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가족의 탄생 (12/15)

12. 가족의 탄생

태성은 보았다. 태철이 차에 치이는… 아니, 차가 태철에게 치이는 모습을. 차가 급정거를 하며 태철을 쳤지만, 태철은 밀리지 않았다. 새 슬리퍼를 신고, 119를 부른 태성은 생각했다.

‘강태철 저거는 금강불괴지신이다!’

차가 멈추자마자 태철은 제 몸을 살피지 않고 제 품 안의 은아를 먼저 살폈다. 은아와 아이는 무사했다. 태철은 뒤늦게 아이를 찾으러 나온 아이의 부모에게 아이를 인계했고, 은아는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하고 멍하니 태철을 보았다.

“형님, 괜찮습니까?”

은아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태철은 괜찮다고 웃어 보였지만, 은아는 차 앞 범퍼가 찌그러진 것을 보고는 대성통곡했다. 태철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구급차에 실려 갈 때까지 아무렇지 않을 척을 하며, 펑펑 우는 은아를 달랬다. 은아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병원으로 가는 내내 자신이 더 죽을 것같이 굴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은아는 태철의 옆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중얼거렸다. 은아의 상태가 불안정했다. 태철은 제 몸보다 은아를 더 걱정하며 여러 검사를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태철은 뒤쪽 갈비뼈에 살짝 금이 간 것 외에는 이상이 없었다. 통증이 심하지 않았지만, 한 달 정도 입원을 권유받았다. 의사는 걱정 어린 얼굴로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은아에게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랬지만, 은아는 손을 벌벌 떨며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뒤로 넘어갔다.

은아의 불안증이 다시 발발했다. 은아는 진정제를 맞고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태철의 껌딱지가 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삼 일이 흘렀다.

“은아야, 나 이제 진짜 괜찮다.”

태철은 식판의 밥을 퍼 자신의 입에 넣어 주는 은아에게 말했다.

“응.”

은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밥을 떠먹여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태철은 자신을 챙기는 은아가 좋아 넙죽넙죽 밥을 받아먹었지만, 걱정되었다. 은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굴었지만 속은 정반대였다. 낮에는 태철의 몸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병간호를 하다가, 태철이 잠든 밤에는 “내가 대신 다쳤어야 했는데.”라고 자책하며 울었다.

은아는 금 간 갈비뼈 조심해야 한다고, 절대 태철이 있는 침대에서 자지 않고 간이침대에서 잤다. 태철은 점점 몸과 마음이 상해 가는 은아를 보며 속이 탔다.

그건 태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의 길을 걷는 개인주의자 태성이지만, 은아가 걱정돼 덩달아 집에 가지 못했다. 소파에서 잠을 자고, 밖에 나가서 은아가 먹을 도시락을 사 오는 등 은아를 챙겼다.

“침대도 불편한데, 오늘부터 집에서 자라.”

참고 참던 태철의 입에서 퇴출령이 떨어졌다. 더 이상 여기에 있다가는 은아도 병원 신세를 질 판이었다. 은아는 눈썹을 한껏 아래로 내린 채, 밥을 뜨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싫어.”

“고집부리지 말고.”

“싫다고.”

은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태철이 조금만 밀어내는 말을 하면, 이렇게 또 은아는 눈물을 흘렸다.

“강은아, 오버야.”

소파에 앉아 태철과 은아를 관찰하던 태성이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리 특실이라도 삼 일 내내 소파에서 자니 온몸이 다 아팠다.

“누가 보면 불치병인 줄 알겠네. 은아야, 강태철보다 차가 더 많이 다쳤어. 앞 범퍼가 아예 나갔어. 쟤는 몸이 돌이라니까? 내가 봤을 땐 입원 한 달 안 해도 돼. 다음 주면 퇴원하겠구만. 오히려 네가 병날 판이다. 너 밥도 잘 안 먹고.”

은아는 눈물이 방울방울 단 눈으로 태성을 째려보았다.

“어휴. 어머니 같은 형한테 눈을 누가 그렇게 뜨냐?”

한 소리 하기는 했지만, 삼 일 동안 울기만 하는 은아를 보며 태성은 태철 못지않게 가슴이 아팠다.

“태철이가 아프잖아. 내가 색신데. 여기 있어야지, 어디 가.”

“너, 계속 강태철 얼굴만 보면 우니까 그러지.”

“나 때문에 다쳤는데, 어떻게 안 울어? 그리고 이제 안 울어.”

“뻥 치시네. 너, 눈에 그거 뭐야? 눈물 뭐야? 콧물이야?”

“아니야!”

은아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씩씩거렸다.

“어, 어? 이제 막 노려봐? 반말도 하고.”

“…아닙니다.”

은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숙였다.

“어휴…….”

초등학생처럼 말싸움하는 태성과 은아 때문에 태철의 머리가 지끈해졌다. 태철이 은아에게 손짓했다.

“은아야, 나 봐라.”

“응.”

“나, 너 버리고 어디 안 간다. 나는 그렇게 약한 놈이 아니야. 알지?”

“응.”

“그러니까, 내 걱정 하지 말고 집에 가서 푹 자라. 그리고 밥도 먹고.”

“…….”

“응? 가게 문도 열어야지. 너무 많이 쉬었다. 레시피 알려 줄 테니 해봐라.”

“내가 태철이 없이 어떻게 해.”

“최태성도 있고. 힘들면 둘이 같이해라.”

“못 해.”

“은아야, 나 그냥 퇴원할까?”

“안 돼. 금 간 거 아프단 말이야. 뼈 붙여야지.”

“너 계속 여기서 밥도 안 먹고 울기만 하는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냐.”

“…….”

“은아야. 색시야. 형 말 듣자.”

“…나… 지금 비정상 같지. 아픈 애 같지? 병신 같지?”

“아니야. 절대 아니다. 네 눈에 안 보여도, 나는 항상 네 옆에 있다.”

“…….”

“은아야, 내게 보여 줘라. 내가 곁에 없어도 혼자 밥 먹고 잘 잘 수 있다는 거. 혼자 잘 해내는 모습 보고 싶다. 그렇게 해줄 수 있냐? 응? 은아야.”

태철은 은아의 볼을 매만지며, 사랑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그 사랑을 받은 은아는 점차 마음을 안정시켰다.

“해…보겠습니다.”

“그래. 착하네, 우리 색시.”

태철은 은아의 뺨을 잡고,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다. 쪽쪽. 삼 일 만에 은아가 배시시 웃었다.

‘오글거리긴.’

태성은 다정한 태철과 은아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나 점차 편안해지는 은아의 얼굴에 태성도 마음 편한 얼굴을 했다.

은아는 태성과 함께 삼 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가게로 내려가, 태철이 준 레시피대로 국수를 만들었다. 은아는 바로 옆에 태철이 없이도 삶을 살아갈 힘이 넘쳤다. 그리고 포부도 생겼다.

“태철이가 옆에 없어도 잘해 나가는 거 보여 줄 겁니다!”

그러나 은아의 용기와 포부는 두 시간이 지난 후, 반 토막 났다.

“우… 우웩!”

태성이 헛구역질을 했다. 열심히 끓인 육수로 만든 멸치국수는 여태껏 먹어 본 국수 중 최악이라 단언할 수 있었다. 연습 삼아 만든 김밥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김밥 속의 모든 재료의 자존감이 너무 높았다. 입에서 다 따로 놀았다. 며칠 연습한다고 나아질 요리 실력이 아니었다.

태성은 의문이 빠졌다. 강태철은 도대체 얼마나 은아를 믿는 거야? 요리 실력이 이 꼬라진데 왜 혼자 장사하라고 보냈지? 태철만 보면 우는 은아 때문에 태철의 심정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했다.

“이건… 태성이 형이 보조를 잘 못해서입니다.”

은아가 슬그머니 국수를 싱크대에 버렸다.

“강은아, 남자답지 못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지.”

“아니! 멸치 똥 따야 하는데 귀찮다고 그냥 넣지 않았습니까? 안 느껴지십니까? 멸치 똥이 화내고 있는 맛이?!”

“화는 내가 나네…. 어쩌지? 망한 거 같은데.”

“힝… 망하면 안 됩니다.”

은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살이 빠져 불거진 목뼈가 태성의 눈에 걸렸다. 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애 밥부터 먹여야겠다.

“은아야,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걸 해야 해.”

“네? 뭘 말입니까?”

