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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토 단장님!”
“안 돼, 엑토 경!”
불시에 날아든 공격은 엑토의 쇄골 아래를 파고들었다. 공격이 적중하기 직전, 간신히 몸을 비튼 덕에 급소를 피할 수 있었다. 휘청거리는 엑토를 부축한 소린이 다급히 상처를 지혈하자, 모들렌이 앞으로 나섰다.
“치유술을 전개하겠습니다. 엄호를!”
“이깟 상처는 괜찮으니, 일단 적의 위치를……!”
말을 잇던 엑토가 돌연 피를 토했다. 괴롭게 일그러지는 표정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단장님!”
“……요란하게 굴지 마라, 소린.”
소린의 손을 떨쳐 낸 엑토가 스스로 상처를 지혈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모두의 관심을 떨쳐 내고 싶건만.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점점 몸집을 불려 왔다.
그리고 함께 엑토를 살피던 루멘.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구겨졌다.
“피가 흐르지 않는군요.”
어떤 공격이었는지 육안으로 살피지는 못했다. 하지만 엑토가 무릎을 꿇을 정도라면 상당한 파괴력을 지녔다는 뜻. 그럼에도 상처를 짚은 엑토의 손은 깨끗하기만 했다.
서둘러 치유술을 전개하려던 모들렌 역시 그 사실을 확인하곤 엑토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고집부리지 마십쇼, 엑토 경.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경의 힘이 필요합니다. 잠깐이라도 멈춰서 치유술을 전개해야 해요.”
“젠장……. 추태도 이런 추태가 따로 없군. 적의 위치는 어디지?”
엑토의 물음에 요젠이 입을 열었다.
“북서쪽 500미터. 더 가까워지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이쪽의 동태를 살피는 것 같아.”
요젠의 말을 따라 북서쪽을 바라본 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둘인가? 좀 전의 공격은 어떤 녀석이 날린 거지?”
“오른쪽의 고위 마족. 완전히 기척이 없는 공격은 아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내가 미리 감지하고 말해 준대도 웬만해선 피하기 어려울 거야.”
“방어도 어렵겠군.”
남은 한 명의 마족은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도 모른다. 부상자까지 생긴 판국에 섣불리 전투를 개시하기는 어려웠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추락하기 딱 좋은 이런 계단 위에서는 더더욱.
“일단 앞으로 이동해서 놈들을 견제해 볼 테니, 어서 치유술을…….”
“끄아아악……!”
마족들이 접근하기 전에 나서려는 반의 뒤. 상처를 지혈하던 엑토가 돌연 틀어막힌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억눌러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그의 얼굴이 붉게 물들고. 당황한 시선들이 몰려든 순간.
“이게 무슨!”
“단장님!”
“다, 다들 물러서……!”
상처를 틀어막던 손이 밀려나며, 작은 구멍에서부터 무언가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굽이치며 회전했고, 점점 구멍의 부피를 늘리며 엑토의 상반신을 뒤덮었다. 이내 질척한 소리를 내며 기어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꽃……?”
하나의 거대한 꽃송이였다. 엑토의 상반신을 가린 채 만개한 그것은, 풍성하게 달린 하얀 잎사귀가 마치 국화를 연상케 했다. 꽃의 무게에 짓눌린 듯 허리를 꺾은 엑토가 이를 갈며 말했다.
“나, 나의 피를… 빨아들이고 있소……!”
“흡혈꽃인가? 엑토 경! 최대한 기운을 다스려 버티십쇼! 일단 이 꽃부터 떼어 내겠습니다!”
다급히 검을 빼 든 모들렌이 가차 없이 꽃송이를 향해 검날을 휘둘렀다. 하지만.
“비키십쇼! 왜 막는 겁니까!”
사이로 끼어든 요젠이 단검으로 그의 일격을 막아 냈다. 부드럽게 모들렌의 검을 튕겨 낸 요젠이 말했다.
“꽃이 이미 기운의 상당량을 흡수했어. 바로 잘라 낸다면 그만큼의 기운이 소실될 거야.”
“뭐라고요……?”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을 다시 내려보낼 생각이 아니라면, 꽃은 건들지 마.”
“하지만 이대로 놔둔다면 꽃은 엑토 경의 혈액을 모조리 흡수할 겁니다!”
“그 전에 꽃의 주인을 죽이면 돼.”
꽃의 주인. 모들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북서쪽을 향하고. 여전히 반응 없이 멈춰 있는 두 고위 마족을 발견한 그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저 녀석들만 없애면 바로 계단을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성까지 멀지 않았어.”
제한 시간은 엑토가 모든 혈액을 빼앗기고 쓰러지는 순간까지다. 엑토의 생존과 상층부로의 전진. 그 두 가지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앞의 고위 마족을 처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