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커플 지옥에 빠진 최태성 (5/15)

5. 커플 지옥에

빠진 최태성

은아 멸치국숫집과 카페 은아는 아마 망할지도 모른다. 쉬는 날도 아닌데 또, 문을 닫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셋이서 같이 섹스한 날 밤, 은아는 구멍이 아프다고 칭얼거리며 잠을 자지 못했다. 태철과 태성은 은아의 수발을 드느라 뜬눈으로 밤을 보내는 바람에 장사할 생각도 못 했다.

아침밥을 먹고, 허리와 구멍의 통증이 가라앉은 은아는 그제야 잠을 청했고, 은아가 자는 틈을 타 태성과 태철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각자의 가게에 ‘삼 일간 쉽니다.’라고 성의 없게 적은 종이를 붙이고 장을 보았다. 삼 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티격태격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둘의 발걸음이 한 가게 앞에 멈췄다. 그들의 눈이 한 마네킹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 마네킹은 얇디얇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순간, 둘의 눈이 마주치고 반짝 빛났다. 둘은 대화 하나 없이 마음이 맞았다.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때만 잘 통하는 둘이었다.

옷가게 사장의 동공이 요동쳤다. 조폭과 그의 연적이라고 소문난 남자가 자신의 가게로 같이 들어오다니. 여기서 몸싸움을 하지는 않겠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래도 예상과는 다르게 신중하게 옷을 골랐다. 아마, 은아의 옷이겠지. 그런데 문제는 여기가 여성복 전문점이라는 거다. 우리 동네가 아무리 오픈 마인드라고 해도 이거는 좀… 아니지 않나? 여자 옷이라니. 사이즈가 맞을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 집, 빅 사이즈 의류도 취급하잖아. 은아 덩치에 맞겠지…. 뭐, 알아서 하겠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조폭 놈이 하얀 원피스를 꺼내 이리저리 살피는 게 아닌가. 미친……. 하마터면 마음의 소리가 나올 뻔했다. 아니야. 설마 은아 옷이겠어? 그런데 연적 놈이 조폭에게 말을 걸었다.

“은아한테 안 작아?”

“맞을 거 같은데.”

“그래도 넉넉한 게 안 나아?”

“그래, 편한 게 좋지.”

‘오, 씨발! 돈 놈들 아니야?’

“한 치수 큰 거 있어요?”

“아… 네…. 있습니다.”

떨떠름해도 주인은 극강의 서비스 정신으로 욕은 안 했다. 대신 바가지를 씌웠다. 조폭, 알부자라며? 서울에 건물 많이 가지고 있다며? 엄청 덤터기를 씌웠는데, 그것도 모르고 잘도 사 갔다. 뭐, 옷만 팔면 됐지…. 설마, 원피스 입고 밖으로 돌아다닐까. 그럼, 진짜 미친놈인데…. 설마? 설마!

주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성큼성큼 집으로 향하는 사내들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보았다. 다행히 태철과 태성은 그 정도로 돌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태철은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안방 문을 열었다. 은아는 에어컨을 틀어 놓은 채 이불을 둘둘 말고 자고 있었다. 허리 아프다고 밤새 자다 깨고, 자다 깨기를 반복하더니, 피곤한 모양인지 방에 사람이 들어와도 몰랐다.

태성은 쇼핑백에서 흰 원피스 하나를 꺼내 은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불을 들추고, 은아의 잠옷을 벗겼다. 뭐 하려는지 딱 보였다. 태철은 고개를 저으며 비죽였다.

“너는 진짜 변태다.”

“사돈 남 말. 이거 네 돈으로 계산한 거잖아?”

“은아가 쓰고 입고 먹는 건, 다 내가 계산한다.”

“어, 그래.”

태성은 대충 대꾸하고 원피스에 달린 태그를 떼고, 은아에게 원피스를 입혔다. 허리나 엉덩이에 손이 닿으면 움찔거리기는 하지만, 잠에 깊게 빠져 있었다. 태성은 옷을 다 입히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태철과 태성은 은아의 모습을 구경했다. 그들이 산 것은 하늘하늘한 플레어 롱 원피스였다.

팔뚝과 무릎을 가린 하늘하늘한 원피스와 자느라 아무렇게나 흩어진 머리카락, 흰옷만큼이나 흰 피부, 순진해 보이는 말간 은아의 얼굴이 두 사내의 눈을 사로잡았다.

