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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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나가요? 그냥 방에서 먹으면… 안 될까요?”

    몸을 굽혀 제 발목과 연결된 두꺼운 줄을 풀고 있던 윤 비서는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일어나라 말했다.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단단한 줄은 윤 비서의 손에 쉽게 풀렸다.

    “아래에서 기다리십니다. 어서 나가시지요.”

    그는 재차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름은 제 발이 침대에 걸려 있는 것도, 방에 갇힌 것도 아닌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발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으나 저를 노려보는 윤 비서의 눈도 무서웠다.

    아이가 방에서 나올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갇혀 있던 방 밖으로 나오니 넓은 저택과 같은 크기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저 조금 큰 아파트인 줄만 알았는데, 커다란 저택이나 다름없었던 모양이다.

    2층의 복도 난간 아래로 1층이 보였다. 층높이가 얼마나 높은지 아래가 아득하게 보였다.

    “우와….”

    여름은 감탄의 말이 절로 나왔다. 가끔 학교에서 보여 주던 드라마 속 주인공의 집과 같은 자태에 입이 떡 벌어져 저절로 양손으로 입을 가려야 했다.

    여름은 계단의 손잡이를 꽉 잡고는 천천히 내려갔다. 자유로워진 두 다리가 어색했다.

    지난날 이온이 들어와서 했던 말이 그저 예의상 하는 말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아침 8시 정각이 되자마자 ‘윤 비서’라 불리는 남자가 노크하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밀려오는 졸음을 몰아내고 정신을 금세 차리니 어느새 발에 걸려 있던 무겁고 두꺼웠던 줄이 풀려 있었고, 눈 떠보니 지금이었다. 차라리 다시 기둥에 발목을 묶어 주기를 바라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사람들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다고….’

    어색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서웠다. 그냥 납치된 것이 아니었나, 보육원을 어떻게 했을지도 모르는 이들과 밥을 먹으라니. 무엇보다 그들의 의도도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는 기분은 공포였다.

    서서히 느려지던 여름은 뒤에서 들려오는 윤 비서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1층 로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넓은 다이닝 룸이 나왔다.

    다이닝 룸 앞에 서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는 손을 모아 꼼지락거렸다. 온갖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 누군가 저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느낌이 들었다.

    “……!”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손가락 하나가 볼을 찔렀다. 장난스러운 손짓이었다. 미리 손가락이 이쪽으로 돌아볼 거라 예상하고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다.

    볼이 찔린 채 시선을 치켜드니 어제 마주했던 아름다운 사내이자, 이제는 형인 이온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잘 잤어?”

    이온은 여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다이닝 룸으로 끌어당겼다. 여름의 옆방인 이온은 사실, 여름이 방에서 나올 때부터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 짧은 거리를 평소 자신의 두 배나 되는 시간을 소요해 오가는 여름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거둘 수 없었다. 싫은 티가 역력히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 듯했다. 게다가 처음 보는 곳이 무섭지도 않은지 순수하게 감탄 어린 표현도 우스웠다.

    여름은 종종걸음으로 다이닝 룸에 들어섰다. 길게 늘어선 식탁의 한가운데에 이훈이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언제 일어난 것인지 옷도 깔끔한 검정 정장을 다 갖춘 모습이었다.

    “안, 녕하세요…….”

    여전히 이온이 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있었지만, 여름은 허리를 꾸벅 굽히며 가운데 앉아 있는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주무셨냐는 인사를 건네야 했나, 여름은 어색한 말을 건넸다.

    이훈은 그런 여름을 향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여름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이온의 팔을 바라보았다.

    “…….”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온은 저 아이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여름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이온은 그의 귓불을 주무르듯 어루만졌다. 흠칫 놀란 여름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니 받아 주듯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으면 돼. 가서 앉아.”

    직사각형 모양의 식탁 중 짧은 부분, 즉 가운데에는 이훈이 앉아 있었고, 긴 부분에는 서로 마주 보며 이온과 여름이 앉았다. 세 명 모두 자리에 앉으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 나와 상에 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괜스레 몰려오는 어색함에 여름은 고개를 들지 않고 앞에 놓인 그릇만을 응시했다. 그때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이훈을 바라보던 이온이 입을 열었다.

    “형. 오늘 끝내줄 수 있지?”

    분명 이훈이 오늘까지 고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왜 갑자기 변덕이야.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다르다니까. 이번엔 정말 달라.”

