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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인 건지 다행인 건지 푹 자고 일어난 여름은 가뿐히 몸살을 털어 냈다. 여름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그가 자신에게 질렸다는 오해와 착각을 했다는 생각에 몰려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머리를 쥐어뜯는 시간을 가졌다.
재헌과 밖으로 향했던 날이 언제였는지, 다정한 이온의 행동은 그날을 까맣게 잊게 했다. 이후 재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여름의 하루는 원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 뒤로 매일 아침을 함께했고, 저녁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이온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얼마 전 긴 출장을 떠난 이훈이 없어서인지 커다란 저택이 더욱 비어 보였지만 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겨울이 깊어져 갔다.
1월 1일은 특별한 것도 다양한 것도 없었다. 그저 평소의 하루처럼 일찍 저녁을 먹고 이온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잠들었을 뿐이었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밝은 태양 빛이 눈을 찌를 때 일어난 여름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이온이 있었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지만, 파티를 하지도, 케이크를 먹지도 않았다. 두 달 가까이 긴 출장을 떠난 이훈의 부재 때문인지 이온의 품에서 그렇게 조용히 보냈다.
그러나 여름의 하루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일상에 모순을 느끼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형도 곧 온대. 오늘 밤에는 맛있는 거 먹자.”
이온은 평소처럼 커다란 손바닥을 펼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겨우 두 달이 넘는 시간이었지만 이훈과 떨어진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그가 돌아온다니, 오늘따라 많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네.”
아이의 시야에서 세상은 넓었다. 형제와 함께하는 것이 쌓여 좁았던 세상의 칸이 늘어나고 있었다. 제한된 원이라는 걸 모른 채 넓어지는 세상에 뿌리내릴 준비를 하는 아이는 늘 해맑았다.
연휴라는 이유로 매일 같이 출근하던 이온도 집에 머물렀다. 이모님도, 윤 비서님도 없는 집에는 따뜻한 기운만이 맴돌고 있었다. 이온이 직접 만들어 준 아침과 점심을 먹고 나니 늦은 오후를 향해 시간은 달려가고 있었다.
“그냥 여기에 두세요.”
“네.”
넓은 거실에 놓여 있는 푹신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다 늦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 풍기는 영화를 보고 있었던 둘은 현관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일어났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이온과 여름은 이훈의 목소리가 들리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운전기사가 현관에 내려놓은 캐리어 두 개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고 있던 이훈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환영에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뭐야.”
한 해가 새롭게 도래하고 난 첫 주의 연휴였다.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둘의 빛나는 눈동자가 이훈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왔어?”
달려 나온 이온은 그의 캐리어를 양손으로 집어 끌었고, 여름은 그저 부끄러운 듯 손을 맞잡고는 시선을 아래로 하고 있었다.
언제 멈칫했냐는 듯 이훈은 멈춤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훈의 옆으로 캐리어를 들고 있는 이온이 찰싹 붙어 있었고, 그런 이온의 옆으로 종종걸음의 여름이 쫓아오고 있었다.
“왜 나오고 그래.”
“반가워서 그러지,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해?”
기나긴 시간 출장을 다녀오면서 잘 살고는 있는 건지 연락이 없었기에 이훈에 관한 소식 하나 듣지 못했다. 먼저 연락할 용기 하나 없었기에 그저 잘 살고 계시겠지,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우리 둘 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이훈 씨 정말 매정하다 매정해, 진짜.”
이훈은 1층에 있는 서재로 곧장 향했다. 당연하다는 듯 캐리어를 밀고 오는 이온과 쫓아오는 여름 역시 그의 커다랗고 단정한 서재에 들어섰다. 주인이 긴 시간 동안 없어 비어 있던 곳이었지만 꾸준히 관리가 되어 있어서인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이온은 대충 그의 서재 구석에 캐리어를 밀고는 여름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온의 손에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이온과 여름은 넓은 소파에 내던져지듯 주저앉았다.
“왼쪽 캐리어에 옷 몇 벌 사 왔어. 가지고 나가.”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는 싫은 건지, 이훈은 겉옷을 벗고는 넥타이도 편하게 풀었다.