“쓰읍… 잘 샀네?”

“그러네.”

태성은 고개를 들려는 자신의 좆을 느꼈다. 좆질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좆 만질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태성은 입안에 고이는 침을 삼키고 매끈한 은아의 다리를 매만졌다.

“강은아, 무모증이야? 다리에 솜털밖에 없어. 좆 털도 없더만.”

“그래도 머리숱은 많다.”

“어, 그래.”

“애 감기 걸린다. 이불 덮고 나와라.”

“에어컨을 꺼.”

“은아는 에어컨 켜고 이불 덮고 자는 거 좋아한다.”

“…나랑 있을 때는 그렇게 안 하던데…….”

“나와.”

태성은 식탁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삐뚜름하게 태철을 보았다. 태철은 낙지를 밀가루로 빡빡 문질러 흐르는 물에 씻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태철의 옆에는 이미 손질해 놓은 닭 두 마리가 다리를 곱게 꼬고 누워 있었다. 닭 안에는 불린 찹쌀과 녹두, 통마늘이 들어 있다.

“그 악명 높은 깡패가 싱크대 앞에 서서 요리라니…. 웃기네?”

“오늘이 초복이다. 은아, 보양해야지.”

“동네에 삼계탕집 있던데. 유난은.”

태성은 마음에 안 들어 툴툴거렸다. 태철은 낙지의 내장을 제거해 준 다음, 전복 손질을 시작했다. 그가 전복에 시선을 고정하고, 태성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은아에게 요리해 준 적 있냐?”

“음… 라면? 나 요리 못해. 내가 한 건 아무도 안 먹어. 왜? 애 굶겼을까 봐? 안 굶겼어. 내가 유명하고 비싸다는 곳에서 얼마나 많이 사다 줬는데.”

“죄다 남이 한 음식.”

“그럼, 남이 하지 괴물이 하냐? 강태철, 말 참 더럽게 하네.”

“은아는 집밥 좋아한다. 소박한 거라도, 직접 요리한 음식 좋아한다. 남이 해주는 거 말고, 아는 사람이 정성 들여서 한 거.”

태철은 뒤를 돌아 단단한 눈으로 태성을 보았고, 태성은 그 눈빛에서 우월감을 엿보고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 강태철 요리 좀 한다고 되게 뻐기네?”

“어.”

태철은 태성을 무시하고 압력솥에 닭, 낙지, 전복, 인삼, 황기, 대추, 밤, 상황버섯을 넣고, 뚜껑을 닫고 끓였다.

“강태철, 너는 이렇게 사는 게 좋냐? 국숫집이나 하면서 이 깡촌에 처박혀 있는 게 좋아?”

“너는 싫냐?”

“…….”

“적당히 하고, 다시 돌아가라.”

“싫은데? 나는 계속 이렇게 너네 옆에 붙어 있을 건데? 열 번 찍으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은아도 언젠가 나한테 안 홀리겠냐? 떡 정이 어마무시한데? 언젠가는 강은아도 강태철 버리겠지. 어?”

“절대. 너는 은아를 아직 잘 모르는구나.”

태철은 피식 웃고는 싱크대를 정리하고,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태성은 입술을 꽈악 깨물고 은아가 있는 방문을 노려보았다.

몇 시간 후, 은아가 까치집 머리를 한 채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태철과 태성 앞으로 어기적거리며 다가갔다. 은아는 팔을 벌리고 원피스를 입은 제 모습을 보였다.

“형님들, 이게 뭡니까?”

“네 옷.”

태철은 간단하게 말하고, 은아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 붕 떴네. 잘 잤냐?”

“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옷입니까? 저, 잘 때, 입히셨습니까?”

“지나가다가 잘 어울릴 거 같아서 샀다. 집에서는 이거 입고 다녀라. 시원해 보인다.”

“…그런데 이거 치마 아닙니까?”

“맞다.”

“아… 그런데… 속옷은 왜 벗기셨습니까?”

은아는 바람이 잘 통하는 휑한 아래가 어색해서 몸을 배배 꼬았다.

“집에서는 팬티 벗고 다니는 게 좋단다. 좆도 작으니, 입으나 마나 아니냐?”

“아… 그래도…….”

옷이 얇고 하얘서 은아의 좆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태성의 눈빛이 변했다. 태철도 변해서 번들거린 지 오래였다.

