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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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텃밭의 씨앗이 자리 잡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이제는 정말 이온의 방에 먼지가 쌓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활동 범위는 이훈의 서재, 그리고 여름의 방이 전부였다. 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소파에 편히 누워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이온은 배의 반동으로 벌떡 일어나 소파 헤드에 손을 짚고는 이훈을 바라보았다.

    ‘형 결혼해?’

    이온이 알아보기 힘든 여느 문서를 보던 이훈은 안경을 추켜올리며 정면에 있을 이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뭐?’

    ‘형 결혼한다는데?”

    이온은 보이지도 않을 작은 핸드폰 화면을 이훈의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벗는 이훈의 모습은 꽤 자연스러웠다.

    소파에 뒹굴뒹굴하며 숨 쉬는 것만으로도 방해하던 이온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익히 눈치챈 이훈이었다.

    ‘대외적인 거잖아.’

    이온이 읽고 있는 기사에는 상대가 누구인지 익히 적혀 있을 게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강제인지 우연인지, 어쩔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이유로 형제와 함께 커 오던 윤서는 결혼과 같은 대외적인 관계를 발표하는 상대로 적합한 이였다. 그녀에게나 형제에게나 좋은 계약을 따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은 딱 그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몰랐는데.’

    벌떡 일어났던 몸이 무색하게 재차 소파에 누워 버린 발을 동동 구르며 이훈에게 잘 들리도록 외쳤다.

    ‘따로 말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온은 늘 그랬다. 뭐든 알아야 했고, 공유해야 했다. 웬만해서는 자기가 알아내는 편이었기에 숨기고 싶어도 숨기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아아, 너무해라. 또 나만 형을 짝사랑하고 있었네.’

    그리고 헛소리를 잘 내뱉는 편이었다. 이온은 몸을 좌우로 돌리며 입 안 가득히 아쉬운 소리를 흘렸다. 소파가 들썩이는 모습이 새롭지만은 않았다.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올라가서 잠이나 자.’

    ‘그럼 약혼식, 뭐 이런 것도 하는 거야?’

    한이온은 노란빛이 도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어린아이나 입을 만한 잠옷들을 줄곧 구매해 직접 입으며 잠옷이 새로워야 기분이 좋다며 쓸어 모으던 때가 있었다. 옷 하나 안 갈아입고 눈을 뜨자마자 내려왔다는 걸 티 내기라도 하는 건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색의 잠옷이었다.

    ‘하자, 굳이 거창하게 안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 차 이사님이랑 여름이도 인사시켜 줘야지.’

    ‘진짜도 아닌 걸, 대체 뭐 하러.’

    ‘가족끼리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니까. 형도 여름이도 너무 솔직하지 못해.’

    소파 헤드에 가려 이온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들어 올린 다리가 리듬을 타고 있는 모습은 생생히 보였다. 이훈은 이온의 모든 걸 이해하기는 과정을 포기하게 된 지 꽤 됐다. 이미 이온을 되돌리기에는 꽤 많이 늦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훈이었으니 말이다.

    ***

    겨우 여느 기업 대표의 결혼 소식으로 나라가 떠들썩해지지는 않았다. 이훈의 변화는 인터넷 기사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소식 정도로 그쳤다.

    대충 지인들의 소개로 만났다는 한 줄의 소개와 함께 연을 이어 가고 있다는 말뿐인 기사는 그리 많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한다고 하니 그렇구나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현재 여름의 눈에는 겨우 결혼을 위한 만남을 가진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 그녀를 다루는 이온의 태도도 그랬다.

    “이제 그 놀이 재미없어, 그만하지?”

    “무슨 소리세요, 차 이사님. 많이 배고프신가 봐요. 쉼 없이 헛소리하시는 걸 보면.”

    “여전히 네 동생은 미쳤구나.”

    그녀는 팔꿈치로 옆에 앉아 있는 이훈을 툭툭 치고는 턱짓으로 이온을 가리켰다. 당장 싸움이라도 나지 않으면 다행인 분위기에 머리가 어지러운 건 여름뿐이었다.

    “빨리 밥이나 먹고 가.”

    이훈은 수저를 뜨며 그녀에게 말했다.

    “모처럼 결혼할 사이에 그런 섭섭한 말을.”

    “조금 전까지는 재미없다면서요.”

    받아줘도 뭐라 그러니, 그녀는 새침하게 대꾸하며 웃었다.

    타오르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컵을 쥐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던 여름의 손은 다소곳하게 모은 무릎 위에서 놀고 있을 뿐이었다. 소개팅이나, 주선 뭐 이런 걸로 만나신 줄 알았는데, 꽤 오랜 연인 관계였던 모양인 듯했다. 여름의 눈에는 그랬다.

    서로를 잘 아는 듯한 편한 분위기가 팔 끝에서부터 닿아 왔다. 이 자리의 이방인 자신이었다.

    “나는 차윤서야. 잘 부탁해 여름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너머의 여름에게로 손을 뻗어 왔다. 어찌나 먼지 허리를 잔뜩 숙여 최대한으로 뻗어야 했지만 윤서는 굴하지 않고 아이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저는 한, 한여름입니다.”

    여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잠시 멍해진 얼굴의 윤서는 여름의 손을 흔들고는 입을 가벼이 막아 보였다.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을 뿐 동공은 커지고 수줍다는 듯 볼이 발그레해진 그녀의 모습은 설렘 가득한 것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이온이가 이제는 얼마나 닮았는지도 신경 쓰기 시작했나, 어쩜 너희 형제랑 똑 닮았다.”

