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계절은 돌고 돌고, 최태성도 돌고 돌고(2권) (9/15)

은아 멸치국수집 2권 (19세 미만 구독 불가)

9. 계절은 돌고 돌고,

최태성도 돌고 돌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돌아왔다. 유례없는 한파가 그들이 있는 마을을 얼렸지만, 은아 멸치국숫집만은 예외였다. 아주 후끈후끈했다.

몸을 얼리는 추위 때문에 속이 뜨끈한 멸치국수가 절로 생각이 나, 국숫집을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전과는 다르게 가게의 문을 열기 전에 눈치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험한 꼴을 봤기 때문이다.

은아와 태철은 시도 때도 없이 붙어먹었다. 원래도 뽀뽀는 자주 했다. 그래도 손님이 오면 금방 떨어지는 양심이 있었는데, 요즘은 뻔뻔해졌다. 가게에서 홀딱 벗고 씹질을 하는 거다.

부끄러워하는 것도 없다. 씹질 중에 손님이 오면 사장은 손님이 불청객인 것처럼 눈이 살벌해지고, 직원은 아쉬워서 몸을 배배 꼬았다. 공과 사가 확실한 소상공인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불량 자영업자다. 음식점에서 씹질이라니.

은아네는 추운 겨울과는 다르게 불이 제대로 붙어 버렸다. 사실, 가을 때부터 아래를 못 붙여 안달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은아네는 갑자기, 왜, 뭐에 이렇게 불이 붙었을까, 의문이었다가 그들의 손가락에서 반짝 빛나는 반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신혼이구나. 뭐, 신혼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루에 수십 번도 하지. 암…….

이 마을은 은아와 태철에게 이상할 정도로 관대했다.

단골은 가게 문을 열기 전, 멈칫했다. 국숫집 유리창에 찬 습기는 따뜻한 육수 때문인가, 아니면 은아와 태철의 열기 때문인가. 약간의 고민을 했다.

단골은 험한 꼴을 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단골이라 좀 더 많이 봤다. 어제, 단골은 할 거면 문 잠그고 하라고 조언 아닌 호소를 했었다. 더럽다고 안 가면 그만이지만, 싸고 양 많고 맛도 좋은 국수를 포기하기에는 은아네 국수는 너무 가성비가 좋았다. 그리고 자기네가 농사지은 고구마도 구워서 서비스로 준다. 거기에 따뜻한 믹스 커피도 공짜였다. 오천 원에 식사뿐 아니라 후식까지 챙겨 주는데, 씹질 정도야 참을 수 있었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밀었다. 어? 안 열리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유리문을 살폈다. 하얀 습기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마감 삼십 분 전이다. 오늘은 일찍 문을 닫나 싶은데, 문 틈새로 미세하게 앓는 소리가 들렸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보니 은아 목소리다.

단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 습기가 그 습기구나. 단골은 이맛살을 찡그리고는 미련 없이 뒤돌아 나갔다.

오늘도 텄구만!

“으흥… 태철아.”

방금 손님 하나를 놓친 줄도 모르고, 은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음을 뱉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물어뜯을 듯이 물고 빠는 태철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은아는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태철은 은아의 앞에 서서 은아의 목에 얼굴을 묻고, 제 허벅지로 은아의 고간을 은근히 눌렀다.

태철은 이갈이하는 개새끼도 아니고 자주, 아니, 항상 은아의 목을 씹었다. 목티를 입지 않는 이상 일반 티로는 가려지지 않는 흔적을 만들어 놓고는 미안함도 없이 당당했다. 그저 소유욕 가득한 눈으로 만족했다.

은아는 태철이 자신에게 소유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이 자신과 태철을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고 대놓고 목을 드러냈다. 빨갛고, 파랗고, 보라색인 멍을 목에 달고 다니는 은아 때문에 한때 마을 사람은 걱정을 쏟아냈다.

요즘, 강 사장이랑 사이 괜찮은 거지? 맞고 사는 거 아니지? 하고 묻는 말에, 은아는 좆으로 맞습니다, 라는 말을 꾸욱 삼키고 괜찮다고 했었다.

“왜 이렇게 목을 씹어? 개야?”

고간에 닿은 태철의 허벅지 근육을 느끼며 은아가 말했다. 이제는 반말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섹스할 때 은아가 반말하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였다.

반말할 때와 존댓말을 할 때, 톤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존댓말을 할 때는 약간은 낮은 목소리를 하고 딱딱한 말투를 쓰지만, 반말할 때 좆 때문에 흥분해서 높은 교성을 냈다. 나른하고 말끝도 늘였다. 그런 은아의 목소리는 태철의 좆을 더 발기시켰다. 그러니까, 결론은 태철은 은아의 반말을 너무나 사랑했다.

“개? 푸흐흐흐.”

“응, 개애-”

은아는 말끝을 늘이고, 길게 한숨을 뱉었다.

“으르르르… 월!”

태철은 목을 긁으며, 제법 개 같은 개소리를 냈다. 태철의 눈빛이 흉흉했다. 서슬이 퍼렇고 날카롭게 빛나는 것이 짐승의 눈빛이었다.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잡고 빨간 피를 낼 것 같았다.

은아는 물려서 목이 부러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은아의 좆이 까닥였고, 프리컴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은아는 태철의 허벅다리에 제 좆을 더 세게 붙이고, 태철에게 매달려 허리짓을 했다.

“하아… 강태철.”

“우리 은아도 개새끼네. 발정이 난 거 보니까. 아니다, 여우 새낀가.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게 유혹을 하는 걸 보니.”

“하으…….”

사정감이 몰려왔다. 은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허리짓을 멈췄다. 허무하게 바지 안에 좆물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저 짐승의 입에 좆물을 먹이고 싶다. 은아는 바지를 벗었다. 태철은 바닥으로 툭 떨어진 바지를 보았다. 속옷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작은 좆도 투명한 점액질로 젖어 있었다.

“빨아 줘.”

은아는 태철을 향해 야시시하게 웃었다. 태철은 생각했다.

‘여우 새끼.’

쭈우웁!

태철은 침이 한가득 고인 입안에 은아의 작은 좆을 넣고, 강하게 빨아당겼다. 쿠퍼액과 침이 섞여서 목구멍으로 들어갔다. 태철의 좆이 더 힘을 받았다.

좆을 압박하는 자극에 은아는 구멍에 힘을 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철은 완전히 발기해 까닥까닥 움직이는 좆을 밖으로 뱉어냈다.

“좆이 하도 작으니까, 클리토리스 빠는 거 같다.”

제 침으로 번들거리는 작은 좆. 태철은 아랫입술을 혀로 핥으며 군침을 삼켰다. 뜨끈한 입안에 있다가 갑자기 차가운 공기에 노출된 좆과 사라진 쾌락에 은아는 눈썹을 아래로 내리고 태철을 보았다.

“뭐 해…….”

파르르 떠는 속눈썹으로 저를 보는 게 영락없는 여시다. 어떤 때는 제 목줄을 잡아당기는 주인 같다가도, 평상시에는 예전처럼 자신에게 꼬리를 흔드는 개새끼 같기도 하고, 섹스하면 여우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은아의 모습에 태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인 같기도 하고, 짐승 새끼 같기도 하다. 그건 은아와 태철, 둘에게 속하는 말이었다. 서로에게 자신의 목숨줄과 함께 목줄도 맡겼다.

