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31)
  • ***

    “타.”

    그는 뒷문을 열어 주고는 턱짓했다. 1층에 내려와 저들 앞에 세워져 있는 처음 보는 차에 여름이 먼저 올라탔다. 그 뒤를 따라 이훈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윤 비서가 아닌 다른 기사가 운전하는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계속해서 바뀌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제 옆에 앉아 있는 이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집으로 가는 걸까, 이온은 잘 가고 있을까 하는 많은 궁금증이 피어났으나 먼저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던 이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왔다.

    “그 손목을 하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아마 팔은 더 엉망이겠지.”

    그의 시선과 말대로 고개를 숙였다. 셔츠 밖으로 드러난 손목은 보랏빛 멍으로 엉망이었다. 색이 잔뜩 변한 손목을 확인하니 그제야 고통이 밀려왔다.

    어깨에서부터 팔꿈치를 타고 내려와 팔목까지 저리지 않은 곳 하나가 없었다. 여름은 멀쩡한 손을 들어 멍이 든 손목을 아프지 않게 감쌌다. 보기 흉하기도 했으나 아린 손목에 따뜻한 기운이 필요했다.

    “김지혁을 만났나 보지?”

    없던 눈치를 다 끌어오니 이제는 김지혁이라는 이가 누군지 정도는 여름도 알 수 있었다.

    “네, 두 번이요. 그분이 저한테 부탁을 했어요. 하얀 봉투를 작은 형에게 전해 달라고…….”

    “그래서 그걸 옳다구나 한이온한테 줬고?”

    “네. 안에 돈이 들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걸 제가 가져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왜인지 무서운 이훈의 눈에 입을 꾹 다물었다.

    “대학에 가더라도 사람 하나 붙이는 건 필수인 셈이 됐군.”

    이훈은 이 사회에서 순하게 구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였기에 속으로 확신을 내렸지만, 여름이 그 뜻을 알아챌 리가 없었다. 그저 아이는 제가 잘못한 게 맞구나 싶어 어깨가 축 처질 뿐이었다.

    그런 여름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이훈은 아예 반대로 고개를 돌렸다. 멈춤 없이 변하는 바깥의 풍경은 바쁘게 돌아갔다.

    “너는 가족이 좋다고 했지.”

    “…….”

    “아마 한이온은 너보다도 더 가족이라는 형태를 좋아할 거야. 아니, 좋아한다는 말을 넘어서지. 병으로 보일 정도로 가족에 집착해.”

    스스로 나서서 가족을 만들어 낼 정도로 말이야. 이훈은 그렇게 말을 이어야 했다. 아이가 오해하지 않도록 말이다.

    피보다 더 무섭고 뜨거운 것에 집착한 ‘이한’은 이온과 그리 가깝지 못했다. 완벽하게 피가 섞인 이온이었건만 그를 짓밟고 오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생김새만 예뻤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한량처럼 노는 일밖에 없었던 이온이 어른들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능력이 없으면 내쳐졌고, 능력이 있으면 강제로 ‘한’ 씨가 되어야 했다. 그랬기에 형인 이훈은 올라갔고, 동생인 이온은 점차 ‘이한’에서 멀어졌다. ‘이한’에서 멀어진다는 의미는 피가 섞인 가족과 멀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와 일치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훈과는 다르게 커 온 이온이었기에 자신도 괜찮은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는 가족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무런 이유 없는 애정과 깊은 신뢰는 가족에게서 피어나는 편안함을 자아냈으니, 이온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갈증과도 같았다.

    형도 멀어지고 부모라는 존재는 애초에 없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 돌아서기에는 늦었다. 이온은 가끔 어둠 속에서 헤엄치며 저도 형처럼 뼈를 갈면서까지 열심히 살아야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으나 이 모든 후회가 가족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였을까 이온은 저에게 넘치는 것으로 가족을 만들었다. 그저 하얀 봉투만이 이온의 것이었다.