“자격증 따서 국 끓여 먹을 거니? 내가 너 따라서 같이 딴 자격증이 몇 갠데? 베이킹 자격증 써먹어야지?”

“아… 빵 팔 겁니까?”

“카페에서 커피랑 간단한 디저트 팔자. 그리고 맛있는 데서 밥도 먹고.”

“네!”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고 은아와 태성은 베이킹 용품과 오븐을 사러 서울로 떠났다.

그 시각, 태철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은밀한 목소리로 상대 통화자에게 명령했다.

“뭐 좀 알아보자. 태선 그룹 최 전무 말이다.”

원래 빨리 알아보려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은아 때문에 이제야 시작했다. 태철은 조급한 얼굴로 빨리 알아보라고 재차 강조했다.

베이킹 재료를 사고, 한정식집에서 밥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한밤중이었다. 은아는 자기 전에 태철의 얼굴을 봐야겠다고 졸랐고, 태성은 질린다는 얼굴을 했지만, 순순히 은아를 병원 앞에 데려다주고, 주차장에서 기다렸다. 은아는 조심히 태철의 병실 문을 열었다.

“왜 왔어? 오늘은 집에서 자기로 했잖아.”

“집에서 잘 거야. 그냥, 얼굴 보고 싶어서. 잠깐만 보고 갈게.”

은아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태철의 얼굴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하루 반나절 안 봤을 뿐인데, 보고 싶어 죽을 뻔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건 오랜만이었다.

은아는 태철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품에 안겨 넓은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고 싶지만, 갈비뼈에 무리가 갈까 봐 은아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안기고 싶은 욕망을 잠재웠다.

“그런데 태철아, 태성이랑 둘이 있게 하고 싶어? 질투 안 해?”

“질투해.”

“그런데?”

“강은아는 나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저 자식 작년하고는 다르다. 변했어. 간이고 쓸개고 다 버린 놈 아니야?”

“맞아. 처음에 딜도 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 은아야, 지금도 최태성과 단둘이 있는 거 버겁냐?”

“아니.”

“그래. 다행이다.”

“태철아, 내일부터 카페에서 타르트도 만들고 커피도 만들어서 팔 거야.”

“국수는?”

“망했어. 아니, 태성이가…….”

은아는 얼굴을 내려 태철의 손등에 볼을 비비며 주절거렸다. 태성이가 멸치 똥을 안 따서 육수가 맛이 없었다, 국수 면도 열심히 삶았는데 태철이가 만든 것처럼 탱글탱글하지가 않더라, 김밥도 말 줄만 알지 속 재료 만든 적은 처음이라 완전 망했다, 요리가 너무 어렵다 등등 태철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태철은 은아의 징징거림이 싫지 않고 좋았다. 재잘거리는 작은 입술이 참새 같아서 실실 웃음만 흘렀다.

“국숫집은 태철이 나으면 같이하자. 태철이랑 나랑 단둘이서만 하자.”

“그래.”

태철은 두꺼운 손으로 은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은아는 온기 가득한 손길에 배시시 웃으며 태철의 눈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살게. 태철이가 옆에 없어도 잘해 볼게.”

“그래. 뽀뽀.”

“뽀뽀.”

태철은 은아에게 입술을 내밀었고, 은아는 쪽 소리가 나는 입맞춤을 했다. 태철은 미소 지으며, “잘 자.”라고 속삭였다.

감미로운 굿나잇 키스를 끝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은아가 없었던 ‘Cafe Eun-A’는 드디어 은아가 있는 ‘Cafe Eun-A’가 되어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되었다.

(INST****m)

좋아요 3,131개

hayoon_love #Cafe Eun-A

어버이날 못 간 할머니 집 연차 쓰고 갔다가 들른 카페.

사실, 별 기대 안 했었다. 메뉴가 아메리카노랑 카페라테, 믹스 커피밖에 없어서 실망했는데, 예쁘게 생긴 직원이 원하는 메뉴 있으면 메뉴판에 없어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장난 반으로 아인슈페너 달라고 하니까, 바로 만들어주더라. 그것도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더라;; 원두 좋은 거 쓰는 거 같더라. 커알못인 나도 좋은 원두라는 게 확 느껴진 커피 맛이었다. 엄청 맛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먹어 본 적은 없지만, 현지의 맛이 났다. 암튼 그랬다. 어쨌든 맛있어서 놀랐는데, 가격 듣고 기절초풍했다. 단돈 천 원. 저 어제 아인슈페너 맛집에서 칠천 원 주고 사 먹었는데요;;; 거기보다 더 맛있었다.

그리고 여기 타르트도 판다. 종류도 많다. 티라미수 타르트, 치즈 타르트, 피칸 타르트, 레몬 머랭 타르트, 블루베리 타르트, 자몽 타르트, 초코 타르트, 청포도 타르트. 원래는 초코랑 레몬 머랭만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자주 찾아서 종류 늘었다고. 타르트도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가격 미쳤다. 너무 싸다. 양도 많은데 이천 원이다. 돌아이다. 망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타르트는 단기적으로 파는 거라 괜찮다고 하더라. 여기가 진정한 시골 인심이다.

그냥 미. 쳤. 다.

커피, 타르트뿐 아니라, 사장님이랑 직원 미모도 미쳤다. 두 분 다 하얀 와이셔츠, 까만 슬랙스 맞춰서 입었는데, 그냥 커피 킹스였던. 집 근처였으면 여기에 뼈를 묻었을 텐데.

직원이 타르트 만드는데, 원래 옆집 국숫집 직원이라고 했다. 사장이 병원에 있는 바람에 카페에서 일하는 거라고. 사장 퇴원하면 김밥 말러 간다고. 사장 퇴원하면 다시는 타르트 맛 못 본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 이번 주말에 나랑 여기 올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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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가 늘어서 TMI 하나 뿌립니다. 직원 게이입니다. 카페 직원 때문에 가시는 분들 있던데 남편 있어요;;; 할머니가 그러는데, 국숫집 사장이랑 결혼했다고 합니다. 금실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장님 무섭게 생겼다고 합니다. 국숫집 사장 싸움 잘하냐고 물어보지 마세요. 존나 잘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100% 져요. 그리고 카페 사장은 직원 짝사랑해서 질척거린다고 소문이 파다하던… 정확한 건 아닙니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마을 소문이 그렇게 났습니다. 검사님 이 글은 고양이가 썼습니다.

#커피맛집 #타르트맛집 #얼굴맛집 #사장존잘 #직원존예 #더큰대한민국 #동성부부

dntjdfjqm 나. 나. 같이 가자. 사장 배우임? 너무 잘생겼는데? 직원도 존예임.

hayoon_love @dntjdfjqm 직원은 실물이 미쳤음. 사진발 안 받는 거. 여기는 커피가 멋있고, 사장님, 직원이 너무 맛있는 곳임.

dntjdfjqm @hayoon_love 맛집이네.

ghdrlfqls 어? 나 저 사장 아는데?

hayoon_love @ghdrlfqls 구라 치지 마.

ghdrlfqls @hayoon_love 아니 진짜 안다고. 저 사람 검사였는데?

hayoon_love @ghdrlfqls 헐, 진짜?

ghdrlfqls @hayoon_love 어. 그리고 태선 그룹 막내잖아.

hayoon_love @ghdrlfqls 헐! 재벌이었어? 아… 그래서 싸게 팔았구나. 나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rkghrkgh @ghdrlfqls 어, 나도 저 사람 앎. 근데 입양아 아님?

ghdrlfqls @rkghrkgh ㄴㄴ. 디엠 보셈.

wpdudwpdud @ghdrlfqls 저도 디엠 볼 수 있을까요?

ghdrlfqls @wpdudwpdud 누군데요?

wpdudwpdud @ghdrlfqls 그냥 모르는 사람이요.

ghdrlfqls @wpdudwpdud 계속 모를게요.

wpdudwpdud @ghdrlfqls 네.

이렇게 좋아요는 늘어만 갔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 카페 은아는 핫한 카페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카페 은아의 장사 시간은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국적으로 몰려든 손님 덕에 두 시간 더 연장해서 여덟 시까지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팔리는 음료의 수와 타르트 개수가 날로 늘어갔다.

동네 사람들은 이러다 부자 되는 거 아니냐고 웃었지만, 다른 곳에서 오천 원 받고 파는 커피를 한 잔에 천 원, 보통 육칠천 원 하는 수제 타르트를 이천 원에 팔기 때문에 박리다매는 통하지 않았다. 이익이 없으니까. 아무리 많이 팔아도 겨우 적자를 면할까 말까였다.