태철은 바지 안에서 팽창해 존재감을 키우는 제 좆과 은아의 구멍을 번갈아 보았다. 빨리 저 벌렁거리는 구멍에 좆을 집어넣고 싶기는 한데, 맛있는 것일수록 더 아껴 먹어야 하는 법. 구멍과 좆 맛을 더 볼 생각이었다.

태철은 은아를 제 쪽으로 당겼다. 허리를 숙이고 은아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벌름거리는 구멍을 혀로 삭 핥자, 은아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나왔다.

태철은 은아의 구멍에 제 혀를 쑤셔 넣었다. 은아는 다리로 태철의 목을 옭아매고, 구멍은 태철의 입에, 좆은 태철의 얼굴에 비볐다. 태철의 얼굴 전체에 은아의 좆과 구멍이 맞닿아 있었다. 은아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헐떡이는 소리를 내며 짐승 새끼처럼 헥헥거렸다.

“흐억, 헉, 세게 빨아.”

구멍에 뜨끈한 혀가 닿자 화상을 입을 듯 구멍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은아는 허벅지를 달달 떨다가 뒤로 넘어갔다. 차가운 식탁이 등에 닿고, 정면으로 보이는 형광등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흐악, 흐윽. 흐응… 하읏!”

은아가 태철의 얼굴에 좆물을 싸질렀다. 태철은 고개를 들어 은아를 보았다. 이마에서부터 눈꺼풀, 속눈썹을 타고 내려가는 하얀 정액 때문에 하얀 은아가 더 하얗게 보였다.

태철은 구멍에 손가락 세 개를 한 번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 정도는 수월하게 집어 먹는다. 태철은 은아가 느끼는 곳을 건드리며 찔렀다. 은아와 태철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아는 제 좆물을 얼굴에 달고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태철 때문에 또 사정했다.

“조루 새끼.”

태철이 놀리는 소리도 크나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만. 좆으로 박아.”

손가락보다는 좆이지. 태철은 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바지를 벗었다. 은아는 몸을 일으켜 핏줄이 꿈틀거리는 붉은 좆을 보았다. 그리고 눈이 돌아갔다. 구멍에 박는 건 나중에. 일단 윗구멍에 박아야겠다.

은아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식탁 위에 무릎을 꿇고 좆 가까이 얼굴을 들이댔다. 고양이 자세를 한 채 위로 치켜든 은아의 하얀 엉덩이가 태철의 눈길을 잡았다. 은아는 태철의 좆에, 태철은 은아의 엉덩이에 정신이 팔렸다.

은아는 위로 우뚝 솟은 좆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귀두부터 좆 뿌리까지 혀로 느릿하게 쭉 길을 내듯 혀로 훑었다. 태철의 좆에 은아의 침이 만든 길이 그려졌다.

“하으…….”

흥분감에 은아는 더운 숨을 뱉으며, 두께도 길이도 상당한 좆을 입에 담았다. 워낙 커서 입에 다 안 담기는 것에 욕심이 더 생겼다. 목구멍을 열어 더 깊이, 깊이 삼켰다. 목구멍을 쪼이고, 고개를 왔다 갔다 했다. 구멍을 쪼이면서 씹질을 하듯이 태철의 좆을 빨았다.

“하아… 박아 달라며? 뒷구멍이 아니라, 윗구멍이었냐?”

은아는 대꾸 없이 열심히 좆을 빨았다.

태철은 은아의 목을 큰 손으로 잡았다. 움직일 때마다 목이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것이 손바닥으로 다 느껴졌다. 얇은 살가죽 아래에 있는 자신의 좆. 태철은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하얀 엉덩이를 한 손으로 잡았다. 떡 주무르듯이 주물럭거렸다.

젖어 있는 구멍 사이로 중지와 검지가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구멍을 쑤시자 은아가 목구멍을 쪼이는 박자에 맞춰 뒷구멍도 쪼였다. 태철은 헛웃음을 뱉고는 허리를 움직였다. 은아 말대로 좆을 입에 박는 거다.

움직임이 더더욱 거세어졌다. 은아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올라오는 구역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구역질 때문에 은아의 목구멍이 요동을 쳤다. 태철은 구멍에 있는 손가락을 빼고, 은아의 머리를 잡고 제 좆에 바짝 붙였다.

커다란 좆이 목구멍 안에 사정없이 처박혔고, 은아의 얼굴이 태철의 샅에 완전히 뭉개졌다. 은아의 숨구멍이 막혔다. 숨이 막혀 오기 시작했다.

“크학! 크흐윽!”

은아의 몸이 떨렸다. 태철은 눈을 내려 바들바들 떠는 은아를 관찰했다. 은아는 컥컥거리며 태철의 허벅지를 꽉 잡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은아의 모습에 태철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귀, 목을 넘어 상체까지 피부가 벌게졌다. 태철은 그만둘 타이밍을 살폈다.

태철은 은아의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은아가 눈을 치켜떠 태철을 올려다보았다. 충혈되고, 곧 뒤로 넘어갈 듯 흰자위가 번득거렸다. 태철은 은아의 입에서 좆을 뺐다.

“크헉! 켁… 켁… 크흑! 흐아….”

은아는 거센 기침을 하며 식탁 위에 엎어졌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고, 급하게 심호흡했다. 태철은 은아의 몸을 돌려 은아를 살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 침 범벅이고, 숨이 모자라 힘겨워하고 있었다. 입가는 찢어져 있고,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태철은 은아의 입에 손가락을 넣고 여린 살을 살폈다. 다친 곳이 없나 살피며, 목을 주물렀다.

“침 삼켜 봐라.”

은아는 태철의 말에 착실히 침을 삼켰다. 목구멍에 상처가 나, 침을 삼키자 따끔따끔한 감각이 올라왔다. 은아는 눈을 찡그렸고, 태철도 절로 눈을 가늘게 떴다. 태철은 한숨을 쉬고 물었다.

“목이 많이 아프냐?”

“하아… 아뇨. 괜찮습니다.”

“으이구, 멍청한 놈.”

은아는 입이나 구멍에 거칠게 좆이 쑤셔지는 것을 좋아한다. 태철은 몇 번이나 다친다고 타일렀지만, 은아는 말을 듣지 않았다. 태철은 은아가 피가학적 성애자인가, 꽤 고민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적당히 타이밍 보고 크게 다치질 않을 정도로 조절했다.

그러나 태철은 갈수록 자신이 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가학적인 행위를 할 때면, 심장이 벌렁거렸다. 은아가 걱정되는 한편, 너무나 큰 흥분과 만족감이 몰려와서 혀만 찼다.

“쯧, 이런 게 좋냐?”

“네. 이럴 때마다 형님 눈이 어떠신지 아십니까?”

“어떤데?”

“저를 너무 사랑하셔서, 저를 죽일 것 같은 눈입니다. 그 눈이 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아십니까?”

“쯧… 멍청한 놈…….”

태철은 남이 들으면 집착 때문에 뜨악할 말을 사랑스럽게 한다고 생각했다.

