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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의 얼굴이 뉴스에 나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당연한 일에 여름의 일상은 아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식사하고 모의고사를 풀다 보면 과외 선생님인 연우가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장님? 회장님? 뭐라고 호칭해야 할지, 아무튼 곧 결혼하시는 거야? 어제 뉴스 봤어. 인터넷에도 떴더라.’
연우는 중간에 올려 주신 과일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한 적이 많았다. 미적분 문제의 답도 비문학의 정답도 가끔은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부끄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왜인지 이훈에 대한 질문에는 순간적으로 달아오르는 눈가를 느꼈다. 열이 오르고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그녀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과일에 집중한 덕에 되지도 않는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됐기에 다행이었다.
‘……아마도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약혼은 애초에 결혼을 위한 절차나 다름없었다. 이미 그룹의 회장씩이나 되는 이훈이 약혼한다는 뉴스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결혼하리라고 당연히 정의 내린 뒤일 게 분명했다.
여름은 결국 그녀에게 확신의 대답을 하지 못했으나 이미 그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따로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다행히 연우의 관심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녀와는 수업을 곧장 시작했고, 다른 과외들도 이렇게 긴 시간을 수업하나 싶은 정도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야 이온의 괴롭힘이 들어왔다.
짧지 않은 하루는 매일 쳇바퀴를 돌 듯 돌아가고 있었다. 변화가 없는 게 아니었다. 알아채기 싫어질 뿐이었다.
여름은 이온이 방 안에 없어야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과외 시간 동안 할당량을 채웠다는 말과 함께 건강을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입에 발린 말이 여름을 책상과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다.
여름은 책상 한구석에 놓여 있는 달력을 집어 들었다. 이훈의 약혼식이자 그의 상대인 차 이사님이 집에 오는 날은 일주일 가까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약혼식의 ‘약’ 자만 들어도 손이 잘게 떨렸다. 그녀를 마주할 생각에 손이 떨리는 건지, 다른 감정에 잠식되어 버린 건지 구별할 수 없었다.
여름은 조심스레 펜을 집어 들고는 ‘26’ 이라 쓰여 있는 숫자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필 빨간색의 펜인 탓에 색 없던 달력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 되었다.
입을 만한 옷은 있을까, 혹시나 주워 온 이방인이라 싫어하시면 어쩌지 하는 생각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돌 것 같았지만 이제는 숨을 곳도, 물러날 수 있는 자리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 띄기 싫었다. 오직 형제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삶이 안온했다. 여름에게는 헬퍼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라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훈의 상대라면 새로운 가족이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건 달랐다.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지 않았으나 제 준비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름은 동그라미 친 ‘26’의 숫자 위에 더욱 동그라미를 덧붙이며 색을 더했다.
“뭐 해?”
그때 바로 뒤에서 들리는 이온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력을 책상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
“……아.”
이온은 여름이 던진 달력을 집어 들었다. 금세 얼굴이 붉어진 여름은 되지도 않는 팔로 달력을 빼앗으려 했으나 의미 없는 허우적거림이었다. 그는 달력을 빤히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요즘 시대에 무슨 약혼을 하겠다고. 그냥 형이랑 결혼할 사람이랑 편하게 밥 먹는다고 생각해.”
약혼이라는 말이 어색한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온의 뒷말이 더욱 아이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기 쉬운 말이었다. 이온은 습관처럼 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으켰다.
“좋은 날이잖아.”
“……네.”
뚫릴 듯한 이온의 시선에 곧게 대답했다. 여름의 쉽게 풀리지 않는 표정을 바라보던 이온은 아이를 다이닝 룸으로 끌고 가 친히 의자까지 빼 주었다. 이모님이 찻주전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계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온과 여름은 그녀를 맞이하고는 서로 눈을 마주하고 앉았다.
빈 잔에는 뜨거운 연기가 가득한 붉은 차가 채워지고 있었다. 너무 붉지도 너무 연하지도 않은 색은 찻잔 너머에 있는 것들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근데 작은 사장님. 앞에 기자들이 많던데, 괜찮아요?”
“기자들이요?”
찻주전자를 작은 수건으로 닦아 내며 제 자리에 내려놓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 시꺼먼 차들이 아주 진을 치고 있더라고요. 한두 대가 아니야, 딱 봐도 기자들이지.”
“그래요?”
