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광공 삼형제 1권>
*본 작품에는 가스라이팅 및 강제 행위 등 비도덕적인 소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 이용 시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1장]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게 타 버렸다. 가진 거라곤 입고 있는 교복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몇 번을 물려받고 또, 물려받았는지 모를 헐어 빠진 교복이었다. 하얀 셔츠에 검은색 조끼, 그리고 검은빛 교복 바지가 몸에 딱 달라붙어 왜소한 몸이 더욱이 왜소하게 보이도록 했다.
다 찢어져 해진 옷이 저를 옥죄어 올지라도, 그는 입을 수 있음에 늘 감사했다.
그렇게 매일을 감사하며, 착하게 살아왔건만 왜 갑자기 이런 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제시간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이의 눈 앞에 펼쳐진 건 불에 타 정체도 모르게 변해 가는 보육원의 모습뿐이었다.
“원장님….”
동공이 풀려 초점을 잃은 아이는 홀린 듯 뒷문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깊숙한 곳에서 이유 모를 두려움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다리는 익숙한 길로 빠르게 움직였다.
또 다른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이질감이 드는 이유는 넓은 뒷문 옆으로 강하게 선팅된 차들이 늘어져 있어서였다.
아이는 그 모습에서 눈을 겨우 떼어 낸 뒤, 그마나 불에 타고 있지 않은 건물로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 없이 뒷문에 이어져 있는 녹슨 철제 계단으로 달려갔다. 불안이 지독한 꽃을 피웠다.
원장실이 있는 3층까지 가야 했다. 원장님의 얼굴을 보아야 했다.
“…….”
아무리 낡은 계단이라도 늘 아이들이 가득했던 곳에 살아 숨 쉬는 거라고는 저뿐이었다. 보육원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강하게 주먹을 말아쥐고 있는 손에는 식은땀이 가득 맺히고 있었다.
원장실이 있는 3층 복도는 왜인지 모르게 다른 곳보다 넓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놓여 있던 화분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전쟁이 일어난 곳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엉망이었다.
아이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그리고 조용히, 힘없이 늘 가던 곳으로 걸었다.
“이게, 무슨….”
매일 같이 오가던 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아직도 귓가에서는 원장실에서 노닐며 떠들던 웃음소리들이 들리는 듯했으나 저를 맞이하는 건 퀴퀴한 먼지 냄새뿐이었다.
그가 가만히 앉아 자신을 맞아 줄 거라는 정체 모를 기대마저 잔인한 것이었다.
소파는 뒤집혀 있었고,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은 스스로 뱉은 것처럼 바닥에 가득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였다. 불안해서인지 무서워서인지 모를 떨리는 손을 막을 새 없이 바깥에서 누군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 원장실은 저쪽입니다.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원장님과 몇몇 담당 선생님, 봉사자분들을 제외하고는 어른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는 듣기 힘든 굵직한 음성이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아이는 점차 다가오는 소리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빠르게 원장님의 책상의 의자를 빼내고는 아래에 숨어들었다. 쪼그리듯 앉아 좁은 책상 아래로 들어가니 저절로 무릎이 모이고, 고개가 수그러졌다.
‘무섭다.’
아이가 입 모양만으로 만들어 내는 소리 없는 외침이었다.
손이 주체하지 못하고 떨렸다. 아이는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는 숨죽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점차 다가오는 그들이 이 모든 것의 주축일 거라는 이유 없는 확신이 들었다.
한 손으로 입을 꾹 막아, 새어 나가는 숨소리조차 막았다.
살이 떨릴 정도로 너무나 무서웠기에 눈물이 치밀어 올랐지만, 숨을 꾹 참는 것으로 울음을 밀어 넣었다.
그때, 달칵하고는 별 볼 일 없는 원장실 문이 열렸다.
“빨리 찾고 가자. 너무 피곤해.”