    편히 내려앉은 윤서는 옆에 앉은 이훈의 팔뚝을 툭툭 치며 밝게 웃었다. 식탁 앞에서는 늘 이온의 목소리만이 울렸다면, 오늘은 그녀의 말밖에 귓가에 맴돌았다. 이훈도, 이온도 그저 앞에 놓인 식사를 천천히 들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이는 긴장에 가득 잠식된 여름뿐일 게 분명했다.

    “언제든지 궁금한 게 생기면 물어봐, 이제 가족이니까.”

    국을 떠먹는 여름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이훈이 좋아하는 이와 결혼을 한다, 단 한 문장으로 끝날 일인데도 며칠 동안 간 머리를 찌르는 두통은 사라지질 않았다. 감정의 정의를 써 내리기엔 너무 늦었다 싶었다.

    약혼이라는 거창한 의미로 꾸며진 식사 자리는 생각보다 평탄하고도 조용했다. 가끔 이온과 윤서의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갔지만 차려진 것을 먹고 있는 이훈과 여름이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윤서는 꽤 여름을 귀여워했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대놓고 여름의 앞으로 밀어 준다든가, 오물거리는 볼이 갓 찐 만두 같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척 보아도 윤서의 시선 속에는 아이밖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 다음엔 어…… 뭐 결혼식 그런 거에서 만나든지.”

    윤서는 그렇게 말하며 이온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싶은 말을 건네는 것 같았으나 아이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네.”

    “그리울 거야.”

    여느 대사가 있는 건지, 당장이라도 여름을 끌어안을 것처럼 다가오던 윤서는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런 윤서가 아이를 껴안지 못한 건 딱 버티고 선 이온 때문이었다.

    윤서는 정원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면서까지 여름을 부르며, 이온을 흘겨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긴 시간 여름의 머리를 강하게 짓눌렀던 순간이 끝났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떠나는 윤서를 배웅하고는 형제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음에도 송곳으로 꾹꾹 찔러 대는 두통은 여전했다.

    윤서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다. 자연스레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태도에 감사함만이 가득해졌다. 이훈이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과 더불어 제 가족을 잃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은 셋이서 같이 잘까?”

    계단으로 향하는 복도를 거닐던 이온이 입을 열었다. 적막함이 맴도는 공간을 깨는 질문이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올린 여름과 달리 발걸음의 속도를 더욱 빨리했던 이훈은 금세 복도 끝에 있는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 앞에 남아 있던 건 이온과 여름뿐이었다.

    “또, 또 까칠해.”

    으으, 하고는 위로 올라가는 이온의 뒤를 여름이 따랐다. 늦은 오후에 시작되었던 만남은 땅거미가 내려앉고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끝이 났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온은 자연스레 여름의 방 앞에 서서 느리게 걸어오고 있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여름은 고개를 저으며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었다.

    “……저 오늘은 공부하다 자려고요.”

    분명 뒤 문장을 이어 가지는 못했으나, 오늘은 따로, 서로 다른 방에서 잠을 자고 싶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문에 기대고 있던 이온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생긋 웃는 얼굴은 여름이 보지 못할 표정이었다.

    “그래, 잘 자.”

    이온은 팔을 뻗어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짧은 순간의 심장은 여름의 귓가에 소리가 진하게 울릴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이유 모를 두근거림을 막을 수 없었다. 등에 두른 팔은 아이를 이온의 품에 가두게 했다.

    “조금만 하다 일찍 자야 해. 감시할 거야.”

    먼저 끌어안은 이온임에도 고개를 잔뜩 숙여 여름의 어깨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떨어지기 싫다는 듯 두른 팔에 힘이 떨어지지 않았다.

    “네, 형도 일찍 주무세요.”

    “응.”

    아이의 팔이 슬며시 이온의 등을 타고 올라가 천천히 쓸어내렸다. 싫다며 억지로 방을 밀고 들어오리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온은 금세 품에서 떨어져 나가 먼지가 쌓이고도 남았을 끝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 아이에게 인사를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름의 방은 여전히 넓었다. 줄곧 이온과 함께 씻어 왔던 날이 있지만, 그가 바쁠 때면 혼자 샤워하곤 하는 날 역시 익숙했다.

    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 한편에 앉아 있던 여름의 머릿속은 온갖 낙서로 가득했다. 혼란스럽다는 말만은 부조리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온과 약속한 시간마저 넘기고 늦은 시간에 자지 않을까 싶어 서둘러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이온에게는 분명 공부를 하다 자리라 이야기를 나눴지만, 여름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푹신한 이불 안으로 기어가 들어갔다. 느릿한 발걸음은 두통에 영향일 지도 몰랐다.

    이불을 두 손으로 쥔 채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두통은 피곤의 이유일지도 몰랐다. 몸을 내리누르는 무게를 덜기 위해 눈을 꾹 감았다.

    싫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뭐가 싫은 걸까, 무섭다.

    흰 바탕에 검은 글자들이 떠다녔다. 아이는 떨리는 손을 침대에 내리누른 채 벌떡 일어났다.

    정답을 알지 못했다. 연우가 주고 간 모의고사 답안지처럼 제 혼란스러움에도 해답이 필요했다.

    아이는 매일 신던 실내 슬리퍼도 내버려 둔 채 방문을 천천히 열었다. 이온과 일찍 자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늦은 시간까지는 아니었으니 괜찮으리라 믿었다.

    복도는 곳곳에 놓인 전등의 빛으로만 빛이 나고 있었다. 어딘가 홀린 듯 뜬 눈으로 복도를 거닐던 아이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비록 여름은 몰랐지만,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 채 얇고 살랑거리는 잠옷까지 입고 있었으니 그럴 만했다.

    늘 두 명분의 발걸음 소리가 나던 계단은 여름이 내려가고 있었음에도 적막이 돌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계단을 내려가느라,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면 몇 번이고 넘어졌을 머뭇거림이 이어졌다.