태성과 은아가 남는 게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격을 낮게 측정한 것은 돈에 욕심이 없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파는 거니까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다 여겨서였다. 그런데 사람이 전국적으로 몰릴 줄이야.

SNS를 보고 왔다는데, 태성과 은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많이 팔아 봐야 하루에 커피 열 잔을 팔던 카페가 열 잔이 뭔가, 백 잔을 넘게 팔게 되었다. 은아는 태철을 그리워할 새 없이 타르트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저녁 여덟 시. 드디어 마감 시간이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었다. 내일 장사 준비를 해야 했다. 은아와 태성은 빠르게 카페를 정리하고 국숫집에 발을 들였다. 가게 안은 멸치 육수 냄새 대신 달달한 냄새가 풍겼다. 카페에 오븐을 놓을 자리가 마땅히 없어서 국숫집에 오븐을 놓고 밤마다 타르트를 만들었다.

은아와 태성은 둘 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기계처럼 타르트지 삼십 개를 만들어 굽고, 그 위에 수제 크림을 위에 올리고, 과일을 올리고, 육 등분으로 자르고, 필름지를 붙이고, 냉장고에 넣었다. 공장이 따로 없었다.

태성과 은아는 삼 주 가까이 미친 듯이 일했고, 태철의 퇴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은 태철의 퇴원만을 희망으로 여기고, 태철이 돌아오면 타르트 지옥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힘들면 안 해도 된다. 태철이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령 없는 은아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일념으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 했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은아와 태성은 집으로 돌아왔다. 씻을 기운도 없는 그들은 거실 한가운데에 그대로 방치된 이불 위에 몸을 뉘었다.

은아는 태철이 옆에 없어 한동안 잠을 설쳤었다. 혼자 자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은아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는 태성은 밤이 외로운 사람끼리 거실에서 같이 이불 깔고 자자고 말했다.

잠이 너무 고팠던 은아는 태철에게 허락을 받은 후에 같이 잠자리에 들었다. 은아는 태성이 같이 섹스하자고 수작을 부릴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태성은 얌전히 잠만 잤다. 은아는 의아했지만, 태성은 나는 예전의 개새끼가 아니야, 라며 은아의 의구심을 일축시켰다.

제 말대로 태성은 많이 달라졌다. 태철의 허락 없이는 섹스하자고 덤비지도 않았고, 가스라이팅을 하지도 않았다. 은아는 그런 태성이 신기하다가도 진짜 가족같이 느껴져 어이가 없어 웃기기도 했다.

“하아… 강태철, 다음 주에 오지?”

“네에…….”

태성의 옆에 누운 은아가 힘없이 말했다.

“그럼, 드디어 타르트 지옥에서 벗어나겠네.”

“네에…. 태성이 형, 저 이제 자요…. 잘 자….”

은아의 눈이 가물가물 감겼다. 태성은 옆으로 몸을 돌려 코앞까지 가까워진 은아의 얼굴을 관찰했다. 태성의 코에 달달한 타르트 냄새가 섞인 은아의 살냄새가 들어왔다. 은아의 목에 코를 박고 폐 깊숙이 냄새를 맡고 싶지만, 참았다. 강은아는 강태철 거니까.

“하아…….”

태성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언제나처럼 흘렀다.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억지로 눈이 뜨인 태성의 입에서 불만 섞인 소리가 나왔다.

“또, 하루가 왔네. 일하기 싫다. 진짜로. 어?”

태성의 눈이 커졌다. 타르트 냄새밖에 없는 집에 오랜만에 밥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태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은아는 아직도 꿈나라였다. 태성은 맛있는 냄새가 나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태철이다. 태철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깼냐? 도대체 뭘 먹고 산 거냐?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너!”

태성은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오랜만에 집밥다운 집밥을 먹겠구나. 태성의 눈에 감동의 눈물이 차올랐다.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여태껏 너의 밥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어.

요리 솜씨가 없고 바쁜 은아와 태성은 삼 주 가까이 도시락만 사 먹었고, 그것이 질려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로운 음식을 내려 주시다니. 감격이다.

“왜, 날 그렇게 봐?”

“내가, 네 음식을 사랑했나 보다.”

“미쳤냐? 주접떨지 말고 은아 깨워라.”

“…….”

태철은 정신없이 입에 밥을 욱여넣은 은아와 태성을 보고 말을 잃었다. 요새 막노동 뛰냐?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바쁜 은아는 태철의 병실을 잘 찾지 못했다. 대신 시간만 있으면 전화를 했었다. 항상 밝은 목소리로 오늘은 손님 몇 명이 왔고, 타르트를 얼마 팔았다며 잘 살고 있다고 하도 자랑을 해서 적당히 해라, 많이 팔아도 적자라며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일주일 굶은 거지 같은 모습을 보니, 자신이 좀 말렸어야 했나 싶었다.

태철은 매일 병문안을 오는 마을 사람들 덕에 카페 은아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은아와 태성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다. 카페 은아 덕에 외지인이 많이 왔다. 그 덕에 마을 경제가 살아났다. 공로상이라도 줘야겠다 등등.

잘 살고 있구나, 뿌듯했는데 집 꼬락서니와 애들 꼬락서니가 엉망이었다. 태철은 안쓰러운 눈으로 은아의 밥그릇에 불고기를 올려 주었다.

“은아야,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태철아, 너무 맛있어. 눈물 나.”

“그래, 울지 마라.”

“강태철, 그동안 네 요리 무시해서 미안.”

“어휴.”

은아와 태성은 밥 한 그릇을 빠르게 해치우고, 또 밥 한 공기를 더 먹었다. 태철은 양 볼이 홀쭉하게 들어간 은아 때문에 속이 쓰렸다.

태철은 자신이 곁에 없어도 은아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일부러 은아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마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빨리 퇴원해서 보양식 좀 해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은아의 분리 불안이 없어진 거 같아 다행이다 싶지만, 너희들 무얼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하냐?

“너희 체인점 낼 거냐?”

열과 성을 다해 장사하는 아이들을 향해 태철이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그래.

“아니!”

“미쳤냐? 너 오면 바로 그만둘 거야!”

‘그럼, 왜 열심히 하는데?’

“그럼, 문을 닫고 며칠 쉬어라.”

“손님과의 약속은 지켜야지.”

“손님과의 약속은 지켜야 해.”

태철의 제안에도 은아와 태성이 동시에 말했다.

“오! 강은아, 통했어? 같이 장사 좀 했다고 우리 팀워크가 잘 맞다?”

“응!”

태성과 은아는 뿌듯하게 웃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태철은 기가 찼다.

“너희 이렇게 보니, 진짜 가족 같다.”

“내가 은아 엄마라니까?”

“그래.”

달콤함은 짧고 현실은 길다. 맛있는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가게 냉장고에 넣은 타르트를 들고 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이 질질 끌렸다.

은아와 태성의 표정이 한껏 우울했다. 태철은 그저 이 상황이 웃겼다. 그러니까, 이익도 안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소량만 판매하고 쉬면 될 텐데. 태철은 태성이 은아처럼 점점 멍청해진다고 생각했다.

“은아야, 도와줄까?”

“안 돼! 절대 안정이야.”

사실, 태철은 다 나았다. 태철은 오늘 퇴원할 생각이라고 말하려는데, 태성의 탄식이 태철의 말을 막았다.

“아… 망했다…….”

타르트 상자를 들고 앞서가던 태성의 걸음이 뚝 멈췄다.

“왜? 멈추십니까? 아…….”

은아의 걸음도 멈췄다. 카페 앞에는 벌써부터 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왜 저래? 타르트가 뭐라고 줄을 서?’

속마음을 숨기고 태성은 젠틀하게 웃으며 손님을 응대했다.

“아침부터 기다리시는 거예요? 굳이? 시간 많으신가 봐요? 오픈 삼십 분 전이니까, 계속 기다리세요.”

태성은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은아도 태성을 뒤따르며 태철에게 말했다.

“태철이! 빨리 병원 가! 안정해야 해!”

태철은 피식 웃으며 은아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 때, 태철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태철의 눈이 차갑게 식어 갔다.

은아와 태성 덕분에 북적북적한 마을. 그곳에 번쩍번쩍 빛나는 외제 차가 들어섰다. 차는 부드럽게 카페 앞에 정차했다. 명품 옷과 보석을 몸에 두른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려, 우아한 몸짓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문 위에 걸어 놓은 작은 종이 소리를 냈고, 태성은 상대를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말했다.