    ‘형, 내 동생이야.’

    오랜만에 만난 동생인 이온이 하는 말이었다. 반년도 안된 출장 전에는 이보다 더 키가 큰 이를 데려와 동생이라고 소개하더니, 오늘은 또 날카롭게 생긴 이를 저의 앞에 데려와 앉혀 놨다.

    이온의 가족이 바뀌는 주기는 규칙적일 때도 불규칙적일 때도 있었다. 하나 공통적인 건, 이온이 돈으로 구매하여 만들어 내는 가족은 ‘동생’뿐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형도 부모도 이곳 어딘가에 살아 있으니, 없는 동생만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하고 이훈은 추측하곤 했으나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게다가 이온은 잔인했다.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금전적인 보상으로 내치며 돌아설 때도, 잔인하게 옆에 둘 때도 있었다. 지난날 헬퍼로 고용한 재헌이 그랬다. 이훈은 그런 이온을 보며 질린다는 듯 굴었고, 재헌은 여전히 그를 따랐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이온의 변덕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났던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이온을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이온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때부터 이어지던 습관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전복이라도 좀 포장해 갈까. 동생이 좋아하는데.’

    회를 한 점 집으려다 이어지는 이온의 말에 멈칫 굳은 이훈이었다.

    ‘네가 동생이 어딨어.’

    이온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저의 인생이 아니니 그러려니 넘겼으나, 그날은 왜인지 헛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없어. 태어날 때부터 내 가족인데.’

    웃음기 섞인 이훈의 말에 발끈했는지, 이온은 고개를 추켜들었다.

    그의 미간이 불편함을 티 내듯 잔뜩 구겨져 있었다. 남들이 다 아는 이온의 일은 이제는 병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훈 역시 그의 상태가 아프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나, 숨 쉬듯 당연한 것처럼 대꾸해 오는 이온의 모습에 얼이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이온의 변덕은 잦은 출동을 유발했다. 하얀 봉투를 쥐여 주고 동생이었던 이를 내친 후 새로운 동생을 맞이한다.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이온의 유일한 사이클이나 다름없었다.

    가족이란 명분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이온이었기에 내쳐지는 이들이 재차 이온을 찾는 것도 당연했다. 누구는 집 앞을 온종일 지켰고, 누구는 ‘이한’을 찾아가기도 했다. 어느 드라마의 치정 싸움과도 같았다.

    그렇게 하는 거 하나 없이 매일 같이 뒹굴던 이온의 앞에……

    “그때 찾아낸 게 너지. 때 하나 타지 않은 고아인 어린아이.”

    “…….”

    “부모도, 이 사회에 연줄도 하나 없지. 게다가 보육원은 어떻고, 타이밍 좋게 무너져 내린 너에게 한이온은 새로운 동생의 역할을 준 거야.”

    그렇게 얼마간의 ‘놀이’를 하고 난 여름의 품에는 하얀 봉투가 안겨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온이 아이의 옷과 대학교까지 하나하나 챙기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이훈은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보다 더 번지르르하고 동생의 역할을 다할 이는 많을 텐데, 왜 너였을 것 같냐고.”

    이훈은 점차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멍한 여름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

    “저만 바라봐 줄 맹목적인 가족을 원했던 것 같아. 부족했던 가족애를 채워 주고 애원할 정도로 저를 필요로 하는 그런 동생 말이야.”

    이온이 가족으로 삼은 다른 이들은 세상도 사회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누구는 ‘이한’의 돈을 노렸고, 누구는 이온의 ‘것’들을 탐했다. 감정적으로는 너무나 풍족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혼자였던 이온과 다르게 말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평생을 살아온 여름의 맹목적인 애정은 그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온은 단 한 가지, 아이의 하나뿐인 시야를 원했을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여름은 이온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또 어디서 이런 이를 찾으라고 하면 못 찾을 만큼 비슷했기에 이온에 알 수 없는 집착이 이해되었다. 가족으로 받아들이려 이훈을 끌어들인 것만 해도 그랬다.