얼핏 보면 살벌하게 느껴질 만한 만사가 귀찮은 듯한 표정도 이온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는 긴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머리를 흔들 듯이 거슬리게 구는 이온을 떨구기 위한 무언가를 늘 사 왔다. 이번 출장은 옷이었다.
“그래? 한 번 볼까.”
나가라는 말은 듣지도 못한 사람처럼 구는 이온이었다. 손을 쓰지 않고 반동으로 일어난 이온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크기가 더 큰 캐리어를 눕혀 열었다.
여름은 서 있는 이훈과 바닥에 앉아 있는 이온을 번갈아 바라보며 소파에 편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익숙해진 환경 탓일까 한 공간에 그들과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과 편안함이 발끝에서부터 밀려올 뿐이었다.
“뭐야, 이건 너무 작은데? 내 사이즈가…, 아.”
이온은 종이 가방 안에 있던 옷을 꺼내 높이 들었다. 어두운색의 니트였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온도 이훈도 입지 못할 정도로 작은 치수였다. 이온은 이상하다는 듯 그에게 따지려 들었으나 금세 떠오르는 형상이 있었다.
“여름이 옷이네.”
멍하니 익숙하지 않은 서재를 둘러보던 여름은 어디선가 들리는 제 이름에 시선을 돌렸다.
“저요?”
여름의 동공이 평소보다 커졌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온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옷을 내려놓고는 캐리어에 처박히듯 들어 있는 종이 가방을 꺼냈다.
절반은 이온 사이즈의 옷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보다 더 작은 여름의 옷이었다.
여름만이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작은 옷들이 줄줄이 나왔다. 이훈이 여름의 몫을 챙겨 왔다니, 세상이 두 쪽 나고도 남을 일이었기에 웃음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다정한 형이네. 선물도 사 오고.”
이온은 종이 가방들을 옆에 쌓으며 시선을 올렸다. 그의 눈에는 셔츠를 풀고 있는 이훈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이유 모를 당혹을 느끼고 있는 여름도 보였다.
이온의 말에 이훈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혀를 찼고, 여름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꾹 누르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여름의 성인도, 이훈의 귀환도 단순하게 맞이하고 끝이 났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하루 같은 나날처럼 말이다.
여름은 짧은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온에게 대학교에 꼭 가고 싶다는 의지 어린 말을 건넸다.
직접 꺼낸 말은 아니었지만, 한마디로 과외 선생님을 바꾸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런 여름의 행동에 이온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곤 아이의 뺨을 양손으로 주무르며 알아보겠다는 말만을 남겼다.
이후 새로이 만난 과외 선생님과의 수업은 민혁과 보냈던 시간과는 난이도도, 차원도 달랐다.
가득 볶아져 있는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채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있었다. 여름의 방으로 들어온 이는 이온이 직접 찾아 고용한 새 과외 선생인 연우였다. 한국에서 제일간다는 명문대생이라는 이야기는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연우와 여름은 별다른 것 없는 선생과 학생으로 테스트를 보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론을 채워 가며 모의고사를 푸는 등 대학교에 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민혁이 과외 선생이었을 때와는 엄밀히 다른 속도와 학습이었다.
여름은 민혁과 수업을 계속한다면 대학은 무슨, 출발도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줄곧 해 왔다. 그래서인지 연우의 빠르고 강한 스타일의 수업에 만족을 느꼈다.
남들과 느리다고 포기하기도 싫고, 형제에게 부족한 사람이 되기도 싫었다.
어디서 피어오른 것인지 여름의 열정은 새벽이 떠올라도 계속될 때가 많았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내는 속도일지도, 연우가 주고 가는 숙제를 하루 만에 끝내고 싶은 마음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름은 학습의 열정으로 새벽을 새우지는 못했다. 늘 방해하는 이가 방에 주둔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으읏…, 잠! 잠깐….”
아이의 방에 놓여 있는 침대에 편히 누워 있는 이온이었다.
이온의 배 위에는 입고 있던 잠옷이 전부 벗겨진 여름이 올라타 있었다. 이온은 침대 헤드에 겨우 목을 기대고 있어서인지 여름의 말간 모습이 훤히 보였다.