    계단에서 내려가 왼쪽으로 돌면 그의 공간이 나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서재의 문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조금도 없었다. 어두운 공간에서마저 보이지 않는 빛은 이훈이 서재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아이는 천천히 그리고 발걸음 소리를 삼켜 버린 채 서재를 지나쳐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이훈의 방문 앞에 섰다. 워낙 조용한 사람이었기에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지만, 빛은 이훈의 존재를 일깨우게 했다.

    여전히 추운 날씨가 지속하고 있었기에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온 여름의 맨발과 얇은 잠옷 너머의 팔이 선홍색으로 달아오른 뒤였다. 흔들리던 동공이 자리 잡은 건 그때부터였다. ‘왜 여기까지 왔지’ 하는 말을 입 밖으로 읊조렸는지, 생각만 했는지 모를 일과 함께 문에서 한걸음 멀어졌다.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문밖에서만 새어 나오던 빛이 어느새 눈가를 찌르고 있었다. 꽉 닫혀 열릴 줄 모르던 문이 활짝 열린 탓이었다. 안쪽으로 당겨 문을 연 이훈은 문가에 기대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아.”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 안 자?”

    복도의 빛이라고는 이훈의 방 안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아이의 뒷모습보다, 얼굴이 더욱 밝은 이유도 그랬다.

    “자, 자려고 했는데.”

    또다시 한 걸음 물러선 여름의 얼굴이 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훈의 차림을 보아하니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맨발에 금방 흘러내려도 할 말없이 크고 찰랑거리는 잠옷은 다 벗은 것보다도 못한 기분을 들게 했다.

    비록 이훈 역시 단정했던 정장을 갈아입은 뒤였지만 무채색 잠옷에 둘러진 긴 팔과 긴 다리는 자신과 비교하기 힘들게 멋져 보였다.

    “또 혼자 못 씻어서 온 거야?”

    이훈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여름이 무슨 이유로 1층까지 내려와 문 앞을 지키고 있었는지 눈치를 챘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그런 이훈의 행동에 당황한 건 여름뿐이었다. 아이는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들어와.”

    성인이 된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이훈은 여전히 여름이 가족끼리는 꼭, 무조건 함께 씻어야 한다는 말에 벗어나지 못한 채, 혼자 씻지 못해 저를 찾아왔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짧은 말과 함께 옆으로 비켜났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여름은 이훈이 나오기도 전에 방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런 그에게 잡히기라도 한 아이처럼 이훈의 턱짓에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방 안으로 느릿한 걸음을 뻗었다.

    여름은 허벅지까지 흘러내린 잠옷의 상의를 양손으로 쥐어뜯듯이 부여잡으며 슬며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여름을 지나쳐 방 안에 딸린 욕실을 향해 걸어가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는 건 이훈의 몫이었다.

    분명히 씻고 나왔는데, 머리끝이 여전히 젖어 있는데. 야속하게도, 이훈은 여름의 젖은 머리마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아이를 욕조 안으로 밀어 넣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붉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씻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듯한 이훈의 손짓을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름을 마른 수건으로 돌돌 말아 침대로 던지고 나서는 이제는 혼자 좀 씻으라며, 동생인 이온의 욕을 들먹이며 짜증 어린 화를 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아까 이미 씻었어요.”

    “뭐?”

    “……씻고 내려왔는데.”

    아이는 어느새 이훈의 침대에 누워 이불 밖으로 눈만 내보이고 있었다. 그랬기에 여름의 웅얼거리며 물리는 목소리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옷장 앞에 서 있던 이훈에게 들릴 리 만무했다.

    “크게 말해.”

    “……아니에요.”

    그는 넓은 방 한편에 놓인 옷장 앞에서 꿍얼거리는 여름의 말에 답을 해 주며 젖은 옷을 살피고 있었다.

    방금 갈아입었는데, 이미 다 젖어 버린 옷을 그대로 입고 잘 수는 없었다.

    이훈은 금세 위에 입고 있던 긴 팔의 티셔츠를 벗고는 깔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드러난 이훈의 맨살이 이불 속에서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나 있던 여름의 눈에도 확실히 보였다.

    그저 이훈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는 것뿐인데도 얼굴이 뜨거워지는 건 왜인지 모를 일이었다. 아이는 꼼지락거리며 이훈이 있는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누웠다. 여전히 머리가 젖어 있어 베개 온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이온보다야 작았지만, 이훈 역시 여름이 고개를 충분히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큰 키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곧게 편 허리는 신기할 정도로 길게 보였다. 그는 이전과 비슷한 멀끔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 가까이 걸어왔다. 아이의 귓가에 울리는 쿵쿵 소리가 점차 커졌다.

    “그래서 왜 내려왔는데.”

    여름이 이훈의 방에서 씻고 나면 피곤함에 절어 곧장 잠이 들거나, 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따라 멀쩡히 끔뻑이는 눈가 얼굴의 도는 핏기는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누워 있는 여름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눈이 사라지지 않았다.

    “안 올라가?”

    이훈이 앉은 자리는 방 한가운데 위치한 침대와 마주 보는 곳에 있는 작은 테이블의 의자였다.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는 납작 엎드려 있는 여름과 시선을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는 위치였기에 서로의 눈이 맞닿았다.

    테이블 위에 있던 태블릿을 집어 들고는 다리를 꼬고 앉은 이훈에 시선이 금세 떨어졌지만, 여름의 눈은 여전히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눈을 떼기 힘들었다. 당장에라도 왜 내려왔느냐는 이훈의 말에 대답할 변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 졸리세요?”

    “딱히.”