아침 일찍 출근하는 그녀였지만 이미 새벽부터 차를 끌고 와 지금까지 자리를 잡고 있던 이들이 기자라는 사실을 구별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차에서 나와 커다란 카메라를 정비하던 이들도 삼삼오오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전부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윤 비서한테 말해 놓을게요. 이모님도 퇴근하실 때 조심하시고요.”
“그럼요. 이 집에서 일한 게 몇 년인데.”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웃어 보이고는 가져온 쿠키를 테이블 중간에 놓고는 조심스레 다이닝 룸을 벗어났다.
“요즘 세상이 무섭네. 그렇지?”
찻잔을 입술에 대고 있던 여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라는 사람들이 집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마 지난날의 뉴스 때문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이훈은 출근한 지 오래였고, 저녁이 지나서야 돌아온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진이라도 찍으려는 건지 떠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름은 팔을 쓸어내리며 무섭다는 듯 눈꼬리를 내린 채 입을 쭉 내밀고 있는 이온을 바라보며 뜨거운 차를 홀짝였다.
그의 입에서는 대부분 무섭다며, 여름이 네가 지켜 줘야 한다는 등의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여름은 그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매일 함께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따라 빠르게 식은 차가 야속했다. 뜨거운 물이 필요했지만 부탁할 이모님도, 뜨거운 물을 가져올 만한 곳도 몰랐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이훈을 이온과 함께 기다렸지만, 여름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기 시작할 때까지 이훈이 퇴근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일이 길어지는 모양이다.
이온은 아이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하자 안아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아이의 고집으로 1층에서 제 형을 기다리느라 괜한 시간을 허비했기에 발걸음은 보다 빨라졌다.
“자지 마.”
한 손은 아이의 어깨를 다른 손은 오금을 지탱하여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이온은 고개를 살며시 숙여 잠들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셨어요?”
아이는 웅얼거리며 기다림의 시간만큼 이훈이 집에 왔느냐고 물어 왔다. 제 모습이 어떤지도 모르고 눈을 비비며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이훈을 찾고 있었다.
“아니, 아직. 아무래도 차 이사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야.”
“……정말요?”
“응, 이렇게 안 올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들려오는 긴 숨소리와 이온의 말은 여름이 고뇌를 더 하게 했다.
이온은 살짝 열려 있는 아이의 방을 발로 차 활짝 열고는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여름은 여전히 눈앞이 흐린지 이온에게 들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아무래도 결, 혼하실 분이니까.”
결혼이 아니라 약혼이었지만 여름에게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이의 얼굴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물기가 서려 있었다. 더 찌른다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물방울 같았다. 이온은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는 그 옆에 걸터앉았다.
“또 울려고 하네.”
“……아, 니에요.”
그는 반항 어린 눈으로 치켜뜨더니 이온이 보이지 않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온은 단숨에 아이의 등밖에 보이지 않게 되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밖으로 뱉지는 않았다. 여기서 더 삐쳐 버린다면 풀어 주기 곤란했다.
이토록 일이 틀어지지 않은 적이 있었나. 한여름은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예상하는 길로 흘러가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뿌듯함을 넘어서 신기했다. 생각했던 대로 행동하고 그렇게 굴고 있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울었어?”
이온은 그렇게 말하며 여름이 돌아누운 탓에 생겨난 빈자리에 아이와 같은 자세로 누웠다. 그러고는 양팔을 여름의 허리에 둘러 휘어 감았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어른의 온기에 흠칫 놀랐지만, 여름은 말을 뭉그러뜨렸다.
“……네. 울지는 않았어요.”
이온은 늘 그랬다. 이 집에 온 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신을 여전히 어린아이로 보고는 울지 말라는 말을 습관처럼 뱉었다.
불만스럽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울보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여전히 그의 품은 따뜻했기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랬구나. 형이 착각했나 봐.”
그는 여름의 등에 얼굴을 묻고는 비비고 있었다. 아이의 뽀얀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들이마실수록 갈증이 났고 부족했다. 이 정도면 금세 뒤돌아보고는 괜찮다고 하리라 생각했지만, 이온의 눈에는 작고 왜소한 아이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점차 화끈해지는 여름의 몸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금세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울지 않는다면서, 이온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동시에 고개를 들고는 아이의 어깨에 턱을 받쳤다. 허리를 두르고 있던 손 역시 가슴팍을 위로하듯 문지르고 있었다.
“왜 울어?”
아이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입을 앙다물고 잘게 떨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얼굴을 빼내어 아이를 바라보니 뺨을 가르고 흐르는 방울이 보였다.