“아직, 오픈 십 분 전이에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태성아, 우리 아들?”

우아하지만, 날이 서고 위압감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태성의 귓전을 때렸다. 태성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어…머니?”

태성이 문 쪽으로 다가갔다. 엄마가 왜 여기에 있어? 태성의 머리가 멍해졌다. 제 눈앞의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다. 태선 그룹, 태 회장이 맞았다. 태성은 어버버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 왜 이렇게 굳었어? 내가 귀신이니? 아들아, 엄마가 궁금한 게 있어. 아들 집에는 달력이 없니? 아님, 5월 부분만 찢어진 거니?”

“…….”

“5월에는 어버이날이 있는데, 전화도 안 하고 말이야.”

“…….”

“어머, 이 배은망덕한 것을 죽여야 해, 살려야 해?”

태 회장은 태성의 뒤에 있는 은아를 흘깃 보며 웃었다. 입 잘 터는 태성의 입이 합 다물어졌다. 태성의 머리는 ‘왜 왔지? 무슨 일이지? 뭐지?’ 이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태성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겨우 입을 뗐다.

“여기는… 어쩐 일이에요? 조금 있으면, 오픈 시간이에요.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그래, 사람 많은 곳에서 할 얘기는 아니고. 강은아 씨? 조용한 곳에서 대화하고 싶은데, 괜찮죠?”

“네? 아… 네.”

“어머니!”

태성이 태 회장에게 소리쳤다.

“어머? 불효자가 고함을 치네? 저거 좀, 붙잡아 줘요.”

태 회장과 같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 가드들이 회장의 명령에 따라 태성을 붙잡았고, 태 회장은 은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화, 하기 싫어요?”

“아닙니다. 옆에 가게 있습니다.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은아는 회장의 손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요, 그럼.”

회장은 빈손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어머머… 혹시 오해한 거 아녀? 은아랑 사귄다고?”

“말도 안 댜! 은아는 강 사장 각시 아녀?”

“나가 최 사장이 은아한테 수작 걸 때부터 알아봤어!”

“어머… 어머머…. 저걸 어째?”

“은아! 왜 따라가? 뿌리쳐야지!”

“강 사장한테 전화혀 봐! 뭔 험한 꼴을 당하려고?”

“저번에 보니까 은아가 쉽게 당할 성격은 아니던데?”

“뭐가 아녀? 애가 얼마나 순진한데! 됐고, 강 사장한테 전화하라니까?”

“알겠…… 어?”

여느 날처럼 슈퍼 평상에 앉아 카페 은아에 몰린 외지인들을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의 눈이 태 회장의 등장으로 커졌다. 은아가 태 회장을 모시고 국숫집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마치 제 일인 양 호들갑을 떨었다. 태철에게 전화를 걸어라, 떠들어 대던 입들이 슈퍼로 다가오는 태철 때문에 다물렸다. 마을 사람들이 태철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강 사장! 봤어? 은아가 지금….”

“압니다.”

“뭐?”

태철의 반응이 무감했다. 한바탕 난리를 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태철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여유로웠다. 밖에 놔둔 음료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하나 꺼낸 태철이 슈퍼 주인에게 음료값을 냈다.

“아니이… 은아가 최 사장 어머니랑 국숫집에 들어갔다니까? 오해하는 거 같은데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봉변은 태 회장이 당할 거 같은데…….”

태철은 평상에 앉아 중얼거렸다.

“뭐라고?”

태철은 사람들의 의문에 답하지 않고 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캔을 따고 시원한 사이다를 목구멍 안으로 넘기고, 태성이 가드들과 실랑이를 하는 카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은아는 국숫집 문을 열어 태 회장을 안으로 들였다.

“편하신 곳에 앉으십시오. 마실 거라도 드시겠습니까?”

“뭐… 물 줘요.”

태 회장이 가게 내부를 떨떠름한 얼굴로 살폈다. 깔끔하지만 소박한 인테리어. 그것도 국숫집. 태 회장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은아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얼굴이 곱상하고 몸이 얄팍하지만 남자다. 그것도 전직 조폭. 야망이 넘쳤던 태성이라 재벌 집 고명딸을 낚아채 결혼할 줄 알았더니, 남자에게 홀려 이 시골까지 내려왔다니 태 회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은아는 자신을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는 태 회장을 모르는 척하고, 태철이 보낸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은아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냉수 두 잔을 테이블 위에 올린 뒤, 태 회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물 드십시오. 그런데 여기는 웬일이십니까?”

“내가 여기 촌까지 왜 왔다고 생각해요?”

“태성이 형 때문입니까?”

“네. 참, 자식 키우기 힘들어요?”

태 회장은 입꼬리를 올리지만, 싸늘한 눈으로 은아를 노려보았다.

“인터넷에 소문이 났더라고요. 태선 그룹 막내가 임자 있는 남자가 좋아서 수작 부리고 다닌다고. 다들 내 아들 게이냐고 물어봐. 하!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내가 얼굴을 못 들겠어.”

“인터넷에 그런 소문이 돌았습니까? 인터넷을 안 해서 몰랐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태성이 형에게 관심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 정리 못 하는 건 태성이 형입니다.”

“알아요.”

“아, 아십니까? 그럼, 원하시는 게 뭡니까? 태성이 형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저에게 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전직 조폭이라서 그런가? 겁이 없네. 내가 누군지는 알 텐데.”

“네, 압니다. 태선 그룹 회장님. 그리고 태성이 형 친어머니 아닙니까?”

“…….”

물을 마시려 물잔을 잡은 태 회장의 손이 멈췄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깜짝 놀랐다. 태성은 대외적으로 입양아였다. 알게 모르게 태성이 자신의 사생아라고 소문이 났지만, 자신 앞에서 은아처럼 확신하는 이는 없었다. 태 회장은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얼얼했다.

“하… 태성이가 그런 말도 했나요?”

“네. 태성이 형이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평생을 친아들이 아니라는 콤플렉스로 힘들어했고, 인정받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친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옆에 있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자격증도 따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힘든 게 사라졌습니다. 회장님은 태성이 형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직접적으로 친어머니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문으로 알게 만드셨습니다. 아닙니까?”

“그래서?”

“어머니께서 줘야 할 위로를 제가 태성이 형에게 줬습니다. 태성이 형은 제 가족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친한 형입니다. 회장님께서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올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 그래요?”

“네.”

“그럼, 우리 태성이랑 안 잤겠네?”

“…….”

은아의 입이 다물어졌다. 태 회장은 태성에게 관심이 없는 척했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을 닮은 다른 자식들과는 다르게 태성은 태 회장을 빼닮아서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주위 시선 때문에 티 낼 수 없었기에 애착이 삐뚤어졌다. 그래서 종종 태성을 뒷조사했다.

그래서 태 회장은 작년 태성이 은아와 태철에게 어떤 꼴을 당했는지도 알고, 은아와 태철이 밀어내도 꾸역꾸역 그들에게 달라붙는 자신의 아들을 잘 알았다. 그래도 아들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태성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까지 내려왔다면, 은아를 향한 사랑이 진심이라는 방증이기 때문이었다. 태성이 포기하지 못하면 자신이 포기시키면 된다고 태 회장은 생각했다.

“섹스했잖아? 누가 가족이랑 섹스를 해요? 강태철이라는 남자와는 부부라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났던데. 도대체 무슨 관계야? 은아 씨는 참, 문란하고 더러운 인간 같아요.”

은아와 태철, 태성의 관계는 일반적인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이상하고 복잡했다. 은아도 잘 알았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 아들을 잘 알아요. 내 아들, 최태성은 나를 닮아서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평생 은아 씨 옆에 있을 거야.”

“…….”

“그렇다고 태성이를 치울 수는 없고, 너를 치우고 싶은데, 어떻게 치울까 고민이에요. 나는 은아 씨가 문제 같거든. 너만 없었으면, 태성이가 검사를 그만두는 일도, 여기에서 선거 운동하다가 낙선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

“나는 태성이 엄마고 태성이와 같이해야 할 게 많아요.”

“무엇을 말입니까? 안 하셨잖아요. 태성이 형은 어머니 정을 많이 못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은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태 회장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은아는 계속 태 회장의 신경을 갉아먹었고, 지금은 인내심이 많이 바닥났다.

“하… 계속 따박따박 말대꾸. 내가 기분이 많이 나빠. 뒷바닥에 구르던 전과자 새끼가 뭐가 잘났다고 눈 똑바로 뜨고 말을 섞어? 내가 말을 하면 고분고분 들어야지?”