“좆이 터질 것 같습니다. 넣어야겠습니다.”

숨을 쉬고 살 만한지, 은아가 태철의 좆을 잡고 깔짝댔다. 태철은 은아에게 팔을 벌렸다. 은아는 태철의 목을 덥석 안고, 코알라가 제 어미에게 매달리듯 태철에게 매달렸다.

태철은 은아를 번쩍 안아 한 팔로 은아의 허리를 껴안고 그를 지탱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제 좆을 잡고 은아의 구멍에 끼워 맞췄다. 쑤욱 잘도 들어가는 구멍에 웃음이 났다. 그동안 징하게도 붙어먹었다.

태철은 제 좆 길이 제대로 난 것 같아 뿌듯했다.

태철은 은아의 골반을 잡고 움직였다. 좆이 쑤욱 빠졌다가, 퍽, 박혔다.

은아 덩치가 작지 않은데, 쉽게 덜렁덜렁 움직였다. 태철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은아를 종이 인형처럼 휘둘렀다.

태철은 또다시 은아의 목을 찾아 물었다. 송곳니로 꽉 깨물자, 은아가 태철의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며 덜덜 떨었다. 그리고 태철의 목을 더 껴안고 아래를 더욱더 세게 붙었다.

저를 다치게 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꼴이라니. 태철의 좆이 크기를 키웠다. 그리고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은아의 목을 깨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살갗을 뚫고, 기어이 피를 냈다. 태철은 입안으로 퍼지는 피 향을 음미했다. 피를 마시고, 살코기를 씹어 먹고 싶어졌다.

진짜 짐승 새끼가 된 듯하다. 태철은 좆에서부터 올라오는 충동을 억누르고자 좆질에 집중했다. 좆을 퍽퍽, 박아 올렸다.

“태철아, 태철아. 흐응- 흐읏! 흥, 좋아. 태철아.”

“하아… 강은아…….”

“응, 태철아, 응응, 세게, 흐앙, 세게! 더 박아 줘.”

강하게 박아 올라오는 좆에 장기와 뱃가죽이 뚫릴 것 같으면서도 은아는 ‘더 세게’를 주문했다. 온몸이 땀범벅이고, 몸에 힘이 점점 풀렸다. 태철에게 매달린 팔에 힘이 빠져 바닥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은아는 씹질에 미쳐 버린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태철을 흘깃 보다가 태철의 목에 걸었던 팔을 풀었다. 역시. 추락하지 않았다. 태철이 단단한 손으로 은아의 등을 받치고 있었다.

씹질은 멈춰지지 않았다. 은아는 기쁘게 웃었다.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몸에 힘을 빼고 달랑거리는 몸뚱이. 미소가 지어진 얼굴. 태철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은아의 구멍 안 깊숙이까지 정액을 뿌렸다. 힘차게 내장까지 흩뿌려진 정액에 은아의 배 속이 울렁거렸고, 은아의 허벅지도 달달 떨렸다.

태철은 은아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사정의 여운을 느꼈다. 은아의 귓가에 거친 숨소리를 내며 숨을 골랐다. 좋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태철의 머리를 지배했다. 은아도 마찬가지였다.

태철이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몸이 진동했고, 그 파장에 따라 태철의 좆도 꿈틀거렸다. 사정했다고 줄어들 존재감이 아니었다. 은아는 제 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좆 때문에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침을 질질 흘리며 계속해서 몸을 움찔거렸다. 태철은 은아의 볼에 쪽쪽 입을 맞추며 은아가 진정할 때까지 그를 달랬다.

구멍에서 좆을 빼니, 정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은아야, 뒷구멍으로 뭘 그렇게 싸?”

“흐으… 강태철…….”

은아는 정액을 떨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꼭 오줌 싸는 거 같다. 태철은 피식피식 웃었다.

“질질 흘리고, 좋아?”

“좋아.”

쪽쪽. 태철은 은아의 눈두덩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식탁 위에 은아의 상체를 엎어 놓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땅에 발이 끌렸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바닥으로 쓰러질 듯 구는 은아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고 벌렸다.

“은아야. 네 구멍만 보면, 짐승 새끼가 먹잇감을 보고 침을 흘리는 거처럼 내 좆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어떻게 생각하냐?”

“나는 태철이 좆만 보면 박히고 싶어.”

“크흐흐, 그러냐? 내 구멍에 그 신생아 좆만 한 좆 박을 때는 언제고?”

태철은 귀두를 은아의 구멍 입구에 살살 비비며 은아의 좆을 잡았다. 은아의 좆만 만지작거리며 구멍에는 좆을 넣지 않고 미적거렸다.

“하으… 빨리 박아.”

은아는 다리를 벌벌 떨면서도 엉덩이를 돌려 좆을 비비적거렸다. 그 몸짓이 마음에 든 태철은 은아의 구멍에 제 좆을 찔러 넣었다.

태철은 은아의 골반을 꽉 쥐고 들어 올렸다. 은아의 하체가 붕 떴다. 허리도 같이 들렸다. 그 탓에 은아의 얼굴이 식탁 위에 처박히듯 눌렸다. 태철은 자비 없이 좆을 박았다.

퍽, 퍽, 차박, 차박.

살을 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멍 안에 싸 놓은 정액 때문에 물소리가 가게 안을 울려 퍼졌다. 은아는 “윽, 윽”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구멍 안이 화끈화끈 아린 것을 넘어 점점 감각이 없어졌다.

그리고 과한 쾌감이 은아의 머리를 엉망으로 들쑤셨다. 이렇게 큰 쾌락이면, 진짜 씹질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아는 겁이 났다.

“흐윽…….”

은아는 짐승 소리를 내며 팔을 버둥거렸다. 본능적인 거부였다. 그러나 구멍은 다른 본능을 가져서, 태철의 좆을 강하게 빨아 당겼다.

“그… 그만…….”

“쓰읍…….”

태철은 도망가려는 은아의 골반을 단단히 붙들었다. 구멍은 이렇게 질척하게 제 좆을 잡고 놓지 않는데, 도망이라니. 태철은 상체를 숙여 은아의 몸을 압박하고, 은아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말했다.

“쓰읍… 입 다물어. 네가 그만하라고 말하면, 그만해야 하잖아?”

“흐으… 하앗!”

“너 이렇게 거칠게 쑤셔 주는 거 좋아하잖아?”

태철의 말소리가 귀에 크게 들렸다. 은아는 목 뒤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전율했다. 멈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울었다.

태철이 은아의 구멍에 사정하고, 거칠게 좆을 밖으로 빼냈다.

“으윽! 흐응!”

빠져나오면서 은아의 극점을 긁고 나갔다. 마지막까지 은아를 괴롭히는 좆이다. 테이블 아래로 소변이 주르륵 떨어졌다. 바닥에는 하얀 정액과 투명한 물, 노란 소변이 뒤섞인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왜 이렇게 싸는 거야? 개새끼야?”

은아는 태철의 말에 대꾸도 못 하고 동공을 이리저리 흔들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태철은 은아를 꼬옥 껴안았다. 정신이 가물가물한 와중에 저를 꼬옥 껴안는 태철의 품이 따스해 은아는 실실 웃다가 기절했다.