    그는 팔꿈치로 테이블 위에 올려 몸의 무게를 지탱하고는 태블릿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기에 밀린 회의록이나 확인할 참이었다. 물론 아이가 이 시간까지 잠도 안 자고 내려올 줄은 몰랐기에 시간이 생각보다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커다란 집에 커다란 방 한가운데 누워 있는 여름의 귀에 들리는 건 그 무엇도 없었다. 겨우 제 심장 소리와 가끔 들려오는 이훈의 태블릿을 터치 소리뿐이었다. 평소라면 그들의 대화가 끊기는 동시에 잠이 들었을 아이였지만, 오늘만은 왜인지 눈이 감기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나와.”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작스레 이훈이 태블릿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요를 뚫고 들린 그의 목소리에 몸을 잘게 떨고는 이불을 치우고 느릿하게 일어났다. 이유를 모르지만, 욕실로 들어가 이훈이 가지고 나온 것을 보고는 금세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훈은 욕실에 있던 드라이기를 가지고 나와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걸터앉아 있던 여름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젖은 머리가 베개를 다 적신지는 오래였다. 진작에 말렸어야 할 걸 이미 감기가 들었어도 진작에 들었을 타이밍이었다.

    여름은 당연히 제가 말려야 하는 줄 알고 손을 뻗어 드라이기를 받으려 했으나, 당연하게 자리 안 잡고 뭐 하냐는 식으로 쳐다보는 이훈의 모습에 눈치껏 움직였다.

    그는 침대 옆 협탁에 코드를 꽂고는 침대에 다리를 올리고 재차 앞으로 돌아앉은 여름의 머리를 제일 작은 바람 세기로 말려 주기 시작했다.

    “이런 얇은 옷은 버리지 그래.”

    그의 목소리를 막을 정도의 바람 세기는 아니었기에 위에서 들리는 이훈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 그냥 옷장에 있길래…….”

    추운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은 실크에 가까운 잠옷에 젖은 머리까지 오히려 감기가 들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아이가 입고 있는 옷들을 누가 사줬을지는 눈에 훤했기에 혀를 찼다.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드라이기의 바람은 묽은 기분은 부드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이는 왜인지 눈가에서부터 목 끝까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은 쪽으로 변해 갈수록 제 부끄러움과 어리석음이 선명히 느껴지는 법이었기에 더욱이 그랬다.

    “혀, 형…….”

    아이는 머리를 말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열었다.

    “왜.”

    “형.”

    이곳에 와서 형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횟수를 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만큼 여름에게 익숙하지 않은, 너무나 먼 단어였다. 아이의 용기는 기분이 물렁물렁하게 하는 바람 때문일 게 분명했다.

    “왜.”

    여름의 머리는 그리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았다. 이훈과 이온의 머리 길이 딱 그 중간이었다. 젖은 머리를 말리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드라이기에서 나오던 바람과 소리가 잦아들었다. 또다시 늦은 밤의 적막함만이 남았다.

    드라이기는 협탁 어딘가로 사라지고 여름의 마른 머리를 이훈의 큰 손이 쓸어내렸다.

    “결혼, 그, 결혼하시면…… 그냥 여기서 다 같이 살면 안 돼요?”

    침대 가까이 서 있던 이훈은 어느새 침대 헤드에 기대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고, 그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여름 역시 무릎을 세워 모으고는 이훈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앞으로 쭉 뻗은 이훈의 다리를 피해 앉은 여름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떨리는 손을 숨기려 세운 무릎을 꽉 끌어안았다.

    “……불편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굳이 나가실 필요는 없잖아요.”

    집도 넓은데, 여름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

    “…….”

    “저도 형을 좋아하고, 이사님도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전히 아무 말 않고 제 얼굴만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훈의 모습에 당장이라도 시선을 피하고 그의 방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름에게는 여전히 그의 해답이 필요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입이 가는 대로 많은 이야기를 뱉어 내는 도중 단단히 굳어 버린 게 아닐까 싶었던 이훈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좋아해?”

    “네?”

    “나를 좋아하는 거냐고.”

    이훈은 어느새 꼬았던 팔짱을 풀고는 앞으로 쭉 뻗은 다리를 교차시킨 채 침대 헤드에 편히 기대 있었다. 그런 이훈을 바라보던 여름의 얼굴은 특정 과일이 떠오를 정도로 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네. 그러니까 다 같이…….”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은 너무 쉬웠다. 그들의 가족이 된 이후로 매일 함께 밥을 먹고, 시답잖은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당연하다는 듯 서로를 기다리게 되며 매일 같이 좋아하는 마음이 자라고 또 자라왔다. 백 번을 물어도 백 번을 답할 수 있는 아주 당연한 질문이었다.

    “내가 안 했으면 좋겠어?”

    무얼 하지 않았으면 좋은지, 이훈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름 역시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좋아해?”

    여름의 눈이 잘게 떨렸다. 세웠던 무릎 사이로 아이의 얼굴이 사라졌다. 무릎에 얼굴을 품은 아이는 다리를 더욱 끌어안으며 움찔거렸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1층에 내려온 이유가 이훈의 입에서 나오니 마음이 불편했다.

    이훈의 말은 단조로웠다. 높낮이가 있지도, 그리 큰 목소리도 아니었다.

    이기적이다 못해 몸이 두 개로 나눠진 게 아닐까 싶은 이중적인 면모는 그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사라졌던 두통이 피어오르게 했다. 줄곧 이훈에게 말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처음 고요함 가득함 속의 텔레비전을 보았을 적부터 품었던 마음이었다.

    그가 영영 떠나 버릴 것만 같은 사실을 알아차리자, 편히 잠을 이룰 수 있는 밤은 오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그뿐이었음에도 이훈의 질문에 대답할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가족이라면, 그와 형제라면 당연하게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옳았다. 이훈이 다른 이와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에 대한 응원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인지 몰랐을 적의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눈만 내밀고 있던 모습 그대로, 무릎에 품었던 고개를 살며시 들어 정면에 있을 이훈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고개가 느릿하게 끄덕였다. 아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면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고요한 움직임이었다.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아이의 매일이 형제로 가득 차 버린 지는 오래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훈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려웠지만 당연했다.

