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8화 (478/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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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젠의 안내를 따라 위험한 덫을 피한 그들은 계단을 올라 2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착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평범한 성의 내부가 아니었다.

“……뭐야, 여긴. 꼴이 왜 이래?”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성이 분리되며 내부까지 바뀐 것인지. 성 상단부의 2층은 온통 하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라이돈은 그 먼지를 들이마실세라 코와 입을 가렸고, 모들렌은 어두운 내부를 밝히는 빛덩이를 띄웠다.

“요젠, 적의 위치는 어디지?”

루멘의 물음에 요젠이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을 고르던 그가 망설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감지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여긴 같은 기운이 층을 가득 채우고 있어. 군데군데 생물체처럼 뭉친 기운은 많은데, 특별한 움직임은 없고. ……층이 아주 넓어. 마족을 찾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

“같은 기운이 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라……. 마기가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건가?”

대답은 요젠이 아닌 마밀에게서 돌아왔다.

“아닐 거다. 이 먼지들을 자세히 보거라.”

마밀이 옆에 있던 창틀을 가볍게 훑어 냈다. 그러자 분명 뭉친 먼지처럼 보였던 것들이 그의 손끝으로 가닥을 이루며 딸려 왔다. 불꽃으로 단숨에 그 가닥을 태워 낸 마밀이 손을 털며 말했다.

“거미줄이다. 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니, 어찌 보면 여긴 적의 둥지인 셈이지. 조심하거라. 우린 이미 덫에 걸렸어.”

덫을 빠져나왔더니 또 다른 덫에 걸리다니. 모두의 얼굴로 낭패감이 스쳤다.

“흐응……. 뭐, 먼지가 아니라 거미줄이란 건 의외지만, 어차피 막힌 건물 안인걸. 걸어가다 보면 마족을 마주치지 않겠어?”

라이돈은 코를 막던 손을 내리곤 거침없이 복도를 가로질렀다. 마력으로 쉽게 타들어 가는 거미줄이라면, 몸에 조금 묻는 것쯤이야 그다지 위협적이지도 않았다.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들은 얼떨결에 라이돈을 선두로 층을 헤집기 시작했다. 상단부의 계단은 한 줄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층을 빙 돌아 반대편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온통 거미줄 천지인 복도를 가로지르길 몇 분.

“……너무 쉽게 간다 했지.”

그들의 앞으로, 복도를 가로막은 거미줄의 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단 불태워 보도록 하지.”

창틀을 덮고 있던 거미줄은 무리 없이 태울 수 있었으니,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마밀이 짧은 영창을 마치자 수북한 거미줄 위로 불씨가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불꽃이 복도를 가득 메우고. 언뜻 열기를 이기지 못한 거미줄이 허물어지는 듯했으나.

탁. 타닥.

물이라도 부은 것처럼 화력이 훅 줄어들며, 불꽃이 거미줄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내 거미줄 한 가닥조차 불태우지 못한 마력이 자취를 감췄다. 기사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생각에 잠긴 그들의 사이, 마력을 거둔 마밀이 입을 열었다.

“암기를 사용하는 카델의 부하……. 자네 이름이 뭐였나?”

“요젠.”

“그래, 요젠. 이 층이 하나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댔지? 그 기운을 이루고 있는 건 거미줄이 분명한가?”

“응. 분명해.”

마밀은 까끌한 턱수염을 문지르며 탄식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이쪽의 거미줄은 마기의 응집체나 다름없겠군. 유독 기운이 거센 것으로 보아, 이 너머에 본체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걸 마력으로 돌파하는 건 낭비야. 물리적으로 돌파해 보지.”

“이 거미줄 덩어리들이 어디까지 복도를 막고 있을지 모르오. 꽤 껄끄러운 걸음이 되겠지만…… 별수 없겠구려.”

“제가 앞서겠습니다.”

마밀이 내린 결론에 소린이 장검을 뽑아 들었다. 기다란 검날로 거미줄을 베어 내자, 좀 전과는 달리 거미줄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날에 붙은 거미줄을 가볍게 털어 낸 소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은 소린을 선두로 일렬을 이루어 복도를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미줄은 예상보다도 길게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무수한 거미줄 속을 나아가려니 꼭 구름 속을 거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피부에 들러붙는 거미줄에 불쾌감을 표하며 말수를 줄였다. 숨만 쉬어도 입과 코에 거미줄이 달라붙는 탓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어 나갔을까. 묵묵히 걸음을 이어 나가던 그들의 후방에서, 요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어. 경로를 이탈했잖아.”

“뭐? 누가 이탈을 했다고 그래?”

계속 앞사람을 따라 똑바로 걸어갔건만. 요젠의 앞에 있던 반이 어이없다는 듯 묻자, 당혹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너. 네가 경로를 이탈했어.”

“무슨 헛소리야, 난 계속 모들렌 경만 따라서…….”

황당하다는 듯 정면을 가리키던 반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전방에서 거미줄을 헤치고 나아간대도 곧장 새로운 거미줄이 쏟아졌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원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앞으로 쏟아지는 거미줄을 일일이 떨쳐 내며, 앞선 동료의 실루엣을 쫓아 걸어가야 했다.

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피부를 간질이는 거미줄에 짜증을 내면서도 꿋꿋하게 모들렌의 실루엣을 따라 걸었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나.

“……뭐야, 이건.”

성큼 발을 뻗은 반이 모들렌이라 의심치 않던 이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인간의 형체를 따라 한 거대한 고치였다.

설마 이 안에 갇히기라도 한 것일까. 모들렌의 이름을 부른 반이 고치를 흔들었으나, 사람이 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가볍기만 했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확인하지 않아도 돼.”

“대체 어느 틈에…….”

“모르겠어. 기운이 빈 곳이 없는 층이야. 변화를 알아채기가 까다로워. 내가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뿐이야.”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 봤자 우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고. ……어차피 길은 하나야. 앞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의도적으로 인간의 모양을 한 고치를 만들어 그것을 따라가게 만들었다. 대체 어느 틈에 그런 수작을 부린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 정체를 알았으니 또 당할 일은 없었다. 마침 그들은 후방에 있었으니, 나아가는 동안 다른 기사를 만날 확률도 있었고. 그리 생각한 반이 다시 앞서가려 했으나, 요젠이 그의 어깨를 쥐었다.

“뭐야?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내가 앞장설 테니까, 넌 내 옷을 잡고 따라와.”

“옷을 잡고 따라와? 내가 무슨 다섯 살배기 어린앤 줄 아냐?”

“우리가 얘기하는 동안 사람들의 기운이 사라졌어. 루멘도, 라이돈도 마찬가지야.”

“……완전히 사라졌단 거냐?”

“적어도 근처에 있진 않아. 그러니 최대한 흩어지지 말자는 소리야.”

걸음을 멈춘 동안 간신히 뚫어 두었던 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은 사방이 거미줄로 막힌 복도에 갇혀 있었고, 적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반은 순순히 요젠의 옷자락을 쥐고 그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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