고상한 척 굴던 가면이 벗겨지고, 나쁜 인성이 튀어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태성은 태 회장을 똑 닮은 친아들이었다.

“…….”

“뺨을 때리면 내 손이 아프고. 물이 낫겠죠?”

촤악! 태 회장은 물잔을 들어 은아의 얼굴에 뿌렸다. 은아는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않고 물을 고스란히 맞았다. 물방울이 머리카락과 얼굴을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입을 다물고 살아요.”

태 회장은 핸드백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은아 앞에 던졌다.

“외국으로 치워 버리는 게 낫겠죠?”

“태성이 형이 쫓아올 겁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

은아는 봉투를 들어 안에 든 수표를 꺼냈다. 십억. 은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십억입니까? 겨우 이걸로 어떻게 외국에서 삽니까?”

“뭐?”

“당연히 제 뒷조사를 하셨을 거고. 제 재산이 얼만지도 알지 않습니까? 제가 이 돈 때문에 외국으로 갑니까?”

“강태철이라는 사람과 공동 명의던데.”

“아뇨. 스위스 은행이요.”

“…….”

“뒷바닥에서 구른 탓에 돈이 꽤 있습니다. 꺼지기에는 돈이 너무 적고. 대신, 정보 값으로 받겠습니다.”

은아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태 회장에게 건넸다.

“뭐예요?”

“최 전무가 보유한 차명 계좌 목록입니다.”

최 전무는 태 회장의 차남이다. 태철이 은아에게 보낸 문자의 내용은 ‘메일 확인해라’였고, 태철이 메일로 보낸 파일은 차명 계좌 목록이었다.

태철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태철은 정보가 빠른 인간이고, 은아는 태철이 건넨 정보로 사람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던 인간이다. 태철과 은아는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하는 조폭이었다.

“최 전무가 회장님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아마, 태성이 형이 회장님 친아들이란 것을 알고 입지가 약해졌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하… 배은망덕한 놈이 여기 또 있었네.”

“태성이 형과 함께하신다는 게 빼앗긴 회사, 다시 찾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뒷바닥에서 구르던 전과자 새끼는 깨끗한 척하는 사람 대신 더러워진 겁니다. 태성이 형이 저와 있는 게 싫으시면, 태성이 형과 대화하십시오. 어머니로서 해야 할 말도 잘 안 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여기에 있었을 뿐입니다.”

“하… 재밌네?”

태 회장은 흥미 가득한 눈으로 은아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얼굴도 예쁘고, 말도 잘하고…….

그 시각, 태성은 자신을 못 나가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가드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지금 열한 시가 넘었다고! 장사해야 한다고! 장사!”

“못 나가십니다.”

가드들은 태성의 패악에도 기계처럼 말했다.

“하… 미치겠네? 저기 밖에 줄 서서 기다리는 손님 생각은 안 해? 하아…….”

태성은 신경질 가득한 손길로 머리를 헝클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 누나? 나 태성이요. 가게 좀 봐줘요. 타르트 손님만 받아 줘요. 고마워요.”

태성은 전화를 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자가 가게 문을 두드렸다.

카페 옆, 꽃집 주인이다. 그녀는 종종 바쁜 은아와 태성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태철이 주기적으로 꽃을 사 줘서 은아를 좋게 보고 있었는데, 카페 은아 덕에 외지인이 꽃을 꽤 사서 태성, 은아와 친해졌다.

“나가는 게 안 되면, 들어오는 건 되지?”

가드들은 망설였다. 태성은 가드들 몰래 문밖의 꽃집 사장에게 눈짓했다.

“어? 저 사람이 문을 안 열어 주네?! 타르트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꽃집 사장이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 탓에 웅성거리며 눈치만 보던 손님들이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게 문 언제 열어요! 약속 지켜야죠!”

손님들의 성화에 가드들은 마지못해 문을 열었고, 손님들이 들어왔다.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가드들이 뒤로 밀려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는 태성은 꽃집 누나에게 가게를 맡기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카페에서 탈출한 태성이 평상에 앉아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태철에게 뛰어갔다.

“이 등신아! 은아한테 가야지, 여기에 왜 있어!”

태성은 쫓아오는 가드들의 눈을 피해 태철의 뒤에 숨었다.

“야, 우리 엄마 장난 아니야. 은아 머리털 다 뽑을걸? 빨리 가게 가자!”

“은아는 나한테만 애같이 굴지, 당할 아이가 아니다.”

태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르게 가드들을 밀쳐내고 가게로 향했다.

“하아…. 내가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에요. 남자 며느리도 나쁘지…….”

은아를 샅샅이 훑어보던 태 회장의 입이 오랜 시간 후에 열렸다. 그런데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태성 때문에 말이 끊겼다.

“엄마!!”

태성이 태 회장에게 달려갔고, 은아는 테이블 위의 봉투를 챙겨 주머니에 야무지게 넣었다. 태성보다 한발 늦게 가게에 들어온 태철이 그런 은아를 보며 웃었다. 머리가 뜯긴 것 같지는 않고, 야무지게 자기 할 말 잘한 느낌이다.

“아, 우리 애, 사랑스럽네.”

태철은 태성이 태 회장의 팔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건 말건, 은아 앞에 성큼 다가와 은아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급하게 입술을 찾아 물었다.

“어머니! 빨리 나오…… 씨발!”

태성이 화를 냈다. 옆에 누가 있든지 말든지 은아와 태철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빠졌다. 태 회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가 소리쳤다.

“염병!!”

태성은 서로의 입술을 갈구하는 태철과 은아를 보며 씨근덕대다가 태 회장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태철과 은아의 키스는 더 깊어졌다. 은아는 태철의 절대 안정을 주장하며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태철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은아는 단호했다.

태철은 속으로 얼마나 참는지 보자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정이 나서 달려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은아는 꽤 잘 참았다. 사실 갑자기 카페가 바빠지는 바람에 씹질할 생각을 못 한 게 컸다.

그렇게 참고 참았던 것이 한 번의 입맞춤으로 폭발했다. 은아는 태철의 목에 팔을 걸고 몸을 가까이 붙이고 적극적으로 태철의 혀를 핥고 치열을 훑었다. 태철의 입안 모든 것이 달콤하고 야릇했다.

은아는 비음을 흘리며 아랫도리를 태철에게 비비적거렸다. 태철은 은아를 곁눈질로 살폈다. 볼이 빨갛고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다른 때보다 적극적으로 응해 오는 모습이 예뻤다. 태철은 속으로 웃으며, 은아가 자신을 리드하도록 하며 뒤통수를 한 손으로 잡았다.

“하으응…….”

은아는 팔을 풀고 태철의 허리를 꽉 잡았다. 은아의 아래와 태철의 아래가 완전히 맞붙었고, 은아는 발정 난 개새끼처럼 엉덩이를 들썩였다. 은아의 좆이 발기한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태철은 피식 웃으며 입술을 뗐다. 떨어진 입술이 아쉬워 은아는 입술을 쭈욱 앞으로 뺐다.

“푸하하하. 은아야, 대낮부터 밖에서 좆을 세우냐?”

“하아… 좆이 뜨거워.”

“그러냐?”

태철은 은아의 바지 안에 손을 쑤욱 집어넣고 앙증맞은 좆을 만지작거렸다. 은아의 좆이 그리웠다. 작은 좆에서 계속해서 정액이 나오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태철은 실실 웃으며 뒤통수에 댄 손을 옮겨 은아의 셔츠 안에 넣고 유두를 꼬집고 비틀었다.

“흐읏… 하응… 우웅….”

은아는 태철의 가슴팍에 얼굴을 대고 우웅, 아이가 칭얼거리는 듯한 신음을 흘렀다. 은아의 좆에서 프리컴이 줄줄 흘렀다. 좆이 꺼덕거리고 은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곧 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조루 새끼…….”

태철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은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태철의 손에 정액을 분출했다. 태철은 손 밖으로 정액이 새지 않게 좆을 꽉 잡고 바깥을 살폈다. 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은아의 바지를 한꺼번에 내렸다. 태철은 제 손바닥에 가득 든 은아의 정액을 할짝였다.

섹스하지 않는 동안, 자위를 하지 않은 듯했다. 향과 맛이 진하고 양이 많았다. 태철의 소유욕이 커 갔다.