    싫다고 해서, 입 밖으로 말을 꺼낸다고 할지라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오히려 학을 떼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아이의 두려움을 불러오기 충분했다.

    그러나 아이는 우물쭈물하는 입을 꾹 다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그를 귀찮게 했다는 사실로 질리게 만들었을 텐데도 거짓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여름은 이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

    “형이 몰랐네.”

    이훈의 목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그의 목소리의 줄을 매긴다면 늘 직진으로만 이어져 있는 단순하고도 긴 줄이었다. 다른 것에 관심을 쉽게 주지 않는 만큼, 높낮이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그는 웃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굳은 얼굴이었지만, 여름은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열이 오르는 얼굴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 좋았다, 가족이자 형인 이훈이 웃는 모습이.

    가진 것 없는 이가 가진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은 추운 겨울에 녹지 않는 눈덩이나 다름없었다. 작아질 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이리 와.”

    이훈은 쭉 뻗은 다리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지나가다 보아도 허벅지 위로 올라오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에 당황한 건 당연하게도 여름뿐이었다. 무릎 사이에 숨겼던 얼굴이 점차 올라오며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드러났다.

    솔직해야 하는 가족 사이에 그게 무엇이던, 왜 숨겼냐며 혼을 내려는 걸까, 아니면 네 따위가 뭔데 왈가왈부하냐며 학을 뗄 수도 있었다. 혼란스럽다 못해 가득하게 떠오른 상상들은 잊었던 두통을 인지하게 했다.

    입술이 잘게 떨리고 동공이 풀려 버린 여름의 모습은 작은 머릿속에 전쟁이 났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설명하고 있었다. 이훈은 참았던 한숨을 잘게 내쉬었다.

    “목소리 안 들리니까. 가까이 오라고.”

    “아…… 네.”

    아이는 어느새 무릎을 풀고 이훈에게로 기어갔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이의 눈은 여전히 맑았다.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여름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저 눈이 문제였다. 무해하고 때 하나 타지 않아 맑다 못해 빠져 버릴 것만 같은 호수 같았다. 늘 저 안에 들어찰 사람이라고는 저들밖에 없다는 듯 구는 모습이 같잖으면서도 웃겼다.

    “올라와야지.”

    이훈의 허벅지 부근까지 다가온 여름은 무릎을 꿇고는 제 형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올라앉느냐며 흔들리는 눈으로 묻고 있었다. 굴하지 않고 제 허벅지를 툭툭 두어 번 두드리는 이훈의 행동에 여름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그의 허벅지를 한 손으로 집고는 최대한 몸의 힘을 빼고 올라탔다. 다리를 한데 모아 앉아야 할지, 한쪽으로 모으고 올라타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이훈의 팔이 아이의 허리를 잡고 정면을 보도록 했다. 저절로 아이의 허벅지는 그의 몸을 가운데 두고 벌어졌다.

    양손을 아이의 허리에 집은 채 아주 살짝 높아진 여름의 눈을 마주하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형의 위에 올라타 있던 아이의 살짝 숙인 고개는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기 충분한 위치였다.

    아이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하나가 올라왔음에도 묵직함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가벼운 여름의 허리를 쓰다듬으니 힘이 가득 들어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이지 못하고 불편하게 앉아 있는 게 느껴졌다.

    “힘 빼.”

    “……뺀 건데.”

    이훈의 말에 아이는 허리를 굽혔다. 숨을 내쉬는 것이 힘을 빼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왜 이렇게 빳빳해. 이 정도면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여름의 등을 강하게 쓸어내리던 이훈이 툭 말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단단한 뼈를 긁었다.

    “병, 병원까지는…….”

    평소답지 않게 유치하게 구는 이훈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여름은 한숨을 삼키고는 그가 원하는 대로 몸에 들어간 긴장을 풀고 단단한 품에 기댔다. 말이 기댔다 뿐이지 이훈의 어깨에 고개를 살며시 품었을 뿐이었다. 서로의 시야가 변했다.

    빠르게 뛰는 아이의 가슴이 느껴졌다. 껴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세로 여름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여름을 더욱 가까이 끌어오기 위함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이훈이 아닌 것 같았다. 묵묵하기만 했던 사람의 다정함은 가슴에 해로웠다. 이훈이 부여잡은 허리 때문인지,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열은 무어라 변명할 수 없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부끄러웠다, 들키고 싶지 않아 비트는 허리를 막을 수 없었다.

    “말해 봐.”

    하필 잠도 오지 않았다. 졸음이라도 왔으면 멋모르고 잠이 들었을 텐데. 오히려 눈이 똥글똥글해지고 정신이 10시간도 넘게 푹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선명했다. 이훈이 무어라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네?”

    “왜 좋은지.”

    여름은 몸을 일으켜 이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농담을 하는 걸까 했으나 그의 표정에는 장난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왜 말을 하지 않느냐며 미간을 좁히는 모습에 당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못 해?”

    “…….”

    “그러면 여기는 왜 세우고 있는지, 그건 말할 수 있나.”

    그의 허벅지가 살며시 들썩였다. 그의 다리는 열이 몰려 있는 아이의 가운데를 툭 건드렸다. 곧장 이훈이 말하는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훈은 이유를 물어보고 있었지만, 여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 왜 이렇게 됐는지 몰랐다. 뭐라도 말하고 싶었다. 이훈의 손이 아무 말 못 하는 여름의 허리를 따라 내려갔다. 여름이 입은 얇은 잠옷은 이훈의 손짓에 따라 쉽게 구겨졌다.