“옷이 많이 얇네. 다 비친다. 이따위로 만들어서 파냐?”

말은 부정적인데, 얼굴은 긍정 가득한 웃음이 걸려 있다.

“왜? 보기 좋은데. 은아야, 집에서만 입어야겠다.”

“애초에 이걸 입고 밖에 못 나갑니다.”

태성은 소파에서 일어나 은아에게 갔다. 손으로 몸을 훑었다. 유두와 좆이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 강은아, 유두가 핑크빛이네. 다 보인다, 다 보여. 좆이 작은 것도 보이고.”

좆이 있는 곳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은아는 다리를 오므리고 태성의 손을 잡았다. 태성은 잡힌 손에 힘을 주고, 세게 은아의 좆을 자극했다. 얇은 천을 통해 벌써부터 흘리기 시작한 프리컴이 묻어났고, 태철은 은아의 뒤에 딱 붙어서 유두를 손톱으로 긁었다.

사이에 천이 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유두가 바짝 섰다. 은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태철에게 몸을 온전히 맡기고, 태성의 손을 잡았던 손을 풀어 태철의 팔을 잡았다.

“치마가 좋네.”

뒤로 젖혀진 은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태철이 말했다. 은아는 몸의 긴장을 풀고 그들이 주는 쾌감에 몸을 맡겼다.

“하응, 하읏. 흐응. 좋습니다.”

“강은아는 만지는 대로 좋다고 발발거리는구나.”

태성은 꺼덕거리는 작은 좆을 손바닥 가득 느꼈다. 그리고 손을 더 빨리 놀려 은아의 사정을 재촉했다.

“하읏! 흐읏!”

은아는 허리를 튕기며 정액을 분출했다. 고간 부분의 옷이 젖어 들어갔다. 은아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태철은 은아의 허리를 잡고 지탱했다. 은아는 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옷은 정액으로 축축하고, 정액은 다리를 타고 흘렀다. 태성은 은아의 치맛단을 잡고 들췄다. 훅, 들어온 바람에 은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은아, 직접적으로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싸네.”

“하아… 이거 빨아야겠습니다.”

“강은아, 두 개 더 샀어. 샤워하고 입고 와.”

“아… 치밀하시네요.”

은아는 태철에게 몸을 기댄 채 후들거리는 다리로 화장실로 걸어갔다. 화장실 문을 열다가 태철에게 물었다.

“그런데 원피스 얼마 주셨습니까? 다 비치고 이렇게 질이 안 좋은데. 만 원입니까?”

“세 벌에 이십오만 원.”

“네에? 바가지 아닙니까? 다 비치는 천 쪼가리를!”

“다 비치는 천 쪼가리니까.”

“하…….”

“씻겨 줄까?”

“아니요. 제가 씻겠습니다.”

“치마 입으라고 해서 화났냐?”

“아닙니다. 저, 애 아닙니다.”

은아는 화장실 문을 닫았고, 태철은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가 삼계탕을 확인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완전 부모네, 부모. 저러니 아버지, 아버지 저러지.”

태성은 쯧쯧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은아는 샤워하고, 드레스룸에서 옷을 갈아입다가 뭔가를 떠올렸다. 그리고 옷장에 옷을 뒤져 셔츠 한 장을 꺼냈다. 은아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형님! 이거 입으십시오.”

은아는 태철에게 셔츠 한 장을 건넸다. 은아가 건넨 것은 체크 반팔 셔츠였다. 입어 보지 않아도 촌스럽다는 게 보이는 옷이었다.

“우리 강은아 취향이 너무 올드하네.”

“이거, 은아가 첫 월급 타고 내게 선물한 거다.”

태철은 허허거리며 그 자리에서 윗옷을 벗고 곧장 갈아입었다. 큰 덩치를 다 감쌀 정도로 넉넉했다. 은아는 태철의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태철의 옷 태를 감상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정장도 잘 어울리시지만, 이것도 무지, 많이 잘 어울리십니다.”

“으이구.”

태철은 은아의 머리를 헝클이며 마주 보고 있었다. 태성은 소파에 앉아 그 꼬락서니들을 보았다. 흰 원피스와 체크 남방이라. 촌극의 주인공들 같다. 아주 입안이 쓰다.

“좋다고 웃네. 아주 꼴값들은.”

