는 건데, 정말 가도 괜찮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거절의 의사를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여름의 앞에는 그녀가 데려온 무리의 이들이 전부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혁재 역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자며 조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거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안했다.

“그, 그래…….”

결국 여름은 어쩔 수 없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곁에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

분명 해가 중천에 떠 있었기에 밝았는데, 그들에게 이끌려 들어온 포차라는 곳은 조명을 일부러 어둡게 했는지 눈이 침침할 정도였다. 귀를 때리는 음악 소리는 물론이고 사람들도 많았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제 첫 과외 선생님이었던 민혁이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먹고 마시고 친구들과 놀러 가고. 그러는 재미가 대학생의 전부라고 했는데, 민혁 역시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비어 있던 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채워졌다. 처음 보는 얼굴도 오가며 한 번은 봤던 얼굴들로 실내는 가득했다. 옆에서도 말을 걸어오고 뒤에서도 앞에서도 한 번씩 인사를 건넸으나 여름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어색한 대답을 할 뿐, 조금의 발전도 없었다.

과대로 불리는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창한 인사와 함께 행복과 발전을 도모하자는 인사말은 모두의 술잔을 머리 위로 들게 했다.

여름 역시 옆에서 술을 따라주는 혁재에게서 잔을 건네받아 주변을 따라 술을 뒤에서 앞으로 내밀며 파이팅! 하고 아주 작게 외쳤다. 눈치 보듯 구는 저의 태도를 남들이 봤다면 웃음거리가 됐을 게 분명했다.

학과 모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대여섯 명이 모여 대화를 나눴고, 술과 안주에 멈춤이란 없었다. 혁재를 포함하여 여름이 있는 테이블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은 어디 살아요? 학교 근처세요?”

여름의 앞에 앉아 있던 순하게 생긴 남자 한 명이 물어 왔다. 같은 학번만 모이는 것이라 들었으니, 아마 동기일 테지만 제가 더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아니요. 저는 등한동 살아요.”

“등한동이요?”

여름에게 어디에 사냐며 물어 온 남자도, 옆에 앉아 안주를 씹던 혁재도 놀란 눈을 감추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에 여름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형한테 부티가 좔좔 나는 것 같긴 했어요.”

그들의 눈에는 생기가 도는 것 같기도, 흥미로워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여름은 그들의 의도를 읽을 수 없었으나, 가만히 시간만 보내고 갈 생각이었기에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들의 태도도 계속해서 물어 오는 당황스러운 질문도 아니었다. 바로 멈추지 않는 술잔의 돌림이었다. 여름은 이 어두운 포차, 그것도 모르는 이들이 잔뜩 있는 학과 모임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술을 접하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들에게서 술잔을 건네받았다. 마셔야 하나,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손에 들려 있는 맥주잔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맛인지도 모를 누런 액체였다.

“형 맥주 안 드세요?”

혁재가 옆에서 물어왔다. 시선을 돌려 둘러보니 이미 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술잔은 비어 있었다. 제 술잔만이 찰랑이는 액체로 가득했다.

“아니에요.”

술을 거절할 생각은 아니었다. 성인이 된 지도 많다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술을 굳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시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여름은 혁재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여러 번에 나눠 마셨으나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원했으며 쓰지도 않았다. 삶이 고된 만큼 술이 쓰다던데, 저의 하루하루가 너무 평탄해서였을까 술이 막힘없이 들어갔다.

학과 모임은 별거 없었다. 중간중간 이야기하고, 다 같이 술 게임이라는 것을 한다든지 저녁과도 같은 안주를 모여 먹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술이 전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여름이 어색하고도 어두운 조명에 적응할 때쯤은 이미 술병이 가득 비어 있었을 때였다.

“형, 그만 마셔요. 얼굴이 완전 토마토인데요?”

“……네에?”

오히려 혁재는 그런 여름을 말리고 있었다. 저야 다른 이들보다 술이 강하고, 평소에도 그런 소리를 자주 들어서 정신이 말짱했으나, 제 옆에 앉아 있는 귀공자 같은 형은 달랐다.

이미 얼굴이 달아올라 색색거리며 숨 쉬는 소리가 크게 들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고개를 앞뒤로 흔들어 대며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걸 보아 취하기도 잔뜩 취한 게 분명했다. 그런 형의 팔뚝을 툭툭 두드리고는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슬쩍 가져왔다.

“정신이 들긴 들어요?”

여름은 저에게 물어오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으나, 이제는 말이 꼬이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내뱉고자 하는 말이 떨리는 입술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름은 굴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빨리.

“뭐야, 오빠 벌써 취하셨어?”

“소맥을 벌써 몇 잔째 드신 건지 모르겠다.”