    이훈은 치밀어 오르는 열과 한숨을 꾹 참아 삼켰다. 언성이 높아지는 그들의 목소리에 슬며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여름은 열을 내며 싸우고 있는 것인지 대화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다 필요 없이, 이번에도 이온에게 섣불리 그러한 약속을 한 자신이 문제였다.

    ‘형, 여름이를 호적에 넣어야겠어.’

    뭐?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어이없게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보육원이 불에 탄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또다시 시작된 이온의 장난인지, 그 정도로 저 애새끼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줄곧 장난과도 가벼운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온이었기에 이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분명 그랬는데, 이번엔 어딘가 이상했다.

    이온은 들고 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을 향해 눈웃음을 쳤다.

    쉽게 입을 열지도 변명도 하지 않는 이온의 모습을 보며 이훈이 ‘장난이 아니었구나.’ 깨달을 수 있었던 건 그 뒤의 일이었다. 물론 이온은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이길 수 없듯, 이훈은 제 동생인 이온을 평생 이기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말이다.

    ***

    아침을 먹고 난 뒤 이훈은 곧바로 출근하였기에, 여름의 방에 따라 올라온 이는 이온뿐이었다. 이훈은 출근하지 않았어도 그는 따라오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다시 안 묶어요?”

    윤 비서는 어디로 갔는지,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제의 앞에 서 있던 이온은 침대 기둥에 걸려 있는 두꺼운 줄을 풀어 내고 있었다. 마치 흔적마저 지워 내려는 듯 보였다.

    “응. 이제 안 묶어도 돼.”

    “…….”

    “우린 이제 가족인데, 널 묶어 놓는 것도 웃기잖아.”

    이온은 손에 들고 있는 긴 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가 턱짓으로 맞은편에 비어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어안이 벙벙한 채 여름은 이온을 바라보며 주춤하는 몸을 이끌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커다란 방 한구석에 놓여 있던 테이블과 의자였다.

    “가족 맞지?”

    이온은 숙이고 있는 여름과 눈을 마주하려는지 고개를 비틀어 아이의 눈가를 찾고 있었다.

    가족이라니, 그에게서 들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해 본 단어였다.

    ‘왜 갑자기? 아무런 설명 하나 듣지 못하고 그들의 가족이 되어 버린 건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여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지, 이후 이온의 말이 이어졌다.

    “아, 보육원에 대해 안 궁금해?”

    왜 제가 당신들의 가족이에요, 하고 물어보려던 여름의 입이 무겁게 다물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말을 할 것 같았던 이온이 먼저 보육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보다도 그들에게 가장 궁금했고, 걱정되는 점 중 하나였다.

    “궁, 궁금해요. 어떻게 됐어요? 다들 어디에 간 건지도, 보육원은 왜, 불에 탄 거예요…?”

    이온의 입에서 나온 가족이라는 말에는 대답을 망설이던 여름이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시동에 걸린 듯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어느새 눈가에는 작은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가 약하게 굴수록 까맣게 변해 가는 건 이온의 속이었다.

    ‘이제야 입을 여네.’

    이온은 꿈틀거리는 손을 꽉 쥔 채 최대한 순한 표정을 지어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니까. 숨기는 기분도 별로고.”

    이온은 억지로 눈가를 끌어 내리며 음울한 목소리를 충격받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물었다.

    당연히도 여름은 손을 무릎 위로 모아 꽉 쥐고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배려에 고맙기도 하면서 이온의 입가만을 바라보며 무슨 말이 나올지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무어라 말을 할까, 사실을 말해도 거짓을 말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이온은 갓 태어난 아이처럼 떨고 있는 제 동생인 여름을 바라보았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네가 있던 원장이 원래부터 아이들을 사고파는 걸로 유명했는데. 아마 포주라고 하나…. 그걸 알고 처리하던 게 우리였어. 정의, 뭐 이런 건 아니고, 그냥 형이 하던 일에 방해가 됐거든.”

    이온은 다리를 슬며시 꼬며 여름의 얼굴을 분석하듯 응시했다. 고민 끝에 뱉은 진실이었다. 포괄적이고도 넓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여름을 흔들 패가 되었다. 지금의 여름을 보면 분명 옳은 판단이었다.

    아이의 눈가는 금세 오열이라도 할 것처럼 벌게지고 있었다. 끄덕이던 고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여름 자신도 어떻게 굴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행동이었다.