이온의 커다란 한 손은 여름의 하반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꼿꼿하게 서 있는 여름의 성기를 쥐고 흔드느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 해……요. 으응, 흣…….”
여름은 팔을 아래로 내려 넘어지려는 몸을 고정하기 위해 이온의 긴 잠옷을 뜯어지도록 잡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피어오르는 어색한 감각에 비틀거리는 허리는 당장이라도 넘어지기 딱 좋았다.
“건강하네.”
어느 날부터 아이의 밤은 이온과 함께였다. 방과 서재에서 절대 나오지 않는 이훈과 달리 이온의 방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빈번하게 이용되는 곳이 아니었다. 아마 이온의 발걸음이 자주 머무는 여름의 방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름은 이상하고도 간지러우면서 무서운 쾌감이 시작된 날을 잊을 수 없었다.
***
이훈이 집으로 돌아오고 여름의 과외 선생님도 바뀌었다. 새해가 되었을 뿐인데 나이만 변한 게 아니었다. 여름은 공부를 시작한 뒤로부터 평상시 잠드는 시간보다 5시간은 늦게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래서인지 여름을 기다리는 이온은 주인 없는 침대에 누워 팔로 머리를 받친 채 아이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불만 가득한 얼굴과 인내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여름아, 이리 와 봐.’
‘네. 잠, 잠시만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은 오늘 할 분량의 공부를 끝냈는지 책상 위를 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의자에 걸고는 이온이 누워 있는 침대에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하품이 절로 나오고 있는 여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리 와.’
푹신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우려 했던 여름은 어느새 강한 힘으로 이온의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이온은 여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자세를 좋아했다. 최근에 찾은 취향이었지만 말이다.
이온은 어느새 제 위에 올라탄 여름의 붉으면서도 당혹스러운 얼굴을 보며 짧은 생각에 잠겼다.
이것도 몰랐어? 하고 물어보면 여름이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창피하다고 할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리곤 여름은 몰랐다고 말한 뒤에 곧장 원하는 대로 해 주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의 제 막냇동생은 그랬다. 그러나 여름이 깊숙한 곳에 없는 지식을 끌어오느라 무너지는 얼굴을 보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보자. 병원에 갈 수도 없으니, 미리 관리해야지.’
아이는 재헌과의 그날 이후 밖으로 나가기를 꺼렸다. 오히려 무서워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짧은 시간이어서일까. 심하게 아픈 적도 없었기에 병원에 가야 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그러한 일이 생기더라도 매일 같이 형제를 봐주던 담당의를 집으로 부를 생각이었지만 여름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집 밖으로 나간다는 말은 여름이 두려워하는 문장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형제였다.
‘…어떻게요?’
여름의 머릿속은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가 검진을 해 주는 건가, 토씨 하나 틀린 거 없는 이온의 말에 또다시 빠져드는 건 여름뿐이었다. 이온은 아무 말 않고 아이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아픈 곳 없나 보는 거지. 모르는 사람보다 형이 해 주는 게 낫지 않겠어?’
단추를 전부 풀어 아이의 어깨에서부터 잠옷을 벗겼다. 형제가 아닌 모르는 이와 지금 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이의 얼굴에는 울상이 절로 지어졌다. 애초에 밖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망설여졌기에 여름은 고개를 빠르게 흔들며 이온의 손짓을 도왔다.
‘착하다.’
침대 한쪽에는 여름의 속옷부터 잠옷까지 뭉쳐 모여 있었다. 전부 벗어 던진 여름과 싸매 입은 이온의 모습이 대비를 이뤘다. 이온의 커다란 손이 작게 튀어나온 여름의 어깨뼈부터 쓸며 내려왔다.
‘으, 으응…….’
여름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감히 예상하지 못하는 곳곳에서 느껴지자 간지러웠다.
