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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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잠이 들었던 여름의 눈이 번뜩 뜨였다. 몸이 떨리면서 무거워서였을까, 고개를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책상을 지탱하며 몸을 일으키니 지난밤 저녁을 먹고 난 이후의 모습 그대로라는 걸 깨달았다.

    옷은 급하게 갈아입은 얇은 잠옷이었고, 환기를 위해 열어 놓은 창문은 그대로 활짝 열려 있었다. 협탁에 올려져 있는 쟁반도 그대로인 것을 보아, 그 누구도 방에 찾아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꽤 자주 이온이 찾아오던 방이었다. 눈을 감기 전 그의 흔적이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바람을 쐬어 무거운 몸을 절로 일어나게 한 바람 역시도 그것이었다.

    여름은 천천히 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씻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야 했다. 전부 괜찮아져 있을 것이다. 여름은 그렇게 믿으며 물을 틀었다.

    가족과 씻는다는 건 단지 부가적이라는 걸 이훈의 방에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여름의 기운을 빠지게 했으나 여름의 손은 점차 빨라졌다.

    아이는 가벼운 긴 팔과 함께 긴 바지를 입고는 단단히 틀어 막혀 있던 문을 열었다.

    “내려오셨어요?”

    강하게 닫혀 있던 다이닝 룸 문을 밀고 들어오니 매일 같이 가득 채우던 식탁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 대신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가끔 얼굴을 마주하는 이모님이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몇 번은 더 움직여 놓아야 했을 일이 금방 끝났다.

    여름 몫의 식사뿐이 없었다.

    “저… 형, 형들은.”

    “아, 큰 사장님은 출장 때문에 안 들어오셨고요. 작은 사장님은 일찍 나가셨어요. 오늘은 혼자 드시겠네요. 여기 앉으세요.”

    원래라면 이훈이 앉았어야 하는 자리였다. 그녀는 가운데 자리의 의자를 빼 주고는 들고 왔던 쟁반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여름은 혼자 앉았다.

    물론 재헌도 없었다. 어제 이후 그를 본 적도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일찍이 속이 아파 테이블에서 잠들었던 게 업보였는지 여전히 음식 냄새는 고약하게 다가왔다. 몸이 으스스 떨렸지만 잡은 수저를 놓치지는 않았다. 음식을 남기면 남기는 대로 돌아오는 자괴감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다.

    여름은 아침부터 나온 갈비찜을 가져와 입에 넣었다. 일찍 잠들어서인지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온이 없었다. 너무 오래 씻었나, 아침이면 그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늘 함께 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남은 거라고는 제 몫의 식기와 식사뿐이었다.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보육원에서도 짧게 다닌 학교에서도 실수와 잘못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과 원장님께 혼났다. 혼이 나고 재차 안 하겠다는 반성을 끝으로 이어지는 감정은 없었다.

    그들과 긴 이야기를 하며 풀어냈다. 학습의 결과로 여름은 이온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물론 잘못을 빌기 위한 시간이겠지만, 먼저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온은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일부러 피해 다니는 것인지 그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건 잔혹한 벌을 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여름은 가득히 쌓여 있던 밥을 비워 냈다. 식기를 소리 안 나게 내려놓고는 어떻게 치워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나타난 이모님 덕에 방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아마 오늘도 과외선생님인 민혁은 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아니, 이온이 오지 말라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가르쳐 봤자 의미 없는 이에게 시간을 쓸 필요 없다며 언질을 줬을 수도 있지 않은가.

    여름은 방에 들어와 곧장 욕실로 들어가 변기를 부여잡아 속에 들어 있던 모든 걸 게워 냈다. 목구멍을 막고 있던 것이 빠져나가니 숨이 통하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토닥이기에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벌써 버려지기 싫었다. 가족이라는 말을 계속 듣고 싶었다. 저를 구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함께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왜인지 너를 구한 일이 후회스럽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고 불안했다.

    여름은 아주 천천히 욕실에서 빠져나가 하얀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앉았다. 강하게 바람이 불고 있어서인지 눈앞에 있는 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파양이라는 건 보육원에 있으면 숨 쉬는 것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갓난아기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갔다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다.

    15살 무렵 같은 방에서 지내던 수혁이는 꽤 산다는 자식 없는 부부에게로 입양을 갔다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제는 부모가 될 그들과 쌓은 교류만 해도 반년이 넘었지만, 단숨에 이뤄진 일이었다. 겨우 식사 예절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수혁이는 보육원으로, 그리고 여름이 있는 방으로 돌아와 울고, 멍하니 밖으로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차라리 없던 일이었다면 아이가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내가 수혁이랑 다른 게 뭐지.