은아는 자신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태철 때문에 정액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을 커다란 혀로 핥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은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리를 오므렸다. 발기가 풀린 좆이 다시 꿈틀거렸다.

태철은 은아의 정액을 다 핥아 먹고, 자신의 침으로 흥건한 손바닥을 은아의 입가에 대주었다. 은아는 태철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손바닥을 할짝였다. 부드러운 혀가 태철의 손바닥을 간질였다.

“하아… 은아야, 간지럽다.”

“싫어?”

“아니. 계속 핥아라.”

부끄러움도 없이 아래를 훤히 드러내고 손을 할짝거리는 모습이라니. 음란하기 그지없었다.

태철은 시선을 내려 은아의 아래를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시 발기하기 시작한 좆, 그 아래 더 은밀한 곳에 있는 구멍. 당장이라도 테이블 위에 엎어 놓고 구멍에 좆을 박아 넣었으면 좋겠지만, 한번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몰랐다. 집으로 갈까 생각하는데, 은아가 먼저 유혹을 해왔다.

“하고 싶어. 태철아, 하고 싶어. 등은 괜찮아? 해도 돼?”

은아의 눈이 욕정으로 번들거렸다.

“어, 괜찮다. 오늘 퇴원할 거다.”

태철은 고민은 지워 버리고 은아의 옷을 입히고 어깨에 들쳐 멨다. 빠르게 가게를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데, 태철의 귓가에 속삭인 은아의 말에 태철의 걸음이 뚝 멈췄다.

“병실에서 하고 싶어. 해도 돼? 하고 싶어.”

태철이 눈이 돌아갔다. 태철은 은아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은아와 태철이 잊은 한 사람, 태성. 태성은 알콩달콩한 그들과는 다르게 심각했다. 태 회장의 차에서 태 회장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최태성, 아들? 도대체 무슨 생각이니?”

태 회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아주 많이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음성이었다.

“제가 뭘요? 어머니야말로 무슨 생각이신데요? 여기는 왜 왔어요? 강은아한테 무슨 짓 하셨어요?”

“어머니에게 짓이라니? 불효자는 입을 다물어야지?”

“…….”

태성은 입을 다물었다. 태 회장은 기가 강한 사람이다. 높은 자리까지 올랐으니 풍기는 위세가 작을 수가 없었다. 웬만해서 겁을 먹지 않는 태성도 태 회장에게 쉽게 기가 눌렸다.

“나는 강은아, 걔가 너에게 여지를 보여 줘서 포기 못 하고 질척이는 줄 알았더니. 너는 그냥 사랑에 미친 놈이었구나?”

“허… 어머니도 그렇게 보여요? 미쳤죠. 전과는 좀 달라졌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아버지도 그랬어요?”

태성은 속에 꽁꽁 감춰 둔 이야기를 꺼냈다. 태성은 한 번도 자신이 어머니의 친아들이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봤자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고, 재벌 아들로서 누리는 것도 많아서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은 물어보고 싶었다. 은아 때문에 태성의 마음이 착해지고 약해졌다.

“무슨 소리니?”

“제 친아버지요. 그 사람도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어요?”

“…….”

“어머니는 제 친어머니시잖아요. 지금 아버지와 결혼했으면서도, 가진 건 몸과 사랑밖에 없는 남자와 바람이 나서 저를 낳고 버리셨잖아요. 버림받은 아버지는 병들어서 죽고, 나는 보육원에 들어가고.”

“…….”

“말하고 보니 이것도 궁금하네요. 나 버렸으면서 왜 다시 주워 왔어요?”

“하… 알아도 모르는 척하더니, 왜? 갑자기 미안하다는 소리가 듣고 싶니? 그 말 한마디 뭐가 중요해? 내가 앞으로 너에게 보여 줄 미래가 더 중요한데? 나는 너와 할 게 아주 많아.”

“뭘요? 어렸을 때 못 한 엄마 아들, 소꿉놀이하자는 건 아닐 거고요.”

“나는 널 대통령으로 만들 거다. 영부인이 꿈이었단다. 그래서 지금의 남편을 선택했어. 실패했지만, 너는 나를 닮았으니 다를 거다.”

“와, 어머니는 진짜 못 당하겠다. 입양아지만 사실은 사생아. 그리고 게이. 그런데 날 데리고 뭘 해요?”

“뭐든 만들기 나름이지. 너는 내가 만든 최상의 작품이야. 다른 형제들과 비교해 봐도 꿀리지 않아. 너는 나를 빼다 닮았거든.”

“네, 닮았어요. 못되고 못된 게 아주 판박이예요. 자기만 중요하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용하고 밀어붙여요.”

태성은 자신이 은아에게 했던 나쁜 행동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 나는 강은아가 좋아요.”

“그럼, 엄마가 강태철 죽여 줄까? 그럼,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할래?”

태성은 태 회장을 바라보았다. 욕망으로 번뜩이는 눈. 자신과 지독하게 닮았다. 자신도 은아가 가지고 싶어서 태철을 감방에 처넣었었다.

“나, 강태철도 좋아해요.”

“뭐?”

“사실, 걔네 둘 다 좋아요. 단단해서. 내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절대 무너지거나 헤어지지 않아. 염병일 정도로 단단해. 어머니처럼 욕심 때문에 버렸다가 다시 줍는 짓 따위는 안 해요.”

“뭐?”

태 회장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불쾌하다는 것이 역력한데 태성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요. 걔네가 가진 단단함에 안정감이 느껴져서 너무 좋아요. 어머니보다 더 가족 같아. 우리 가족은 서로 속이고, 각자 모르는 비밀이 너무 많잖아요? 가족이 뭐 별거예요? 가족이 꼭 피가 섞여야 하나. 피가 섞여서도 버림받는데…. 내가 아무리 개 짓을 해도 다 받아 주고 용서하는데, 그게 가족이지. 나도 모르게 얘네, 어느 순간부터 내 가족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계속 옆에 있고 싶어요.”

“최태성.”

태 회장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성은 모르는 척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정의하기 어려워요. 사람은 어려운 존재이니까. 하지만 내가 행복하다면, 우리가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잖아요? 어머니, 이만 가세요.”

“최태성!”

태 회장이 다시 한번 더 태성을 불렀다. 태성은 못 들은 척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은아를 업고 달려가는 태철이 보였다. 싱숭생숭했던 마음이 단박에 풀어지고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쟤네는 또 염병 떨러 가나 봐요. 어머니랑 더는 할 얘기 없어요. 나는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

“나, 가요.”

태성은 차 문을 열고 카페로 걸어갔고, 태 회장은 멀어지는 태성을 눈에 담았다. 처음 듣는 아들의 속마음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도 자신의 욕망을 버릴 생각은 없었다.

병원에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중 최고는 아마 섹스일 것이다. 태철과 은아는 반평생 가까이 불법을 저지르고 다녔다. 그러니까 병원에서 씹질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태철은 은아를 업고 섹스를 하기 위해 병실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은아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빠르게 은아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옷도 벗은 후, 은아에게 입을 맞추고 곧바로 손가락을 은아의 구멍 안에 넣었다. 태철과 은아는 동시에 탄식을 뱉었다. 태철은 오랜만에 맛보는 쫀쫀하고 따뜻한 은아의 구멍에 감탄했고, 은아는 은밀한 곳에 들어온 태철의 손가락이 너무나 반가워서 한숨이 나왔다.

“은아야, 구멍이 너무 젖어서 손가락이 잘도 들어간다.”

태철은 질퍽거리는 구멍을 쑥쑥 쑤시면서 말했다.

“태철이도 섰네?”

은아는 완전히 발기한 태철의 좆을 잡고 귀두를 엄지로 문질렀다. 태철은 구멍을 넓히고, 은아는 태철의 좆을 흔들었다. 은아는 태철의 손가락이 더 깊게 들어오게끔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 모습에 태철이 껄껄 웃었다.

“은아야, 이렇게 안달이 났는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냐?”

“하아, 강태철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

“사랑스러운 것.”

태철은 은아의 유두를 입에 물고 혀로 굴렸다. 좆만큼이나 앙증맞은 돌기를 혀로 핥고 이로 깨물고, 마음껏 맛보았다. 태철은 혀를 세워 젖 구멍을 쿡쿡 찔렀다.

‘하아… 이 작은 구멍에서 내 새끼를 먹일 젖이 나오면 좋을 텐데.’

태철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은아의 젖꼭지가 빨갛게 부풀어 바짝 위로 솟을 때까지 물고 빨았다.