    얼마 전까지, 여름이 평생을 살아온 보육원은 한씨 형제에게는 최근 들어 가장 열받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포주인 원장과 손잡고 기업의 크기를 키우던 금수 같은 놈들이 찔러 오는 가시는 치명적이라기보다는 거슬렸다.

    “보육원에 간 것도, 너희 원장 꼬리부터 자르려던 건데.”

    이미 도망가고 불에 타고 있을 줄은 몰랐지. 이온은 아이의 눈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론 장부 따위는 모르겠고, 원장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는 사실이나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등 여름에게 해 줄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눈가에서 홍수가 난 것처럼 울고 있는 아이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원장님이, 왜.”

    이온은 마주 보고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여름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품에 끌어당긴 여름의 눈가를 쓸어내리며 닦아 주었다. 여름에게서 아기 분유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울지 마. 이럴까 봐 너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

    “네가 보육원에서 있었던 일이 모두 우리가 저지른 거라 오해를 하는 것 같아서.”

    우린 정말 아니거든, 이온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아이의 뺨이 빠르게 젖어 들었다.

    끌어안다 못해 손바닥으로 등을 토닥이는 손은 느릿했다. 여름은 몸에 힘이 빠지더니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이온에게 몸을 기댔다. 정면을 바라보며 옆으로 슬며시 이온에게 기댄 여름은 눈가를 꾹꾹 누르며 울음을 참으려 노력했다.

    충격적인 사실에도 눈물이 났지만, 그들을 오해했다는 사실도, 그로 모자라 들켰다는 점도 부끄러웠다. 여름은 더욱 꿈틀대며 현실을 잊겠다는 듯 이온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믿지 못하겠다면, 더 확실한 증거인 문서를 가져다 보여 줄게, 분명 남아 있을 거야.”

    “아, 아니… 그건 괜찮아요.”

    이온은 그의 어깨에 걸치고 있던 팔을 내리고는, 양쪽으로 벌려 여름을 끌어안았다. 그저 아무 말 없는 따뜻한 온기였다. 자연스레 정면을 보고 있던 여름의 몸이 옆에 앉아 있는 이온을 향해 틀어졌다.

    “그래, 그런 곳에서 지금처럼 혼자 떨고 있던 널 데려온 것도 우리였지.”

    남자는 아이의 귓가에 느릿하게 읊조렸다. 여름은 그제야 이온이 갑작스레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따뜻한 그의 품 안에서 여름은 고른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

    저절로 떠지는 눈을 들어 올리니, 창밖에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가슴팍에 느껴지는 무게에 흐린 눈을 비비며 옆에 느껴지는 존재를 확인했다.

    이온이 저를 바라본 채 팔 한쪽을 감싸듯 올리고 있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니 졸음이 밀려와, 그와 함께 침대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 벌써 저녁 시간인 듯했다.

    여름은 이온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의 호흡이 고른 걸 보아 아직 자는 모양이다.

    ‘가족이라니.’

    살면서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어 어색한 단어였다.

    평생을 살아온 보육원에도 입양하겠다고 오는 부부와 가족들이 많았다. 가족을 만들고자 하는 이가 넘치고 또 넘쳤다.

    친하게 지내던 몇몇 친구, 동생, 형들이 새로운 가족의 손을 잡고 정문을 나서던 순간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꿈에 나왔다. 그때마다 저 문을 건너가면 그들은 이제 가족이겠지 하고는 저도 모르게 부러움에 질투 어린 생각을 가득했던 것도 같았다.

    입양하기 위해 보육원을 찾아오는 부부나, 자신을 위험 속에서 구해 준 형제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구해 준 그들이 가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오늘 하루 너무나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와 아직도 머리가 지끈 아팠다. 여름은 옷 위에서 느껴지는 이온의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까맣고도 긴 그의 속눈썹과 눈가 밑에 있는 점을 바라보았다. 그 둘을 시선으로 잇는 순간, 이온이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잘 잤어?”

    그는 방금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게 얼굴이 환히 빛났다. 여름은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꿈틀꿈틀 몸을 물렸다. 조금만 더 가까이했다가는 서로의 얼굴이 맞닿을 것만 같았고 따뜻한 온기가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온은 마른세수를 한 번 하더니,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여름 역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점심을 건너뛰고 어느새 저녁 시간이어서일까.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렸다.

