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31)
  • ***

    처음 이훈의 서재에서 공부하려 책상에 앉고서는 졸았던 날의 기억이 생생했던 여름은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공부하지 않느냐며 혼이 나고 누군가의 눈앞에서 공부를 하려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으니 형제를 볼 면목이 없었다. 선생님인 연우의 수업을 들을 때에도 안절부절못하는 손발을 가누는 데 신경 써야만 했다. 수업이 끝이 나고 연우가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정원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 뒤로 돌아 2층으로 조용히 올라갔다. 이훈의 서재에 가기 위한 문제집을 고를 때까지도 속으로 읊조렸다. 눈을 부릅뜨고 오늘은 부디 공부하겠다고. 불어나는 욕심을 자제하지 못하고 많은 국어에 이어 영어 모의고사까지 품 안 가득히 챙겼다.

    똑똑.

    아이는 다른 손으로 서재를 노크하고는 문을 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긴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민망함이 섞인 부끄러움만이 남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이훈이 앉아 있을 만한 곳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제 자리를 찾아갔다.

    단 한 번밖에 온 적 없는 곳이었지만, 익숙한 발걸음이었다. 다행히도 이훈은 저가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펼칠 때까지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귓가에는 남자의 움직임 소리와 제 심장 소리만이 가득했지만, 여름은 눈을 부릅뜨며 몸에 힘을 주었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잘하는 모습은 보여야 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름의 기억은 그게 전부였다. 낮잠을 자지 않았으나 그리 졸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분명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였는데, 멍한 눈을 비비니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또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이곳은 분명 이훈의 방이었다.

    방의 공사 때문에 이훈과 함께 밤을 보낸 적이 있기에 여름은 확실히 기억했다. 여름은 저가 누워 있는 곳이 이훈의 방이고, 서재에서 잠이 들어 방으로 옮겨져 왔다고 생각하니 다시 질끈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뜨거워진 눈가를 그저 내리감았다. 이대로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여름은 괜히 울적해진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왜, 그의 서재에서 공부만 하면 잠이 오는 것이고 집중이 안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벌써 두 번째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공부뿐인데, 이마저도 못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여름은 눈을 떠 이훈의 방인 천장을 바라보다 창문이라도 바라보려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 읍.”

    그때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숨소리에 손을 올려 입을 막았다. 어쩐지 방이 너무 따뜻하다 싶었다. 그의 커다란 침대에는 저만 누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는 눈을 내리감고 자는 형제에게 제소리라도 들어갈까 봐 양손으로 입을 꾹 막았다.

    그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저 멀리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선생님인 연우가 떠나가고, 이훈의 서재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해가 떠 있어 밝았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보는 창밖은 땅거미가 내려앉아도 한참 전에 내려앉았음을 알려 주는 것처럼 아득하게 어두웠다.

    저녁을 먹지도 않았는데, 잠으로 시간을 전부 보낸 셈이었다. 괜히 억울하고 저 자신에 어이가 없었다. 잠귀신이라도 붙었나 싶은 정도였다. 한숨을 내쉬고 싶었으나 잠에 빠진 형제를 보고 속으로 삼켜야 했다.

    아이는 이훈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인제 보니 전부 이훈인 것만 같아서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리는 한편 편안했기에 몰려 있던 잠이 오는 게 아니니까 싶었다.

    확실히 전부 제 형인 이훈 때문이었다. 아이는 괜히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며 그의 얼굴에 팔을 뻗었다.

    그는 평상시 모습과 다르지 않게 아무 소리 내지 않고 반듯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불을 가슴팍까지 적당히 올리고는 천장을 바라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여름은 손가락 하나를 뻗어 그의 왼쪽 뺨을 꾹 찔렀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섞여 힘을 주어 꾹 눌렀다. 그러나 이훈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형제 모두 깊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여름은 뻗었던 손을 머리맡으로 넣어 새우처럼 말아 누웠다. 다시 자고 싶었으나, 그의 서재에서 잠이란 잠은 다 잔 건지, 아무리 눈을 감아도 졸음이라곤 조금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당장 일어나서 2층에 올라가 공부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 일어났다가는 형제 모두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았다.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여름은 불편한 마음에 몸을 뒤척거렸다. 그러다 새우처럼 말아 누운 몸을 이훈의 누워 있는 쪽이 아닌 등 뒤로 물리니 누군가와 하반신이 부딪혔다.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제 몸이 이온에게 닿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름은 느릿하게 손을 떼어 내고는 천장을 바라보고 곧게 누우려고 했다. 분명히 그러려고 했는데, 뒤에서 휘감아 오는 팔이 더 빨랐다.