“그걸 다 드리면 어떡해!”

“내가 드렸냐? 윤호 새끼가 형 궁금하다고 취하게 만들어 놓고는 먼저 뻗었잖아.”

어휴. 혁재를 때리는 어느 여자의 손은 투박했다. 아오, 왜 때려 하고는 대꾸한 혁재는 앞으로 쓰러지는 여름의 어깨를 잡아 바로 세웠다.

“지금 취한 사람들 모아서 택시 태워 보낸다는 데, 너도 여름이 오빠 좀 부축해서 나가 봐. 이미 밖에 모였을걸.”

“에이 씨, 그래야겠네.”

혁재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옆에 놓여 있던 여름의 가방을 들었다. 그러고는 여름을 일으키고는 포차 밖으로 나갔다. 여름이 완전히 정신을 잃은 건 아니었기에, 부축한다는 표현마저 과분했다.

“형, 주소 좀 불러 주세요.”

여름은 비어 있는 택시에 몸을 넣었다. 눈이 반쯤 뜨여 있었는데, 혁재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은 탑승이었다.

“기사님 그 주소로 잘 좀 부탁드립니다. 도착하면 잘 깨서 내릴 겁니다.”

여름은 가방을 품에 안고, 눈을 내리감았다. 귓가에 ‘형, 잘 가요.’ 하는 말이 들렸으나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혁재에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울렁거렸으나 매끄럽게 나아가는 차는 부드러웠다.

딩동.

택시 기사님은 도착하자마자,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내리라고 했다. 여름은 다행히도 그의 말을 들었고, 곧장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건 당연했지만 익숙한 대문이었다. 커다란 문은 어두운 곳에서도 그 크기를 자랑했다.

아이는 아무런 생각 없이 벨을 눌렀다. 그 어떠한 정신도 힘도 없었다.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대문에 머리를, 아니 자세히 말하면 정수리를 기대고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가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만했다.

문이 열리면 바로 튀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자세로 있던 여름은 순간 안으로 열린 문에 몸체가 앞으로 쏠렸다. 넘어지려나,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누군가 제 어깨를 잡아 품에 끌어안았다. 따뜻했다.

“왔어?”

문을 열어 준 사람, 그 사람의 품에 푹 안겨 버렸다. 활짝 웃고 있는 이의 셔츠가 뺨에 닿았다. 이온이었다.

이미 학과 모임을 하고 어느 장소에서 몇 시에 도착하고 무얼 하고 있는지는 형제들에게 문자를 하고 전화도 돌린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윤 비서님이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아니, 윤 비서님 차를 타고 왔나. 여름은 알 수 없는 생각에 이온의 가슴팍 부근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술 냄새.”

“저 술 마셨어요.”

“그래 보여. 일단 들어가자.”

술 냄새가 나나. 이온의 품 안에 안긴 채 정원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기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이온의 품 안에서 벗어나 신발을 벗는 순간, 일은 일어났다.

여름은 걷지도 뛰지도 않았다. 그저 한 걸음을 옮겼을 때, 여름은 이마를 박지 않은 걸 감사할 정도로 홱 고꾸라졌다. 앞으로 손을 받치지 않았다면 이마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였다.

“으, 어…….”

아이는 무릎을 제대로 펼 수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으나, 뒤에서 다가온 이온의 손길에 몸이 들렸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서도 익숙한 얼굴이 문을 열고 나왔다. 서재에 있던 이훈이 큰소리에 안경 추켜올리며 나오는 길이었다.

“아주 술에 제대로 취하신 것 같네요. 한여름 씨.”

머리가 어질하고 바닥과 인사한 무릎과 손바닥 그리고 어깨가 아려 왔다. 이온이 저를 들어 올렸으나, 기억이 초마다 삭제되는 것처럼 아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저 안 취했어요.”

그리고 평소라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여름이었으나, 술에 젖은 여름은 그 반대였다. 망설임 없이 대꾸했으며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어 내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아이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이온을 따라오던 이훈이 말했다.

“그러게. 물론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여름을 안아 들고 있는 이온과 그의 뒤를 따른 이훈이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 여름을 침대 위에 올려놓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은 이온이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뒤로 누웠으나, 몸을 좌로 돌리는 순간 침대에서 떨어졌다.

떨어져야지 하고 떨어졌으면 이상했을 텐데, 여름은 제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몸이 가는 대로 굴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고뭉치가 되는 게 술버릇인가.”

1층에서는 이온이 아이를 들어 올렸다면 2층에서 그것도 침대에서 떨어진 여름을 들어 올리는 건 이훈이었다.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 동안 아이를 의자에 앉혀 두었지만, 침대와 마찬가지로 떨어지려 굴었고 그런 여름이 머리를 박기 전에 받아 낸 것 역시 이훈이었다.