태철은 압력솥에서 푹 삶은 닭 다리 두 개를 찢어 은아의 접시에 올려 주었다.

“은아야, 많이 먹어라.”

“네, 형님. 잘 먹겠습니다.”

태철은 한입 크게 베어서 우물거리는 은아를 흐뭇하게 보며 산삼주를 따라 주었다.

“요것도 같이 마시면서 먹어라.”

“옙. 감사합니다.”

“은아, 술 먹여도 되냐?”

“어, 약술은 괜찮다. 은아야, 천천히 마셔라.”

“네.”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네.’

태성은 날개를 뜯어 먹으면서 태철을 눈꼴사납게 보았다. 태철은 전복과 낙지를 한입 크기로 잘라 은아의 앞접시에 담아 주고, 국물도 넉넉히 부어 주었다. 앞접시가 넘치려고 했다. 은아는 자신을 신경 쓰느라 닭 맛도 못 본 태철에게 닭 다리를 건넸다.

“제가 알아서 먹겠습니다. 형님도 드십시오.”

“그래.”

“전복이랑 낙지도 먹어라. 국물도 떠먹고.”

고기가 입안 가득 있는데도, 태철은 계속 은아에게 먹으라고 권유했다. 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볼이 미어져라, 입안 가득 넣었다. 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질린다는 얼굴로 태철을 못마땅하게 보았다.

“애, 체하겠다. ”

“괜찮습니다. 안 체합니다.”

‘얼씨구.’

“허리는 괜찮냐? 구멍은?”

“아리지만, 점점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밥 다 먹고 약 바르자. 많이 부었더라.”

“예, 맛있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라.”

은아는 간간이 태철을 향해 배시시 웃으며, 야무지게 닭도 먹고, 산삼주도 마셨다. 닭 국물만 남기고 건더기는 다 먹었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태철은 은아가 좋아하는 해물파전을 만들어 산삼주와 함께 안주 삼아 먹었다.

술이 쭉쭉 들어갔다. 한참을 먹고 마시다 보니, 술이 약한 은아의 얼굴이 벌게졌다. 태성은 술에 취해 눈이 풀어진 은아의 얼굴을 꼼꼼히 뜯어보았다. 은아의 취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같이 살 때는 정신과 약을 먹느라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술 먹는 걸 보니 이제 약은 완전히 끊은 모양이네.

얼굴이 풀어져서 실실 쪼개는 지금의 모습과 몇 년 전, 술자리에서 태철의 뒤를 묵묵히 지키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였다. 그때는 이런 얼굴을 볼 거라고 상상도 못 했는데. 은아의 얼굴을 만지려, 취기가 올라 둔해진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태철이 더 빨랐다. 태철은 은아의 양 볼을 한 손으로 잡고 자기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태성은 태철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오자, 기함했다.

“뽀뽀.”

태성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취한 거야? 불쾌함 가득한 시선을 주는데 태철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은아는 그저 좋다고 수줍게 웃으며 앵두 같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태철은 은아의 양 뺨을 두 손으로 잡고 입술을 부딪쳤다.

쪽. 쪽. 쪽. 쪽. 간지럽고 산뜻한 뽀뽀 소리가 정확히 네 번 나왔다. 은아와 태철은 마주 보며 서로가 좋아 죽겠다는 웃음을 흘렸고, 태성은 지옥 같은 커플 틈 속에서 고통을 받았다. 결국, 올라오는 짜증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던졌다.

해물파전도 다 먹고, 산삼주는 반 이상을 마셨다. 은아는 완전히 취했고, 태성은 정신만 온전했고, 태철은 둘에 비해 멀쩡했다. 은아는 눈이 완전히 풀려 느리게 끔벅이며 허공을 응시했다. 태성은 취한 눈으로 은아만 바라보았다. 태철은 그만 자리를 정리해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들은 싱크대에 놓고 설거지했다.

물기 묻은 싱크대를 행주로 닦고 마무리하는데, 은아가 비명을 질렀다. 태철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은아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은아는 언제 거실로 갔는지, 소파 위에 올라가 주방 쪽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어어? 바퀴벌레! 형님! 도망치십시오! 형님 쪽으로 갑니다! 날아갑니다! 바퀴벌레가 납니다! 으악!”

태철은 주방 등 근처를 날아다니는 나방을 보았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은아야. 바퀴벌레가 아니라, 나방이다.”