입 밖으로 꺼내 웃고 싶었지만 이미 토라진 아이를 더욱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 채 그의 몸에 제 몸을 착 붙이고 누운 이온은 여름의 귓가를 입술로 문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귓불을 입술로 물어 건드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어도 여름은 고개를 돌리는 법이 없었다.
“……안, 울어요.”
“그래. 또 안 울었네.”
부정하는 아이의 입에서 물기가 묻어 나왔지만, 이온은 웃음을 참아 내는 데 신경 쓰기도 바빴다. 여름은 눈을 질끈 감고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여름의 품 안에서 잠을 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이온의 입에서 나온 말에 졸음이 가신 지 오래였다.
귀를 가득 세워 방문 밖에 집중했지만 이미 2층에 올라온 이상 이훈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 ‘결혼을 약속한 상대’분과 계신 걸까. 여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분명 좋은 일인데 조금씩 회복되지 않는 기분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름은 몸에 힘을 풀고는 뒤에서 저를 안아 오는 이온에게로 몸을 편히 기댔다. 이미 혼란스러울 대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눈을 꽉 감아 어둠에 갇혔으나 갑작스레 느껴지는 감각에 여름의 눈이 다시 동그랗게 뜨였다.
이온이 잠옷 안으로 손을 넣어 온 것이었다. 느릿한 손은 배를 쓸어 올리며 점점 위로 올라왔다. 팔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온은 다른 손으로 아이의 잠옷 바지를 한꺼번에 내려 벗겼다.
단숨에 일어난 일에 여름은 어안이 벙벙하여 시선을 뒤로 돌리려 했으나 목덜미에 맞대고 있는 이온의 입술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이의 앓는 소리는 허벅지를 맞댄 채 몸을 웅크린 입에서 새어 나왔다.
“형, 형…… 뭐, 해요.”
“서운해?”
그의 양팔에 포박되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여름의 몸이 단숨에 굳었다. 하반신이 공기에 훤히 맞닿아 있음에도 멀어진 여름의 귓가에는 이온의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울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이온은 알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 알 수 없는 기분의 이유가 서운함이었을까. 서운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감정이었다.
이훈과 가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길을 걷는 도중에 저 멀리 사라져 버린 그를 찾는 길로 빠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배우자가 생긴다는 일은 축하해 마땅한 일이었다. 이훈에게 결합의 상대가 생겼으니 앞으로는 주워 온 고아 따위를 돌아보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헤집어 미운 감정까지 들었다.
애써 억눌렀지만 이미 한편에 자리 잡은 이를 끌어당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리가 지끈 아파 왔다. 저를 바라보던 이훈의 모습이 조각나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그 가운데에는 불에 타 무너지고 있던 보육원의 모습이 있었다. 처음 보는 불의 색은 강했고, 무서웠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란 그랬다. 힘든 일에 끼워 팔아 떠오르는 거머리 같은 환상 말이다.
그 무엇도 떠올리기 싫었다. 차라리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싶었다.
이온은 여전히 여름의 목덜미의 입을 맞대고는 지분거리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요.”
여름은 기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동화책에서 어미가 배탈이 난 아이에게 어서 나으라 위로하면서 배를 문지르던 모습이 생각나도록 손바닥을 펼친 채 따뜻하게 여름의 배를 어루만지던 이온 역시 입을 열었다.
“응. 이리 와. 안 아프게 해 줄게.”
이온은 그 말과 동시에 여름의 몸을 얽매고 있던 팔을 풀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옆으로 누워 있던 여름의 등을 꾹 눌러 엎드리게 했다. 단숨에 여름의 시야가 부드러운 침대 시트를 향해 돌아갔다. 이불에 눌린 아이의 입에서 숨이 눌린 소리가 났다.
아이의 정강이 부근에 걸려 있던 바지와 속옷을 단숨에 끌어 내리고는 여름이 위에 입고 있던 티마저 머리로 끌어 올려 벗겼다.
그의 거친 움직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이온을 바라봤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에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에 잠식되어 버린 건 여름이었다. 재차 고개를 돌려 침대에 얼굴을 묻으니 뜨거운 열기가 목을 타고 올라왔다. 그런 여름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이온은 아이의 골반을 잡아 힘을 주워 들었다.
읏,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엉덩이가 들리고 말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손으로 시트를 쥐어 잡은 여름의 입술이 완전히 침대에 묻혀 뭉그러진 소리가 나왔으나 이온의 손은 멈출 줄 몰랐다.