한 손으로 막았던 입에 놀고 있던 다른 손을 끌어와 두 손으로 입을 강하게 막았다. 눈을 꾹 감으니 맺혀 있던 눈물이 고요하게 흘러내렸다.
“쉬지 말고, 일어나서 찾아. 그래야 빨리 가지 않겠어?”
“진짜 귀찮네. 그냥 대충 시키지, 왜 우리가 해야 하는 거야.”
땅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얼핏 들으면 싸우나 싶으면서도 대꾸하는 남자의 목소리에는 지루하고 따분한 한숨밖에 섞여 있지 않았다.
“그만 징징대고.”
그들의 대화가 끝나자 소파가 넘어가는 굉음이 들렸다. 누군가 누워 있던 소파를 강하게 찬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서랍장을 끌어내고 여전히 남아 있는 책들을 꺼내 쏟으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도 다 무너져 가는 보육원의 원장실에서 말이다.
불타고 있던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는 게 정답이었을까, 책상 아래에 들어가 있던 아이는 이기지 못할 두려움이 몸에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제발….’
숨을 죽이며 무사히 나갈 수 있기만을 간절히 빌었으나, 그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어느새 사위가 고요해졌다. 뒤적거리던 소리도, 그들의 대화 소리도 사라졌다.
“…….”
숨소리 하나 안 나는 상황에 그들이 나갔겠다고 하는 생각은 눈을 살며시 뜨게 만들었다. 고요함은 안심보다도 더 큰 공포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아이의 눈에 어둠이 걷히고 강한 햇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아이의 앞을 가리고 있던 헤진 의자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저를 숨겨 주던 어둠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는 눈을 찌르는 빛 때문에 얼굴을 살짝 찡그려서인지 눈앞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너는 누구야?”
누가 보아도 예쁘게 생긴 어느 사내가 아이를 바라보며 와- 하고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는 뚫고 들어오는 햇빛 아래에서 책상에 한 손을 짚고는 허리를 숙여 책상 밑에 들어가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들키지 않기를 바랐지만, 하늘이 운 없는 제 뜻을 들어 줄 리 없었다. 아이는 고개를 살며시 들어 예쁘장한 사내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미 들켜 버렸다는 생각과 더불어 풀려 버린 긴장 탓인가, 흐르던 눈물이 멈추지 않고 하얀 볼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여전히 입을 두 손으로 막고 있었기에 끅끅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고 멈추지 않은 샘물처럼 그의 눈에서 이슬이 떨어졌다.
“왜 울어?”
“…….”
“내가 뭘 했다고.”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썹을 일부러 늘어뜨렸다. 웃고 있는 얼굴에 이질감이 드는 거짓이었다. 점차 얼굴을 가까이 가져오는 탓에 사내의 얼굴이 빛을 가리고 또렷하게 보였다.
눈높이가 비슷해지고 호흡이 들썩이는 모습마저 보일 정도로 가까워지니, 사내는 신기할 정도로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형, 여기 좀 봐. 애 하나가 숨어 있네.”
그는 한 손으로 옆에 굴러다니는 의자를 더욱 밀어 치우고는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올려다보던 시선이 내려가고, 사내는 꽃받침을 하듯 턱을 괴어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
뚫어지듯 쳐다보기를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새 빛이 사라지고 주위가 어두워졌다. 아리따운 사내가 앉아 있는 틈을 타, 이유 모를 이가 다가와 창을 가리고 서니, 햇빛이 사라진 것이다.
“뭐야?”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생긴 사내와 다르게 남자는 정갈하게 머리를 넘기고 몸에 딱 맞는 단정한 정장까지 입고 있었다. 안경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지나가면서 보아도 꽤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게다가 어깨가 떡 벌어지고 키가 커서인지 절로 위압감을 자아냈다.
그는 낡아 빠진 창가에 기대 팔짱을 끼고는 고개 하나 움직이지 않고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 살려, 살려 주세요…….”