그의 손은 튀어나온 늑골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점차 아래로 움직였다. 비틀거리는 아이의 허리를 강하게 고정하듯 문지르니 여름의 달콤한 체취가 피어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이온의 손은 멈추지 않고 검지로 뻣뻣하게 서 있는 귀두를 문질렀다. 부드러우면서 거친 감각이었다. 곧장 손을 떼어 낼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여름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이온의 허리가 더욱 세워지고, 여름마저 이온의 쪽으로 다가오니 그제야 둘은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이온의 손바닥이 여름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톡톡 두드렸다. 말캉한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 이온과 달리 여름은 그의 의도를 눈치를 채고는 앉아 있는 몸을 살며시 들어 정강이로 침대를 지탱하여 일어섰다.
아이의 허리와 몸을 지탱하고는 한쪽 팔을 목으로 두를 수 있도록 도왔다. 어느새 여름은 이온의 품에 무너져 내렸고, 이온의 시야에는 곱게 마른 여름의 뒷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아이의 파들파들 떨리는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살덩이 사이를 비집고는 손가락을 넣었다.
‘왜, 왜 거기에 손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어색한 감각에 여름은 몸을 뒤로 물리려 했으나 이온의 팔에 들어간 강한 힘 때문인지 재차 앞으로 넘어갈 듯한 안기는 자세로 돌아와야 했다.
여름의 엉덩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검지는 입구 주변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따듯한 기운이 몰려오기도 전 주름을 쓸어내리던 검지 하나를 구멍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읏!’
순간 여름의 숨이 멎은 것처럼 멈췄다가 푹 내 쉬는 것이 가슴에서부터 느껴졌다. 좁고 단단한 내벽이 이온의 손가락 하나가 들어감과 동시에 아득히 조이고 있었다.
이온은 손가락 하나를 넣을 수 있는 곳까지 깊숙이 처박고는 원을 그리듯 휘젓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이온의 목에 휘감은 여름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목을 조르기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강하게 껴안고는 들어가지 못할 곳에 들어간 그의 손가락을 빼내려 몸을 들썩였다.
‘가만히 있어야지.’
아이의 허리를 휘감은 손이 살이 몰려 있는 통통한 여름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귓가에서 아이의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틈에 밀어 넣은 다른 손가락 탓에 좁은 내벽이 차차 넓어지고 있었다.
‘그, 그만…… 응, 읏! 아직 멀, 었……어요?’
‘응, 이제 끝났어.’
성인이 되자마자 이해 못 할 이유를 대며 뚫은 곳이었다. 가위질하는 모양으로 내벽을 넓히며 삽입을 반복하니 여름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점차 가냘프고도 작아지고 있었다.
***
끈적한 감각이 손가락을 타고 내렸다. 이온의 손가락이 힘없이 아래로 쓰러지는 여름의 몸을 바치고서야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뒷정리는 모두 이온의 몫이었다. 하루만 하고 끝날 거로 생각했던 ‘검사’는 잠을 자기 직전, 그리고 일찍 일어난 이른 아침에도 멈추지 않았다.
여름은 나빠지는 건강보다도 병원에 가는 일이 생긴다면 저택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더욱 두려워하고 있었다. 또다시 그들의 시선에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죽도록 망가지는 몸보다 무서웠다.
이온은 여름의 성기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어 보이며 손을 떼어 냈다.
아이는 힘이 들었는지, 온몸에 들어가 있던 긴장을 풀고는 이온의 가슴팍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늦은 밤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여름의 가쁜 숨소리뿐이었다.
이온은 점점 흘러내리는 여름의 몸을 하반신에 팔뚝으로 끌어 올려 푹 껴안았다.
‘검사’가 끝이 나고 괜찮다는 이온의 말을 들어야만 가득 쌓여 있던 긴장이 풀리는 여름이었다.
이제 잘하네, 하는 말과 함께 여름의 등을 토닥였다. 이온이 세워 놓은 눈에 보이지 않은 규칙이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닦아 줄게, 졸리면 자도 괜찮아.”
거슬리는 이불을 한쪽으로 치운 채 여름의 몸을 침대에 편히 눕혔다. 아이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당장이라도 잠이 들 수 있을 듯 졸음 가득한 얼굴이 이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기다릴래요…….”