침대에 두어도, 의자에 앉혀 두어도. 심지어 발을 땅에 붙이고 욕실 벽에 기대도록 두어도 아이는 자꾸만 넘어지고 떨어지고 상처를 냈다. 바닥에 꿀이라도 발라 놨나 싶은 지경이었다.

형제는 이대로 여름을 씻기다 제 동생의 머리에 피라도 날까 싶어 욕조에 받던 물을 끄고 욕실의 문까지 닫고는 여름을 침대에 눕혔다. 어쩔 수 없었다. 이온이 왼쪽에서, 이훈이 오른쪽에서 아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사이에 두고 누웠다.

늘 셋이서 함께 잘 때면 아이를 가운데 두고 누웠기에 익숙한 장면이었으나, 여름이 자꾸만 일어나려 했고 옆으로 구르려고 하는 행동이 어색했고 당황스러웠다.

“이제 술은 마시게 두면 안 되겠군. 절대로.”

이훈은 헛웃음을 삼키며 아이의 팔뚝을 한 손으로 잡았다. 이훈이 한 손으로 잡을 동안 이온은 반대에서 여름의 허벅지에 다리를 올려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훈에게서도 여름에게도 이온의 존재가 가까웠다.

“그러게. 술버릇이 아주 고약해.”

“저 안 취했어요.”

이온이 아이의 콧대를 아프지 않게 꼬집었으나 여름은 취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는 형제의 온기 속에서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전처럼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았고, 눈도 제대로 깜빡였다.

“재밌었어?”

여름은 처음 하는 게 너무나 많았다. 그걸 형제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맹목적이고도 일방적인 애정을 알고 있기에 아이를 묶는 두꺼운 줄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불안은 사람을 무너뜨렸고, 깨달음은 사람을 일깨웠다. 여름이 자유로이 학교에 다닐 수 있던 이유였다.

천장을 바라본 채 눈을 끔뻑이는 여름은 잠이 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온이 옆에서 끌어안아도, 이훈이 제 팔을 잡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팔을 가슴에 올려 가만히 눈만 깜빡였다.

불어오는 바람 소리의 흐름조차 귓가를 울릴 때쯤 여름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왜 저를 주워 오셨어요?”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천장에 무언가 달린 것처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

“특출 난 것도 없잖아요……. 짐처럼 느껴지지 않으세요?”

나도 내가 이상한데, 여름은 그렇게 말을 이었다. 아이는 물론 술에 취했지만, 목소리에 흔들림이란 없었다. 그저 작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깊은 생각을 하고 내뱉는 것도 아닌 충동 말이다.

“갑자기 왜.”

이훈은 아이의 온기를 느끼던 팔을 떼어 내고는 여름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그래 봤자 옆 모습밖에 보지 못했지만, 아이의 말에 아무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음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냥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취해서 그래.”

이온이 가슴팍에 모여 있는 여름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취하지는 않았어요.”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말은 곧장 잘하는 여름이었다. 다시는 술 근처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이훈도, 이온도 하고 있었다. 여전히 목을 두껍게 해야 하는 추운 겨울이었으나, 형제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따뜻했다. 가끔 여름은 그들의 온기에 델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전생에 가족이었나.”

“네?”

“그게 아니고서야 너를 데려오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

아이의 멍했던 동공에 빛이 스쳤다. 그럴 수도 있겠다, 여름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무드 등의 빛일 수도, 밖에서 흘러들어 오는 도시의 빛일 수도 있었다. 이온의 말은 움직임이 멎었던 아이의 고개가 돌아가게 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전혀 아니야. 그저 그러고 싶었을 뿐.”

“…….”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여름의 충동 어린 질문은 그 어떠한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형제의 대단한 대답을 바랐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형제처럼 그러고 싶었을 뿐일 수도 있었다. 여름은 이온의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에서 여름의 움직임 정도는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난 생에도, 지금도 저희는 형제네요.”

아이는 조금 전보다 더 몸을 웅크렸다. 양옆에서 닿아 오는 온기란 따뜻했지만, 긴장이 풀리고 숙취에서 거듭되는 추위란 막을 수 없었다.

“그런 셈이지.”

그런 아이의 어리광을 생긋 웃으며 받아 주는 형제는 아이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형제에게서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모든 표현을 전부 가져다 붙인 만큼 빛나는 순간이었다. 여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이 점지해 주셨을까 싶을 정도로 이 모든 운명이 저희가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여름은 형제는 눈치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다음 생에도 함께일 형제의 온기를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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