    ***

    약 2주 전에 민혁이 두고 갔던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하니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잡생각과 공부는 꽤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사실과 거짓이 정확한 수학 문제는 곧장 집중력을 유발했다.

    한 문제를 풀고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기를 반복했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방으로 찾아온 이모님께 점심은 먹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조금 전 같은데 벌써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초겨울이라 그런지 점차 밖이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얼마나 풀었을까. 여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편히 누웠다. 조금 자고 일어나 퇴근하는 이온을 맞이할 생각이었다. 문 앞에서 기다리면 이온 역시 더 이상 자신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불을 가슴팍까지 끌어 올리고는 눈을 내리감았다.

    잠은 편히 잘 수 있을까, 걱정이었지만 눈가가 벌게지도록 울다 보니 머리가 지끈 아파 와서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수마에 빠져들었다.

    - 여름아, 우리는 가족이잖아.

    - 가족끼리는 그러면 안 돼.

    - 형의 말을 잘 들었어야지,

    하얀 방 가운데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는 여름의 귀로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우린 가족이야, 내 말이 옳아. 내 말이 옳은 이유는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야. 맞는 말일까, 여름은 인정하기 어려웠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는 기회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다리를 부여잡고 빌고 싶었다. 형의 말이 맞다고, 앞으로는 더 잘하겠다고.

    여름이 눈을 뜬 건, 굳게 다짐하고 난 이후였다. 눈앞은 어두웠고 보이는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1시간만 자고 일어난다는 게, 얼마나 잔 건지 늦은 밤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이미 이온이 저녁을 먹고, 윤 비서님이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몸이 화끈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지난밤 창문을 열고 잠자리에 들어 차가운 바람이 몸에 스며들고,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무겁고 어지러운 몸을 이끌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눈가에 열이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자연스레 이동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방 밖으로 나와 있었다.

    덥고 추움을 반복하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밥을 잘 먹어야 병도 피한다고 어른들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여름은 발을 끌며 복도 끝에 있는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복도에는 희미한 불이 켜져 있었다. 방 너머로 작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이온이 방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여름은 뜨거운 눈가를 비비며 문고리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잔잔한 주황빛이 그의 방을 가득 밝히고 있었다. 이온은 커다란 무드등 하나만 켜진 방 가운데에 있는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두꺼운 테의 안경을 낀 채 커다란 패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오는 거야?”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놀람과 어이없음이 섞인 얼굴로 고개를 든 이온은 여름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입꼬리에 작은 미소가 맺혔다. 패드를 엎어 내려놓고는 안경을 추켜 썼다.

    여름은 오랜만에 보는 이온의 말간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보기 위해 가슴 졸였던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 노력한 여름은 열고 들어온 방문을 단단히 닫고는 잠갔다. 다시 나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잠금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온은 당돌한 여름의 행동에 헛웃음을 삼켰다.

    “혀, 형.”

    복도에서와 마찬가지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내 발을 끌며 그의 침대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여전히 침대 가운데에 앉아 하반신에 이불을 덮은 채 여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젠 정말 형이라고 잘하네. 왜 여름아?”

    아이의 머릿속에는 사죄하고 지난날처럼 돌아가고 싶다고 전해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가 사과를 드리고 싶은데…, 쉽게 만날 수가 없어서….”

    그러나 어지러운 열기에 잡아 먹혀서인지 입을 여는 것조차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무슨 사과.”

    “…….”

    “뭘 잘못했는데?”

    어느새 이온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여름을 알아차리고는 웃음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잘못하다가는 입 밖으로 새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을 억누르는 건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 가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응.”

    여름은 손등으로 눈가를 꾹 누르며 울음을 참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방에 들어오자마자 들린 이온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맺혀 있던 눈물이 떨어지려 했으나 고개를 숙이며 참아 냈다. 대화하기 위해 왔으면서 울어 버린다면 한심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 보일 게 분명했다.

    “……일부러 숨기고 나간 것도 아니고……. 전부 제가 알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고?”

    “네?”

    “그 말 아니었어?”

    그의 눈을 보기 무서웠다.

    “마, 맞아요…… 맞아요.”

    손을 맞잡고는 떨림을 감추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강하게 흔들었다. 빠른 고갯짓은 어지러움을 유발했다. 울음을 참아 내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여름이 더듬대는 사이에 이온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그의 발밑에 서 있어서인지 더욱 귀에 잘 들어왔다.