    “입이 얼어붙었네.”

    이훈의 손은 어디에 가지 않고 아이의 잠옷을 헤집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맨 살갗이 느껴졌다. 잠옷을 타고 내려왔던 이훈의 손이 이번에는 아이의 살갗을 따라 올라갔다. 씻고 나온 지 꽤 됐음에도 차가웠고, 걸리는 것 없이 부드러웠다.

    “한이온이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아니, 왜…… 흐, 차가워요…….”

    그의 느릿한 감각이 몸이 쓸어내리고 있으니 의도치 않는 떨림이 몰려왔다. 자연스레 하반신에 힘이 들어갔다. 이래도 되나 싶어질 정도로 당겨오는 감각은 익숙하지 않았다.

    “차갑다고는 잘도 말하는데, 아까는 왜 대답을 못 했을까.”

    이훈은 집요하다 못해 끈질기게 물어 왔다. 옷 사이로 들어온 이훈 때문에 비틀거리는 몸이 중심이 잡히지 않아 양손을 뻗어 그의 어깨에 올려 지탱했다.

    “그 입으로 지금부터는 내 마음에 들 것 같은 말만 해 봐.”

    “……네? 무슨…… 흐읏!”

    여름의 가슴팍 부근을 잡고 있던 이훈의 양손이 동시에 아이의 가슴을 쥐어짰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쇳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건 별로 마음에 안 드는데.”

    그는 아이의 몸을 조몰락거리면서 대게는 무슨 말이냐, 왜 이러냐 등의 말이 여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도톰하게 달아오른 아이의 유두를 꼬집거나 잔뜩 달아오른 하반부를 허벅지로 비벼 가만히 있지 못하게 굴었다.

    어쩌면 이온보다도 더 유치한 행동에 여름의 입이 꾹 다물렸다. 이해할 수 없는 이훈의 행동에 왜 그러는 거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또다시 희롱당할 게 분명했기에 입술을 앙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에 따른 벌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훈이 다시 물어 온다고 할지라도 대답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질문과 동시에 가득 쏟아져 내린 어지러움은 입을 꾹 다물게 했다.

    아무 말 없이 그를 감내하려 고개를 뒤로 젖힐지라도 이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럴 거면 말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막무가내였다.

    “으응…… 흐응…….”

    고개를 느릿하게 저으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가고자 했지만 이미 아이는 남자의 다리 위에 앉아 있었으며, 강하게 부여잡은 힘을 이길 수 없었다.

    “왜 말을 안 하지.”

    “……흐으.”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주무르던 여름의 가슴은 다행히도 선홍색으로 붉어졌을 뿐. 아이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길고, 두꺼운 손가락은 동시에 양쪽 유두를 꼬집었고, 언제 부풀어 올랐냐는 듯 자취를 감추기 위해 문질렀다.

    “갓 태어난 새끼처럼 울기만 할 거야?”

    “……아, 흐으…… 파요, 아파요…….”

    가슴이 붉게 달아올랐던 것과 별다르지 않게 변한 아이의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물이 들어찰 것 같았다. 이훈은 아이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인제 보니 여름은 학습 능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닌 듯했다.

    이훈은 그의 빗장뼈 근처로 올라가 있던 잠옷을 더욱 들어 올려 아이의 입가로 가져갔다. 자연스레 벌어진 여름의 입에는 잠옷이 물렸다. 그러고는 가슴께를 쓰다듬던 손이 허리로 내려가 아이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제 위에 앉아 있던 동생의 붉은 가슴이 눈앞에 있었다.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배덕감은 이훈을 설레게 했으며 동시에 재미있었다.

    이훈은 아이의 가슴께 가까이 얼굴을 가져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여름은 울먹거렸고, 당장 눈물을 흘린다고 할지라도 그러려니 할 만한 얼굴이었다. 단숨에 잡아채 뭉개고 싶은 기분은 이훈의 것이었다.

    “내가 좋아할 만한 말을 찾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모양이네.”

    “아, 아…… 따가워요…… 흐으, 흣…….”

    이훈은 한 손으로는 아이의 한쪽 유두를 눌렀고, 다른 쪽은 혀를 내밀어 핥았다. 이유는 없었다. 다디단 과실을 먹어야 한다는 유혹은 이겨낼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따갑다는 말을 내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으응……, 응, 흥……!”

    아이는 하고자 하는 말을 삼켰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신음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아이의 가슴 한쪽을 입 안에 넣고 숨을 들이마셨다. 사라질 때까지 빨아올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는 쉽지 않았다.

    춥춥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아이 고개는 알 수 없는 쾌락에 뒤로 젖혀지며 가슴을 활짝 폈고, 이훈은 기회라는 듯 혀로 원을 그리며 과실을 따냈다.

    너무 따가웠다. 스치기만 해도 뒤통수가 아릴 정도로 따갑다고 말하면서, 그만하라 애원하고 싶었지만, 이훈에게 통하지 않았다. 애당초에 아프다는 이유로 멈춰 줄 사람이라면 가슴이 붉어지기도 전에 그만뒀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훈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무섭게 다가왔다.

    도망가려는 아이를 강하게 부여잡았던 손이 작은 몸의 꼬리뼈를 지나쳐 아이의 잠옷 사이로 들어갔다. 살이 통통히 오른 둔덕이 손바닥 한가득 잡혔다. 온갖 살이 모여 있는 듯한 곳을 터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강하게 쥐어짰다.

    “읍…… 으…….”

    가슴을 건드리던 손이 사라졌지만, 그의 옷에 스치며 피어오르는 따가움은 여전했다. 아이는 이훈이 제 안으로 손을 넣는 것도 모른 채 고통도 쾌락도 아닌 것을 참아 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둔덕 사이에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 열이 잔뜩 모인 아이의 앞을 만져 줄 생각은 없었다. 지난날처럼 빠르게 풀어 주고 내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쁜 말 하나 못 하는 아이의 바람을 들어줄 이유도 없었다.