    “일어났어?”

    귓가에서 물렁물렁한 느낌이 나더니 이온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또다시 그의 올가미에 잡혀 버렸다. 이온 역시 꼼짝없이 자는 줄만 알았다. 너무 시끄럽게 했나, 또 저 때문에 깼을까 봐 고개를 뒤로하여 이온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이미 그가 먼저 제 어깨에 고개를 품었다.

    “……저 때문에 일어나셨어요?”

    여름은 뒤를 돌아보려 버둥거리던 몸에 힘을 뺐다. 그 대신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온의 팔을 잡아, 따뜻한 기운을 소중한 것 만지듯 쓸어내렸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알아?”

    이온은 대답하는 대신 다른 물음을 뱉었다. 협탁 위에서 빛나고 있는 등에 겨우 두 눈을 뜨고 있던 여름은 고개를 저었다.

    “10시는 됐으려나, 이 시간에 자는 사람이 어딨어.”

    “…….”

    “아, 여기 있네.”

    이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의 아랫배를 주물럭거렸다. 언제 갈아입은 건지 모를 얇은 잠옷 사이로 그의 손이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쫙 펼쳐진 손바닥이 살을 쓰다듬으면서 뭉치듯 주물럭거리니 여름의 몸이 절로 비틀렸다.

    “언제까지 잘 거야.”

    이번에는 두 눈을 깜빡이던 여름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뒤에서 끌어안아 온 이온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느새 속살에서 빠져나온 이온의 팔은 확실히 보였다. 그의 손이 자는 이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볼을 찔러도 깨지 않던 이훈이 어깨를 강하게 두드리는 이온의 손에 눈을 스르르 떴다. 고개를 돌려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이온을 바라보는 이훈의 표정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는 팔을 눈가 위로 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습을 누가 볼까 두렵다.”

    잔뜩 잠긴 이훈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왜, 에.”

    이온은 고개를 돌린 제 형을 향해 씩 웃으며 말을 늘어뜨렸다.

    “넌 언제 들어왔어.”

    이훈의 얼굴이 무드 등에 비춰 훤히 보였다.

    “너무 조용해서 몰래 들어와 봤지. 왜 맨날 나만 빼고 놀아.”

    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이온은 말로도 행동으로도 칭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 옷은 형이 갈아입혔어?”

    이훈의 시선이 지그시 이온에게로 갔다. 어느 말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왜 성인인 애를 옷도 못 갈아입는 어린아이 취급해.”

    이훈을 깨우느라 빠져나갔던 이온의 손이 재차 여름의 맨살로 들어와 잠옷을 들추고 있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기도, 이온의 말에 어이가 없기도 한 이훈은 터뜨리는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둘 다 나가.”

    호기롭게 서재로 들어온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지듯 잠들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나겠지 싶어 지켜보았지만, 여름은 꽤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상에 앉기만 하면 잠이 드는 여름을 보며 공부를 하는 게 맞나 의심이 들었으나 몇 시간이 지나자 아이를 방으로 옮긴 이 역시 이훈이었다.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은 반팔이었으나, 뻣뻣해 보여 옷을 갈아입혀 놓은 것도 있었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 일이 요즘 들어 눈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물론 이온처럼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훈은 편히 누워 고개만 그들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만 돌렸다. 아무리 이른 시간이어도 여름이 잠든 시간보다 훨씬 늦게 침대에 누운 이훈이었기에 닮지 않은 형제가 방해만 되었다.

    눈가를 가린 팔은 피곤함을 가려 줄 뿐이었다. 눈앞에 어둠만이 존재함에도 이훈은 눈을 내리감았다. 옆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여전히 형제가 옆에 있음을 뜻했지만, 이훈은 그들이 조용해졌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조용한 기운에서 공기의 흐름이 귓가에 읽힐 때쯤 비어 있는 옆구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다. 아이가 이훈의 허리를 두르고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런 탓에 이훈은 동그란 뒤통수만을 볼 수 있었다.

