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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지막 이야기 (14/15)

14. 마지막 이야기

은아와 태철, 태성이 사는 평화로운 마을로 의문의 남자가 트럭을 몰고 왔다. 트럭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전조등만이 어두운 겨울밤을 밝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이 폐가 앞에서 끊어지자, 남자는 잎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쪽으로 차를 대고 내렸다. 남자는 퀭한 눈으로 사방을 불안하게 둘러보며 천막으로 트럭을 숨기고 급하게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태철아.”

은아는 잠에 취한 눈을 게슴츠레 뜨고 태철의 팔을 꽉 잡았다.

“색시야, 왜?”

옆으로 누운 태철이 은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었다. 잠에서 깬 지는 오래지만, 자는 은아의 얼굴을 구경하고 있었다. 온갖 좋은 것들과 보양식을 먹이는데 얼굴이 홀쭉했다. 은아는 더위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서 겨울만 되면 유난히 더 늘어지고, 자주 골골거렸다.

“잘 잤어?”

은아가 배시시 웃으며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끔벅였다.

“응. 잘 잤다.”

“몇 시야?”

“일곱 시. 더 자라.”

“여보, 오늘 쉬자.”

“왜? 피곤하냐?”

“응.”

은아는 웅얼거리며 태철의 가슴팍에 머리를 비볐다. 태철은 은아의 둔부 사이에 손을 넣고 구멍을 지분거렸다. 구멍이 부었다. 새벽까지 몸을 섞어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태철은 은아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쉬자.”

“밖은 추운데 태철이 품은 따뜻해.”

“그러냐.”

“응.”

은아는 태철의 품 안 깊이 파고든 다음, 눈을 감았다. 제 가슴팍에 색색 뱉는 은아의 숨결을 느끼며 태철도 눈을 감았다.

똑똑.

“야, 자냐? 들어간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는 그들의 방문이 열렸다. 문 열리는 소리에 태철의 눈이 뜨였다.

‘왜?’

태철은 은아가 깰까 봐 입 모양으로 말했다. 태성은 이불을 덮고 태철에게 완전히 파묻힌 은아에게 다가갔다.

“아니, 여덟 시가 넘었는데 안 나와서.”

태성도 태철 따라 조용하게 말하며, 침대에 걸터앉아 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장사 안 해?”

“어, 은아가 피곤하단다.”

“그렇게 씹질을 해대니까. 애 낳을 것도 아닌데 작작 해. 이놈들아.”

“아니… 과학이 이렇게 발달하는데, 남자라고 애를 못 낳는다는 게…….”

태철이 몽롱한 눈으로 태성을 보았다.

쯧쯧. 저거 아직 잠 안 깼네. 태성은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강태철. 잠 덜 깼냐?”

“…….”

“가끔 나 못지않게 헛소리해.”

“…….”

“아니, 애를 가지고 싶으면 입양을 해.”

“나는 은아 닮은 아이를 원하는 거다.”

“염병…….”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태성은 무심결에 은아 닮은 아이를 상상했다. 은아를 닮았으면 예뻐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실실거렸다.

“…무슨 생각 하기에 음흉하게 웃냐?”

태철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 말을 해도. 음흉이라니? 은아 닮은 아이면 예쁘겠다 싶어서.”

“…그래, 예쁘겠지.”

태철과 태성이 은아 2세의 얼굴이 어떨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은아가 칭얼거리며 눈을 떴다.

“으응… 시끄러워.”

“깼냐?”

“응…….”

은아는 잠이 덜 깬 눈으로 태철과 태성을 번갈아 보았다.

“태성아, 출근이나 해. 여기서 떠들지 말구.”

“이게 반말은?”

태성은 잠에 취해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하는 은아를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태성이 편해진 은아는 어느 순간부터 간간이 태성에게 말을 놓았고, 요즘은 거의 반말을 했다. 태성은 말로만 반말한다고 타박했지, 얼굴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라 은아는 태성을 편한 것을 넘어 하찮게 봤다. 시도 때도 없이 개수작을 부린 결과였다.

“태성아, 출근 잘하구… 나가면서 애들 밥 줘.”

“허…….”

태성은 헛웃음을 뱉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리 은아는 아침부터 귀엽네. 헝클어진 은아의 머리를 정리하며 말로만 툴툴거렸다.

“그래, 간다. 가.”

태성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태철은 밖으로 나가는 태성에게 “냉장고에 삶은 닭가슴살 있으니까 사료와 같이 줘라.”라고 말하며 다시 은아와 함께 잠에 빠졌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대충 아침을 먹은 태성은 닭가슴살을 섞은 사료가 든 그릇과 물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네 고양이들의 전용 식사 장소인 평상 밑에 그릇을 놓았다.

“찐아! 나비야! 밥 먹어라.”

태성이 고양이들을 불렀다. 보통 이름을 부르면 야옹 하고 나타나는데 보이지 않았다. 태성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다렸지만,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뭐야…. 오늘은 늦게 오나….”

밥때는 귀신같이 알아 늦는 법이 없는 애들이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에 발걸음이 멈췄다.

며칠 전 법률 상담을 받으러 온 어르신이 산에 고양이들이 죽어 있는 걸 봤다면서, 자기가 땅에 묻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더불어 요즘, 길거리에 죽어 있는 고양이들이 눈에 띈다는 소리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때는 추워서 동사한 거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찐이와 나비가 어떤 아이들인가. 은아가 밥을 챙겨 주며 애정을 주는 고양이들이다. 고양이의 걱정보다는 고양이가 잘못되었을 때 슬퍼할 은아가 더 걱정되었다.

“설마… 아니다…. 배고프면 오겠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지만, 찝찝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겨울의 해는 빨리 졌다. 여섯 시면 해가 완전히 져 어둑어둑했다. 태성은 칼바람이 부는 날씨 탓에 코트 옷깃을 세우고 빠르게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고양이들을 확인하러 평상 밑을 보았다가 충격에 빠졌다.