    “이리 와.”

    그의 말에 고개를 살며시 드니 양팔을 벌린 채 흔들고 있는 이온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여기까지 오는데 죽기보다 힘들었으나, 이온의 품에 달려가는 데에는 조금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름은 눈가를 비비고는 그의 품 안에 쓰러졌다. 정확히 말하면 이온이 다가온 여름의 겨드랑이를 부여잡아 허벅지 위로 올렸다.

    “아직도 울어?”

    “……안 울었어요.”

    작은 체구에 어린 사고를 지녀 여름은 여전히 형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 같았다. 여름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저었다. 그의 품이 따뜻해서 더 슬펐다.

    “그럼 화가 난 건가.”

    “…….”

    “화내지는 마. 형은 네가 걱정돼서 그랬어. 걱정된다고 다 커 버린 아이에게 하지 말라 강요할 수는 없잖아.”

    너도 알지? 이온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충분히 알고 이해했다. 이제 와서 그의 말을 들으니 섣부른 불안처럼 느껴졌다. 쓸모없는 아이라고 버려진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화난 여름이가 무서워서 형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둔 건데. 서운했어?”

    품에 묻었던 얼굴을 슬며시 들었다. 고작 하루였지만 여름에겐 오랜만에 가까이서 마주하는 시선이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저 맺혀 있던 눈물이 천천히 볼을 따라 흘렀을 뿐이었다. 이온의 입꼬리는 더욱 위로 향했다.

    “정말 서운했나 보네. 앞으로 형이랑 모든 걸 함께해야겠다.”

    안 서운하게, 이온은 그렇게 말을 이었다. 그의 등을 끌어안고 있는 이온의 팔 하나가 흘러내리고 있는 여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이는 우습게도 벌벌 떨고 있었다. 갈아입는 옷마저 이온이 골라 주는 안온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름은 형의 품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떨어지기 싫었다. 작은 외출로 생긴 불안이라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네. 제발요.”

    이상할 정도로 떨며 제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여름을 보며 이온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닌 성공을 맛보기 직전임을 알아챘다.

    길고 긴 여정이었다. 이온은 부모를 찾아 들러붙는 아이처럼 멈춤 없이 다가오는 여름의 등을 토닥였다. 몸 가득히 힘이 들어가 있던 아이는 이온이 토닥이는 속도에 맞춰 몸을 늘어트렸다.

    “밥 안 먹었어? 왜 더 가벼워진 것 같지.”

    이온에게 모든 걸 토해 내야 한다는 마음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풀리니 긴장도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응축되어 있던 아픔이 밀려왔다. 갑작스레 숨을 허덕이는 여름에 이온은 아이의 어깨를 부여잡아 시선을 마주했다.

    “아파?”

    “……네. 어지럽고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아이는 숨기는 게 많을 뿐 매사에 솔직했다. 아픔을 토해 내는 말 역시 빠르고, 정직했다. 이온은 허벅지 위에 앉아 있던 아이를 부축하여 옆에 눕혔다. 두꺼운 이불을 안으로 여름을 넣고는 목까지 끌어당겨 덮어 주었다.

    이불을 부여잡고 눈을 끔뻑이며 위를 바라보니 이온의 얼굴이 보였다. 검은색의 두꺼운 뿔테 안경이 이온에게 잘 어울렸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이온은 침대 아래로 내려가 실내 슬리퍼를 신었다. 어디 가시는 거지, 여름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그의 행동을 응시했다.

    “약 가져올게. 눈 감고 있어.”

    “……네.”

    “말 잘 듣네.”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 보이고는 여름이 잠가 놓은 문을 열어 사라졌다. 눈을 감고 있으니 그의 발걸음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말을 잘 들었다. 이온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앞으로는 저 달콤한 말을 매일 같이 듣고 싶었다. 그렇게 될 수 있게 노력하리라, 아주 잠시 다짐했다.

    잠들면 안 되는데, 분명 조금 전에도 깊은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지끈 아파 오고 어지러워서였을까. 여름은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 낼 수 없었다.

    ***

    아이를 혼자 둔 건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다.

    겨우 이틀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깊게 알고 지내던 재헌을 헬퍼로 쓰는 것부터가 이온의 잘못이었지만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헌은 더 큰 목표를 잡기 위한 미끼가 되어 주었다.

    “여름아, 자?”

    이온은 얼굴을 그의 귀에 가까이 가져가 속삭였다.