    “뭐 해.”

    이훈은 그저 굳은 사람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이 여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훈은 그렇게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 없이 머리를 꾹 누르듯이 비비적거렸다.

    불에 타 버린 보육원 책상 밑에서 울고 있던 여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가끔은 아이보다도 더 어설프게 대할 때가 있었다. 지금의 여름을 받아 낼 때처럼 말이다. 이제는 겁이란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아이의 걸음이 빨라져 있었다.

    아이가 입을 꾹 다무니 공기만 머무르던 방에는 정적이 가득했다.

    그들의 정적을 뚫는 건 이번에도 이온이었다. 이온은 여름이 이훈에게 안긴 만큼 다가가 아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작지 않은 체구의 아이임에도 이온이 여름을 껴안기에는 충분했기에 그의 팔은 이훈에게까지 닿았다.

    “형이 좋은가 보지.”

    침대 위에 누운 형제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우스꽝스러웠다. 천장을 보고 누운 이를 끌어안은 작은 아이와 그런 아이를 다리 사이에 끼고 그 위에 다리를 올린 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좀 떨어지지?”

    이훈은 힘을 써서 그들을 밀치는 대신 시선을 훑으며 말했다. 그러나 여름은 또다시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저었고, 이온은 ‘잉, 내가 왜.’하고는 혀를 굴렸다.

    꿈쩍도 하지 않는 돌덩이들을 끌어안고 있는 기분에 한숨이 나왔다. 왜인지 밤이 길어질 것만 같았다.

    떨어지라는 말과 달리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훈의 모습은 이온이 보기에도 확실히 변했다. 이온은 아이에게 갇힌 듯한 이훈의 모습에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

    “으, 으응…… 아, 파요……. 아……!”

    여름은 버둥거리는 손을 가누기 위해 침대 시트를 강하게 틀어쥐어야 했다. 하필 옆으로 몸을 세워 누운 채 그들의 손아귀에 갇혀 있어야 했기에 양손을 쉬이 둘 수 없었다.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벌어진 입으로 앓는 소리를 내뱉고 있을 때 눈앞에 있던 이훈이 아이의 팔을 제 목에 걸었다. 여름은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훈에게 달라붙어 힘을 주어 팔을 두르고는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분명 고요한 밤에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끼어 누워 있으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그러나 언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는 지금도 당최 모를 일이었다.

    습관처럼 제 살갗을 쓰다듬는 이온의 손을 의식하지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형제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아서였을까. 정답을 찾지 못한 여름은 이온의 손가락에 잔뜩 넓어진 내벽을 뚫고 있는 커다란 기둥의 움직임으로 감정이 뒤섞이고 있었다.

    여름은 몸을 꿰뚫리는 듯한 움직임을 받아 내는 데 조금의 면역도 생기지 않았다. 특히 아픔인지 쾌락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것부터가 그랬다.

    “하, 흐! 아! 응!”

    뒤에서 허리를 지나 뻗어 온 손이 아랫배부터 가슴팍까지 훑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구멍에 꽂힌 성기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깊게 박혔다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아, 아파요……. 그, 만 흐응!”

    “아파? 어떡하지.”

    이온이 사정한 건지, 아니면 가득 차오른 쾌락 때문에 내벽이 젖어 든 건지 질퍽하게 처박는 소리가 방안 가득히 울리고 있었다. 배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찼다. 밥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를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제 가슴과 아랫배를 훑던 이온의 손가락이 유두를 손가락으로 아프게 꼬집었다. 흥분에 부풀어 올랐던 유두의 희롱에 여름의 몸이 절로 떨렸다. 이훈의 목에 두르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고 흥분을 참아야 했다.

    “너무 좋다, 여름아. 응? 후, 들려?”

    이온의 목소리가 뒤에서 느릿하게 들렸다. 이온의 물음이 다정한 목소리를 말하는 것인지, 질퍽하게 젖어 든 추삽질의 소리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 노력하며 고개를 빠르게 주억거렸다.

    “으,응! 들려, 들려요…… 흣!”