    “한이온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물론 바뀔 일도, 후회할 일도 없고.”

    이훈은 학을 떼듯 혀를 찼다. 지난날을 떠올리느라 이미 충분히 머리가 아픈 상태였다.

    “네가 무섭다고 달아나도 끝까지 쫓아갈 놈이니 쓸데없는 수고도…….”

    “그냥 제가 좋으신 거죠?”

    관자놀이 부근을 꾹 누르고 있던 이훈의 손이 순간 굳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가 또다시 아이에게로 향했다. 이미 여름의 얼굴은 처음 마주했던 그날과는 너무나 다르게,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형들을 너무 사랑해서, 제가 좋아지신 거잖아요.”

    여름은 확실히 유일했다. 남들 다 똑같이 빚어 내도 여름은 다르게 빚어 낸 사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의 말문을 막히게 할 리가 없었다.

    가족은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별다를 것 없이 당연한 존재였다. 여름도 그 이야기를 믿었다. 그들의 관계에 억지스럽게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저 당연한 존재로 평생을 걸어가고 싶었다.

    “도망가도 쫓아올 정도로, 이제는 절대 버리지 않고 평생의 가족으로. 그렇게 사랑해 주신다는 말로 들렸어요.”

    여름은 당장이라도 이훈을 끌어안고 싶었으나 아픈 팔 때문인지 몸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저 멀리에 병원이 보였다. 도착해야 하는 곳에 거의 다 왔다. 그의 이야기를 듣느라 팔이 아픈 것도 잊었나 보다.

    어둠의 빛은 도시의 야경을 만들었고,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했다. 형제는 저의 빛이었으며 이 모든 도시였다.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지독한 불안에 떤다고 할지라도 불변하는 것이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억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이제야 깨달은 저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혼자 있을 이온이 걱정되었다.

    이훈의 손가락이 여름의 양쪽 뺨을 꾹 눌렀다. 새처럼 튀어나온 입술은 서로 맞닿기 적합했다. 우, 우하며 그의 손을 떼어 내려 고개를 돌렸으나 의미 없는 일이었다. 여름은 부딪혀 오는 이훈의 입술을 받아 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렇게 들렸으면 그게 맞겠지.”

    그의 손가락이 떨어지고 뺨을 감싸는 손은 뜨거운 계절처럼 따뜻했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입술 사이로 들어오는 혀는 확실히 이훈의 것이었다. 여름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비로소 불안한 감정이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

    여름은 병원에서 핏빛 멍에 대한 치료와 물리 치료를 함께 받았다. 다행히 팔이 부러진 것도 금이 간 것도 아니었기에 병원에서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어렵다는 여름의 말에 의사는 팔과 목을 연결하는 보조기를 착용하도록 도왔으나, 꼭 불편할 때만 착용하라는 말을 남겼다.

    옆을 지키는 이훈 덕에 병원이라는 곳이 무서운 곳도 아니고 형제와 헤어져야 하는 곳도 아니라는 걸 새롭게 느꼈다. 병원에 가기 싫다며 울어 댔던 지난날이 부끄럽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불안의 잔해임을 알고 있었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었다.

    병원에서 나오니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구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별을 찾아 댔으나, 밝은 빛에 감춰져 찾을 수 없었다.

    “그래, 끊지.”

    이훈은 병원에서 나오면서, 차에 올라타 출발할 때까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윤 비서님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홀로 생각에 잠긴 여름의 관심이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들어갈 때 조심해야겠어. 조용히 있으라는 말을 안 했더니, 아주 집을 다 때려 부숴 놨다는데.”

    “누가요?”

    “누구겠어, 잔뜩 삐쳐 버린 네 형이지.”