은아가 살뜰하게 챙기던 찐이와 나비가 먹은 사료를 토해내고 죽어 있었다. 토사물에는 피가 섞여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 고통에 몸부림쳤는지 사지가 뒤틀려 있었다. 태성은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의 몸을 만졌다. 날이 추워서인지, 죽은 지 시간이 꽤 지나서인지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아씨… 이거 어쩌냐….”

아침에 애들이 밥을 먹으러 올 때까지 기다렸으면 죽지 않았을까. 은아에게 뭐라 말을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한데 태철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최태성, 왔냐?”

태철이 사료를 가지고 태성에게 다가왔다.

“점심 챙기려고 봤더니 사료가 그대로더라. 가끔 꽃집에서 챙겨 주는 사료 먹는 거 같던데. 사료 비워졌냐?”

“야… 어쩌냐?”

태성이 황망한 얼굴로 태철을 보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태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뭐가?”

“그게…….”

태성은 손가락으로 평상 밑을 가리켰다. 태철의 눈에 죽은 고양이가 고스란히 들어갔다.

“씨발…….”

태철은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가져온 사료 그릇을 평상 위에 던지듯 올려놓고 고양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먹은 사료를 다 토해내고 피가 섞인 게거품을 문 채 죽은 것으로 보아 밥을 먹고 죽은 듯했다. 그릇에 몇 알 남겨진 사료를 보려 그릇을 들었다. 평상 옆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에 사료를 살폈다. 하얀 가루가 보였다. 태철은 평상 위에 그릇을 놓고 인상을 구겼다. 사료에 묻은 가루를 확인한 태성이 물었다.

“야, 약 탄 거지? 그거 먹고 죽은 거지?”

태성의 물음에 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냐? 은아는 뭐 하고 있어?”

“TV 본다.”

“말해야겠지?”

“하… 씨발, 미치겠네…. 어떤 새끼가…….”

태철은 사체가 되어 버린 고양이들을 착잡한 심경으로 보았다. 뒷산에 사체를 묻어 두고 난 뒤에 은아에게 말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은아는 고양이들을 아꼈다. 집에서 기를 생각까지 했지만, 생명을 거두기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며 망설였었다. 그런 고양이들이 차가운 바닥에서 죽었다. 진작 집에서 키울걸 하고 후회하며 죄책감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면 많이 슬퍼할 것이다. 태철은 그런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태철과 태성은 삽을 챙기고 고양이 사체를 신문지에 싸서 뒷산으로 향했다. 땅에 묻어 주고 난 뒤에 사료 그릇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은아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태철에게 다가갔다.

“뭐야? 고양이 밥 주러 간다면서 왜 이제 와? 한 시간 동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

“태성이 형도 그래. 내가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무슨 일 있었어?”

태철은 붉어진 은아의 눈시울을 손으로 훑었다.

“걱정 많이 했냐?”

“어.”

“울었냐?”

“…아직 안 울었어. 울 뻔했어.”

은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칭얼거렸다.

“하…….”

아이 같은 은아의 모습에 태철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눈물을 퐁퐁 쏟아낼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야, 일단 앉아서 얘기해.”

뒤에 있던 태성이 말했다. 소파에 앉은 은아가 맞은편의 태성과 태철을 번갈아 보며 세모눈을 떴다.

“말해. 뭐 했어?”

“그게…….”

“은아야.”

태철은 사료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은아 쪽으로 밀었다.

“사료는 왜?”

“누가 약을 탄 거 같다.”

“뭐?”

“그래서… 죽었다….”

“어?”

은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태철을 보았다. 충격을 받은 눈빛에 태철은 가슴 아팠다.

“찐이와 나비는 우리가 뒷산에 묻어 줬다. 좋은 땅에 묻어 줬으니까 너무 걱정 말고…….”

태철의 입이 다물어졌다. 은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울음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는 모습에 태철의 억장이 무너졌다. 태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은아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울지 마라, 은아야. 제발, 울지 마라.”

“흐… 흐으…. 흐으윽….”

태철의 따뜻한 손이 등에 닿자, 은아의 울음이 터졌다. 은아는 태철을 꼭 안고 펑펑 울었다. 은아의 울음소리에 태철과 태성은 마음이 미어졌다. 은아의 눈물을 그치게 하고 싶지만, 마땅한 위로를 찾지 못했다. 그저 등을 두드려 주고 애틋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은아야, 물 마셔라.”

태철이 차가운 물을 은아에게 건넸다. 은아는 물을 꿀꺽꿀꺽 마시며 밀려오는 울음을 참았다. 태철과 태성은 은아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 줘야 하나 안절부절못했다.

은아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빨갛게 부은 눈으로 사료 그릇을 노려보았다. 사료에 묻은 하얀 가루를 손가락으로 훑어 자세히 보다가 냄새를 맡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바로 혀를 대어 맛을 보았다.

“강은아! 이게 뭔지 알고 함부로 먹어?”

은아의 행동에 태철이 불같이 화를 내며 은아의 손목을 잡아챘다.

“이걸 먹고 죽었단 말이다! 그런데 먹어?!”

“그게 아니라, 한번 봐봐. 이거 마약이야.”

은아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말했다.

“뭐?”

“마약이라고.”

잠잠히 소파에 앉아 은아를 걱정하던 태성의 눈이 반짝 빛났다. 손가락으로 약을 찍어 맛을 보았다. 은아의 말대로다.

“야, 이거 맛이… 신종 마약 같은데? 이거 그건데…….”

태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번에 맡았던 사건에 연루되었던 마약 조직이 생각났다.

“태성이 형, 김 박사네 거라고 생각했지? 태철아, 확인해 봐.”

태철도 가루를 맛보았다.

“맞네.”

태철이 헛웃음을 지었다. 태성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뭐야? 뽕쟁이 짓이야? 그런데 너희 김 박사 알아?”

“몇 년 전에 같이 일할 뻔했다. 그리고 워낙 유명한 곳이니 모를 수가 없지.”

“그래?”

“이거 원료, 중국에서 가지고 온다. 고양이 죽이는 거에 쓰일 게 아니다. 독한 만큼 값이 꽤 나가서 이렇게 함부로 유통될 게 아니란 말이다.”