    “숨 쉬어.”

    길을 따라 내려간 이훈의 손가락은 여름의 회음 부근을 문지르더니 작게 나 있는 구멍 틈으로 들어갔다. 갈고리 모양의 손가락은 구멍을 살살 긁기 시작하며 점차 마디마디가 구멍 안으로 사라지도록 힘을 주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몸이 이훈에게로 쓰러졌다. 버둥대며 벗어나기만을 바랐던 몸이 아래가 꿰뚫려서일까, 남자에게 살려 달라는 듯 매달렸다.

    “왜, 왜…… 갑자기, 읏!”

    이훈의 손가락이 여름의 내벽을 긁으며 점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길을 넓히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이훈의 입장에서는 그랬다.

    “흥, 읏, 아…….”

    당장에라도 이훈의 어깨를 깨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쓸 곳 없는 말을 하지 않으려 입을 꾹 다물었지만, 갑작스레 이루어진 이 상황에서 노력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익숙해 보이네.”

    “흐, 흐으…….”

    “둘이서 별 이상한 걸 다 하고 있었나 봐.”

    한이온이 제 방에서 자는 꼴은 본 적이 언제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만 봐도 그랬다. 언제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이를 공주님 안기로 1층에 내려온 적도, 서로 같은 잠옷을 위아래로 나눠 입고는 복도를 거닐어 뒤늦게 알아챈 아이를 당황하게 한 적도 있었다.

    이온이 데려온 아이를, 이온이 아무 짓도 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별 같잖은 이름을 지어 데리고 놀고 있을 줄은 몰랐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허리에 두른 손에 힘을 주고는 끌어당기기만을 계속했다.

    “한여름.”

    이훈의 손가락 하나가 새롭게 구멍을 파고 들어갔다.

    “여름아.”

    “으, 흐으, 네에?”

    “이건 검사도 놀이도 아닌데, 어떡하지.”

    두 손가락은 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딱 붙어 여름의 구멍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들락거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에 두른 여름의 팔이 진동하며 떨리고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너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만 신경 쓰면 돼.”

    그래야 이 거슬리는 기분이 사라질 것 같으니까. 이훈의 낮은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려왔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절로 나던 내벽에서 이훈의 손가락이 빠져나왔다. 그 손으로 여름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잡아 단숨에 끌어내렸다. 무릎과 발목에서 걸렸지만, 힘을 주어 끌어당기니 금세 하반신이 나신 상태가 될 수 있었다.

    앞이 너무나 간지러웠다. 당장이라도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손을 풀어 아래를 갈증이 해소될 때까지 긁고 싶었다. 그러나 이훈의 품 안에 가로막히듯 안겨 있는 여름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눈을 꾹 감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도록 입술을 깨무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훈은 고개를 살며시 내려 아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제 품의 아이는 안쓰럽다 싶을 정도로 떨고 있었다. 아이의 처음도 그랬다. 자신을 쳐다보는 모든 이가 저를 해할 거라 생각하는지 눈가를 붉히며 살려 달라 애원했다. 외려 그런 얼굴에 가학심이 치밀어 오른다는 걸 모르는 게 확실했다.

    얼굴을 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훈은 여름의 등을 더욱 제 쪽으로 끌어오며 회음부를 문질렀다. 바르르 떠는 여름의 얼굴을 보았다면 당장이라도 처박고 이온보다도 더 못한 짓을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회음부를 타고 들어간 구멍은 꽤 많이 헤집어 놓았지만 뻑뻑했다. 작은 구멍에 길을 내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여름의 안에 들어가는 손가락에 조임을 느끼며 잘게 떨고 있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 안으로 한이온이 오갔을 생각을 하니 궁금증이 치밀었다. 왜, 어떻게, 서로는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했다.

    제가 키우다시피 함께 살아온 이온이었다. 좋다는 감정도 밉다는 감정도 들지 않는 그저 당연히 함께하는 당연한 존재가 이온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이온의 누굴 만나고 누구와 섹스하는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름은 달랐다. 제 형제들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사이에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감정이 궁금했다. 언젠가 그들을 볼 수 있으리라는 예감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훈은 아이의 내벽에서 빠져나온 손으로 필요한 만큼의 바지를 내려 한 손으로 제 기둥을 쥐어 잡았다. 그리 많은 시간을 소요할 필요는 없는 듯했다. 물론 제 품에 안겨 고개가 어깨에 붙어 있기라도 한여름은 모를 일이었다.

    “빨리 생각해.”

    “흐, 잠,깐 만요……. 으, 아!”

    이미 가까워진 몸을 겹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벼운 여름의 몸을 살짝 들어 구멍에 맞춘 뒤 힘을 주어 내벽을 뚫으면 끝날 일이었다. 즐기는 쪽은 이훈의 노력에 달려 있었다.

    귀두가 살며시 아이의 안을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입에서 새된 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훈이 여름의 겨드랑이 부근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끌어내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후, 울지 마.”

    어쩐지 울지 말라 이야기하는 이훈의 목소리는 이온과 닮아 있었다.

    “아, 파, 너무 아파……요, 흥! 흐응……!”

    “네 거 쥐고 흔들든가. 그럼 안 아프겠지.”

    그의 말에 여름은 홀린 듯 손을 제 성기 가까이 가져갔다.

    이미 이훈의 손가락에 놀아날 때부터 아랫배를 툭툭 치다시피 꼿꼿하게 서 있던 여름의 것을 쥐는 손은 처음으로 작았다.