“으흥… 우웅… 하윽- 흐으.”

“은아야, 신음 흘리면 사람들 올 텐데.”

“하아… 아파서 태철이 고추 주사 맞는다고 하지 뭐.”

“푸하하하. 뭐?”

“모!”

안 본 사이 능청이 늘었다. 아니, 그동안 쌓여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태철은 예쁜 소리를 내는 은아의 입술을 핥았다. 젖꼭지도 맛있고, 입술도 맛있고. 우리 애는 안 맛있는 곳이 없네.

그중 제일은 바로 여기지. 태철은 손가락 네 개를 구멍에 넣고 은아가 느끼는 극점을 푹푹 찔렀다. 은아는 신음을 참으려 헐떡이며 허리를 털었다.

“왜 가고 싶냐?”

“흐응, 어.”

“그럼, 싸지 말고 가라. 가게에서 한 발 뺐으면 됐지.”

태철은 은아의 좆 구멍을 막고 구멍을 쑤시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은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태철의 좆을 꽈악 잡았다.

“크흐…….”

“하응… 하으…. 흐으, 흐응….”

은아는 두 눈을 끊임없이 끔벅였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허벅지가 달달 떨렸다. 허리를 위로 크게 튕기며 절정을 맛보았다. 태철은 아무것도 내보내지 못한 좆을 만지작거리며 은아를 보았다. 은아는 입을 벙긋거리며 오랜만에 맛보는 드라이 오르가슴에 눈물을 흘렸다. 태철은 은아의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고 은아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색시야, 좋냐?”

“응… 좋아…. 여보… 좋아….”

태철은 은아의 호흡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은아가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이제껏 참느라 붉게 발기해 프리컴을 뚝뚝 흘리는 좆을 구멍 입구에 댔다. 은아가 엉덩이를 뒤로 뺐다.

“왜?”

“잠깐. 태철이 자세 바꿔.”

“왜?”

“등 아프잖아.”

자신을 업고 달린 것만 봐도 완쾌했다는 것을 알지만, 은아는 제대로 태철을 탐하고, 태철에게 범해지고 싶었다. 태철은 또 여우 짓을 한다고 생각하며 은아를 잡고 한 번에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은아가 태철의 위에 올라탔다. 은아는 기세가 상당한 태철의 좆을 손가락으로 튕기고는 구멍에 갖다 댔다. 엉덩이를 내려 천천히 좆을 먹는데, 구멍이 질척하게 젖어 있어도 빡빡했다. 손가락은 수월하게 먹었지만 커다란 태철의 좆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삼 주 가까이 꾹 다물려 있던 구멍이었다. 태철의 길이 든 구멍이 그새 좁아져 태철의 좆을 낯가렸다.

“하아… 하아… 흐윽….”

은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좆을 뿌리 끝까지 먹으려 안간힘 썼다.

“쓰읍… 은아야, 천천히 해. 천천히.”

태철은 좆을 잡고 은아의 구멍에 다 들어가지 않게 했다. 태철의 좆이 반 정도 들어갔다. 그 정도만 해도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은아는 헉헉거리며 제 아랫배를 더듬었다.

“하아… 여기 있어. 하으… 너무 좋아.”

“그러냐?”

“어.”

은아는 태철의 가슴팍에 두 손을 올리고 움직였다. 은아의 구멍이 탐스럽게 벌어져 태철의 좆을 삼켰다 뱉었다를 반복했다.

“하앙, 흐응, 아앙, 하으,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은아는 좋다는 말을 반복하며 빨리 움직였다. 좋은 건 태철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은아의 구멍 맛은 황홀했다. 태철은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즐기는 은아의 얼굴을 보며 거칠게 박아 넣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하아… 쌀래…. 쌀래….”

은아가 중얼거리며 태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태철은 은아를 꽉 끌어안고 사정을 준비했다.

“하아… 그래, 싸라. 나도 쌀 거다.”

“흐아앙…. 흐응, 하악-”

은아가 태철의 가슴에 침을 줄줄 흘리며 사정했고, 구멍은 좆을 잘라 먹듯이 수축했다. 태철은 오래도록 묵혔던 정액을 은아의 안에 가득 뿜었다. 은아는 다른 때보다 더 많고 더 뜨거운 정액이 구멍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배가 뜨끈해…….”

은아는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축 늘어졌다. 눈도 완전히 풀렸다. 태철은 팔랑거리는 은아의 몸을 들어 다시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올랐다. 반쯤 눈이 감긴 은아의 볼을 툭툭 쳤다.

“벌써부터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면 안 되지.”

태철의 말에도 은아는 대꾸 없이 눈만 깜박였다. 태철은 구멍에서 좆을 뺐다. 정액이 주르륵 시트 위로 흘러내렸다. 구멍이 빠끔거릴 때마다 많은 양의 정액이 울컥울컥 나왔다. 태철은 입맛을 다시며 흐르는 정액을 손으로 훑어 다시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만 뱉어라. 오랜만에 먹어 놓고.”

“…….”

“쓰읍. 안 되겠다. 못 뱉게 다시 박아 줘야지.”

태철은 사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발기한 좆을 구멍에 넣었다. 미끌미끌한 정액 덕에 좆이 잘도 들어갔다. 태철은 허리를 움직이며 은아의 전립선을 뭉갰다. 구멍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퍼지는 쾌락에 힉힉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히윽! 흐윽, 하응!”

태철은 은아의 골반을 꽈악 잡고 쾅쾅 좆을 박아 넣었다. 거친 움직임에 은아의 안에 남아 있던 정액이 부글거리는 거품을 내며 밖으로 나왔다.

“하윽! 히익! 으윽!”

태철이 좆을 박을 때마다 은아의 좆에서 정액도 소변도 아닌 묽은 액체가 픽픽 나왔다. 눈이 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구멍은 오물오물 야무지게 좆을 뿌리 끝까지 삼켰다. 낯가리던 구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좆을 게걸스럽게 탐했다.

태철은 한쪽만 크게 부어오른 유두와 그에 비해 앙증맞게 작은 유두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한 번도 건드리지 않은 유두를 이로 깨물어 당겼다.

“하앗! 하아…….”

태철은 여전히 허리를 털며 유두를 탐했다. 젖꼭지가 잔뜩 발기해 빨갛게 달아올랐다. 태철은 흐뭇하게 웃으며 입술을 떼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몸을 그대로 방치하는 은아에게 입을 맞추며 정액을 사출했다.

태철은 자신이 있는 곳이 병실임을 잊어버리고 은아의 구멍이 하얀 정액으로 범벅이 될 때까지 좆질을 멈추지 못했다.

태철은 잠에 빠진 은아를 등에 업고 퇴원 수속을 밟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태철은 은아와 함께 침대 위에 누웠다. 편안하게 잠든 은아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미소 지었다. 이 순간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현재에 감사함을 느꼈다.

“은아야, 사랑한다.”

은아를 꽈악 품에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태철과 은아의 눈이 동시에 뜨였다.

“은아야, 잘 잤냐?”

“응, 태철이는?”

“나도 잘 잤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침대 위에서 빈둥거리다가 가게 오픈 시간을 한참 넘겨서야 일어났다. 오랜만에 서로가 곁에 있는데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가량 가게를 쉬기로 했다.

“어? 그러고 보니 태성이 형이 잠잠해.”

소파에 누워 태철이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를 듣던 은아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방에 가 봐.”

태철은 칼질을 멈추고 태성의 방문을 두드렸다.

“최태성, 자냐? 일어나라. 밥 먹자.”

“…….”

묵묵부답이었다. 태철과 은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들어간다.”

태철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태성이 없었다. 그리고 짐도 사라졌다.

“은아야, 최태성 사라졌다.”

“어제 어머니와 대화가 잘 안 됐나?”

은아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어기적거리며 태철의 옆으로 다가갔다. 휑한 방을 보다가 책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발견했다.

“태철아, 저기 종이.”

태철은 종이를 들어 글을 보았다.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인 문장.

I'm sorry, I love you.

If you want to be my family, find me.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와 가족이 되고 싶으면 나를 찾으렴.

“하…. 최태성, 이놈은 미친놈이다.”

태철은 글을 읽기 전까지 이별 편지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또 다른 개수작이었다.

“그런데 왜 영어로 썼을까?”

“정상이 아니라서.”

태철이 단언했다.