태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고양이를 죽인 놈은 약쟁이다. 그것도 한국 최대 마약 조직의 약을 가지고 있는 자다. 느낌이 좋지 않다. 얽혀서 좋을 게 없다. 고양이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더는 관여해서는 안 된다.

태철은 단단한 눈으로 은아를 보며 말했다.

“은아야, 찐이와 나비는 좋은 곳에 갔을 거다. 그러니 너무 슬퍼 말아라.”

태철은 사료 그릇을 버리려 했다. 은아는 태철의 손을 잡고 막았다.

“잠깐, 버리지 마.”

“은아야.”

“나, 이 뽕쟁이 새끼 잡아서 족쳐야겠어.”

은아의 눈이 차갑게 빛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된다.”

“뭐? 찐이랑 나비가 죽었잖아! 복수해야지!”

“네가 아직도 조폭인 줄 아냐? 일반인은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복수한다고 잡아서 족치지 않는다. 경찰을 부른다.”

“강태철.”

은아가 화난 목소리로 태철의 이름을 불렀다.

“동네 고양이들 씨가 마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은아, 네가 걱정이다. 괜한 일에 휘말려서….”

“고양이 다음에 사람이야. 마을 사람들은 괜찮을 거 같아? 뽕쟁이 한두 번 봐? 살인자 새끼들 처음 봐?”

은아가 태철의 말을 자르고 흥분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느새 은아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씩씩거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눈에 태철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슬픔 가득한 은아의 눈을 마주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하아… 알았다. 울지 마라.”

태성은 김 박사 쪽에 일이 있는지 알아본다며 아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끝내고, 태성은 굳어진 얼굴로 은아와 태철에게 말했다.

“야, 아는 검사한테 김 박사 쪽에 일 터진 거 있냐고 물어봤거든. 안 그래도 일주일 전부터 그쪽 애들 동태가 이상해서 주시 중이라고 하더라고.”

“뭐가 이상한데?”

태철이 물었다.

“김 박사 밑에 최마귀라는 애가 있어.”

최마귀라는 이름에 은아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떨렸다. 태철은 은아의 표정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채고 이를 악물었다. 아무것도 눈치 못 챈 태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걔가 그 조직 창단 멤버거든. 중국에서 원료 들여오고, 국내에 약 유통하는 게 이놈 일이야. 그런데 몇 년 전에 유통에 문제가 생겼고, 대대적인 물갈이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입지가 완전히 약해졌고. 김 박사한테 뭐 밉보였는지 푸닥거리도 몇 번 당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이번에 완전히 팽! 버려진 거지. 그런데 이 미친놈이 앙심을 품고 중국에서 들어온 마약 원료를 가로챘어. 하여간 마약쟁이들 미친 건 알아줘야 해. 어쨌든, 지금 김 박사네에서 불을 켜고 그놈 찾으러 다닌다고 온갖 곳을 들쑤시고 다녀서 골치란다.”

태성은 은아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 고양이 죽인 놈이 최마귀 같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고. 정황상 그럴 가능성 90%기는 한데… 10%의 가능성을 우리가 무시하면 안 돼. 은아야, 알겠지?”

“…….”

“만약에 최마귀라면… 은아야. 김 박사랑 얽힐 수도 있어. 너도 알 거 아니야. 김 박사 얼마나 잔인한 놈이야? 약쟁이들 눈까리 봤지? 돌았어. 멀쩡해 보여도 360도로 돌았다니까?”

“…….”

“그리고 김 박사에게 잡혀 죽을 놈이야. 그냥, 두고 보는 게…….”

“최마귀면, 김 박사가 그놈 찾으러 우리 마을로 오겠네.”

“은아야.”

“그럼, 내가 더 가만히 못 있어. 그놈들이 여기 들쑤시기 전에, 최마귀 잡아서 경찰에 넘겨야겠어.”

은아가 단단한 눈빛으로 태철과 태성에게 말했다. 단호함에 태성과 태철은 할 말을 잃었다.

고양이 살해범을 잡겠다는 은아의 뜻이 확고했다. 태성은 은아를 설득할 말을 찾으려 머리를 굴리는데, 처음 듣는 태철의 약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은아야, 경찰에게 맡기면 안 되겠냐?”

태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하의 강태철이 은아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다니. 수많은 싸움판에 은아와 같이 다녔을 텐데. 강태철도 많이 변했네.

“은아야 우리가 낄 판이 아니야. 이미 경찰 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태성은 태철의 말을 거들었다.

“그 멍청이들? 나는 경찰 싫은데?”

은아가 소리쳤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와는 다르게 큰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갔다.

은아의 말이라면 끔벅 죽는 태철은 은아의 눈물에 약했다. 은아가 울면 태철은 이길 수가 없다. 태철은 눈을 감고 생각하다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알았다.”

태철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한 마디만 더하면 은아는 밤새도록 울 것이다. 일단은 밥을 먹이고 진정을 시킨 후, 살살 달래 볼 생각이었다.

“야, 밥하게?”

쌀을 씻는 태철을 보며 태성이 고개를 저었다.

“어. 은아 밥 먹여야지.”

“너도 참…….”

태성은 이 상황에도 은아 밥을 챙기는 태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태철은 은아의 저녁을 먹이고,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앉아 은아의 몸을 씻겼다. 태철은 눈가가 벌건 은아의 얼굴을 꼼꼼하게 씻겼다. 욕실 안에는 숨소리와 물이 찰방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태철은 필요한 말만 하고 은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은아는 태철의 눈치를 살폈다.

“태철이, 화났지.”

“…….”

“대답 안 하네?”

“솔직히, 말하기 싫다.”

“화났네.”

“…….”

태철은 입을 꾹 다물고 은아의 몸을 닦았다. 화났다는 게 보이는 표정이지만, 손길은 부드러웠다. 태철에게는 미안하지만, 은아는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았다.

“태철아, 나 싸움 잘해. 알잖아.”

“모른다.”

“…….”

“…….”

“찐이랑 나비, 어떻게 죽었어?”

“그냥… 약 먹고 죽었지.”