갓 삶은 고구마에서 김이 폴폴 나왔다. 은아는 껍질을 살살 벗겨, 그 위에 버터를 얹었다. 뜨거운 고구마에 버터가 살 녹아 고구마 안으로 스며들 때,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에 고소한 버터 향이 확 풍겼다. 풍미를 느끼면서 오물오물 입을 바쁘게 움직였다. 달콤한 고구마를 시원한 우유 한 모금과 같이 삼키자, 추운 겨울도 잘 보낼 자신이 생길 만큼 든든해졌다. 은아는 만족감에 한숨을 포옥 내쉬며, 맛을 음미했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은아는 계속해서 고구마를 먹으며 까만 밤을 밝히는 하얀 눈을 눈에 담았다. 집 안은 추운 바깥과는 다르게 보일러로 따뜻한 온도를 유지 중이었다. 평화롭고 아늑한 겨울밤이다. 은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게 행복이지. 소소한 행복이 최고다.

은아가 고구마 하나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때, 태철은 은아의 행복감을 배로 만들어 주려 붕어빵을 사는 중이었다. 태철은 숙련된 전문가의 솜씨로 빠르게 붕어빵을 만드는 사장의 손을 뚫어지게 보았다. 태철의 머리에는 빨리 가서 은아 입에 붕어빵을 물려 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동네 사람 세 명이 다가와 태철의 옆에 서서 붕어빵을 주문했다. 그리고 살갑게 태철에게 말을 걸었다.

“또, 은아 심부름이여?”

“네.”

“은아, 요새 잘 먹네? 볼이 통통하게 오른 게, 아주 새색시처럼……. 강 사장이 잘해 주나 봐?”

“아… 새색시…….”

낯간지러운 호칭에 태철답지 않게 쑥스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새색시 맞지, 뭐.”

“아니이~! 내 말은 애 밴 새색시 같다는 거지.”

“뭐어~? 애~?”

마을 사람 하나가 호들갑을 떨며 음흉하게 태철을 보았다.

“그렇게 해대는데, 애가 안 생기는 게 이상하지.”

“어머어!”

그들은 뭐가 좋다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깔깔거리며 주책을 부렸다.

“네?”

감정의 동요가 잘 없는 태철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아니, 그렇게 하는데…….”

“저희요?”

“아이고? 소문 다 났어.”

“아, 네…….”

“그, 가게에서는 문 잠그고 혀.”

“안 그래도 그러고 있습니다.”

“그건 잘혔네.”

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한다. 신혼을 누가 말려? 근데, 그건 그렇고 은아는 진짜 임신 아니여? 그 정도로 하는데 내가 신이었으면, 그 정성에 감복해서 애라도 하나 점지해 주겠다. 깔깔깔, 껄껄껄.

‘뭔 소리지? 남의 성생활에 너무 관심이 많네.’

태철은 눈을 찡그리며 약간의 불쾌감을 내보였다. 그러나 붕어빵을 기다리는 동안, 임신 타령을 계속 듣다 보니 마음이 혹했다. 어느새 그들에게 동화되었다. 그래, 생명은 신비한 거니까. 혹시 또 모르지?

“아니이! 사랑하면 다 된다니까?”

“아이고! 자네 나이가 몇인데, 철없는 애처럼 사랑 타령이여?”

동네 사람들은 은아의 임신을 주제로 쉴 새 없이 입을 놀렸고, 태철은 상기된 얼굴로 오지랖 가득한 대화를 묵묵히 들었다. 태철은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말도 안 되는 임신 얘기에 홀리고 있는데, 붕어빵 사장이 태철의 정신을 바로잡아 주었다.

“강 사장, 여기 붕어빵.”

“아… 아, 네. 감사합니다.”

태철은 붕어빵을 받아 들고 동네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가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검사 한번 해봐, 하며 태철을 놀렸고, 어느새 태철의 머릿속에는 아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니, 진짜 생명은 신비한 거라니까? 태철은 단단히 홀려 버렸다. 멍한 눈을 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은아야, 형님 왔다.”

아이 생각으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태철은 붕어빵이 식을까 봐, 품 안에 넣어 왔다. 품 안에서 붕어빵 봉투를 꺼내 은아에게 건넸다.

“어? 형님 오셨습니까? 눈 많이 내리죠?”

은아는 태철의 머리와 외투에 묻은 눈을 털었다. 태철은 외투를 벗고 안으로 들어갔고, 은아는 붕어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는 소파에 앉았다.

은아가 태철에게 붕어빵을 건넸다. 태철은 거절하고 은아를 관찰했다. 오물거리는 작은 입과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겨 주는 배에 시선을 고정했다. 은아를 따라 소파에 앉아서도 배에 있는 시선을 거둘 줄 몰랐다.

“우리 은아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태철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은아의 판판한 아랫배를 더듬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살쪘습니까?”

“아니. 임신했나 싶어서.”

“네?”

뜬금없는 태철의 말에 뜨악하는데, 이미 태철의 눈이 아득했다.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다. 무슨 소리를 듣고 저러나 싶어 은아는 부지런히 붕어빵을 먹으면서 태철의 눈치를 살폈다.

“이 배 안에 좆물을 그렇게 넣었는데, 그 정도면 하늘이 감복해서, 애 하나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네?”

“네가 여자였으면, 내 애를 수십은 배었을 텐데.”

말을 뱉고 나자, 목구멍이 간질간질해졌다. 마음도 간질간질하다.

“형…님?”

“진짜…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태철은 멍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은아의 눈이 슬퍼졌다가 갑자기 반짝 빛났다.

“방법이 있으면, 꼭 아이를 낳아 드리겠습니다.”

잠깐 이성이 나가서 헛소리했는데,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은아의 굳은 다짐에 나갔던 태철의 정신이 황급히 돌아왔다.

‘내가 잠시 미쳤지. 우리 애가 어떤 앤데. 내가 정신줄 놓으면 배로 정신을 놓는 애가 아닌가. 또, 우리 애 삽질하게 생겼네.’

“농담이야, 농담. 네가 애를 어떻게 낳아?”

태철은 빠르게 정정했다. 은아 앞에서는 함부로 말도 못 한다.

“아… 그렇죠? 형님이 너무 진지하셔서 노력하면 낳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으이구, 멍청아.”

이 멍청이를 어쩌면 좋을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만.

태철은 아프지 않게 은아의 볼을 꼬집었다.

“아니, 요새 네 군것질 사러 밤마다 돌아다니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우스개로 너, 임신했냐고 해서.”

가게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붙어먹는 걸 안 사람들은 태철을 골려 줄 속셈 반, 신혼부부를 향한 장난기 반으로 주책을 부렸고, 태철은 답지 않게 거기에 휘말려서 더한 주책을 부렸다.

“겨울밤은 이상하게 먹을 게 많이 생각납니다. 날이 추워서 그런가, 빨리 속이 허해집니다.”

“속이 허하냐? 좆물을 그렇게도 많이 먹는데? 밑구멍으로 먹어서 그러냐? 윗구멍에도 줄까? 아님, 둘 다?”

장난기가 돈 태철은 능글맞게 말했고, 은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배시시 웃으며 소파 위에 자연스럽게 누워 다리를 벌렸다.