여름은 알몸으로 누워 있다는 것도 잊은 것인지 편한 자세로 눈을 비비며 웅얼거렸다. 침대 아래로 내려온 이온이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고는 방 안에 있는 커다란 문으로 들어갔다. 수건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기다리겠다는 아이의 말이 무색하게 아주 잠시 다녀온 사이에 여름은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이불조차 덮지 않고 있어서인지 가라앉았던 아래에서 간질거리는 느낌이 타고 오를 정도의 야릇함이 묻어 있었다.
이온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아이의 옆으로 다가가 수건으로 흔적들을 닦아 내기 시작했다. 잠옷을 입힐까 싶었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깨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나체 그대로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이로도 법적으로도 성인이지만 왜소하고도 마른 몸은 여전히 아이였다. 지금껏 이 정도로 ‘가족’이라는 자들을 돌보거나 챙긴 적이 있었나. 여름을 만나고 피어오르는 헛웃음이 잦아졌다.
이온은 여름의 목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주고는 침대에 손을 지탱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의 자는 얼굴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 두어 번 노크하고는 여름의 방문을 열었다.
예상 가는 이도, 주인의 방을 활짝 열 수 있는 이도 저택에서 단 두 명뿐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이미 여름의 방에 자리 잡고 잠이 들었지만 말이다.
“형?”
“뭐야.”
당연하게도 이훈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훈은 떡하니 침대 옆에 서 있는 이온의 모습에 당황 어린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이온의 큰 키로 누워 있을 거라 예상되는 여름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당혹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그 가방은 뭐야?”
이훈은 천천히 팔을 뒤로하여 문을 닫았다. 저택에서는 가장 좁은 방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의 방에 모든 이가 모이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온은 여름의 발밑에 털썩 주저앉아 문 앞에 서 있는 이훈을 올려다보았다.
이훈의 손에는 하얀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캐리어 속에서는 보지 못한 부류의 가방이어서인지 이온의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뭐야 하며 끝없이 물었으나 이훈은 대답하기는커녕 점차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너, 또.”
이훈은 침대에 누워 있는 여름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이불을 걷어 냈다. 매일 같이 잠옷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는 아이가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누워 자고 있었다. 충분히 이상한 모습이었다.
여름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이상한 기운이 흐르고 있음을 눈치챘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비릿한 냄새마저 빼놓을 수 없었기에 조금 전부터 이훈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훈은 이불을 재차 여름의 몸에 던지고는 이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저 무슨 일 있었느냐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비어 있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는 이훈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훈은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한쪽 다리를 꼬고는 침대맡에 앉아 있는 이온을 빤히 노려보았다.
“저거 뭐냐니까.”
꽤 무게가 있어 보이는 종이 가방이 궁금했던 이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훈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온이 종이 가방을 벌려 안을 확인하니 두꺼운 책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웬 책?”
“윤 비서가 사 왔어.”
“윤 비서가?”
이온은 종이 가방 안에 들어 있던 책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두기 시작했다. 문학, 미적분, 기출 유형.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있는 두꺼운 책들은 모두 문제집이었다. 그것도 대학 입시를 하는 수험생을 위한 문제집 말이다.
풋, 이온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리를 굽히며 배를 감싸고 웃고 있었다.
옆으로 돌아앉아 있던 이훈은 테이블에 팔을 기대고는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온은 숨을 허덕이며 이훈이 고개를 들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형이 사 오라고 했구나. 그런데 윤 비서는 문제집을 사 온 거고.”
진짜 웃겨, 끝없이 웃던 이온은 재차 눈물을 닦아 내며 또 웃기 시작했다. 너무 웃어서인지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윤 비서가 수험생 문제집이나 사 오는 쓸데없는 일을 할 리가 없었다. 누군가 지시한 일이라는 말인데, 안 봐도 훤했다.
이훈이 긴 출장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여름과 많은 이야기나 작은 대화도 나누지 않는 이훈이었는데 그가 챙겨 온 선물만 해도 이온의 것을 훌쩍 넘었다.
전혀 상상도 못 한 상황으로 흘러가자 이온의 얼굴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꽤 괜찮은 흐름이었다. 그동안의 실패가 눈물겹게 느껴질 만큼 말이다.