    제 배에서 들리는 소리에 여름은 당황한 표정을 거두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배고파? 얼른 씻고 밥 먹어야겠네.”

    일어나 몸을 돌려 배를 부여잡고 있는 여름을 바라본 그는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지 않은 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가 고픈 건 사실이었기에 여름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는 이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먼저 씻으시려는 건가.’

    방에 있는 욕실은 하나였다. 방에 욕실이 딸려 있다는 사실도 놀랐으나, 그 크기가 컸기에 처음 본 날의 기억을 잊지 못했다.

    이온은 금세라도 씻으러 들어갈 것처럼 움직였기에 여름의 몸은 굳어 있었다. 욕실로 걸어가던 그는 어느새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한쪽에 던졌다.

    여전히 침대에 앉아 그의 하얗고 근육이 잡힌 등을 빤히 바라보기만 하던 아이는 갑작스레 뒤를 도는 이온의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빠르게 빈 곳으로 던졌다. 부끄러운 건 사실이었다.

    “안 오고 뭐 해?”

    “…네?”

    “같이 씻어야지. 이제 가족인데 뭐 어때.”

    가족, 그 단어는 이온의 입에서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이제는 그 단어가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가 씻고 나오면 빠르게 들어가 몸에 물만 뿌리고 나올 생각을 하던 여름은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같이 씻자는 말과 가족이라는 말. 어느 것에 얼굴이 붉어진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으나, 여전히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만 있는 이온의 모습 때문인지 여름은 홀린 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족이면 씻는 것도 같이하고 그런 걸까.’

    처음 가져 보는 ‘가족’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물 받아 놓을게. 벗고 있어.”

    이온은 먼저 욕실로 들어가더니 큰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온도를 체크하는 듯 새삼 집중하는 뒷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뒤에 덩그러니 서 있던 여름은, 눈가가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처음 해 보는 일에 대한 설렘 때문인 걸까, 열기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입고 있던 얇은 잠옷을 천천히 벗었다.

    마지막으로 속옷까지 벗고는 고개를 드니,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었는지, 빤히 응시하고 있는 이온의 얼굴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 없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파르르 소름이 돋았다.

    “예쁘네.”

    예쁘다는 말과 달리 이온은 한숨을 내쉬며 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러다 욕조 안으로 먼저 들어간 이 역시 이온이었다.

    바지도 다 벗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간 그의 모습에 주춤했으나, 다리를 벌리고 들어오라는 듯 저를 응시하는 그의 표정에 아무 말 않고 욕조에 발을 넣었다.

    물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욕조로 들어가 무릎을 세우고 몸을 가리듯 최대한 말아 그의 허벅지 사이에 앉았다.

    ‘왜 안 벗으시지.’

    속옷까지 다 벗은 자신과 달리 꼼꼼히 틀어 묶은 그의 바지가 물에 젖어 드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따뜻해?”

    이온은 여름의 배에 팔을 감으며 가까이 끌어당기고는 얼굴을 그의 귀에 가까이 댔다. 물이 따뜻해 긴장해 있던 몸이 녹아드는 것만 같았던 여름은 눈을 슬며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혼자 씻는 것보다 그와 함께 하는 것이 더욱 따뜻했다. 이래서 가족들끼리는 같이 씻는 걸까. 지독하게 쌓여 있던 피로가 머릿속을 헤집다 사라지고 있었다.

    여름이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갑작스레 가슴팍에 느껴지는 감각에 허리가 튀어 오르듯 뒤틀렸다.

    “으…!”

    이온이 배를 두르고 있던 두꺼운 팔이 슬그머니 올라오더니, 손가락을 세워 여름의 유륜 주변을 비비듯 만지고 있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두 손가락으로 아프지 않게 유두를 꼬집었다.

    놀란 아이의 고개가 절로 뒤로 돌아갔으나 이름을 알 수 없는 감각은 자꾸만 고개가 뒤로 넘어가게 했다.

    아이가 안달 나는 줄도 모르고 이온은 하얀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자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동생은 어떻게 젖꼭지도 아기 같지.”

    여름은 살면서 처음 피어오르듯 느껴지는 감각에 몸이 간지러웠다. 욕조에 기대고는 다리를 벌리고 있는 이온의 품에 앉아 있는 여름은 왜인지 모르게 안정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온은 양손으로 품 안에 앉은 동생의 유두를 살살 긁었다. 유두의 표피를 벗겨내려는 듯 손톱을 세우고 긁는 그의 손짓에 여름의 허리가 튕기듯 휘었다.