“으이구, 은아야. 입에 든 거는 다 먹어야지.”

은아는 태철이 판을 깔면 좋다고 춤까지 추는 놈이다. 태철은 못 말린다는 얼굴로 은아의 볼을 툭툭 쳤다. 볼 안에는 미처 삼키지 못한 붕어빵이 가득했고, 은아는 그것을 꿀떡 삼켰다.

“누워서 먹으면 체한다. 일어나.”

태철은 은아의 팔을 잡아당겨 앉혔다. 은아는 입안에 남은 음식물을 우유와 함께 목구멍 안으로 넘겨 버리고 입을 벌렸다. 채 다 못 삼킨 우유가 입가를 타고 흘렀다. 꼭 정액 같은 모양새에 태철의 아래가 힘을 받았다. 태철은 테이블 위에 있는 붕어빵을 힐긋 보며 말했다.

“붕어빵 많이 남았잖아? 식으면 맛없을 텐데?”

“강태철 정액이 더 맛있지.”

“하… 강은아.”

강은아는 개도 오리도 아니고, 강태철의 목줄을 쥔 주인이 맞다. 태철은 은아의 바지 안으로 성급하게 손을 집어넣었다. 바깥에 있어서 손이 차가웠다. 은아는 몸을 부르르 떨며 열에 들뜬 눈으로 웃었다.

“손이 차가워. 따뜻하게 해줄게.”

은아는 태철의 손을 잡고 제 둔부 사이에 넣었다. 태철의 손가락이 은아의 구멍에 들어갔다. 손가락을 저릿하게 만드는 따듯한 온기에 태철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강은아…….”

“먹여 줘. 강태철, 정액. 위든, 아래든.”

은아가 야시시하게 웃었다.

태철의 정액뿐 아니라, 겨울에는 먹을 게 많다. 그리고 겨울에만 먹어야 맛이 좋은 것들이 있다. 굴, 무, 대하, 배추, 귤, 유자 등등. 태철은 은아의 입에 제철 음식을 끊임없이 먹였다. 계절의 맛을 하나하나 느끼다 보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왔다.

3월, 봄이 되자, 태철은 봄나물을 캐러 산을 탔다.

강태철 가라사대, 제철 음식은 무조건 먹어 줘야 한다. 봄을 잘 보내려면 봄 음식을, 여름을 잘 보내려면 여름 음식을. 계절마다 몸이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려면 무조건 제철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태철은 쑥을 캐러 산에 갔다. 같이 가겠다는 은아를 말리고 혼자 심마니처럼 온 산을 누볐다. 그러다 영지버섯을 캐면 좋고, 산삼이면 더 좋고.

태철은 은아에게 도다리쑥국을 해주겠다며, 새벽에 수산시장에 가서 도다리도 사 왔다. 은아는 산에 간 태철을 기다리며 고양이들의 밥을 챙겼다. 그 때, 한 선거 유세 차량이 마을에 들어섰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선거 유세로 마을이 오랜만에 떠들썩했다.

은아는 웅성거리는 소리에 마당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뜻밖의 인물에 눈이 커졌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태성이 참모진들을 뒤에 두고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모습이 은아의 눈에 걸렸다.

“태성이… 형?”

은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태성에게 말했다. 태성은 은아를 발견하고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그리고 은아의 팔을 꽉 붙들며 낯짝 좋게 말했다.

“강은아, 오랜만이네? 선거 유세를 하다 보니 목이 마르네. 물 좀 줄래?”

“네?”

“집에 들어가자.”

“네?”

“나, 목마르다니까? 오랜만에 봤는데, 그냥 내쫓으려고?”

“아, 아뇨. 들어오십시오.”

태성은 은아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은아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태성에게 끌려갔다. 태성은 은아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을 허망하게 보는 참모진들에게 “식사하고 계세요.”라고 말했다.

태성은 “오늘 가게 쉬는 날이지? 태철은 어디 갔냐?” 질문을 쏟아냈지만, 은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태성의 얼굴만 보았다. 태성은 살이 많이 빠져 인상이 더 날카로워 보였지만,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은아는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안도했다.

집에 들어온 태성은 제집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원한 물을 태성에게 건넸다.

“잘 마실게. 앉아. 네 집인데, 뭘 그렇게 어색하게 있어?”

“아… 네.”

은아는 어색한 몸짓으로 태성의 맞은편에 앉아 눈을 굴렸다. 태성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은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얼굴을 보려고 자존심 다 버리고 다시 여기까지 내려왔다. 꽤 고민했었는데, 괜한 고민이었다. 이렇게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강은아는 여전하네. 여전히 예뻐?”

“아…….”

“귀엽게 아, 는…….”

태성은 커피를 한 모금 하고, 눈알을 굴려 집 안을 살폈다.

“그런데, 강태철은 어디에 있냐? 너희 껌딱지처럼 잘 떨어지지도 않으면서?”

“아… 산에 가셨습니다.”

“산은 왜?”

“쑥 캐러 가셨습니다. 도다리쑥국 하신다고요.”

“하… 그냥 사 먹지. 유난, 유난. 강태철도 여전하네.”

“…….”

태성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고, 은아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대화는 쉽게 끊겼다. 은아와 태성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은아는 고개를 숙이고, 허벅지 위에 올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영락없는 가해자의 모습이다. 당연히 피해자는 태성이다. 은아는 태성을 칼로 찔렀고, 태성은 찔렸다. 하마터면 과다 출혈로 죽을 뻔했다. 태성이 어떤 잘못을 했건,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은아는 태성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강은아. 나, 안 반가워?”

“…….”

태성은 은아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안부 전화 한다더니 왜 안 하냐?”

섭섭한 티를 내는 말투에 은아는 고개를 들어 태성을 보았다.

“우리… 사이 완전히 끊어진 거 아닙니까?”

“누가 그래?”

“전화도 안 주시길래. 저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허……. 그럼, 칼에 찔렸는데, 속도 없이 먼저 전화하리? 네가 해야지.”

“염치가 없어서요.”

“염치가 없는 게 아니라, 이제 나에게 볼일이 없는 게 아니고? 강태철이랑 해피해피 한 거 같은데, 불청객인 나는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거 아냐?”

태성은 욱해서 다다다 은아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다. 아, 좋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남을 비꼬는 못된 성정이 눈치 없이 튀어나왔다. 사랑하는 사람인데, 참았어야 했는데.

태성은 입술을 깨물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태성은 정말, 은아를 포기하려고 했다. 칼까지 맞았는데 포기 안 하고 질척거리면, 정말 병신이고 호구지.

그리고 한 달 뒤, 몇 개월도 안 갔다. 겨우 한 달 뒤, 태성은 자신이 은아 한정 호구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은아의 앞에 나타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멋지게 은아 앞에 서고 싶었다. 자신이 멋지든 아니든, 태철에게 눈이 멀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구질구질한 짝사랑을 하는 찌질이로 보이기는 싫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즈음, 좋은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가 정치에 입문하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태성을 떠본 것이다. 태성의 어머니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태성은 옳다구나, 바로 오케이 했다. 카페 사장보다는 국회의원이 있어 보이잖아.