꿇고 앉아 이온이 드러낸 자세대로 버티고 있으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부끄러워 열이 오르는 얼굴을 더욱 침대에 묻으며 입술을 악물었다.
꾹 감은 눈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만큼 이온의 감각이 저리듯 느껴졌다.
그의 손바닥은 골반에서부터 천천히 둥그런 굴곡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양손은 살이 가득 오른 엉덩이를 터뜨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꽉 쥐어 양쪽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작은 구멍에 드러난 주름이 늘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제 앞에는 이미 벗겨 버린 옷 때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엉덩이만 하늘로 높이 든 채 중심을 잡기 어려워하고 있는 여름만 있을 뿐, 그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훤했다.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얼굴에 열이 가득할 것이라고.
이온은 바지와 속옷을 한데 잡아 필요한 만큼 내린 후 제 성기를 꺼내 쥐었다. 아이의 앞에서 제 것을 꺼내 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꺼낸 성기를 구멍에 맞춰 비비기 시작하니 공기와 맞닿은 아이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작은 구멍에 맞닿은 귀두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도달한 새로운 감각까지.
익숙하지 않은 탓에 흠칫 놀란 여름은 얼굴을 들지도 숙이지도 못한 채 숨을 들이마셨다.
“형이 결혼하면 따로 살려나. 물론 같이 사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알 수 없고 때를 모르는 이온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늘어졌다. 어딘가 살피면서 이야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끝마무리도 그랬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은 여전했으나, 조용한 방에서 이온의 목소리는 귀를 뚫고 들어와 똑똑히 들렸다.
노력으로 얻고 싶은 게 있다면 어제보다 더 노력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노력하면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긴 세월 간절함이 가득한 곳에서의 여름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름은 시트를 쥐고 있던 손을 가져와 눈을 비볐다. 눈물이 나온 줄만 알았는데 여전히 말라 있었다. 이훈의 눈에서 벗어나기 싫었다. 그의 관심이 사그라들고 멀어지는 게 싫었다. 여름이 눈을 꼭 감는 동시에 그의 안으로 이온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며칠을 풀어도 조이는 뻑뻑함은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손가락을 갈고리 모양으로 세워 긁어내듯 파고드니 여름의 허벅지가 모로 모였다.
“흣……. 정, 말 그렇게 되는, 응, 걸까요?”
이온이 길을 만들어 내는 동안 여름은 여전히 이온의 말에 질문하고 있었다. 중간에 섞인 숨소리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이젠 아침에 같이 밥도 못 먹고, 아, 차도 같이 못 마시겠구나. 그건 좀 아쉽네.”
이온의 말에는 장난이 서려 있었다. 새어 나오는 웃음과 올라간 높낮이로 평범한 이라면 당장이라도 놀리는 말투구나 하고 눈치챘을 테지만 그의 상대는 여름이었다. 그것도 흥분에 젖어 제 사고를 하지 못하는 여름이었기에 아이의 숨은 얼굴은 울상이 되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온은 아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던 손을 떼어 내 팔로 배를 둘러 매끈한 고환을 한 손으로 쥐었다. 그와 동시에 꽂혀 있던 손가락에 숫자를 더해 갔다.
“으응…… 흣…….”
분명 입을 꾹 다물고 있음에도 새어 나오는 여름의 앓는 소리는 방을 가득 메웠다. 질겅거리는 느낌이 절로 나도록 손가락으로 추삽질을 계속하며 길을 넓혀 갔다. 고환을 문지르며 기둥을 훑으니 얼마 가지 않아 정액이 튀어 올랐다. 불투명한 액이 침대 시트에 쏟아졌다.
“……이제 안 아픈 것 같아요.”
여름은 고개를 살며시 들어 뒤를 돌아봤다. 아이와 시선을 마주하자 굳었던 이온의 표정이 단숨에 풀렸다.
“그래? 다행이네.”
여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굴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온은 아이의 몸에 전체적인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고는 기둥을 흔들던 손을 떼어 내 흔들리는 아이의 몸을 잡아 지탱하였다. 구멍을 파내던 손가락 역시 단숨에 빼내니 여름에게서 교성과도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아흐, 흣!”
“그래도 잠깐만 참아 볼래?”
숨을 헐떡이던 여름에게 그는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벌름거리는 아이의 살 틈을 벌려 귀두를 맞춰 넣었다. 통통한 살에 탄성이라도 있는 건지 구멍을 파고들려는 이온의 성기에 곧게 맞닿았다.