    “왜…, 왜 가슴을 만, 흐응, 만지세요…?”

    “깨끗하게 씻어야지.”

    “혼, 자 할 수, 으응!”

    이온은 유두를 긁던 손을 펼쳐 강하게 꼬집었다. 딱히 조잘거리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꼬집는 순간 무릎을 세운 여름의 다리가 무너지며 더욱 자신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싫지도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새로운 기분이었다. 여름은 왜인지 모르게 숨이 막혀 와 그의 팔을 뜯어내려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혀 굴하지 않는 이온은 그의 체취를 들이마실 뿐이었다.

    그의 하얀 맨살에서 젖꼭지만 붉게 빛나고 있었다. 여름의 유두를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탐스럽고도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아래, 으응, 아래가… 이상해요.”

    이온은 여름의 어깨 너머로 가슴팍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기 가득한 여름의 목소리에 쉬지 않고 움직이던 이온의 손짓을 멈추게 했다.

    “아래가 왜. 어떻게 이상한데?”

    여름은 코를 훌쩍이며, 쓰러졌던 무릎을 재차 벌리듯 세웠다. 그럴수록 몸의 중심은 뒤에 앉아 있는 이온에게로 쏠렸다.

    “이상, 이상해요… 마려워요….”

    어느새 여름의 앞머리는 어디서 흘러나온 물 때문인지, 흠뻑 젖어 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처럼 아래에 무언가 뭉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톡 치면 금세 뿜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이온이 입고 들어온 바지는 물에 젖어 색이 진해지고 있었다.

    여름을 제 품에 끌어당겨 음모 하나 없는 그의 성기를 톡 하고 건드렸다. 당연히 포경조차 되어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름의 귀두는 이미 빤히 드러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단체로 했나, 이온은 괜스레 그의 태어난 모습을 그대로를 보지 못해 아쉬운 기분이 들어 입맛을 다셨다. 눈가에 맺힌 것이 젖은 머리에서 흘러 내려온 물인지, 눈물인지 착각이 들 때쯤, 여름의 성기에서 애액이 튀어 올랐다.

    이온이 한 손으로도 충분히 들어오는 그의 성기를 따뜻하게 쥐었기 때문일까, 여름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짧지만 빠르게 튀어나온 따뜻한 물의 여운이었다.

    “만졌다고 싼 거야?”

    이온은 제 팔목에 묻은 그의 애액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물이 담겨 있는 욕조 속으로 손을 넣어 엄지로 귀두 부분을 막았다.

    여름은 힘없는 손으로 제 다리 가운데로 들어오는 팔을 강하게 붙잡았으나 소용없었다. 분명 문질러 주기는 하는데, 이게 정말 씻는 게 맞는 걸까.

    한 손으로는 그의 팔을 붙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저의 몸을 꽉 붙잡고 있는 이온의 허벅지 부근을 부여잡았다. 젖은 바지가 손바닥에서 느껴졌으나, 아래에서부터 끝까지 올라오는 이상한 감각에 입에서 뜨거운 숨이 절로 나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후응, 그만…. 으응, 그만하면 안, 안 돼요?”

    “응. 이제 다 씻었다.”

    잦고 빠르게 숨을 내뱉으니, 입에서 새는 소리가 잇새로 삐져나왔다. 분명 다 씻었다고는 하는데, 이온의 손은 제 성기를 쓸어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홀쭉한 배를 받친 이온의 팔이 아니었다면 욕조에 담긴 물속에 얼굴이 처박혔을 것이다.

    찰랑이는 물소리는 그들이 움직임을 대신했다. 귀두를 엄지로 비비고, 움직임을 계속하니, 손바닥 안으로 백탁액이 튀어 올랐다.

    이온은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잦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사위가 고요해진 것을 깨달았다. 그만하고 싶다며 애원하던 아이가 고른 숨을 쉬며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꽉 감고 기절한 것인지, 잠이 든 것인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온은 욕조에 기대 있던 자신의 자리에 그를 내려놓고는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씻겼다. 충분히 잤으면서 겨우 몇 번 쌌다고 세상 모르게 혼절하듯 자는 여름이 웃겼다.

    이렇게 재미있는 동생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지금쯤이면 서류 처리도 완료됐을 터인데, 크리스마스가 당일 부모에게 원하던 선물을 받은 해맑은 아이처럼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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