    흥분에 꺼덕이던 성기에서 사정액이 튀어 올랐다. 이훈의 이마에 얼굴을 기대고는 눈을 꾹 감고 있었기에 눈앞이 컴컴했으나, 아마 제가 안겨 있는 이훈과의 사이는 쿰쿰한 것으로 젖어 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팔에 힘을 줄수록 여름은 이훈에게로 붙었다. 이내 배가 맞닿았나 싶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여름의 몸은 뒤에서 박아 대는 이온 때문에 점차 위로 올라갔으나, 정수리가 침대 헤드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많이 풀어졌다. 엄청 넓어졌어, 여름아.”

    짐승처럼 허리 짓을 하던 이온의 움직임이 잦아들고, 그의 성기가 내벽에서 천천히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깊이 꽂힌 기둥이 뒤로 물러날 뿐, 여전히 성기의 반은 이온의 안에 박혀 있었다.

    유두를 희롱하던 이온의 손가락 하나가 유륜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같은 높낮이를 유지했다. 조금의 변화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이온이 여름의 귓가를 입술로 물고는 빨아올렸다.

    “아파도 입술은 깨물지 마.”

    이훈의 어깨에 품었던 고개를 들었다. 침대에 붙인 옆구리가 아팠다. 몸을 장시간 세우고 있었고, 그들과 연결된 아래에서부터 고통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창문은 여전히 빛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별이라도 있었으면 빛 한 줌은 보였을 텐데, 고통을 뚫고 보이는 시야가 어두워 아쉬웠다.

    여름은 몸을 잘게 떨며 그저 이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깨물지 않게 입을 살짝 벌리기도 했다. 거칠었던 이온의 움직임이 재차 시작될 줄만 알았다. 몰려올 쾌락을 예상하며 이훈의 품 안에서 덜덜 떨며 여름이 안일한 생각에 빠질 때였다.

    축 늘어진 성기가 꼿꼿하게 발기하고 여름의 잇새에서는 교성과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이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이훈의 어깨에 손을 짚어야 했다.

    “아, 아니, 흐, 아파…… 아파요, 아!”

    잔뜩 넓어진 내벽에 받아들일 수 없는 두 개의 성기가 맞닿아 들어오고 있었다.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혼미했다. 눈가가 아팠고, 목구멍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날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고, 고통도 함께였다.

    “어떻게, 흥! 아파, 아, 흐으, 으읏!”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여름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지 마.”

    이훈은 아이의 구멍 안에 성기를 밀어 넣으며 몸을 붙여 왔다. 뒤로 젖혀진 아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누가 보아도 눈물에 가득 잠식되어 버려 엉망이 된 여름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깨물지 않기 위해 벌린 잇새 사이로 부드럽고도 뜨거운 것이 들어왔다. 잔뜩 찡그려진 눈을 뜨니 큰형의 눈이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훈의 혀가 흥분으로 뭉쳐진 입 안을 가득 헤집었다.

    “움직인다.”

    이훈이 입술을 떼어 내고는 말했다. 교성과 비슷했던 신음이 잦아들고, 떨어진 입술에 따뜻한 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이온과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입술을 세게 깨물며 이훈의 어깨를 꽉 쥐었다.

    “형은 참 다정하기도 하지.”

    그들은 아이의 아래에 고환이 닿을 때까지 밀어 넣었다. 꽉 조여 오는 내벽이 강하게 물어 왔으나, 형제는 허리에 힘을 주고는 아이의 부드러운 살갗을 위로하듯이 매만졌다.

    “하긴, 형이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나는 여기서 동생한테 박는 형 노릇도 못 하고 있었을 테지.”

    꽉 들어찬 내벽을 향해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이온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정면에 있는 이훈의 눈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 역시 이온이었다. 이훈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변함없는 얼굴로 아이의 허리를 틀어잡았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거야?”

    지금까지 너를 충분히 봐줬으며, 배려해 줬다 하는 의미가 담백한 이훈의 말에 담겨 있었다.

    “여름아, 울어? 형이 나 구박하는데, 도와줘야지.”

    자꾸만 좁아지려는 내벽을 귀두를 비틀어 넓히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섹스를 하는 건 맞을까 싶은 형제의 일상적인 대화였으나, 쾌락에 머리가 잡아 먹혀 버린 여름은 정신을 겨우 붙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기에, 그들의 대화가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이온의 투정 어린 장난도 마찬가지였다.

    “흥! 아, 아아! 흣! 혀엉……!”