이온은 이훈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비어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산으로 쌓여 있던 문제집은 다시 한데 모여 종이 가방에 들어갔다.
“난 여름이도 좋지만, 형도 너무 좋아하나 봐.”
“이게 좋아한다는 사람의 태도야?”
“사람마다 애정 표현의 방법은 다 다르다고.”
이훈은 여전히 턱을 기댄 채 고개를 절로 저었다. 질린다는 표정이 이온의 방향에서도 훤히 보였다.
그에 비해 이훈의 시선은 저 멀리 누워 있는 여름에게 향해 있었다. 여전히 차가웠던 공기가 사람의 온기에 데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헬퍼가 없어.”
고요한 공간을 뚫고 이훈이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뽀얀 이불을 덮은 여름에게로 향해 있었지만 말이다.
“여름이 때문에.”
“뭐?”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훈의 고개가 돌아갔다. 여전히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름이 ‘이모님’이라 부르는 중년의 여성 단 한 명뿐이었다.
몇 달 전, 헬퍼로 일하기 위해 들어온 재헌 이후로 일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주 가끔 윤 비서가 저택의 일을 도왔지만, 정말 아주 가끔이었다.
넓고 많은 방과 세탁, 청소하며 관리하고 식사를 챙기기까지 그녀 혼자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형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안으로 들인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이온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재촉을 하는 건 이훈의 몫이었다.
사람을 쓰고 고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익숙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게 이훈이여서였을까, 이온은 그게 마냥 귀찮고 싫었다.
이온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이가 이훈이었다면 그건 이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제멋대로라고 할지라도 이훈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온은 의자에 편히 기대앉아 팔짱을 끼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새로 들어온 헬퍼 보고 기절했었어.”
이훈이 출장으로 먼 길을 떠나고 윤 비서는 조건에 맞는 이들을 헬퍼로 저택에 들였다. 아마 알아서는 안 될 정보까지 탈탈 털고서야 형제들이 지내는 곳에 보냈겠지만 말이다.
대부분 남자였다. ‘이모님’이 식사 준비에만 신경 쓸 동안 남은 잡일을 할 건강하고 건장한 남자들 말이다.
윤 비서는 남자로만 모아 보라는 이온의 말에 의아했다. 재헌처럼 가까이 지내 일이라도 벌인다면 큰일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온의 표정에는 안온만이 가득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저택에 들어온 이는 이온보다 키는 훨씬 작았으나 덩치는 산만 한 중년의 남자였다.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닌 듯 보였지만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걸 보아 고된 일이라는 일은 다 한 사람 같았다.
밥을 먹을 때가 아니면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여름이었기에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온이 퇴근한 뒤에나 알게 되었다.
퇴근한 이온이 2층에 올라가 방에만 박혀 있던 여름을 끌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헬퍼로 들어온 남자는 품에 한 아름 이불 빨래 더미를 들고 있었다. 얼굴만 겨우 보이는 모습에 여름은 옆에 이온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오늘 새로 온 헬퍼야. 인사…… 여름아.’
고개만 살며시 끄덕이는 헬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여름의 정신이 끊겼다. 옆에 서 있던 이온이 순식간에 아이의 허리를 부여잡고는 같이 몸이 숙였기에 머리부터 부딪히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쓰러진 아이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본 이온은 다행히도 여름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얀 이불 더미를 품에 끌어안고는 눈만 끔뻑이는 헬퍼를 뒤로 하고 이온은 쓰러진 여름을 안아 2층으로 올라갔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온의 호출에 달려온 김 박사에게 가벼운 충격으로 인한 기절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그는 커다란 왕진 가방이 우습게 푹 자고 일어나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만을 남기고는 저택을 빠져나갔다.
다음 날 일어난 여름의 머리는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새하얀 공백마저 눈치를 채지 못한 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이온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온은 그날 이후로 덩치가 산만 한 헬퍼를 다신 부르지 않았다. 윤 비서에게 새로운 이를 찾으라는 말을 전하고는 그날의 일을 기억 저편으로 던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헬퍼가 오는 족족 여름은 기절하거나 이상할 정도로 몸을 떨었다. 집에 이온이 없는 곳에서 쓰러진 덕에 당황한 일명 이모님인 춘자 씨가 윤 비서에게 14통의 전화를 남긴 일도 벌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저택에 들락날락하던 김 박사는 여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겪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온은 그의 말을 듣고 금세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지만, 굳이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사일지라도 말이다.