태철은 말을 아꼈다. 피를 토하고 사지가 비틀린 채 죽었다는 소리가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나 바로 보여 주지도 않고. 같이 묻으러 가지.”

“밤에 추운데 너까지 가서 뭐 하게.”

“그래도 내가 아끼던 아이들이잖아.”

“너에게 고양이 사체 보여 주기 싫었다. 은아야, 다시 생각해라. 찐이, 나비 불쌍하고 안타까운 건 알겠는데, 우리가 낄 일 아니다.”

은아는 태철이 배려했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위하는지, 태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지만, 물러서기 싫었다.

찐이와 나비의 복수도 복수였지만,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은아가 사랑하는 곳이었다. 은아는 김 박사가 들쑤시게 놔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걸리는 일도 있었다. 고양이를 죽인 약이 김 박사의 약이라는 것을 안 이후로 은아는 자신의 탓 같았다. 그리고 최마귀라는 이름을 듣고는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찐이랑 나비.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은아야 우울한 낯을 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알잖아.”

은아는 몇 년 전 최마귀를 만났던 날을 회상했다. 태철이 유통회사 사장일 때, 최마귀가 사업을 제안하러 그들의 회사를 찾아왔었다. 전국적으로 약을 뿌릴 유통로를 뚫어 달라는 제안이었다. 태철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마귀를 은아는 보고드릴 필요도 없다고 말하며 제 선에서 잘라냈다.

「우리는 마약 손 안 댑니다.」

「이게 돈이 얼마짜린데. 우리 강 실장님,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가십시오.」

은아는 마귀의 말을 자르고, 들을 필요 없다는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강 실장이 강 사장한테 얼마나 이쁨받는지는 알겠는데, 강 실장이 낄 판이 아니야. 어른끼리 얘기하게 빠져요.」

「형님께 보고드릴 것도 없습니다. 약,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약하는 새끼들 상대하는 거 싫어합니다. 제가.」

「뭐?」

「돌아가십시오.」

은아는 밑에 애들을 시켜 마귀를 쫓아냈고, 최마귀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은아를 노려보았다.

이것이 은아가 기억하는 최마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마귀의 뒷모습이 은아의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거절한 이후로 최마귀 입지가 좁아졌다고 들었어.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 신경도 안 썼어. 그런데 그 일이 이렇게 돌아왔네.”

“네 탓 아니다. 찐이와 나비를 죽인 놈 탓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 애들을 죽인 놈이 최마귀라도, 앙갚음하러 온 거 아닐 거다. 도망치다가 우연히 그놈 눈에 우리가 뜨였던 거고.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그래도.”

“잔소리하지 마라.”

“…….”

“은아야, 감이 좋지 않다. 느낌이 안 좋아.”

태철은 은아의 손을 잡아 제 가슴 위에 올렸다. 빠르게 뛰는 박동이 은아의 손에 전달되었다. 은아가 놀란 눈을 떴다. 돌 같은 태철이 이렇게 긴장하고 떨려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어?”

“걱정돼서. 색시야, 꼭 복수해야겠냐?”

“응, 은신처 찾을 거야. 찾아서 한 대만 때릴게. 그리고 바로 경찰에 넘길게.”

“하…….”

태철은 한숨을 삼켰다.

“태철아, 내가 그런 놈들 한두 번 상대해? 내가 다 이겨. 그리고 태철이도 옆에 있잖아.”

은아는 자신만만했다.

‘약쟁이는 다르다, 특히 최마귀 그놈은.’

태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최마귀는 소문이 더럽게 난 놈이었다. 김 박사 못지않게 독하고 미친놈이었다. 은아를 말리고 싶지만, 은아와 말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태철은 하고 싶은 여러 말을 억지로 삼키고, 일단은 은아의 의견에 동의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해라. 하고 싶은 복수 해라. 옆뿐 아니라 뒤에 내가 있을 테니.”

“고마워, 태철아.”

“그래.”

태철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은아에게는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지만, 은아를 위험에 둘 태철이 아니었다. 나쁜 일이 생긴다면 은아 대신 당할 생각을 하며 은아를 꽉 끌어안았다.

은아를 재운 태철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와, 태성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나다.”

태철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뭐냐? 네가 내 방에 어쩐 일이냐?”

태성은 보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이거.”

손에 든 하얀 종이봉투를 태성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 편지냐?”

태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고 안에 든 종이를 확인했다. 빽빽하게 쓰인 글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태성의 얼굴이 험하게 구겨졌다.

“씨발, 이거 뭐냐?”

“유언장과 은아에게 주는 편지.”

“뭐?”

“혹여나 나 잘못됐을 때를 대비해서 쓴 거다.”

“이걸 왜 나한테 줘? 하, 설마, 강태철 겁먹었냐? 그 대단한 강태철이 김 박사를 무서워하네?”

태성은 비아냥거렸지만, 처음 보는 태철의 불안정한 모습에 덩달아 같이 불안해졌다.

“어버이날, 차에 치인 날 쓴 거다. 우는 은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죽어도 은아는 계속 세상에 있어야겠구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

태성은 할 말을 잃었다. 은아에게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미쳤다.

“최태성.”

태철이 그윽한 목소리로 태성은 불렀다.

“씨발. 왜 목소리를 깔고 아련한 눈으로 나를 봐? 존나 닭살이다.”

“만약에 내가 잘못되면 은아 잘 부탁한다.”

“지랄.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너는 금강불괴라니까? 너는 인간이 아니라 돌이야. 안 죽어.”

“나는 무조건 은아를 지킨다. 은아가 죽게 돼도, 은아 대신 죽을 거다.”

“하. 웃기지 마. 너는 김 박사도 이겨.”

“느낌이 좋지 않다.”

태철은 감이 강한 인간이었다. 싸움 실력이 출중했지만, 감으로 이긴 싸움도 꽤 되었다. 그런 태철의 감이 말했다. 이번은 매우 위험하다고.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은아를 말리지 못하고 원하는 대로 하게 두는 태철은 은아를 제 목숨으로 지킬 생각을 했다.