“바퀴벌레입니다!”

술에 취해 사리 분별도 힘들어 보이는데 따져서 뭐 하겠나.

“그래, 바퀴벌레다. 잡아 줄게.”

“조심하십시오!!”

태철은 큰 손을 나방 쪽으로 휘둘렀다. 나방은 태철의 손에 잡히지 않고, 은아가 있는 거실로 돌진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나방 때문에 은아는 기겁했고, 거실로 다가가 은아를 구경하던 태성은 술에 취해 늘어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우리 강은아, 술버릇이 저건가. 시끄럽고, 귀엽네?”

태철이 은아에게 다가갔다. 은아가 긴 다리로 소파 위를 폴짝폴짝 뛰는데 장관이다 싶었다. 구멍 아픈데 이렇게 뛰어도 되냐는 잔소리가 목구멍에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은아의 몸짓에 원피스가 펄럭였고, 안도 아슬하게 보였다. 하얀 허벅지 사이의 탐스러운 치부가 보일락 말락, 아슬하게 흔들렸다. 태철과 태성은 나방을 잡을 생각을 접었다.

“흐잉… 집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어떻게 삽니까?”

“은아야. 이 집 버리고, 태성이 형이랑 같이 호텔 가서 살까?”

“틈만 나면 개수작을…. 은아야, 저기 바퀴벌레.”

“아부지!”

태철은 나방이 은아의 옆에 있다고 거짓말하며 팔을 뻗었다. 은아는 소파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태철에게 안겼다. 작지 않은 덩치가 자신에게 매달리는데도 태철은 밀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은아를 안았다.

태성은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태철에게 매달린 은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방금 은아가 내뱉은 말을 되새겼다. 엄마야도 아니고, 아부지. 엄마야는 누구나 쓰는 감탄사인데, 저 꼿꼿한 놈은 그냥 빈말로도 안 한다. 태철이 은아에게 어떤 존잰지 다시 상기시켰다.

“바퀴벌레 어떡합니까?”

은아는 태철의 품에 안겨 웅얼거렸다.

“그러게.”

태철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자기가 알아서 열어 놓은 창문으로 나가는 나방을 보았다.

“아직 있죠? 잡아야 합니다.”

“어. 아직 있다. 응, 그래. 알았다. 잡을게.”

태철은 말만 그렇게 하고, 은아의 등을 토닥거리다가 헐렁한 치마 밑에 손을 집어넣고 은아의 구멍을 지분거렸다. 아침보다는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부어 있었다.

“구멍은 괜찮냐?”

“네.”

엉덩이도 만지고, 척추뼈를 따라 올라가 등 전체를 더듬었다. 간지러운 손길에 은아는 흠칫하며 태철에게 더 매달렸다. 태철은 은아의 구멍이 부어 있지만 않았어도, 이 자세 그대로 은아의 구멍에 좆을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구멍에 좆을 넣고 흔들면 더 자신에게 매달리고 자신만을 의지하겠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뒷골이 뻐근해졌다. 태철은 자신을 달래듯, 은아의 등을 한참 두들겼다. 안정적인 태철의 손길에 은아는 고른 숨소리를 색색 내며 졸린 눈을 비볐다. 태철은 자신의 품 안에서 잠을 청하려는 은아에게 말했다.

“은아야, 졸리냐? 그만 들어가서 자자.”

“네.”

태철은 뒤돌아 태성을 보고는, 방에 가서 자라는 의미로 턱짓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 저 새끼는 잘 자라는 소리도 안 하고 턱 까딱이네. 기분 더럽게.”

태성은 나방이 나간 창문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태철은 은아의 이를 닦아 주고, 꼼꼼히 얼굴도 씻겨서 침대에 눕혔다. 술 냄새가 지워져 상쾌한 치약 향이 맴돌았다. 은아는 입맛을 다시고, 제 옆에 딱 붙은 태철을 보았다.

“오랜만입니다, 형님이 저 양치시켜 준 거 말입니다.”

“그러냐?”

“네.”

“매일 닦아 줄까?”

태철은 은아의 머리를 뒤로 넘겨 주고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형님이 보육원에 나가기 전까지 저 양치도 시켜 주고 옷도 입혀 주고 그랬습니다.”

“그래.”