아이의 첫마디였다. 공포에 저절로 입이 열렸다. 두 남자가 당장이라도 끌고 나갈 것 같은 생각에 손이 잘게 떨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니,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강하게 내려다보는 두 시선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빠르게 닦으며 애원했다.
“너 진짜 하얗다. 약이라도 먹어?”
제 앞에서 턱을 괴고 있던 사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더니, 언제 웃었냐는 듯 표정을 굳히고는 물었다.
먹으면 하얀 피부가 되는 약이 있나, 아이는 입을 막은 두 손을 끌어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차가운 기운이 입을 통해 들어와 숨쉬기 편해졌다.
가만히 서 있던 남자는 멈추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짜증이라도 난 건지 혀를 쯧 하고 차고는 앉아 있는 예쁜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 좀 불러와. 애 하나 놓고 갔다고.”
금방이라도 대답할 것 같았는데도 아무 말 않는 사내의 등을 바라보며 남자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기엔 아까운 얼굴이잖아.”
“하아… 너, 또.”
여전히 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사내는 입꼬리를 끌어 올린 채 웃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이는 그런 사내가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는 아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쌓여 있는 책장을 뒤지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보아 재차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이름이 뭐야?”
“네? 저, 저는 한, 여름….”
인데…. 아이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눈을 끔뻑였다. 고여 있던 눈물이 의도치 않게 뺨을 적셨다.
한여름, 여름 중에 한창 더운 시기. 별이 사라지고 빛 하나 없이 어둠이 내려앉은 새벽까지 더운 어느 여름에 버려진 아기. 그리고 아기를 감싸고 있던 포대기 위에 적혀 있던 세 글자, 그것이 아이의 이름이었다.
“한씨네.”
여름은 제 앞에 여전히 턱을 괸 채 앉아 있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한씨인데.”
남자는 영차 하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책상 아래에 쪼그려 앉아 있는 여름을 두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운명, 뭐 그런 건가.”
그의 이어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심장을 졸여야 했다. 해맑기만 하고 뜻 모를 남자의 표정은 공포를 낳을 뿐이었다.
점차 허리와 다리가 아려 왔으나 무서워서인지 책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형. 나 여름이 데려갈래.”
이름을 알았다고 호칭이 ‘쟤’,‘얘’에서 ‘여름이’로 바뀌었다. 이어지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책상 밖으로 나가기에는 여전히 무서웠다. 작은 원장실이어서인지 그들의 대화가 뻔히 잘 들렸다.
“그게 누군데.”
“동생.”
우리 동생. 한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다른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 실려 있었다.
살려 주려는 걸까. 귀에서 그들의 대화가 들렸으나 짧은 순간 모든 기력을 전부 사용한 것인지 몸에서 힘이 찬찬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철없는 짓 좀 그만할 때 안 됐어?”
남자의 목소리에는 이제 질리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형도 분명 좋아할 얼굴일 텐데. 아니야?”
“어린애를 어디에 써. 빨리 돌아가자고 한 건 너 아니었나, 귀찮은 일 만들지 마.”
있는 눈물을 다 쏟아 내고 나니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호랑이굴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정신을 다잡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고 눈을 비볐지만, 스르르 감기는 눈을 들어 올리기 힘들었다.
“귀찮게 안 하면 되는 거지? 그럼 이렇게 데려가자. 안 귀찮게.”
사내가 다가오는 소리에 감기려는 눈에 힘을 주어 정면을 바라본 여름은 제 시야에 들어온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호랑이굴에서 먹히지 않기만을 바라서였을까. 다른 곳으로 끌려갈 거라는 가능성을 간과했다.
여름은 긴장을 풀었던 순간을 매우 후회했다.
사내는 빠르게 여름의 뺨과 머리 언저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의 손과 아이의 살갗이 부딪히며 생기는 소리가 실내 가득히 울렸다. 순간 느껴지는 강한 충격에 여름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우리 이제 진짜 삼 형제가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