    아아, 여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나서 주변의 물건을 던지고 부수는 일은 보육원 원장님도 자주 하시던 행동이었다. 물론 그 잔재들을 전부 자신들이 치워야 했기에 싫고 힘들기도 했으나, 이온이 그랬다면 몇 번이든 치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건지 도착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은 팔에 찬 보조기를 조심하며 차에서 내리고는 정원을 밟아 들어갔다. 현관에 서 있던 윤 비서님이 문을 열어 등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냐는 것이 적합한 인사말인가, 다녀왔다고 해야 했을까. 괜히 얼굴이 뜨끈해졌다. 그러나 그런 여름의 생각이 무안하게도 윤 비서는 인사해 오는 여름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그 옆에 있는 이훈에게로 입을 열었다.

    “2층에 계십니다.”

    “아예 집에서 내보내든가 해야 했어.”

    “저녁도 안 드셨습니다.”

    “그건 우리도야.”

    이훈은 완전히 학을 떼며 말했다. 이제는 지겹다는 듯이 말해도 그의 발걸음은 빨랐다. 차를 타고 오면서 들었다시피 화가 난, 아니 슬픔에 잠긴 이온이 집을 엉망으로 해 뒀겠다고 생각했건만 오늘 아침과 별다르지 않은 모습에 여름의 고개가 의아하게 갸우뚱해졌다.

    “도착하시기 전에 전부 치워 두었습니다.”

    이훈은 입고 있던 재킷을 벗고는 윤 비서에게 건넸다. 여름은 그런 윤 비서의 말에 아아, 하고는 계단으로 발을 얹었다. 괜히 생각을 읽힌 것 같아서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여름이 먼저 계단을 오르고, 그 뒤를 이훈이 따랐다. 윤 비서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1층의 자리에서 기다렸다가 들고 있던 재킷 때문인지 이훈의 방으로 향했다.

    2층의 복도는 밝았으나 고요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여름 역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해방감과 이온을 보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단단히 닫혀 있던 문이 이훈의 손에 열렸다.

    “혀, 형!”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여름의 입은 저절로 이온을 불렀다. 그들이 줄곧 시간을 보내는 테이블 의자에 다리를 꼬고는 앉아 있는 이온을 말이다. 그는 외출했던 옷 그대로의 상태로 고개를 들었다.

    등 뒤에서는 하, 하는 헛웃음이 들려왔으나 여름은 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흔들리는 이온의 눈이 보였고 여름은 그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이온 역시 벌떡 일어나 다가오는 여름을 끌어안았다.

    “누가 보면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의 상봉으로 오해하겠네.”

    이훈은 답답하다는 듯 셔츠 단추를 풀어 헤치며 옷을 벗고 있었으나, 그들의 모양새가 웃긴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여름이 팔, 팔은 왜…….”

    답지 않게 떠는 이온의 목소리는 이온의 심리를 대변했다. 깁스도 붕대도 아닌 그 중간의 처치를 하고 온 뒤여서인지 다쳤다는 사실은 겉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많이 아픈 건 아닌데…….”

    이온의 품에서 벗어난 여름은 괜찮다는 듯이 생긋 웃었다. 여름도 이온도,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고 이훈 역시 선뜻 어느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떨고 있는 이온 때문인지, 다쳐 버린 여름 때문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은 성을 쓰고 같은 서류에 올라가 있는 사이일지라도 멀어질 수 있는 사이임은 당연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영원하면서 당연히 머무를 수 있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불안이 뒤따르는 감정이 필연임을 이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너를 버릴 생각도, 내칠 생각도 없었어.”

    이온의 잇새에서는 작은 숨이 새어 나왔다. 여름은 멍하니 그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집중했다.

    “이전에는 내가 이상했던 게 맞지만, 아니 이상한 게 아니라…….”

    이온의 횡설수설한 말을 여름은 그를 올려다보며 들었다. 이온은 달싹이는 입술을 잠시 멈추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른세수를 하는 손마저 떨리고 있었다.