“그리고 형님이 떠나고 혼자 이를 닦는데, 조금 슬펐습니다. 혼자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외롭고.”

“그러냐?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아갔잖아.”

“아닌 적 있습니다. 한 달 넘게 안 온 적 있습니다. 그때, 저 버려진 줄 알았습니다.”

은아가 눈물을 보이며 훌쩍거렸다.

“왜 우냐?”

“그때 생각하면, 눈물 납니다.”

“울지 마라.”

태철은 은아의 눈물을 닦아 주었고, 은아는 태철의 가슴팍에 얼굴과 함께 눈물을 묻었다.

“술 마시니까 눈물 납니다. 그때가 중학생 때였는데, 저 맞고 다녔습니다.”

“안다.”

열다섯 살의 은아는 왜소하고, 소심하고, 고아라 괴롭히기 쉬운 먹잇감이었다. 매일같이 괴롭힘과 폭력을 당했고, 은아는 반항 한 번을 못 했다. 그저 태철이 오면 도와달라고 말할 생각으로 긴 일주일을 버텼다. 그러나 싸우고 다니느라 바빴던 태철은 은아를 찾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이 지나고 형님이 저 다시 찾아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기억난다. 일이 바빠서 오랜만에 찾아갔더니, 얼굴 할 거 없이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태철은 아득한 눈으로 먼 과거를 회상했다.

“네, 엄청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 괴롭히던 놈들 다 혼내 주셨죠. 제 앞에 든든하게 서 계셨을 때, 저는 평생 형님 뒤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래.”

“저는 매일매일 기다렸습니다. 형님 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고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님 옆에 있으니, 제가 얼마나 기쁜지 형님은 모르실 겁니다.”

“안다.”

“압니까?”

“그래, 안다.”

“형님은 절대 제 옆에서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평생 제 옆에 계셔야 합니다.”

“그래.”

“약속하십시오.”

“약속.”

은아는 멍청하게 굴지만, 멍청이는 절대 아니다. 태철은 은아의 손을 꽉 잡았다.

“형님은 진짜 제 아버지 같고… 사랑합니다.”

“그래. 나도 사랑한다. 그만 자라.”

태철은 큰 손으로 은아의 눈을 가려 주었고, 곧 은아는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잠에 빠졌다. 태철은 한참을 은아를 바라보다가 잠을 설쳤다.

“형님,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뽀글뽀글 거품 나는 거 보십시오.”

“은아야, 기름 튄다. 뒤로 가 있어라.”

은아는 태철의 옆에 딱 붙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은아가 보고 있는 가스레인지 위, 냄비 안에는 닭이 바글바글 튀겨지고 있었다.

치킨이 먹고 싶다는 말에 태철은 직접 닭을 손질하고, 튀김옷을 묻혀 닭을 튀겼다. 태성은 식탁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은아와 태철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다.

“시켜 먹으면 되는데, 유난은.”

태성은 부러 크게 얘기했다. 태철은 반응하지 않았고, 대신 은아가 뒤를 돌아 태성에게 말했다.

“형님이 만드신 치킨은 시켜 먹는 거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간장 치킨은 진짜 맛있습니다. 먹어 보십시오!”

태성의 인상이 더 구겨졌다. 짜증 나는 건 태철뿐이었는데, 이제는 은아도 점점 짜증이 났다. 태성은 식탁 위에 손가락 끝을 대고 툭툭 쳤다. 점점 신경질이 나고 예민해졌다. 나쁜 본성이 툭툭 올라오기 시작했다.

은아는 태철이 간장소스를 만들고, 소스에 튀긴 닭을 버무리는 것까지 빠짐없이 보았다가 그릇 위에 프라이드 반, 간장 반을 놓자 박수 쳤다.

“와! 완성입니다. 형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밖에서 먹자.”

태철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은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라탄 피크닉 바구니를 꺼내 그 안에 접시와 포크 컵, 캔 콜라, 캔 맥주를 넣었다.

“뭐냐? 안 어울리게 피크닉 바구니?”

“날 좋으면, 산이나 들로 소풍 간다.”

“소풍… 우웩.”

아주 야무지게 소꿉놀이를 하면서 노는구나. 꼴값을 떤다.

그들은 마당으로 나왔다. 저녁 일곱 시가 다 되어 가는데, 밖은 아직도 밝았다. 평상 위에 상을 올리고 그 위에 치킨 등을 세팅했다. 은아와 태철, 태성이 둘러앉았다.