태성은 은아의 곁에 다시 붙고 싶다는 열망으로 다시 은아가 있는 곳으로 왔다. 사실, 태철에게서 은아를 뺏을 생각은 없다. 칼에 찔리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자신이 어떠한 지랄발광을 해도 태철을 향한 은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이 시킨다고 사람을 찌르는가.

태성은 태철을 향한 은아의 맹목적인 사랑과 태철의 지독한 사랑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은아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사랑이 끝날 때까지, 은아에게 질척거릴 계획이다.

그리고 은아에게 다정하게 대해 줄 생각이었는데, 나쁜 본성, 어디 안 간다. 태성은 자책하며 말을 고르는데, 은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형님 생각을 전처럼 안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여전히 형 좋아합니다.”

“허… 나쁜 놈. 내가 그거 미련 주는 말이라고 했는데.”

‘요망한 강은아, 나를 또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네?’

“죄송합니다. 저는 한번 정을 주면, 그 정이 평생 가는 사람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죄송을 두 번씩이나 말해? 알았어. 알아들었어. 너나 강태철이나 둘 다 똑같지. 정에 휘둘리는 고아 새끼들….”

태성은 혀를 차다가, 갑자기 은아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태성이 반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거… 커플 반지냐?”

“결혼반지입니다.”

“나는 칼에 찔려서 흉터가 크게 남았는데. 그거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는데. 강태철, 강은아는 진짜 해피해피 했네. 진짜 부부가 되었어…….”

태성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은아는 다시 사과했다. 태성은 사랑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사과가 거지 같다고 느꼈다.

“누가 먼저 프러포즈했냐? 뭐. 강태철이겠지.”

“아뇨. 제가 프러포즈했습니다.”

“씨발…….”

태성의 배알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 오기 전에 은아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오직 순수한 순정만 보여 주기로 했다. 태성은 나쁜 본성이 튀어나오지 않게 애썼다.

“하… 강태철 좋았겠네. 좋냐?”

“네. 저… 태성이 형.”

“어.”

“혹여나 해서 하는 말입니다. 여전히 형을 좋아하지만, 이제, 형 필요 없습니다. 태철 형님이 죽으면 저도 죽으면 되니까요. 이제 형에게 휘둘리지 않습니다. 저희 사이에는 아무도 낄 수 없습니다.”

“나 좋다며?”

“네. 그래도 저는 태철 형님뿐입니다.”

“…허… 징하네. 그런데 나도 징해.”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이 있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형…….”

“그런데 말이다. 그거는 유효하냐?”

“뭐가요?”

“너의 친한 형으로 남아 달라는 말. 유효해?”

태성에게는 남아 있는 자존심과 욕심이 별로 없다. 은아는 누그러진 태성의 표정과 기운을 느꼈다. 예전처럼 자신을 흔들지는 못할 것이다. 태철과 자신의 사이가 너무 지독할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을 아는 거다.

“네, 유효합니다. 형이 제 어머니 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형 좆 빠는 걸 싫어했지, 저는 형을 어머니라고 여겼습니다. 형이 저에게 어떤 짓을 하셨든, 제가 형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형은 태철 형님 다음으로 의지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그리고 퉁쳐. 내 좆 빨게 시킨 거랑 나 칼빵 먹인 거. 서로서로 잘못한 거 퉁치자고. 오케이?”

“…….”

“서로서로 용서하자고, 응? 은아야, 응?”

“네, 알겠습니다. 저는 형 용서합니다.”

“그래, 나도.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잘못한 거 없어.”

“네.”

“하… 이제야, 속이 후련하네.”

그제야 은아는 긴장을 풀고 웃었고, 태성도 따라 웃었다.

“야, 기억나? 너, 겨울에 팬지 꽃 피면 보여 준다고 했잖아. 그거는 잘 크고 있냐? 지금 보여 주라.”

“아… 파종 안 했습니다. 팬지 키우던 자리에 다른 걸 키우기로 했습니다.”

“뭐야…. 보여 준다고 했으면서.”

태성은 갑자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진짜 내 생각 안 했네.”

“아, 죄송합니다.”

“됐어. 그나저나, 강태철은 언제 오냐? 온 김에 속 좀 뒤집으려고 했는데.”

“오실 때가 됐는데. 형님 보고 가실 겁니까?”

“왜? 빨리 꺼져 줬으면 좋겠어?”

“아뇨…. 그런데 이번 총선에 나오시는 겁니까?”

“응, 국회의원 하려고.”

“무슨 당이십니까?”

“미래당.”

“아…… 네.”

그 시각, 태철은 산에서 내려와 집에 거의 도착했다. 그리고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유세 차량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기호 2번 최태성. 내가 아는 그 최태성은 아니겠지.

태철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태철은 소파에 앉아 있는 태성과 은아를 보고 표정이 험악해졌다. 성큼성큼 다가와 은아를 살폈다. 편안해 보이는 게, 태성이 건드리지 않은 것 같아 태철의 마음이 놓였다.

“최태성 너, 뭐냐?”

“나? 인간인데?”

뻔뻔하게 대꾸한 태성이 태철을 위아래로 훑었다. 큼직한 손에 든 포대 자루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었다.

“쑥 캐러 갔다며? 저거 쑥이야? 뭔 쑥을 저렇게 많이…. 국숫집 때려치우고 쑥 파려고?”

“말리면 얼마 안 된다. 그런데 너는, 여기 왜 왔냐?”

“아, 국회의원 후보 기호 2번, 미래당 최태성입니다. 뽑아 주시면, 잘하겠습니다.”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허리를 숙이고 태철에게 건넸다. 태철은 마지못해 명함을 받았고, 태성은 씩 웃었다.

“너… 무슨 꿍꿍이냐?”

“꿍꿍이는? 국민을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하려고 왔지? 은아 사는 곳, 더 좋게 만들려고. 왜? 꼽냐? 은아야, 책 좋아해? 여기에 도서관 지어 줄까?”

“하, 참. 어이가 없다. 너 혹시, 머리에 문제 있냐? 칼에 찔리고도 여기를 기어와?”

“칼에 찔린 게 뭐? 안 죽었음 됐지. 그리고 은아랑 나, 화해했어. 서로 용서했다고. 과거는 과거.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과거는 그대로 묻어두자.”

“와… 너는 미친놈이다.”

태철은 태성의 짝사랑을 잘라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성은 태철의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다.

“너희 사랑만 지독하냐? 내 사랑도 지독해. 내 사랑 물로 보지 마.”

“미친…….”

‘저놈을 어떻게 치우지?’

태철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 도다리쑥국인가, 뭔가 잘해 주고. 나는 간다. 은아야. 기호 2번이다.”

“아… 네. 안녕히 가십시오.”

태성이 사라지고, 은아는 혼이 빠졌다.

“태성이 형… 한편으로는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래. 멘탈 대단하네.”

태철과 은아는 한동안 태성이 나간 현관문을 넋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았다.

태철은 태성을 머리에서 지우고, 쑥을 정리했다. 쑥을 꼼꼼하게 씻고 데쳐서 건조기에 말렸다. 그리고 도다리로 쑥국을 만들면서, 멥쌀가루로 쑥떡을 쪘다. 집 안에 쑥 향이 가득 찼다.