“아니, 최마귀가 아닐 수도 있어. 뭘 죽음도 불사한다는 얼굴로 나를 봐? 뭔 전쟁터 나가? 웬 오버야? 김 박사가 끼면 일이 복잡해질 수는 있어도, 빨리 최마귀 잡아서 넘기면 되잖아?”

“그래. 혹시 모르니까. 부탁한다.”

“부탁은…. 답답하네…. 예전 같으면 얼씨구나 좋다, 죽어라 할 텐데. 지금은 전혀 그런 마음이 안 든다. 죽지 마. 카페 하기 싫어. 나 타르트 싫어해. 그러니까 헛지랄하지 말고 이거 가지고 꺼져.”

태성은 종이를 팔랑거리며 태철에게 건넸지만, 태철은 받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부탁한다.”

태철은 유언장을 두고 방을 나갔고, 태성은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아, 미치겠네.”

다음 날. 태성의 변호사 사무실. 태성은 오지랖이 넓고 소문이 빠르고 말이 많은 동네 사람들 세 명을 엄선해서 자신의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탐문 조사를 실시했다.

어젯밤 태철이 태성의 속을 완전히 뒤집고 간 뒤, 태성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자신이 먼저 최마귀를 잡아서 경찰에 인계할 계획을 세웠다.

고양이 복수를 하든 말든. 강태철, 강은아 쌍으로 지랄이야. 내가 먼저 잡아서 감방으로 보내야지!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처음 보는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왔다는 거죠.”

태성이 사무실 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앉은 세 사람 중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려. 한가한 데서 여행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종종 여기 찾거든. 그런데 이번에 온 사람을 어딘가 좀 수상하드라고. 꺼먼 옷에 꺼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말이야.”

“국화여관에 머무르는 사람 말하는겨?”

“자네도 알어?”

“거기 주인이 내 사촌 아녀? 낮에는 방안에서 꼼작도 안 허다가, 밤마다 들락거린다고. 얼마나 수상한지 모른다고~”

“나도 봤어! 밤에 저기 폐가에 들락거리는 걸 봤다니까?”

“폐가요?”

태성의 눈이 반짝거렸다.

“응. 저기 산 중턱에 버려진 집이 하나 있거든. 트럭을 몰고 가는 걸 봤지.”

“트럭…….”

“용달차 말고 탑차 있잖여~ 뭔 짐을 들고 다니는지…….”

“아…….”

그 트럭 안에 마약이 있다! 태성은 그놈이 최마귀임을 확신했다.

“낮에는 여관에 있다고 했죠? 지금이 오후 세 시 넘었으니까 여관에 있겠네요?”

“아, 그런데 요새 은아네에서 식사하는 거 같던데?”

“네?”

슈퍼 주인이 말했다.

“우리 가게가 은아네 맞은편이니까 딱 보이잖어. 그리고 어제 가게 문 닫았잖어? 그놈이 와서 무얼 하는지, 평상에서 서성거리더라고.”

“그게 몇 신데요?”

“아마… 세 시쯤 됐을 건데.”

“!”

태성이 눈이 커졌다. 고양이를 죽인 놈은 최마귀가 확실했다. 태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갑자기 어디 가!”

동네 사람들의 물음에도 태성의 머릿속에는 태철과 은아의 걱정이 가득 찼다. 설마 가게를 찾아가지는 않았겠지. 태성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태철은 오늘 혼자 가게 문을 열었다.

어제 하도 울어서 눈이 빨갛다, 오늘 밤부터 놈을 찾으러 다닐 텐데 하루 쉬어라 등등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은아의 출근을 막았다. 은아는 태철의 걱정과 불안을 알아 어제처럼 고집을 부릴 수가 없어 태철의 원대로 얌전히 집에 있었다.

은아는 거실 창에 기대어 눈이 내리는 바깥을 응시했다. 눈이 쌓인 너른 마당과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자던 평상 아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찐이랑 나비 집으로 데리고 와서 키우는 건데. 적을 만들면서 살지 말걸.’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고양이의 죽음을 자책하는데,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밖으로 나가는 태철의 모습을 보았다.

“태철이, 왜…….”

은아는 급하게 외투와 차 키를 챙겨 현관문을 열었다.

은아와 태성이 태철에게 달려가기 오 분 전, 태철은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한 남자를 카운터 근처에서 삐딱하게 쳐다보았다.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태철은 휴대폰을 꺼내, 태성에서 받은 최마귀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은아가 마귀를 상대해서 태철은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겼구만.”

태철은 혼자 중얼거렸다.

어제 태성에게서 최마귀의 사진을 받고 난 뒤, 며칠 전부터 오후 세 시에 자신의 가게를 찾는 한 남자를 기억했다. 그 남자와 마귀의 얼굴이 똑 닮았다. 남자는 최마귀다.

한곳에 짱박혀 숨어 있어야 하는 도망자가 이렇게 매일 특정한 시간에 가게를 찾는다는 것은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태철은 은아 말대로 마귀가 앙심을 품고 고양이를 죽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태철은 은아에게 마귀가 가게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먼저 마귀를 잡을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은아의 출근을 막았다. 은아에게는 뒤에 있겠다고 했지만, 은아의 목숨을 두고 안일하게 굴 생각 따위 애초에 없었다.

식사를 마친 남자가 태철에게 다가와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국수가 맛이 있네요.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어제 문 닫았더라고요?”

남자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남자를 보며 태철은 픽, 비웃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왔는데 몰랐네.”

“네? 무슨 마…….”

태철은 남자가 의문을 물어볼 새도 없이 기습적으로 목을 잡았다.

“크헉!”

크고 두꺼운 손이 남자의 목을 으깨듯이 사정없이 졸랐다.

“마귀야, 네가 고양이들 죽였냐? 무슨 생각이냐?”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이름에 마귀는 놀란 기색을 띠우며 태철의 손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지만, 태철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씨발! 놔!”

숨이 쉬기 힘들어 힘겹게 말을 뱉으며 태철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너는 김 박사 손에 죽을 거다. 그전에 얌전히 감방이나 가라. 내가 경찰서에 데려다주겠다.”