“은아야, 먹어라.”

태철은 닭 다리 하나를 집어 은아의 접시 위에 올려 주었다. 은아는 배시시 웃으며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형님! 최곱니다. 맛있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라.”

하하 호호. 은아와 태철을 한마디로 묘사하자면, 이 단어를 들 수 있었다. 태성은 커플 틈에 끼어 괜한 고통을 받는 머저리가 된 기분이었다. 이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닌데. 왜 염장질을 보고 있지? 서로 치킨을 입에 넣어 주고, 입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고, 콜라를 먹여 주고 난리다.

이래서는 삼각관계도 뭐도 아니다. 태성은 단단해 보이는 은아와 태철의 관계를 뒤흔들고 싶었지만,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것들을 어떻게 깨뜨려야 할까 고민에 빠지는데, 말간 얼굴을 한 은아가 눈을 깜박거리며 태성에게 물어 왔다.

“태성이 형, 왜 안 드십니까? 입맛에 안 맞습니까? 맛있지 않습니까?”

“…….”

맛은 있는데,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대꾸하지 않고 맥주만 벌꺽벌꺽 마시는데, 태철과 눈이 마주쳤다. 태철은 다 안다는 눈으로 태성으로 보고 피식 웃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화딱지가 났다. 안 되겠다. 파멸이든 뭐든, 저 행복해 보이는 꼬락서니를 깨부숴야겠다. 태성은 비릿하게 웃으며 닭가슴살을 집어 우걱우걱 먹었다.

태성은 그놈의 라탄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신이 난 은아의 뒤를 터덜터덜 따랐다. 파멸은 내일부터. 치킨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은아는 계곡에 가자고 성화였다.

“오늘은 밤인데도 날이 덥습니다.”

에어컨이 있는데도 열대야로 잠을 못 잘 거라는 핑계를 댔고, 태철은 허허 웃으며 곧바로 수박과 맥주, 간단하게 먹을 주먹밥을 쌌다.

계곡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은아와 태철, 태성뿐이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달빛과 태철이 가져온 랜턴만이 어두운 계곡을 밝혔다.

물소리와 귀뚜라미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여름의 경치를 더욱 빛냈다. 은아는 입고 있는 옷을 다 벗고 거침없이 물 위로 뛰어들었다. 태철은 들고 온 대형 유니콘 튜브를 물가에 던져 주었다. 은아는 튜브 위에 누워 물 위를 유영했다. 태철은 은아에게 눈을 떼지 못했고, 은아는 까르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성은 타는 갈증에 맥주캔을 따고 목을 축였다.

“여고생도 아니고, 꺄르르가 뭐냐.”

태성은 툴툴거렸다. 저런 웃음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사실, 웃는 건 잘 보지 못했지.

“되게 행복해 보이네.”

“왜, 싫냐?”

태철은 태성을 진득하게 보았고, 태성은 신경질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솔직히, 배알이 꼬이네?”

“은아, 좋아한다며. 그럼, 행복을 빌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너 교도소에 있을 때, 은아 구멍에 좆 안 넣었잖아. 그리고 너 출소하는 날 곱게 보냈잖아.”

“진짜 곱게 보냈냐? 좆 빠는 게 고운 일이냐?”

“내 덕에 강은아, 네 좆 잘 빨아 줬을 거 아냐?”

“하…….”

태철은 기가 차서 웃었다.

“나는 네가 은아, 아픈 은아 어떻게 구슬려서 좆까지 빨게 했는지 안다. 그런데 은아가 너를 좋아해서 참는 거다. 나 외에 사람에게 정을 주는 게, 네가 유일하니까. 그 마음 지켜 주고 싶다. 그리고 너도 은아 사랑하니까, 설마 사랑하는 놈을 힘들게 할까 싶어서 봐주는 거다.”

“…….”

“네가 은아를 아무리 뒤흔들어도 은아는 안 흔들린다. 평생 나만 사랑한다. 그러니까 그만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가라.”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전세 사기당했다는 거. 거짓말인 거 안다. 삼 년 동안, 은아 돌봐 준 게 고마워서 있으라고 한 거다.”

“…….”

“…….”

“하… 다 아는 척은. 강태철, 너는 이런 삶이 좋냐?”

“무슨 뜻이냐?”