    신음은 점차 교성을 닮아 갔고,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아직도 울고 있었네, 후.”

    이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생긋 웃었고, 추삽질을 멈추고는 기둥의 뿌리까지 꾹 눌러 삽입하고는 비비적거렸다. 이후 사정을 하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의도하지 않은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아이의 등밖에 볼 수 없는 이온과 달리 여름의 얼굴 가까이 있는 이훈은 이온처럼 움직임을 멈추고는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여름의 뺨을 어루만졌다. 바로 옆에 보이는 이온과 너무나 닮은 피부와 얼굴은 저만의 착각인지,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일지 구분할 수 없었다.

    이훈은 가슴팍에 묵직하게 치미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여름의 입꼬리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아이는 눈물을 머금어 눈을 감은 채 뜨거운 숨을 뱉고 있었지만, 이훈의 눈은 여름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담고 있었다.

    이대로 뺨에 쥔 손으로 아이의 모든 것을 터뜨리고만 싶은 생각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흘러내리는 여름의 눈물을 손으로 지워 낼 때였다.

    이온이 사정 이후 기둥을 한 손으로 쥐며 아이의 내벽에서 빼내고 있었다. 여전히 꺼덕이는 성기를 위아래로 흔들며 잔여물을 빼낼 때였다. 이온은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아이의 한쪽 허벅지를 쥐어 잡아 위로 올렸다. 벌어진 구멍 사이로 튀어 오른 사정액을 흩뿌렸다.

    잔뜩 벌어져 이훈의 것과 연결된 구멍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백탁액으로 엉망이 되었다. 질퍽해진 건 여름의 내벽뿐만 아니라 바깥도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형.”

    그런 이온을 짜증스럽고 이상하게 볼 때였다. 이온은 무리하지 않고 입꼬리를 끌어 올려 몸을 일으키고는 이훈을 불렀다. 저절로 침대에 앉은 이를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아이의 새근거리는 소리는 귓가를 울렸다. 진작에 기절해야 했을 이였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버텼다 싶었다.

    “나는 왜 뽀뽀 안 해 줘.”

    “…….”

    “나도 형 동생인데, 응?”

    그렇게 말하며 이온은 침대에 한 손을 받치고는 누워 있는 여름을 너머의 이훈에게로 상체를 숙였다. 따뜻한 기운이 점차 가까워졌다.

    이후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형제에게 지쳐 잠이 든 여름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생긋거리며 웃은 이온도 그리고 그런 동생들의 형인 이훈도 지독하게 어두웠던 그날 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아침 시간이 되어도 다이닝 룸으로 내려오지 않는 형제들을 찾아온 윤 비서가 본 광경은 삼 형제가 애절하다 못해 죽을 듯이 서로를 끌어안고 잠이 든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

    “언제가 좋아?”

    수저로 김이 폴폴 나는 계란국을 휘저을 때였다. 여름은 어쩐지 허전한 배에 따뜻한 국을 원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옷이 가벼워졌다. 날씨에 버금가는 뜨거운 음식이 상 위로 많이 나왔다. 아이는 짧은 티셔츠로 드러난 팔에 뜨거운 그릇이 닿지 않도록 의식하며 조심하고 있었다. 뜨거운 계란국을 식히느라 그릇에 박혀 있던 시선이 이온의 말에 의해 서서히 들렸다.

    “여름이 네 친구, 명재 초대하는 거, 언제가 좋으냐고.”

    이온은 멍한 표정의 여름을 향해 젓가락을 부딪쳐 보였다. 그제야 여름이 아, 하고 떡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명재의 이름만 들어도 드리우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아무 때나, 그냥 빨리 보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여름은 정말 전부 괜찮았다. 당연한 것이 매일 같이 집에만 있는 여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온은 그러냐며 재차 식사하기 시작했다.

    “형도 계속 집에서 일하니까, 명재가 괜찮은 날이 있나 물어볼게. 빠른 날로 초대하자.”

    계란국을 휘젓던 여름이 숟가락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이 이렇게 간단한 걸까. 평소보다도 눈이 커진 모습에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명재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여전히 밝은 아이일 테지만 보지 못해 생겼던 아쉬움이 새로운 기대감을 만들어 냈다.

    가장 친했던 친구인 명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 날은 계란국을 속에 담은 그날 아침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독하게 더운 날이었다.