헬퍼 때문에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헬퍼를 여름의 눈앞에서 치워 버리면 되는 게 아닌가,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이온은 그 상태로 이훈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평탄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 대신 부족한 저택의 일은 여름도 자주 얼굴을 마주하던 윤 비서나 이온의 차를 끄는 박 기사가 손을 돕기 시작했다. 과분한 돈을 제시한 탓에 해야 하는 강제 노동이었지만 말이다.
“이유를 아는 것 같은데.”
이훈 역시 ‘재헌’과의 일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저 끝난 일이라 입을 닫고 있을 뿐이었다. 그와의 일로 고작 헬퍼도 고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온은 분명 알고 있었다. 아이는 새로운 헬퍼가 재헌과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를 거절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 밖으로 데려가리라고 확신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시 그날의 상황이 될까 봐 저도 모르게 몸이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형도 같이 잘 돌봐줘.”
그리고 나는 정말 몰라. 그렇게 말한 이온은 추측 어린 상황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시선을 돌렸다.
이훈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원래부터 잔뜩 쌓인 책들이나 건네주기 위해 온 것이기에 더 이상 아이의 방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온은 자리에서 일어난 형을 바라보며 ‘가려고?’ 하고 물었지만, 이훈은 그저 뒤를 돌아 문고리를 잡아 방문을 열었다.
“언제 검색해 보면 돼?”
그러나 이훈은 여름의 방을 나서기도 전에 뜬금없이 들려오는 이온의 말에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이온은 여전히 편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곧 기사 나는 거 아니었어? 윤 비서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며 고심의 빠진 표정의 이온을 빤히 응시한 이훈은 그제야 그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인지 눈치를 챘다. 그러나 방문 고리를 잡은 그의 시선은 금세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이유 모를 자연스러운 흐름과 이동이었다.
“아마, 곧.”
“아, 진짜 싫다. 여름이랑 같이 봐야겠다. 그러면 조금은 괜찮을지도.”
이온의 말은 거기서 끝났다. 아마 더욱 빈정거리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이훈은 금세 방에서 나왔기에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투박한 걸음으로 1층에 있는 서재로 돌아왔다. 여전히 풀지 않은 짐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지만 직접 풀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윤 비서에게 말하는 걸 늘 까먹어서인지 오늘따라 서재가 꽉 차 있었다.
이훈은 푹신한 쿠션으로 도배되어 있다 싶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이가 시답잖은 이유로 저택에 들어오고 많은 시간이 흐른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벌써 한 해가 지나 있었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집에 돌아왔을 때 마중 나온 이들의 모습에 경악 어린 놀람은 태어나서 처음 지어 보는 표정일 게 분명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3시간은 넘게 걸리는 광주까지 가서 아이의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같이 씻겠다면서 울먹이는 여름의 모습이 아주 가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오라기 하나 입지 않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하얀 몸을 세우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생생하게도 보이니 헛웃음이 거칠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나의 단어로 묶이고 나서야 신경 쓰이는 게 웃겼지만, 이온의 악취미일 뿐이라고 넘기고 싶었다. 문제가 있다면 처리하면 그만이었고, 문제가 없다면 한이온의 흥미가 떨어지길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이미 윤 비서에게 아이에게 필요할 만한 것을 사 오라는 말을 남긴 뒤였다.
한이훈이 고등학생 때에 이사직까지 올라가 물려받은 이한이라는 이름의 기업은 건설 기업이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각인돼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이 들어가는 이름으로 지어진 아파트만 해도 눈을 돌리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전대 회장이 일찍 죽고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게 첫째 아들인 이훈이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칙칙한 정장을 입고 매번 뉴스에 나오던 기업의 회장들이 아닌 젊고 훤칠한 이는 처음 봐서였을까, 대중의 시선이 더욱이 집중되었다. 그 무게는 이제 이훈에게 그리 무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