“하루하루 밥해 먹고, 장사하고, 계곡에서 나와서 수영도 하고. 좋아?”

“행복하다.”

“소박하네. 그 잘난 깡패가 여기서 소꿉놀이나 하고.”

태성이 비아냥거렸다.

“너는 이런 삶에 행복감을 못 느끼지. 그러니 가라는 거다. 검사 그만두지 않은 거 안다. 휴직계 냈잖아?”

“너, 내 뒷조사했냐? 강태철, 아직 안 죽었나 봐? 정보력 좋네.”

“일 년 휴직계. 일 년 안에 은아를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꿈 깨라. 그럴 일은 없다. 은아는 여기서 더없이 행복해한다. 은아의 행복을 건드리지 마라.”

“건들면?”

“나도 건드려야지. 너를.”

서로를 노려보는 태철과 태성의 눈에 스파크가 튀었다. 끝 모를 눈싸움이 이어지는데, 은아의 소리에 스파크가 사그라졌다.

“형님! 태성이 형, 저 보십시오!”

은아는 물 위에 누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달빛에 은아의 하얀 나체가 은은하게 빛났다.

“보이십니까! 제 몸이 뜨고 있습니다!”

“하… 강은아 진짜…….”

“형님들, 이것도 보십시오!”

은아는 자세를 바꿔 물 위에 엎드려 몸을 쭉 펴고 힘을 풀었다. 탐스러운 엉덩이가 봉긋 솟아올랐다. 물 위를 동동 떠다니는 은아의 엉덩이.

“저 멍청이…….”

태철은 은아의 엉덩이를 뚫어지게 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갔다.

“강은아, 해맑네…. 하…….”

태성은 맥이 빠졌다. 태철은 웃통을 벗고 거침없이 물 안으로 들어갔다. 은아는 제 쪽으로 다가오는 태철에게 양팔을 벌렸다. 태철은 은아의 허리를 끌어안고, 은아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달 아래에 서 있으니, 선녀 같다.”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는 태철에 은아는 얼굴을 붉히고,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미소 지었다. 태철은 은아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꽉 잡고, 마치 블루스를 추듯 몸을 흔들었다. 그들의 움직임에 물살이 울렁거렸고, 그들을 지켜보는 태성의 눈이 차갑게 식어 갔다.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온 은아는 춥다고 태철의 옆에 딱 붙어서 태철이 입에 넣어 주는 주먹밥과 수박, 맥주를 야무지게 먹다가 완전히 만취했다.

은아는 태철의 허벅지 위에 앉아, 태철의 가슴에 등을 댔다. 태철은 은아의 차가운 몸을 안고 자신의 온기를 나눠 주었다. 은아는 술에 취해 비실비실 웃음을 흘렸다. 태철은 그런 은아가 귀여워 은아의 젖은 머리를 계속해서 만졌다. 태성은 자신을 보고 웃는 은아를 진지한 눈으로 보았다.

“강은아, 내가 강태철 버리고 나한테 오라면 올 거냐?”

저거 또 시작이네. 태철의 미간이 구겨지려는 찰나, 은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태성이 울컥했다. 그래도 같이 섹스도 했는데, 너무 단호하다.

“왜?!”

“…….”

“강은아. 너 나 싫어, 좋아?”

“좋습니다. 저는 태성이 형 좋아합니다. 태철 형님 빼고, 저를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 아닙니까? 저는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친구도 없고, 다 저를 싫어하는데….”

태철은 울컥하는 은아의 볼을 살살 쓸었다. 은아의 말에는 지독한 애정 결핍이 있었다. 태철은 은아가 안쓰럽고 애틋한데, 태성은 다른 감정을 품었다.

“겨우 그거야?”

“네?”

“겨우 그것 때문에 나를 좋아하냐고.”

“…….”

“취한 애한테 웬 추태냐.”

“강은아, 강태철 싫어한 적 있어?”

태성은 태철을 무시하고 꿋꿋이 물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단호하네. 나는?”

“네?”

“나는 싫은 적 있냐?”

“…….”

“없어?”

“검사님은… 가끔… 무섭습니다. 좆 빠는 거 싫습니다.”

태철은 은아를 꽉 끌어안고, 그의 가슴팍을 토닥였다. 은아는 숨겨 놓았던 속마음을,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마음을 털어놓았고, 태성의 마음에 폭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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