    “한여름?”

    “명재야!”

    여름은 평소와 너무나 다르게 커다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치며 문을 닫고 들어온 이를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명재는 단정한 하얀 반소매 셔츠와 함께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저에게 달려오는 여름을 마주 안았다.

    “잘 지냈냐.”

    응, 너무. 여름은 명재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날의 풀냄새가 그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건 여름 혼자였다. 그래서인지 명재를 맞이하는 건 여름뿐이었다. 아이는 그날의 기억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얼마의 인사가 끝이 나자 뒤로 윤 비서가 들어왔다. 아무래도 명재를 데려온 건 윤 비서인 모양이었다. 여름은 명재의 품에 안겨 어깨 너머로 윤 비서에게 끄덕하고 인사했다. 명재의 품에서 떨어지려는 참, 저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던 명재의 몸이 순간 굳었다.

    “여름아.”

    뒤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여름의 몸이 돌아가고, 명재의 고개가 올라갔다. 유난히 긴 이온의 다리에 그가 입은 바지 밑단으로 슬리퍼가 숨어들었다. 그는 여름의 앞에 도달해서는 자연스레 허리를 숙여 아이를 끌어안았다. 등을 두어 번 토닥이더니 제 옆으로 여름을 끌어왔다.

    “네가 명재구나.”

    웃음 짓는 이온을 보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건 명재의 몫이었다. 주변에 서 있던 윤 비서님은 이미 안으로 들어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들어와. 아직 점심 전이지?”

    이온은 여름에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저 멀리 보이는 다이닝 룸을 향해 걸었다. 그 뒤를 따라는 명재는 떨떠름한 걸음으로 걸으며 네, 하고 대답했다.

    복도라고 불릴 만한 곳을 거닐며 명재는 고개를 겨우 가눠야 했다. 정말 무식하게 큰 집이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어둠 하나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보육원과 너무나 다르게, 구석구석이 밝고 깨끗한 공간이었다.

    오늘 지난날의 친구인 여름의 집에 가서 그의 얼굴을 보고 밥 한 끼를 먹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침 근무를 하면서도 괜스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빠르게 퇴근하길 바라며 6시를 기다리던 중 점심시간도 채 되지 않아 누군가가 저를 찾으러 왔다.

    휴가를 쓴 것도 아니고 그저 안경을 쓴 사내와 팀장님이 함께 오셔서는 업무상 외근을 가라고, 그리고 바로 퇴근하라고 하셨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딱 보기에도 높은 직급의 남자를 따라나선 길이었다.

    서울 한복판의 높은 언덕을 오르고 오르니 저택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물 앞에서 내렸다. 남자는 제 당혹을 알아채고도 무시한 채 등을 떠밀기만 했다. 꽁꽁 닫힌 문을 열고 나니 여전히 하얗고 마른 여름이 튀어나와 저를 끌어안았다.

    잘 지냈냐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으나,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여름은 사람 하나를 커다란 회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당연하게 빼 올 수 있는 이와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제는 확실히 느껴졌다.

    그들을 따라가면서도 떨리는 손을 감출 수 없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쥐며 힘을 주어야 했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와 인상이었다. 익숙하다는 듯이 여름을 끌어안고 다정히 대해 주는 남자는 분명히 그 사람이었다.

    “여름아, 명재랑 같이 앉아.”

    “네.”

    복도를 지나다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니 또다시 커다란 공간이 보였다. 이온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이온에 고개를 끄덕이며 명재와 함께 빈자리로 가 앉았다.

    테이블의 차림은 상다리가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화려했다. 색도 종류도 다양했다. 명재는 여름의 옆에 앉으면서 입고 있던 셔츠를 가다듬어야 했다. 이유 모를 떨림은 두려움을 낳았으나, 들키지 않는다면 긴장에 그칠 사소한 감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저들이 들어온 문으로 들어왔다.

    “일은 끝나셨어요?”

    여름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들어온 남자에게 물었다.

    “아직. 밥부터 먹게.”