    매번 형제의 큰 손이 아이의 것을 쥐고 풀어 주었다. 형제의 음험한 욕망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형제에게 제 행위를 대신해 주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랬기에 처음으로 제 성기를 쥐는 손은 어딘가 어색했다. 그런 아이에게 쥐고, 흔들면 아프지 않다는 말은 말간 사정액이 튀어 오를 때까지 흔들기는 망설이지 않게 했다.

    “아, 파요……. 형, 흐응, 천천, 히…….”

    “말 안 듣는 거까지 한이온을 닮으면 어떡해.”

    그제야 여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훈이 좋다고 하는 말만을 내뱉어야 한다는 걸 계속해서 잊어버린다. 그러나 잇새로 튀어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 없었다.

    “……으, 흐으.”

    “힘 좀 빼, 아프다는 것치고는 이미 아래를 다 씹어 먹고 있잖아.”

    아이는 이훈의 힘으로 허벅지에 내리 앉았고, 이훈은 하반신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접합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진 둘의 거리는 이훈의 것이 모조리 안으로 삽입되어 들어갔음을 의미했다.

    여름이 계속 쥐고 흔들던 성기에서 말간 사정액이 튀어 오름과 동시에 이훈이 위로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이훈의 목에 둘렀던 팔에 힘이 들어가고 불안정한 몸이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응! 흐, 흣! 아, 아!”

    작은 욕망에서 피어올랐던 호기심이었다. 또한 이온의 애정에서 나온 여름과의 만남이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인데, 이훈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이 안에 제 씨를 잔뜩 흩뿌려 엉망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맹목적인 애정을 모르지 않았다. 부모도 이끌어 줄 어른도 없는 썩어 빠진 보육원에서 자랐을 테니 여름의 안이 얼마나 뭉그러져 있을지는 눈에 훤했다. 그렇다고 아이의 부족함을 채워 줄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굳이 다짐할 필요도 없었다.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정말 그러리라 생각했건만.

    “울어?”

    “아, 응! 흥…… 제, 발 천천, 흐읏, 천천히…….”

    이훈의 목소리에서 숨소리가 가득 담겨 들려왔다. 허리를 들어 치며 내벽을 뚫는 감각은 여름의 머릿속을 쾅쾅하며 울렸다. 여름의 입은 계속해서 멈춰 달라는 말의 반복이었으나 이훈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위에도 울고, 후, 아래도 울고.”

    그만하고 싶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이훈의 품에 달라붙어 울고 있었다. 아이의 성기에서 나온 사정액은 이미 여름의 배와 이훈 사이에 범벅되어 엉망이었으며 젖었다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했다.

    “그만하고 싶으면 대답해야지.”

    위로 튕겨 올리며 차고 올라오는 이훈의 성기는 여름의 아랫배를 볼록하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쾌락에 잠식된 상태로 이훈이 원하는 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혀어엉…… 흣!”

    “왜.”

    여름은 이훈의 목에 둘렀던 팔을 어깨에 올리고는 몸을 살며시 일으켜 세웠다. 남아 있는 힘을 전부 사용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는 눈물에 흐려진 눈을 두어 번 끔뻑이고는 제 앞에 있는 이훈을 정확히, 그리고 빤히 바라보았다.

    이훈에게 꿰뚫리는 여름에게 흔들리는 머릿속을 부여잡고 생각할 겨를이라고는 없었다. 그가 좋아하는 말을 알고 있을 리도 없었다. 아이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쾌락이 아팠다.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은 감각이었기에 이훈에게 그 무엇의 말이라도 해야 했다.

    “좋아, 흐응, 좋, 아해요…… 읏!”

    그래서 여름은 이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쾌락에 흔들리는 말이 우스꽝스러웠겠지만 말이다.

    이훈이 아이의 안에 짧은 사정을 한 건 여름의 말이 끝나고서였다. 아이의 허리에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비었던 안이 끈적한 것으로 가득 채워져 가고 있었다.

    “알고 있었네.”

    이훈은 제가 원하는 말을 아이가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이라 믿었다. 줄곧 안으로 숨기는 게 많은 아이였다.

    여름의 배가 이훈의 사정으로 따뜻해지며 몸이 원치 않게 떨리기 시작했다. 분명 안쓰럽게 떨고 있는 여름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훈의 허리 짓은 멈추지 않았다.

    “응, 으! 하, 아! 아…….”

    이훈의 움직임과 동시에 아이의 입에서 교성이 튀어나왔다. 타액이 흘러나오며 눈에 힘이 들어갔다.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이 불편했지만, 이유 모를 쾌감이 더 컸다. 교접부를 바라보고 싶었으나 이훈의 힘을 이겨 낼 자신도 체력도 없었다.

    “좋, 아! 아, 으, 흥!”

    “좋다는 말, 잘하네.”

    이훈은 흘러 내려온 아이의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다정했으나 표정만큼은 깨지지 않는 유리와 같았다. 단단하고도 차가운 기운이 보기만 해도 느껴졌으니 말이다.

    이훈과 관계의 이름을 찾지 못하는 건 흔들리고 있는 여름이었다. 왜, 무슨 이유로 검사라 불리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지. 넘어지지 않으려 이훈을 강하게 붙잡는 여름의 손은 하나뿐인 동아줄을 부여잡고 있는 절벽의 이방인 같았다.

    유일한 가족이자 형제인 이훈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게 싫었다. 단지 그 마음 하나로, 다 늦은 저녁에 충동적으로 내려온 그의 방이었다. 부끄럽고 창피했으나, 후회는 없었다. 이훈과의 마지막이 쾌락의 관계가 전부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여름은 이후 앞섬이 젖었나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사정했고, 또 깊은 감각에 빠졌다. 중간마다 수마에 빠져든 것과도 같았지만, 흔들리는 아래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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