    익숙한 방은 주황빛으로 밝혀진 곳에 편히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잠자리에 들었을 거라 예상했지만 고루 숨을 쉬고 있는 걸 보아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수마에 빠져든 게 분명했다.

    넓은 협탁 위에 약과 물이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는 한쪽 다리를 올림과 동시에 침대로 올라왔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땀에 절어 있는 아이의 얼굴이 더욱 야위었다.

    여름이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이는 늘 상상치 못한 당혹감을 심어 주었다.

    규칙적으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든 게 분명했다. 아무리 건드려도 깨어나지 않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온은 아이가 덮고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치웠다.

    쟁반에는 다 자란 남자들만 사는 커다란 집에서는 보기 힘든 가루약이 놓여 있었다. 이온은 주저하지 않고 가루약을 물에 탔다. 따뜻한 곳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아픔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여름이 아이라는 걸 잊는 순간 꽤 복잡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뿌옇게 변한 물을 입 안에 가득 털어 넣었다. 이온의 볼이 살며시 튀어 오르며 액체가 입 안에 가득 자리 잡았다. 지금 뭘 하는 건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회의감이 몰려오기도 전에 아이의 위로 올라탔다.

    정강이로 지탱하여 여름의 위에 올라선 이온은 허리를 숙여 불쾌한 쓴맛을 아이에게 흘려 넘겼다. 서로의 입이 맞닿고 사이로 흘러 넘어갔다. 잘 들어가고 있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거친 움직임이었다.

    아이에게 약을 먹였다는 사실에만 의미를 두는 건지, 이온은 그의 뺨을 부여잡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은 채 입술을 가볍게 비볐다. 아이에게 모두 넘겼어도 여전히 입 안에는 쓴맛이 머물렀다.

    “맛이 없네.”

    이온은 엄지손가락으로 아이의 입 주변에 묻은 자국을 쓸어 지웠다. 그러고는 숙였던 허리를 세웠다. 여름에게 전혀 지탱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 자세여서일까. 아이의 모습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매일같이 이온이 여름의 옷장을 채웠다. 속옷부터 외투까지 이온이 고르지 않은 옷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제 침대에서 편히 누워 있는 여름이 입고 있는 잠옷 역시 이온이 채워 넣은 옷 중 하나였다.

    얇고 나풀거리는 소재의 잠옷이 많았다. 가끔가다 밝은색의 잠옷을 입을 때면 여름의 몸이 옷 사이로 비치고는 했다. 가냘픈 그의 실루엣이 훤히 보일 때면 괜스레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물론 지금도 그랬다.

    이온은 깜빡이지 않는 눈으로 아이의 얼굴에서부터 홀쭉한 배까지 천천히 바라보았다. 얇은 잠옷은 위로 끌어 올리기도 편했다. 뭉친 잠옷이 위로 올라가고, 하얀 살갗이 드러났다. 천천히 손바닥을 펼쳐 여름의 배 위에 놓고는 쓸어내렸다. 아니, 만졌다는 표현이 더 옳은지도 모른다.

    아이는 멈추지 않는 이온의 손길에 불편했는지 몸을 뒤척였으나, 깨는 법은 없었다. 뜨거운 열기 탓에 배까지 따뜻했다. 같이 씻으며, 별 같잖은 이유를 들며 만졌던 살갗이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온은 한 손으로 아이의 작은 가슴을 움켜쥐고는 힘을 주었다. 어찌나 살이 없는지 손에 겨우 들어왔다.

    끌어 올린 잠옷이 여름의 어깨 부근에 구깃구깃하게 모여 있었다. 이온은 제 성기를 바지 안에서 꺼내 쥐었다. 아이를 바라보던 이온이 붉게 달아오르기 직전인 성기를 쥐어 잡고는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여름을 문지르던 다른 손 역시 멈춤이라곤 없었다.

    여름의 유륜 근처를 맴돌다 유두를 강하게 꼬집고는 비틀었다. 딱딱하게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는 듯 흔들던 성기를 유두 가까이 가져갔다. 저절로 몸을 일으키고는 귀두 부근과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유두를 맞닿도록 허리를 내렸다.

    “후우.”

    거친 부위가 아이의 가슴에 거칠게 맞닿았다. 원을 그리며 문지르니 잊고 지냈던 찌릿한 감각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이온은 아랫입술을 깨물어 입을 다물며 움직임을 더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이의 유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제야 위아래로 흔들던 성기에서 끈적이는 것이 피어올랐다.

    하얗고 좁았던 가슴에는 붉은 자국이 새겨졌다. 만족스러운 듯 웃은 이온의 표정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다.