    “내가 정말 너를, 다른 이들과 같게 생각했다면 이렇게 불안하지도 않았겠지.”

    “……형도 불안했어요?”

    불안은 오로지 저의 것인 줄만 알았던 여름의 눈이 잔뜩 커졌다.

    “응. 네가 한 씨 형제 동생은 이제 못해 먹겠다고 가 버릴까 봐 무서웠어.”

    이온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밥 한술도 못 먹었다고 덧붙였으나, 뒤에서 셔츠를 풀어 헤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이훈이 우리도 못 먹었다며 대꾸했다. 물론 그 말에 관심을 주는 이는 없었다.

    여름은 평소보다 가벼운 공기와 맑아지는 머리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늘과도 같이 멋있던 형제도 저와 별다른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니 더욱 그러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들과의 가족이 되기를 포기하고 도망친다니, 여름의 머릿속에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형제가 할 수 있는 상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을 저 스스로가 떠올리며 불안해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불안의 잠식이 그러했다.

    “그래도, 함부로 확신하지 못하고 겁을 먹는 게 불안이잖아.”

    이온은 눈을 크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여름의 목덜미에 얼굴을 품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평소의 속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낸 말처럼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온은 너무나 불안했다.

    여름이 지난날의 동생들처럼 되기 싫다며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이온은 제 방식이 잘못됐고, 후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요한 적도 강제한 적도 없었다. 지나간 ‘동생’들도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형’인 저 역시 갈증을 잠시나마 채워 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여름에게도 똑같았으며, 별다를 게 없었다. 하얀 백지와도 같은 아이이니 저에게서 벗어날 생각도 못 할 줄만 알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들이닥쳐 오는 파도와 같은 불안은 달랐다.

    계속해서 저 멀리 사라지는 여름의 뒷모습만이 머릿속에 떠올라 괴로웠으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물건마다 집어 들어 하얀 벽을 향해 던졌다.

    비로소 가족이 생겼음을, 평생을 갈구하던 가족애를 주고받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한 불안이었다.

    이온은 다시는 그 불안을 느끼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제 품에 안긴 이를 내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순백의 목덜미를 물었다.

    머리 위로 아,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이어지는 웃음소리에 이온의 고개가 절로 들리고 몸이 아주 조금 떨어져 시선을 마주했다.

    “저를 평생 책임져 주세요. 저는 그거면 돼요.”

    너무나 기꺼운 말이었다. 지난날의 어둠이 이 한마디로 사라질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허무하면서도 무서웠다. 불안의 감정을 잊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때 여름이 먼저 보조기를 착용하지 않은 팔을 뻗어 제 손을 쥐어 왔다.

    “가족인데, 당연히.”

    당연하여 말하는 것조차 입이 아플 때까지. 그들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생각이었다. 이 세상 모든 감정을 응축하여 모아 놓은 단어는 가족이 유일할 테니 말이다.

    “당연한 가족끼리는 서로 옷도 갈아입혀 준다는 거. 이제는 알고 있지?”

    뒤로 다가와 뒷덜미를 살살 문지르는 이는 이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를 데려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붙어 있던 날을 떠올리면 이렇게 되어 버린 관계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말이 훨씬 나았다.

    이훈은 이온이 꺼낸 말을 재차 언급하며 고개를 숙여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한마디에도 가슴이 아리듯 묵직해지는 여름이었다.

    “……네.”

    이온을 올려다보고, 등 뒤에서 제 가슴에 둘러 오는 팔을 느끼고는 상기된 얼굴로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아이의 대답은 형제의 움직임에 대한 허락이나 다름없었다.

    비로소 하나로 거듭나는 행위가 단단한 가족이 되는 길임을 삼 형제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기 광공 삼형제] 完

    <아기 광공 삼형제 2권 끝(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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