“이제는 형이 아프네.”
귀두부터 삼킨 구멍은 여전히 좁았다. 아예 찢어 놓아도 여름의 구멍은 자신의 것을 끊어 먹을 듯 조일 게 분명했다.
이온은 여름의 허리로 손을 짚고는 힘을 주어 몸을 더욱 가까이했다. 아이의 몸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음에도 이온의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흡, 어……, 응, 아, 파……, 아파요……. 흐으……!”
숨이 순간 멈췄다. 목구멍을 누군가 강하게 내리쳐 막아 버린 느낌이 들었다. 고개가 저절로 뒤로 젖히고 입이 벌어졌다. 여름은 입에서 타액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아팠다. 아래가 찢어질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찢어진 진 게 분명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고 있는지도 모르고 저를 꿰뚫고 있는 이온의 것을 빼내고자 허리를 비틀었으나 외려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갈 뿐 변하는 건 없었다.
허리에 힘을 주고 꾹 밀어 넣으니 제 몸이 여름과 꼭 맞춘 듯 맞닿았다.
다 들어갔다, 이온은 그의 귀에만 들릴 수 있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극심할 정도로 고통에 서려 몸을 떨고 있는 아이의 등을 한 번 쓸어 보이고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날이 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난 시간이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한 번 가지고 끝낼 것이었다면 바라고자 하는 마음마저 없었을 터였기에 꽤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온은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여름과 접합된 곳까지 시선을 내렸다.
접합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이온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밝았다.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가만히 넣고만 있어도 숨이 차오르니 여름을 요물이라 불러도 분명 부족하지 않은 별칭일 게 분명했다.
“빼, 빼 주세, 요…… 아파, 흐으……, 요……. 형, 혀엉…….”
여름은 손을 앞으로 집어 가며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온의 손에 잡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이의 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만 번복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왜 울어, 여름아. 울지 마.”
나긋한 목소리가 무서웠다. 그 말과 동시에 이온은 몸을 서서히 물렸다.
빼 주시는 건가, 허덕이던 아이의 숨이 순간 멈췄지만 뒤이어 빠른 숨이 침대를 적셨다. 그의 둘째 형인 이온은 물린 몸을 쾅 소리 나게 밀어 넣더니 더욱 빠르게 추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흥! 아! 으, 흐읏!”
이온의 힘에 몸이 점차 앞으로 밀리고 침대를 쥐어뜯는 여름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미 꼿꼿이 선 여름의 성기에서 튀어나온 애액들이 시트를 적신 지 오래였다.
머리가 텅 비었다. 강하게 찔러 오는 고통에 침대를 긁으며 신음을 뱉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목에서 피가 나는 것 같았다. 가시에 찔려 은은한 고통이 남아 있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선물도 고르자. 형한테 줄 축하 선물.”
허리를 살며시 비틀며 추삽질하는 이온의 속도에 맞춰 입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야속하게도 잊으려 순간마다 이훈의 이야기를 꺼내 왔다. 게다가 이온에게 꿰뚫린 채 이훈을 떠올리니 서러움은 배를 더했다.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선물, 싫어?”
“흣, 으……, 흐으…….”
신음인지 눈물에 젖은 소리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온은 한 손으로 여름의 엉덩이를 조몰락거리며 아이의 긴장을 가져갔다. 선물이 싫다, 아이의 얼굴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형한테 결혼하지 말라고 할까.”
‘결혼’이란 단어에 여름의 내벽에 힘이 들어갔다. 저도 모르게 조여 버린 탓에 그의 말에 여름이 들릴 정도의 숨소리가 섞였다.
이온은 여전히 결혼을 약혼이라는 단어로 고치지 않았다. 아이의 반응은 흥분에 갇혀 있을지라도 곧장 나왔다. 가로젓던 아이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후우. 가지 말라고 하자.”
그는 아이의 등에 몸을 맞대고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이온의 말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던 여름의 몸에 힘이 단번에 빠져나갔다. 저절로 떨어지는 아이의 하반신을, 몸을 세운 이온이 부여잡았기에 겨우 원상태로 돌아왔을 뿐, 이미 기절해 버린 이에게 남아 있는 자력은 없었다.
“평생 같이 살자.”
아이의 움직임은 멎었지만, 그의 형은 언제 멈췄냐는 듯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워 있는 아이를 제 품에 앉혀 가둔 채로 뜨거운 것을 안에 가득 흩뿌리고서야 추삽질이 멈췄다. 아이가 기절하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