태철은 손의 위치를 바꿔 마귀의 뒷덜미를 잡고 앞으로 질질 끌었다. 마귀는 태철 몰래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태철의 팔에 꽂아 넣었다. 아픔에 바로 자신을 잡은 손을 풀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뒷덜미를 죄는 손아귀의 힘이 더 세졌다.

“뭐야, 이거.”

돌 같은 태철의 반응에 마귀는 당황하며 태철의 배에 칼을 찔러 넣으려다가 빠르게 자신의 손목을 잡고 비트는 악력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며 칼을 놓쳤다. 태철은 칼을 발로 차 저 멀리 보내 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마귀야, 조용히 가자.”

“네놈들 때문에 내가 이 꼬라지가 됐어! 내가 너희 가만히 둘 거 같아?!”

최마귀는 은아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뚫으려던 유통로를 같은 조직의 라이벌에게 뺏기고, 태철의 사업장을 찾았다. 뒷바닥 인맥이 많고 유통업을 하는 태철을 통해 새로운 유통로를 뚫으려고 했지만, 은아 때문에 실패했다. 그 이후로 조직 내 입지가 좁아졌고, 되는 일이 없었다.

마귀는 자신의 실패 원인을 은아에게서 찾았다. 나이도 어린데 자신을 내려다보는 은아가 못마땅했지만, 태철이 뒤에서 버티고 있어서 감히 보복을 꿈꾸기 힘들었다.

그 후,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제 살길을 찾느라 바빠 기억에서 잊었는데 이렇게 만날 줄이야.

마귀가 은아의 마을을 찾은 건 순전히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훔친 마약을 러시아 애들에게 팔고 한국을 뜨기 전, 조용한 곳에서 숨어 지낼 요량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은아와 태철을 보게 되었다. 평화롭게 고양이 밥이나 주는 모습에 배알이 뒤집혔고, 행색이 볼품없다 치더라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모습에 열이 뻗쳤다. 그래서 사료에 마약을 타 고양이를 죽였고, 그다음 타깃은 은아였다.

그런데 꼴사납게 태철에게 목덜미를 붙잡혀 끌려가다니. 마귀는 씩씩거리며 주머니에 숨긴 또 다른 잭나이프를 꺼낼 타이밍을 엿봤다. 태철은 칼에 찔려도 돌 같은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놔! 놔!”

태철은 패악을 부리는 마귀를 가볍게 무시하고 도롯가로 나왔다. 마침 지나가던 순찰차가 그들의 앞에 멈춰 섰다.

“이게 뭐여? 싸우는 거예요? 아이고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태철에게 다가온 두 명의 경찰은 태철의 손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일단 수갑부터 채워야겠는데.”

태철이 덤덤하게 말했다.

“뭐… 뭔 일이래.”

태철은 경찰에게 마귀를 인계했고, 경찰은 수갑을 꺼내 마귀의 한쪽 팔에 채우며 중얼거렸다.

“강태철!”

사무실에서 나온 태성이 태철에게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뭐야!”

“마귀…….”

“으악!!”

‘마귀 잡았다’라고 말하려던 태철의 입이 경찰의 비명에 다물어졌다. 태철이 방심한 틈을 타 마귀는 제 앞의 경찰 두 명을 밀치고 경찰차를 뺏어 타고 달아났다.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었다.

태철은 허망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경찰차를 좇았다. 그리고 경찰들을 노려보는데, 귀에 들리는 엔진 소리에 태철은 피가 가시는 느낌을 받았다. 은아의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경찰차를 쫓아갔다.

태철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은아의 차를 멍하니 보았다.

네가 왜 쫓아가. 왜.

“강태철, 정신 차려!”

혼란스러워하는 태철의 정신을 태성이 잡았다. 태성은 태철을 잡아끌어 차가 있는 마당으로 뛰어갔다.

조용한 마을에 때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비포장도로를 두 대의 차가 달렸다. 은아는 액셀을 밟았다. 경찰차를 가볍게 추월한 뒤 그 앞에 차를 세웠다.

끼익!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눈보라가 일었다. 마귀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정차시켰다. 은아는 차에서 내렸고, 마귀도 차에서 내려 도망갈 곳을 살폈다. 그의 눈에 산이 보였다. 마귀는 산 쪽으로 뛰어갔고, 은아도 마귀의 뒤를 쫓았다.

“멈춰!”

은아의 고함에도 마귀는 멈추지 않고 더, 더 높은 곳으로 뛰어갔다.

눈이 내리는 산 비탈길을 오르고 도착한 막다른 곳. 바로 아래가 낭떠러지인 곳에 은아와 마귀가 들어섰다.

“하아… 하아…. 최마귀.”

은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창 주먹질을 하고 살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몸이 많이 약해졌다. 마귀를 쫓아 산을 뛰어온 탓에 많은 체력을 소모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마귀를 향해 손짓했다.

“도망갈 곳 없어. 이리 와.”

“원수를 낭떠러지 위에서 만나네. 한국 뜨기 전에 복수도 하고, 운이 좋네.”

마귀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휘둘렀다. 칼로 위협을 하는데도 은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귀에게 다가갔다. 마귀가 뒷걸음질 쳤다. 바로 아래가 절벽이다. 마귀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은아를 노려보았다.

“찐이랑 나비, 네가 죽였지?”

“어, 고양이 아끼는 거 같아서.”

“왜?”

“내 인생이 망한 게 너 때문이니까.”

“내가 아니라 김 박사, 그리고 너 때문이야. 네 인생은 네가 망쳤다.”

말을 마치자마자 은아는 마귀에게 달려들었다. 마귀는 주춤하다가 빠르게 자세를 잡고 은아에게 칼을 휘둘렀다. 은아는 칼을 피하고 칼을 든 손목을 잡아챘다. 팔을 비틀어 칼을 빼앗으려 했지만, 마귀는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칼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와 몸싸움이 이어졌다.

힘이 떨어진 은아가 빈틈을 보였고, 그것을 놓치지 않은 마귀가 발로 복부를 찼다. 은아가 마귀의 손목을 놓고 뒤로 물러 놓았다. 마귀는 팔을 크게 휘둘러 은아의 목을 칼로 그었다. 은아는 재빠르게 몸을 뒤로 빼고, 손으로 목을 감싸 상처 부위를 압박했다. 생각보다 크게 베였다. 꽉 막은 손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싸움 잘한다더니. 다 옛말인가 봐?”