아니다. 태성은 은아와 태철에게 창피를 모르는 양 온갖 개수작을 다 부렸지만, 진심을 전하기에는 뭔가 민망했다. 자신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받아 주는 너희가 진짜 좋다고, 가족 같다고, 그러니 가족이 되어 달라고, 나는 너희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이 쑥스럽고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가족이 되고 싶으면 나를 찾아오라고 허세를 부렸다.

태철과 은아는 종이를 뚫어지게 보다가, 책상 위에 올리고 다시 방문을 닫았다.

“은아야, 밥 먹자.”

“어.”

태철과 은아는 식탁에 앉았다.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은아의 눈이 커졌다. 흑미밥, 도다리 미역국, 소불고기, 잡채, 겉절이, 계란말이.

“뭘 이렇게 많이 했어?”

“많이 하긴. 냉장고가 비어서 많이 못 했다. 그동안 일한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죄다 파는 거 사 먹지 않았냐? 어제 허겁지겁 밥 먹는 거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틈틈이 와서 밥 챙겨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은아야, 많이 먹어라.”

“응.”

은아는 미역국을 한술 떠먹고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먹는 행복이었다.

“아, 너무 좋아. 태철아.”

“그래.”

태철은 계속해서 은아의 숟가락에 음식을 올려 주며 은아를 살뜰히 챙겼다.

“태철이도 먹어.”

“알았다.”

태철은 양 볼 가득 밥을 넣고 오물거리는 은아의 얼굴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작은 얼굴이 더 작아졌다. 어제 벗겨 보니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태철은 씁쓸함을 삼키고 깨작거리며 밥을 먹었다.

“와아… 잘 먹었다. 태철이! 고마워.”

밥 세 공기를 비운 은아가 만족감을 표했다. 태철은 흐뭇하게 웃으며 후식으로 냉커피 한잔을 건넸다.

“커피 마셔라.”

“응. 그런데, 여보.”

“어.”

“태성이 형 찾으러 갈 거야?”

“아… 그놈…. 하…….”

태철은 헛웃음을 뱉었다. 가족이 되고 싶으면 자신을 찾으라는 말이 웃겼다. 참, 특이한 놈이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놈이다. 최태성은 끝까지 우리 옆에 있을 건가. 태철은 고민에 빠졌다.

“흐음…….”

“…….”

은아는 태철의 표정을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은아는 항상 태철을 유심히 살피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찾으러 갈 거지?”

“…….”

은아가 태철을 떠보았지만, 쉽사리 답을 내놓지 않았다.

태철은 은아에게 자신이 죽으면 따라 죽으라고 말했지만, 이번 사고로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 아님을 깨달았다.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금이 갔다는 사실에 펑펑 우는 은아 때문에 속상한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죽게 놔둘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어도 오래 살았으면 하는 이기심이 들었다.

태철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자신이 옆에 없어도 은아가 잘살 수 있을까 시험해 보았다. 생각 외로 은아는 열심히 살았다.

태철은 꽤 놀랐다. 평소 은아는 태철이 옆에 없으면 새끼 강아지처럼 낑낑거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태철이 옆에 없어도 잘 살았다. 열심히 일하고 밥도 먹고 잘 잤다. 태철은 태성의 덕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태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태성이 변한 만큼, 태철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만약 자신이 잘못되고 은아 혼자 남는다면, 은아가 의지하고 같이 살아날 사람이 태성밖에 없다는 결론이 섰다. 은아를 지탱해 줄 은아의 가족. 미우나 고우나 태철이 제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태성뿐이었다.

“둘보다는 셋이 낫지 않겠냐?”

태철은 곰곰이 생각한 후 말했다. 그 말에 은아가 씨익 웃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서는 안 된다며.”

“가족은 다르지.”

“가족…….”

“최태성은 작년과 다르다. 절대 너를 넘보지 않는다.”

‘내가 없어져도 그럴 거다.’

태철은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은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물었다.

“섹스는 하잖아?”

“재밌으니까. 좋으면 그만이다. 우리가 언제 도덕성 같은 거 따졌다고. 우리는 나쁘고 못되고 멍청한 놈이잖아? 우리가 행복한 대로 살면 된다.”

“…….”

“정해진 삶의 방식은 없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게 맞는 거다. 이상하고 이상해도, 나에게는 평범한 삶이다.”

“그래. 맞아.”

은아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가족이 생겼다. 평생 가족을 갈구했었다. 태철은 사랑하는 남편이고, 태성은 모든 것을 보듬어 줄 가족이다.

“언제 찾으러 갈 거야?”

은아가 남은 커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글쎄. 너무 빨리 찾으러 가면 콧대가 높아질 거다. 의기양양한 꼴 보기 싫다.”

“푸흡.”

은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철의 말이 맞다. 바로 찾으러 가면 ‘역시 너희는 내가 있어야 해.’ 하며 너스레를 떨게 분명했다.

“애 좀 태우다가 갈 거다.”

“응. 그런데 태철이! 있잖아.”

오 일이 지났고, 서울의 한 호텔 스위트룸에서 태성은 은아와 태철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태성은 더블베드 위에 누워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에 욕을 씹었다.

“와… 이놈들. 친형제 같다, 어머니 같다, 그러더니 나를 이렇게 팽하네? 내가 제 발로 나가 주니까 이때다 싶은 거지? 정이 남아 있네, 뭐네 하면서 사람 마음 흔들어 놓고 모르는 척을 해?”

태성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에 짐을 챙겨 넣었다.

“찾으러 안 오면, 내가 가지 뭐! 내가 언제 걔들이 찾아서 갔나? 내 발로 스스로 갔지.”

말을 그렇게 해도 약간 서러웠다. 아니, 이럴 거면 딱 잘라 나를 거절하든가! 섭섭하네? 평생 옆에 붙어서 괴롭혀 주마!

태성은 씩씩거리며 체크아웃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때, 한 차가 태성의 앞에 섰다. 우아하고 세련되게 잘빠진 벨리제 블루 색의 스포츠카였다.

‘뭐야?’

태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루프가 열리고, 운전석에 탄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찌푸려졌던 태성의 얼굴이 단박에 펴졌다.

“야! 강은아, 뭐냐?”

태성이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은아였다. 은아는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태성을 바라보았다.

“찾으라고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아니, 내가 나간 지가 언젠데 이제 와? 게을러서.”

태성은 속으로 안도했다. 안 찾으러 와서 많이 섭섭했는데, 역시 강태철과 강은아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너희도 내가 옆에 없으니 허전했지?

“하, 웃긴 놈. 그런데 이 스포츠카는 뭐야?”

기쁜 속마음과는 다르게 태성은 툴툴거렸다.

“태성이 형 어머님이 주신 돈으로 샀습니다.”

태철이 은아에게 태 회장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를 메일로 보냈을 때, 은아는 단박에 태철의 의도를 파악했다. 태철은 은아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태 회장을 마주하기를 바랐다.

은아는 태철이 원하는 대로 당당하게 맞섰다. 사실, 은아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은아는 태성의 어머니이니 좋게좋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물도 맞아 주었다. 어머니라면 자식 걱정에 화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으로 치워 버린다는 말에 화가 났다. 쓰레기도 아닌데 치운다는 단어 선택이 거슬렸다. 그래서 정보 값이라는 명목으로 받은 돈을 돌려주지 않고 자신이 챙겼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정보까지 줬는데, 이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돈을 받고 나니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곱게 통장에 모셔 놓기에는 찝찝함이 남는 돈이었다.

은아는 태철에게 돈을 건넸다. 태철은 웃으며 네 돈이니 너 원하는 데에 쓰라고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일억으론 마을 발전 기금을 냈고, 사억으론 스포츠카를 하나 뽑았다.

예전부터 은아가 가지고 싶어 했던 드림 카였다. 조폭 일을 할 때는 일하면서 끌고 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고 실용성이 없었고,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하고 나서는 소박한 마을에 어울리지 않고 타고 다닐 일이 없어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눈먼 돈이 굴러 들어오니 그간 사고 싶었던 것을 사기로 했다. 나머지 돈은 여름 휴가를 가서 펑펑 쓸 계획이었다.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은아, 물욕 있구나?”

“타세요.”

“우리 어머니 눈 뜨고 돈 뜯기셨네. 웃기네.”

태성은 피식피식 웃으며 차에 올라타 운전석에 앉은 은아를 빤히 보았다. 파란색의 날렵한 스포츠카와 강은아. 자신과 잘 어울리는 차를 골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태철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이 되러 가요.”

“그래.”

차는 엔진 소리를 내며 집으로 달려갔다. 이렇게 이상한 가족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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