    저절로 쥐고 있던 손에 끈적한 실이 이어졌다. 불편하다는 듯 몸을 뒤척일 뿐 깊은 잠에 빠진 아이의 뺨을 이온은 손에 묻은 것으로 문질렀다. 지금 제 모습은 아이를 망치는 걸까, 새롭게 태어나도록 돕는 걸까. 이온은 구분하기를 멈췄다.

    하나 확실한 건 이젠 제 손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저 그뿐이면 됐다.

    “여름아, 일어나지 마.”

    작은 목소리는 몸을 일으킨 이온의 입에서 나왔다. 이온은 한데 모여 있는 여름의 잠옷 상의를 대충 정리해 주고는 허리를 쓸어내렸다. 여름은 간지러운지 앓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여름은 곧장 말랐다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야하면서 곱상했다. 게다가 아이의 허벅지는 종아리와 별다를 것 없이 살이 없었다. 이온은 그런 여름의 허벅지를 좋아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좋은 향이 나는 잠옷을 끌어 내려 벗겼다.

    온전히 벗길 생각은 없었는데, 몸을 물리며 손에 힘을 주니 속옷과 함께 단숨에 끌어 내려졌다. 발목을 넘겨 떨어지니 쉽게 침대 아래로 사라졌다. 여름은 어느새 반나체 상태로 잠옷 상의만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잠에 빠진 아이의 뺨은 그 어떤 이보다 통통하게만 보였다. 이온은 천천히 여름의 위에 내려앉은 뒤 힘을 뺀 손으로 여름의 작은 성기를 쥐었다. 손으로 감싸니 귀두부터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몸이 움찔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되었다.

    이온의 눈은 여름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응시했다. 엄지로 귀두를 간질이며 문지르니 아이의 미간이 점차 좁아지는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별다를 움직임 없이 위아래로만 흔들기를 반복하니 이온의 것과 비슷한 백탁액이 나오기 시작했다.

    “……으응.”

    여름은 허리를 비틀며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자는 건지, 깨어난 건지 알아채지 못할 움직임이었다.

    이온은 멈추지 않고 여름의 기둥을 위아래로 잘게 흔들며 올라오려는 바지를 허벅지까지 끌어 내렸다.

    일으켰던 몸은 훤히 비어 버린 여름의 아래와 맞닿았다. 이내 붉게 달아오른 성기가 서로 맞닿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온의 손이 두 개의 성기를 맞잡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다. 이온은 잡은 성기가 틀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며 잡고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강이로 고정된 다리는 멈춘 채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니 성기에 자극을 더해 갔다. 불규칙하면서도 느리고 거친 숨소리가 고요한 방을 채웠다. 서로의 성기가 맞닿으며 귀두가 비벼지니 송골송골 맺히는 액이 구멍을 뚫고 흘러나왔다.

    이온에게 밀려오는 쾌감이 잠이 든 아이에게도 스쳤는지, 여름의 눈가는 강하게 힘이 들어간 듯 구겨져 있었다. 이온은 두 개의 성기를 맞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여름의 가슴에서부터 목, 그리고 뺨까지 천천히 어루만지며 올라갔다.

    “예쁘네.”

    이온의 작은 목소리와 함께 여름의 배는 끈적한 정액으로 젖었다. 이온의 성기에서 나온 건지 여름의 것에서 나온 건지 구별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몸을 일으킨 이온은 성기를 쥐고 있던 손을 펼쳐 여름의 배를 어루만졌다. 흩뿌려진 정액이 여름의 홀쭉한 배에 빈틈없이 발렸다.

    아이는 여전히 달콤한 듯한 잠에 빠져 있었고, 열기로 가득했다. 약도 먹었고, 잠도 푹 잘 테니 아침이면 열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대충 바지를 정리하고는 아이의 위에서 벗어난 이온은 욕실에 들어가 수건을 적셔 왔다. 그러고는 그의 가슴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끈적한 것을 닦아 냈다. 당장이라도 욕실로 데려가 씻기고 싶었지만, 아프다는 말이 걸렸다.

    이전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잠옷을 입히고는 목 끝까지 두꺼운 이불을 덮어 주었다. 보모나 다름없는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몸에 힘을 풀고는 침대에 걸터앉은 이온은 몸만 돌려 여름의 얼굴을 응시했다.

    한여름은 서류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이미 형제, 그리고 가족이 된 지 오래였다. 이런 적이 있었나, 평소와 다르다는 걸 인지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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