    그는 제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생긋 웃고 있는 남자보다 나이도 있어 보였으며 굵고, 단정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더욱 바른 이미지로 보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이훈은 여름의 머리를 한 번 툭 쓰다듬어 보이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테이블의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 이온을 시작으로 수저를 들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형제들과 점심을 나눠 먹는 것뿐인데도, 명재의 얼굴에서는 작은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려움을 함께했던 친구와 성인이 되어 만나게 된 것이나 보육원이 무너진 뒤에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으로 다가왔으나, 어쩐지 두려웠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가장 가깝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가. 순례대로 그의 장례식에 간 건 아니었으나, 당사자와 함께 같은 밥, 같은 반찬을 나눠 먹고, 같은 자리에 있었다. 두려움은 고통을 낳았으나 티를 낼 수 없었다. 가슴을 억누르며 또 누르며 입에 밥을 밀어 넣었다.

    “아, 이제 보니 명재가 기억나는 것도 같네.”

    “네?”

    “너희 보육원의 보호 종료 아이들을 인턴으로 넣은 게 나거든.”

    분명 감사한 일이었다. 저를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살려 준 사람이나 다름없었으나, 왜인지 저 웃음에 비소가 섞여 있어 공포감도, 기분이 내려앉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그때는 말씀 못 드렸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명재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명재와 당장 울 것 같은 눈으로 명재를 바라보는 여름을 번갈아 보던 이온이 고개를 잘게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이제 보니 이런 게 운명인가 싶기도 해서. 많이 먹어, 명재야.”

    그 이후 점심은 아무런 대화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중간중간 이온이 뭐 하고 사냐며 몸은 괜찮냐며 물어 왔으나, 여름이 걱정할 것 같아 보기 좋게 포장한 것 말고는 따로 나눈 대화라곤 없었다.

    점심 이후 이훈은 그가 나왔던 길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그 전에 여름의 뺨을 한 번 쓸어 보이고는 몸을 돌렸다는 게 명재에게 충격 아닌 충격이었지만 말이다. 이온은 여름의 방으로 향하는 명재와 여름과 함께 2층으로 올라왔다.

    여름은 당장이라도 제 방에 같이 들어오진 않을까 싶었던 이온이 순순히 재밌게 놀라며 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한 번 놀랐으나, 명재와 오래 묵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아 금세 놀란 눈을 지워 냈다.

    “어떻게 지냈어. 정말 아픈 곳 하나 없는 건 맞아? 일하는 건 어떻고, 괜찮아?”

    줄곧 앉는 테이블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여름은 지난날의 이야기도, 명재가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 친구를 만난 설렘을 쉽게 자제할 수 없었다.

    “너는 여기서 지내는 거야?”

    명재는 같은 의자임에도 왜인지 푹신하게 느껴지는 의자에 앉아 커다란 방을 둘러보았다. 꿈에만 그리고 티브이 속 드라마에 나오는 아늑한 방 같았다. 같은 곳에서 살아온 친구가 평생을 지낼 방이었다.

    “형들이…… 신경 써주셔서, 진짜 좋지?”

    “응, 진짜 좋네. 우리가 지내던 방보다 열 배는 큰 것 같다.”

    여름은 명재의 눈을 바라보며 맞아, 그랬지 하고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다. 보육원에서는 꿈도 못 꿀 커다란 크기였고, 깨끗했다. 명재는 여름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이 집 어딘가를 걸어 다녀도 느낄 수 있었다.

    “잘 지냈냐고 물었지? 생각보다 잘 지냈어. 그리고 네가 걱정할 정도로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뭘.”

    “그래도…….”

    “인턴으로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잘해 주시고 회사에서 내주신 숙소도 좋아. 다들 잘 지내고 있어, 물론 팀이 달라서 얼굴 보기 쉽지 않지만. 은영이 누나 기억하지? 그 누나는 아주 일 중독이 됐다니까.”

    명재는 억지로 떨리는 손을 꾹 누른 채 대답했다. 분명 명재가 전부 괜찮다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여름의 울먹거리는 표정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명재와의 사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무언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런데 한여름.”

    “응?”

    허벅지 위로 손을 꾹 누른 명재가 고개를 치켜들며 여름을 불렀다.

    “얼굴 봤으니까 난 이제 가 봐도 되냐? 일도 많이 밀려 있고, 남의 집에 계속 있기도 좀 그렇고…….”

    명재는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몸을 들썩이더니, 옆에 올려 둔 가방을 챙겨 들었다.

    “아…… 그래도, 과일… 과일이라도 먹고 갈래? 아직 1시간도 안 됐으니까…….”