마귀는 실실 웃으며 은아에게 다가갔다. 은아의 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힘이 많이 빠졌고,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두려움도 생겼다. 은아는 최마귀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태철에게 자신이 최마귀를 잡겠다고 우겼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몸 상태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감이 많이 떨어져 일반인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태철이 그걸 알아 자신을 말렸던 것일까. 솔직히 최마귀를 이길 자신이 사라졌다.

태철이 다친 자신을 보면 많이 슬퍼할 텐데. 은아는 갑자기 태철이 걱정되었다. 절대 여기서 더 다치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은아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은아가 겁을 먹고 주춤주춤 피하는 사이, 마귀의 칼이 은아의 복부를 뚫었다. 후드득, 하얀 눈 위로 피가 떨어졌다.

“크흑…….”

은아는 뒷걸음질 쳤고, 마귀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은아에게 다가갔다. 은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바로 떨어진다. 복부를 감싼 은아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 순간, 은아와 최마귀의 귀에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은아야! 강은아.”

은아를 부르는 태철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저 멀리 태철의 모습이 보였다. 태철이 은아에게 달려갔다. 은아는 살았다는 생각을 하며 안심했다.

마귀는 몰려드는 경찰들과 태성, 태철을 보고는 눈이 돌아갔다. 도망갈 틈이 보이지 않고 포위망이 점점 좁혀졌다. 마귀는 눈앞의 은아를 보았다. 긴장을 풀고 안도하는 얼굴이 웃겼다.

어차피 잡힐 막장 인생, 여기에 살인죄 하나 추가한다고 뭐. 복수하면 마음은 편하겠지.

마귀를 발을 들어 은아를 찼고, 은아는 뒤로 밀려 나갔다. 은아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은아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태철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강은아!”

태철은 벼락같이 뛰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은아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손을 낚아채는 손아귀 힘에 꾹 감았던 은아의 눈이 뜨였다.

“하아… 태철아.”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뒤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 은아는 태철만 생각났다. 태철의 말을 들을걸. 혼자 남을 태철이 걱정되고 슬프고 미안했다. 그런데 태철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미안함 때문에 은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태철은 이를 악물고 은아를 끌어 올리려 애썼다. 은아의 손이 피범벅이라 미끌미끌해서 금방이라도 손을 놓칠 것 같았다. 태철은 급하게 태성을 불렀다.

“최태성! 최태성! 최! 태성!”

태성이 허겁지겁 태철의 옆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은아의 팔을 잡아 태철과 함께 위로 끌어 올렸다. 태철은 눈이 쌓인 땅 위에 은아를 올려놓고 은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목과 배에서 많은 피가 콸콸 나왔다. 은아의 위아래 옷이 피로 온통 붉었고, 하얀 눈이 빨간색으로 녹아 갔다.

은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미약한 숨을 뱉어냈다.

일하다가 나오는 바람에 안에 받쳐입은 반팔 티와 맨투맨이 다인 태철은 지체 없이 옷을 벗어 피가 계속해서 나오는 은아의 복부에 대고 꾹 눌렀다.

“최태성, 여기 눌러라.”

“어, 어.”

태성은 출혈 부위를 압박하며 은아를 보았다. 은아의 눈이 가물가물 잠기고 있었다. 태철은 반팔 티도 마저 벗어 은아의 목에 대 주며 말했다.

“강은아, 자지 마라. 자면 안 된다. 알았냐?”

은아는 끔벅끔벅 눈을 깜박이며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태철의 뺨을 만졌다.

“강…태…철…….”

은아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태철의 이름을 부르다가 팔을 아래로 떨구고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은아의 입에서 나오던 가느다란 입김이 사라졌다. 태성이 은아의 코밑에 손을 댔다.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119! 119! 빨리 불러요!”

태성이 다급하게 말하며 은아의 심장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태철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심장이 멈춘 은아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런 태철을 태성이 일깨웠다.

“강태철! 뭐 해? 피 안 막아?!”

그제야 태철은 어버버거리며 은아의 배를 눌러 피를 막았다.

태철과 은아, 태성에게 차가운 겨울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한기가 태철의 맨살을 에워쌌지만, 태철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뜨거웠고 한기보다 더 무서운 죽음의 공포가 태철의 몸 전체를 감쌌다.

은아는 이동식 베드에 실려 급하게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태철과 태성은 은아의 뒤를 따랐다. 은아는 응급 수술을 하러 수술실로 들어갔고, 태철은 의료진이 설명하며 건넨 수술 동의서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은아의 심장이 멈춘 이후부터 태철은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강태철, 괜찮냐?”

태철의 옆에 있는 태성이 태철의 팔을 툭툭 쳤다. 태철의 몸이 얼음장이었다. 한겨울에 맨몸으로 있었다. 피부가 빨갛게 얼어 있는데도 태철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태성은 한숨을 푹 내쉬고 자신의 외투를 벗어 태철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리고 피가 흐르는 태철의 팔을 뒤늦게 발견했다.

“야, 너도 다쳤어? 은아 피 때문에 헷갈렸다. 빨리 서명하고 치료받자.”

“…….”

태철은 고개를 돌려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피를 멍하니 보았다. 이까짓 거. 은아는 온몸의 피가 다 빠지도록 피를 쏟아냈는데.

태철은 무감각하게 자신의 상처를 응시했다. 그런 태철을 보는 태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야, 강태철, 은아 아직 살아 있어. 정신 차려.”

“…그래… 그래…….”

태철은 피 묻은 손으로 볼펜을 고쳐 잡고 동의서 내용을 훑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태성이 손가락을 종이 위에 짚어 주었다.

“여기에 이름 쓰고 사인.”

태철은 태성의 말대로 서명하다가, 그 밑에 있는 글에 손이 멈췄다.

[환자와의 관계]

태철은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약지에 낀 반지를 뚫어지게 보기만 했다. 태성은 태철이 머뭇거리는 지점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자신이 대신 적어서 의료진에게 건넸다.