은아는 식탁 의자에 앉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태철의 등 근육을 눈에 담았다. 꿈틀거리는 근육 때문에 몸이 동하기는 하지만, 태성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형님, 태성이 형 뽑으실 겁니까?”

“아니.”

태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태성이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실까요?”

“난들 알겠냐? 그놈, 무시해라. 미친놈은 무시가 답이다.”

“친한 형으로 남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좋습니다.”

“태성이가 좋냐? 왜 좋냐?”

“그냥요. 형님도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번 정준 상대를 쉽게 못 버리지 않습니까?”

“허, 좋아하기는. 미운 정이다. 그리고 그것마저 그날, 별장에서 버렸다.”

“그것도 정이잖습니까? 태성이 형 때문에 감옥에 갔지만, 믿어서 저를 형에게 부탁하신 거 아닙니까? 형제처럼 생각하신다는 거 압니다.”

“언제 적 형제. 너를 그놈에게 부탁한 게 천추의 한이다.”

“형님….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형님과 태성이 형 사이가 틀어진 건 저 때문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너 때문은 무슨! 배신은 그놈이 먼저 했다.”

“형님…….”

“…됐다. 빨리 밥이나 먹자.”

태철과 은아는 텃밭에 복숭아 묘목을 세 그루 심었다. 원래는 자두나무와 매실나무도 심으려고 했지만, 초보 농사꾼은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팬지꽃이 자라던 곳에 심은 복숭아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고, 선거 날이 되었다.

태철은 입으로만 태성을 욕하며 은아에게 1번을 뽑으라고 했지만, 아직 태성에게 남은 정이 있었다. 그래서 2번을 뽑았다. 그리고 태철의 속마음을 제일 잘 아는 은아도 태성을 뽑았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은아는 TV 화면 속, 태성의 얼굴 위로 낙선이라고 뜬 글자를 보며 눈썹을 아래로 내렸다.

“형님, 태성이 형 어떡합니까?”

“뭘 어떡해? 서울 올라가야지.”

태철은 관심 없는 척, 툴툴거렸다. 그러게 왜 촌 동네까지 내려와서. 태철은 혀를 찼다. 낙선했지만 원래도 잘난 놈이고, 멘탈도 강하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내일 당장이라도 은아 앞에 나타나 주접을 떨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태철의 예상과는 다르게 태성은 서울로 올라가지도 않고, 잠적해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다. 은아는 혹시라도 나쁜 생각 하시면 어떡하냐고 태철에게 태성을 찾아보라고 했고, 태철은 겨우 이런 일에 사라질 놈이 아니라고 은아를 달랬지만, 걱정되었다.

그리고 사라진 지 십 일째 되는 날. 태성은 인사불성이 되어서 은아의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태철은 문을 열어 주고,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온 태성을 복잡한 심경으로 보았다. 저걸 쫓아낼 수도 없고. 태철은 한숨을 팍 쉬며, 태성을 부축해 소파에 앉히는 은아를 보기만 했다.

“태성이 형, 괜찮습니까? 정신 차려 보십시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겁니까?”

“은아야…….”

태성은 무기력하게 은아의 이름을 불렀다. 무너진 가장 같은 모습이었다. 칼에 찔려도 당당했던 사람인데. 이런 모습을 보니 은아의 마음이 아프다. 은아가 태성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내자, 태철은 은아를 태성에게서 떼어냈다.

“지금이 몇 신지 아냐? 밤 열 시다. 떨어졌으면 서울로 올라갈 것이지, 왜 애먼 곳에서 주정이냐?”

“은아야…….”

태성은 태철을 무시하고 은아에게 달라붙었다. 은아는 태철에게 한번 봐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태철의 속만 터졌다.

“하… 나는 망했어…….”

태성은 은근슬쩍 은아의 허리를 잡고 배에 얼굴을 묻었다. 은아는 태성이 불쌍한 척하는 것도 모르고, 태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 망했습니다. 인생은 깁니다. 힘내십시오.”

“은아야… 강은아.”

태성은 은아의 위로에도 계속해서 징징거렸다. 태철은 눈을 가늘게 뜨고, 태성을 노려보았다.

저거, 지금 일부러 그러나?

슬그머니 은아의 허리를 더듬는 손이 사심 가득해 보였다. 태철은 삐딱하게 서서 태성을 어떻게 떼어내냐 하나 고민에 빠졌다.

“형, 괜찮습니다. 이번에 당선되신 분이 여기에서만 3선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어차피 안 되는 게임이라고, 다들 낙선할 줄 아셨다고.”

“위로야?”

“네.”

“넌, 무슨 위로를…. 씨발…….”

“여기는 미래당 안 통합니다. 형도 아시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혹시…. 너도 여기 있는데!”

“안 되는 일에 열 낼 필요 없습니다.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그래?”

“네.”

“위로야?”

“네.”

“그런데 나는, 왜 네 말이 너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리냐?”

“저, 이미 포기하신 거 아닙니까?”

“너에게 사랑받는 건 포기했어. 그런데 내 사랑은 포기 안 했다고. 계속 짝사랑할 거라고!!”

태성은 목 놓아 울부짖었고, 태철은 골이 아파 왔다.

“하… 국숫집 사장보다는 국회의원이 낫지. 내가 너에게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하아….”

“멋진 사람은 이미 물 건너갔다. 칼에 찔리고도 매달리고 싶냐? 최태성, 추태 그만 부리고 집에 가라.”

“사랑이 칼에 찔렸다고 없어져? 심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태성이 제 가슴을 퍽퍽 쳤다. 태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태성의 팔을 잡고, 은아와 태성을 떨어뜨려 놓았다.

“은아에게 수작 부리지 마라.”

태철은 태성이 애잔해졌다. 미운 정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짜증을 넘어서 불쌍했다. 더러운 꼴을 다 보고도 저렇게 질척거리다니. 진심 이기는 진심인 모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최태성, 은아가 안 되는 일에는 열 내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그만 집에 가라. 택시 부를게. 집이 어디냐?”

“은아야.”

태성은 태철을 무시하고, 은아의 손을 덥석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너희 사랑은 단단하잖아? 내가 있다고 너희 사이가 흔들려? 나, 그냥 네 옆에 있으면 안 되냐?”

“친한 형은 된다고…….”

“아! 그거 말고!”

“최태성, 추하다.”

“아!! 몰라!!”

“너네 스리섬 좋아하지?”

“또, 개소리 시작하네.”

태철은 또 시작이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은아야, 개소리 아니야. 나를 딜도라고 생각하고 써. 너네 스리섬 좋아하잖아?”

사랑 때문에 최태성은 자존심 다 버렸다.

“네? 갑자기 딜도 말입니까?”

“그래! 딜도! 집에 딜도 있어, 없어?”

“있습니다.”

“써, 안 써?”

“요즘에는 잘 안…….”

“나 성능 괜찮아! 알잖아?”

“하…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그리고 뭘 아는데?”

태철은 더는 태성의 개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다. 한 대 때릴 기세로 태성의 목덜미를 잡으려는데, 은아가 막았다.

“형님,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태성이 형, 그만하십시오. 형이 무슨 소리를 하셔도 저는 오직, 태철 형님뿐입니다.”