    여름은 너무 아쉬웠으나, 명재를 대놓고 잡지 못했다. 남들이 들으면 아무런 이유 없다고 느껴질 만한 것으로 명재를 만나러 가지 못했으며, 결국 명재를 집에 불러야 했다. 시작부터 그에게 폐를 끼친 기분이었다.

    평일임에도 저를 보러 와 준 명재에게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아쉬움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으니 제 모습이 하찮고도 작은 먼지가 된 것 같아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고 명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여름 너 때문에 가는 건 아니고, 일이 있다니까.”

    명재는 여름을 잘 알았다. 그와 떨어져 지낸 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해 온 친구였기에 명재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여름은 분명히 제 탓이라며, 깊은 구덩이를 팔 게 분명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남에게 맞춰 지낸 사람일수록 그렇다는 걸 알고 있는 명재는 여름이 귀찮다기보다 안쓰러웠다. 지금 제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여름의 모습만 봐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하, 그게 아니라. 야, 한여름 고개 좀 들어 봐.”

    “내가 마중까지는 할 수 있는데, 같이 내려가는 건 괜찮지?”

    “이럴 줄 알았어.”

    명재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내리며 여전히 온기가 가득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너 때문이 아니라, 나는…… 나는 지금 너무 무서워서 더 이상 여기에 못 있겠어.”

    “……왜? 뭐가 무서워?”

    명재는 한숨을 겨우 내쉬며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입 밖으로 꺼내니, 정말 제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명재는 지금 공포에 떨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남이 보면 살인자라는 사람과 밥을 먹고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명재는 손바닥에 품고 있던 얼굴을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남이 들을까 봐 명재의 목소리가 삽시간에 작아졌다.

    “네 형이. 너희 형제들이 너무 무서워서 이 집에 1초도 있기 싫다.”

    “…….”

    “나도 원장님이 싫었는데, 왜 죽은 그 사람보다 죽인 네 형들이 더 무서운지는 모르겠다. 살아 있는 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겠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봐…….”

    명재의 말을 모르는 여름이 아니었다. 완전히 이해했고, 명재가 가진 감정 역시 알 것 같았다. 명재는 이번에는 정말 일어났다. 손에 쥔 가방은 회사에서 받은 것인지 때 하나 타지 않고 멀끔했다.

    “그러니까 먼저 가겠다고. 마중은 나오지 마, 네가 나오면 네 형들도 나올 거 아니야.”

    여름은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왜인지 명재가 바라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방문 가까이 다가가 문고리를 쥔 채 몸을 돌려 여름과 시선을 마주했다. 순간적으로 세상이 도는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그 짧은 순간 하늘에 빌었다.

    “여름아, 네가 말 좀 잘해 줘. 도망쳐 나온 우리들도 미래를 살아갈 수 있게.”

    “명재야…….”

    “그리고, 앞으로 연락은 하지 말아 주라.”

    잘 지내. 명재의 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슬픈 눈은 저에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명재가 나가고,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복도에서 점차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명재가 떠나고 있었다.

    당장 따라 나가 그를 붙잡고는 형제가 너에게 심어 준 공포는 내 탓이 아니지 않냐며, 왜 나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거냐고 묻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여름이 명재가 떠나간 자리에 앉아서 떨어지지 않는 눈만 비비적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명재의 공포는, 형제의 행동은 모두 저를 위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게 제가 형제의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이자 이유였다.

    게다가 명재가 지닌 공포의 원인인 형제와 평생을 살아갈, 그리고 지난 시간을 살아온 저가 감히 그를 붙잡을 자격이나 있었을까. 그의 겁이 이해되었다. 저 역시 이제는 명재를 따라 겁이 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명재는 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장님보다, 그런 원장을 죽인 제 형제가 더 무섭다고 했다. 그 뜻은 명재의 눈에는 ‘악’이라는 존재가 제 형들이라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아니다, 아니야. 여름은 그렇게 듣지 못하는 말을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뜨거워진 눈가를 가득 비비니 간지럽고 아팠다. 뜨겁게 타오르는 바깥과 달리 여름의 넓은 방은 차가운 기운이 맴돌아 너무나 추웠다. 아이는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어루만지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누웠다.

    이대로 이온이 들어와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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