[아는 형]

태성은 아는 형이라고 적었다.

은아와 태철이 반지를 나눠 끼고 여보 각시라고 불러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 태철의 위치는 고작 아는 형이었다.

태철은 행복한 꿈에서 깨고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고, 손과 상체에 묻은 은아가 피가 소름 끼쳤다. 태철은 몸을 부르르 떨며 은아가 들어간 수술실 쪽을 바라보았다.

그 때, 태철의 귀에 은아의 목소리가 닿았다. 환청이다. 지독히도 꿈같은 환청이 태철의 귀에 달라붙었다.

「태철아, 여보. 여보.」

‘그래. 나는 아는 형이 아니라 네 여보고, 너는 내 각시인데.’

태철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태철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울었다.

결국, 돌같이 단단하던 태철이 부서졌다.

은아는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출혈량이 많았고 예후가 좋지 못했다. 은아는 이 주일이 넘도록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오전 열한 시부터 열한 시 삼십 분까지, 오후 여섯 시에서 여섯 시 반까지다. 은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고작 한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중환자실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어, 태성에게 그 시간을 양보하면 하루에 삼십 분밖에 은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태철은 그 시간이 소중해, 보호자 대기실에서 면회 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태철은 은아보다 먼저 죽을 것을 걱정했지, 은아가 먼저 죽을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당연히 은아가 죽지 않게 자신이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여겼다. 태철은 자만했고, 예상하지 못한 일에 두려움과 막막함을 느꼈다.

자신이 죽으면 따라 죽으라고 거만하게 말했던 일과 유언장을 썼던 일, 혼자 남을 은아를 걱정해 태성을 가족으로 만든 일, 전부 다 우스웠다. 만약, 은아가 잘못되면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따라 죽어야 할까.

태철은 시도 때도 없이 목이 메어 왔다.

태철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기계에 의지해 숨을 쉬는 은아를 아픈 눈으로 보았다. 태철은 은아의 손을 꼬옥 잡았다. 손을 잡으면 말간 얼굴로 배시시 웃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은아야.”

태철은 조심스럽게 은아를 불렀다. 묵묵부답. 은아는 눈을 감고 누워만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마치 인형 같았다. 또, 태철의 목이 메었다.

사방에서 다른 보호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태철은 올라오는 눈물을 삼키고 울지 않으려 눈에 힘을 주었다.

“일어나라, 은아야. 죽으면 안 돼. 응? 은아야… 제발.”

삼십 분은 너무 짧았다. 금방 면회 시간이 끝났고, 태철은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태성이 어깨가 축 처져 나오는 태철에게 다가갔다.

“은아, 잘 있냐? 괜찮아?”

“어.”

태철은 중환자실 옆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은아를 보고 나면 자주 다리에 힘이 풀렸다. 태철은 주먹을 쥐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진정했다.

“하아…….”

태성은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헝클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덜덜 떠는 태철이 낯설고 불안했다. 은아가 잘못되면 바로 따라 죽을 것같이 구는 모습이 무서웠다.

“야, 강태철, 나는 네 가족이야. 알지? 나도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

“일어나, 집에 가자.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가자, 가서 저녁 먹자.”

태성은 태철을 일으켰다.

“만약에 잘못되면? 여기 있어야 한다.”

“잘못 안 돼. 은아가 너 이렇게 있는 거 좋아할 거 같냐? 일어나. 내일 다시 와.”

“…….”

태철은 마지못해 일어나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다.

태성의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태철의 눈에 은아의 스포츠카가 들어왔다.

저 차를 못 사게 했어야 했나. 그럼 못 쫓아갔을까.

그날의 모든 게 다 후회가 되었다. 수갑 채우는 걸 꼼꼼하게 볼걸. 방심하지 말걸. 아니, 가게 문을 닫고 은아의 곁에 있을걸. 아니면, 최마귀가 잡힐 때까지 은아와 함께 다른 곳에 있을걸. 태철은 수만 번 후회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태성은 은아의 차를 멍하니 보고 있는 태철의 팔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태철을 식탁 의자에 앉히고 죽집에서 사 온 죽을 그릇에 옮겨 식탁 위에 올렸다.

“야, 빨리 먹어. 얼굴이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야. 못 봐주겠어.”

태철은 태성의 성화에 못 이겨 숟가락을 들어 까끌까끌한 입안으로 죽을 밀어 넣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몰랐다. 태철의 속은 은아 때문에 새까맣게 타다 못해 뻥 뚫렸다.

태성은 죽상을 하고 죽을 먹는 태철을 못마땅하게 보았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태철의 얼굴이 많이 상했다. 입술이 부르트고, 피부가 까칠하고, 볼이 홀쭉해 엉망이었다. 폐인 같았다.

“그… 최마귀 그놈, 구치소 들어갔고 재판받을 거다.”

태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

태철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 감방에 들어가든 말든, 지금 중요한 것은 은아의 안위였다. 태철은 마귀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태철은 죽을 휘적거리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입맛이 떨어졌다.

“왜 안 먹어.”

“입맛 없다.”

“야, 은아 강해. 꼭 일어날 거니까 걱정 그만하고 먹어. 은아보다 네가 먼저 죽게 생겼어.”

태성은 숟가락을 태철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은아 약한 아이다. 약해. 마음도 약하고, 잘 운다. 약하다고…….”

태철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태철 따라 태성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다 큰 남자들의 눈물이 늘었다.

“하아…….”

태성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두 눈을 깜박이며 눈물을 참는데, 태철의 전화가 울렸다. 병원에서 온 전화다. 태철이 급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강은아 보호자…….”

태철의 말이 끊어졌다. 은아가 심정지를 일으켰다는, 오늘이 고비일 거라는 전화였다. 태철은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태철과 태성은 중환자실 밖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은아가 살기를 기도했다. 태철은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은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행히 은아의 심장은 다시 뛰었다. 그 후로도 태철을 미치게 하는 고비는 여러 번 있었다. 그래도 은아는 나름 잘 버텨냈고, 일주일 뒤에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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