“씨발! 알아! 그만 말해. 칼에 찔렸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아주 처절하게! 뼈에 사무치도록 알아. 너희 사랑 지독하고, 나는 낄 자리 없는 거. 그런데 딜도는 낄 수 있잖아?”

“그거, 아십니까? 지금, 엄청 불쌍하고 찌질하십니다. 제가 아는 형은 당당하고 여유 있고 멋지신 분 아닙니까?”

“아, 몰라! 너는 날 몰라! 나랑 사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나에 대해 알고 싶어? 그럼 사귈래?”

“아뇨.”

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으아악!”

태성이 폭주했다. 그는 술과 사랑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일 술이 깨면 분명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겠지만, 지금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무조건 은아를 설득해, 그의 곁에 붙을 생각이었다.

“형님, 친한 형으로 제 옆에 있는 건 유효하다고 했습니다. 친한 형으로 남아 주세요.”

“야! 그게 되면 내가 이 지랄을 하겠어! 나는 플라토닉 러브가 안 된다고! 내가 네 구멍 맛을 봤는데! ”

“하…….”

태철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렇게까지 또라이라고 생각 못 했는데, 왜 저렇게 되었을까. 나와 은아는 무슨 죄로 저런 놈과 얽히게 되었을까. 그동안, 너무 나쁘게 살았던 거지.

태철이 지난 삶을 반성하는 와중에도, 태성의 입은 쉬지 않았다.

“강은아, 안녕? 나는 인간 딜도야. 딜도는 필수 물품은 아니지만, 있으면 삶의 질이 상승해! 알지?”

태철은 은아를 잡고 계속해서 떠드는 태성의 뒤에 서서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손날로 태성의 옆 목을 내려쳤고, 태성은 “윽!” 하는 외마디 신음과 함께 맥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은아는 놀란 눈으로 태철과 태성을 번갈아 보다가, 태성의 코밑에 손을 댔다.

“다행히 기절하신 거 같습니다. 저…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그냥 놔둬라. 술 깨면 창피해서 도망갈 거다.”

“안 부끄러워하실 거 같은데…….”

“…….”

“형…님?”

“하… 이 새끼를 죽일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해?”

태철의 고민이 쌓여 갔다. 무슨 짓을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악귀 같은 놈에게 단단히 잘못 걸렸다.

은아는 거실 바닥에 쓰러진 태성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태철과 함께 침실로 들어갔다.

다음 날, 뻔뻔한 태성은 태철에게서 해장국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태철의 착각.

그날 이후, 태성은 은아의 가게를 매일 찾아왔다. 그리고 개소리를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지껄였다. 주 내용은 자신을 딜도로 쓰라는 내용이었다. 처음, 은아와 태철은 태성의 헛소리에도 꿋꿋했다.

솔직히 태성을 받아 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일 년 전,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은아는 태성이 필요했었고, 태철은 태성을 딜도 취급해 자존심을 뭉개는 동시에 정이 떨어지게 할 요량으로 스리섬 제안을 받아들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은아와 태철, 둘 사이는 누가 끼어들 틈 없이 단단했다. 그러니 태성이 스스로 딜도가 되겠다고 덤벼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필요가 하나도 없다는 거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개소리도 계속 듣다 보면, 그게 맞는 말 같아진다.

“은아야, 내가 또 왔네? 안녕? 나는 인간 딜도, 최태성이라고 해.”

태성은 익숙하게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은아에게 빵이 든 봉지를 건넸다. 은아는 질린다는 얼굴로 떨떠름하게 봉지를 받았다. 태성은 항상 오픈 준비 시간에 가게에 쳐들어가 은아와 태철을 하루 종일 찜찜하게 만들었다. 딜도 타령을 한 지 일주일이 되어 갔고, 은아와 태철은 심적으로 지쳐 가고 있었다.

“피자빵입니까?”

은아가 식탁 의자에 앉아, 빵 봉지 안을 살폈다.

“응, 너 좋아하는 피자빵. 커피도 같이 먹어.”

태성은 같이 산 커피 세 잔을 식탁 위에 올렸다. 주방 안에서 멸치 육수를 뽑던 태철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은아에게 다가갔다.

“최태성, 이 새끼. 또 왔네?”

“응. 너희가 허락해 줄 때까지 올 거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태철은 은아의 옆 의자에 앉아, 자연스럽게 태성이 가지고 온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글쎄. 너희가 나를 하도 무시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사람이 오기가 생기면, 원래의 목적이 희미해져. 내가 지금 약간 그 상태인 거 같은데…….”

태성은 자괴감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독기 가득한 눈을 빛냈다.

“그냥, 조용히 너 혼자서 짝사랑하면 안 되겠냐?”

“응. 나는 플라토닉 러브가 안 돼. 사랑하면 구멍에 좆을 넣어야지.”

“전직 검사라는 놈이 말하는 꼬라지가…….”

“그래, 나는 전직 검사였어. 은아 때문에 검사직도 포기하고, 안 될 거 알면서도 여기서 선거 운동도 했지. 바로 낙선했고. 내가 세웠던 인생 계획이 다 엉망이야. 지금, 나한테 남는 게 뭐냐? 은아 구멍 맛이라도 봐야 하지 않겠어?”

“인간의 존엄성이라도 지켜라. 딜도가 되겠다는 게 정상적인 생각이냐?”

“어쨌든, 나는 은아와 자고 싶은데. 둘이서는 절대 못 하게 할거고! 그러니까 셋이서 하자고. 난 너희와 지독하게 얽힐 거야.”

태성은 지금 오기만 남은 상태였다. 검사로, 국회의원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가 다 어그러졌다. 그리고 하나 남은 목표가 은아와 자겠다는 거다. 태성은 말도 안 되는 목표 의식으로 분별력이 흐릿해졌다. 분별력이 흐릿해진 건 태성뿐이 아니었다. 은아와 태철도 그랬다. 일주일째 이어진 딜도 소리에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배경 음악 같은 딜도로 쓰라는 소리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졌고, 그게 뭐가 문제인가 싶어지는 지점이 다가왔다.

이렇게 태성은 가랑비에 옷 젖듯 은아와 태철에게 스며 들어갔고, 미워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한바탕 개소리를 짖어 대던 태성이 나가고, 장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은아와 태철은 벌써부터 지쳤다.

“은아야, 집념이 강한 인간을 이길 수가 없는 법이다. 그냥, 한번 해주고 말까?”

태성에게 시달린 태철이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네. 그러시죠. 그게 마음 편할 거 같습니다.”

“그래, 셋이서 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한 번 하고 치우지, 뭐.”

그렇게 태성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딜도가 되었지만, 자괴감에 빠져 하루 동안 힘들어했다.

‘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은아랑 자잖아…. 하… 나,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태철, 은아, 태성의 공통점이 있다. 성적으로 정숙하지 못하다는 것과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 체계를 가졌다는 거다.

태철과 은아는 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던 인간이다. 그리고 태성도 많은 범죄자를 만났고, 그들을 감방에 처넣었지만, 범죄자들과 함께 손잡고 감방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비도덕적인 인간이다.

그런 사람들이 만났다.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평범하게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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