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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에 닿아 오는 공기가 끈적였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안기는 습기와 어두운 시야가 카델의 감각을 예민하게 부추겼다.
‘이제 이런 깜깜한 곳은 진저리가 난다고. 함부로 불을 피울 수도 없고…….’
생각 없이 불꽃을 띄웠다간 어딘가에 있을 적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었다. 나름 잠입이었으니 되도록 조심히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다행히 바로 옆에 벽이 있었으므로, 카델은 그 벽을 짚어 가며 소리 죽여 나아갔다.
차차 어둠에 익숙해지는 시야 속으로 묘하게 익숙한 윤곽이 들어찼다.
‘창살……인 것 같지?’
그가 걷고 있는 곳은 기다란 복도였다. 한쪽에는 짚고 있는 벽이, 다른 한쪽에는 촘촘한 쇠창살이 일정 간격으로 안쪽의 공간을 봉쇄하고 있었다. 카델은 자신이 들어선 공간이 ‘지하 감옥’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놈들이라면 분명 라이돈을 감옥에 가둬 놓았을 거야. 지금의 라이돈이라면 기력이 없을 테니, 가둬 둔대도 반항하지 못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라이돈이 무력하게 붙잡혀 있다고 해도, 간수 한 명 붙여 놓지 않았을 리 없다. 카델은 이어질 싸움을 예견하며 남은 마력을 가늠했다.
‘……쿤라는 아직인가.’
쿤라의 기운 없이 본래의 마력만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전투였다. 만약 무사히 전투를 끝마친대도 그 이후가 문제다. 라이돈을 데리고 어떻게 마왕 성을 탈출해 동맹군과 합류하느냐. 적어도 탈출을 위한 마력 정도는 남겨 두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보이는 감옥마다 꼼꼼히 내부를 살폈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없어도, 안이 비었는지 아닌지 정도는 분별이 가능했다.
‘다 비어 있네. 전쟁 중이라 그런가.’
죄수라도 꺼내 싸우게 해야 할 상황이니, 인력을 아껴 놨을 리는 없다.
‘오히려 찾기 쉬워지겠네.’
카델은 애써 긍정을 끌어모으며 걸음을 이어 갔다. 그러자 어둡기만 하던 시야 너머로, 어렴풋한 불빛이 보였다. 저 멀리 자리한 감옥의 앞. 딱 그 감옥의 맞은편 벽에만 작은 횃불이 매달려 있었다.
‘저기인가?’
감옥 앞을 지키는 간수는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어 있거나,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일지도. 제발 자리를 비웠기를 빌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러나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감옥 안쪽에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찢는 듯한 소리와 기묘한 웃음소리, 사슬이 절그럭거리는 소리와 물이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가 선명해질수록 카델의 표정은 굳어 갔다. 피 냄새.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진한 피 냄새가 났다.
감옥의 내부가 대강 보일 만큼 가까이 접근한 카델은, 불빛의 범위 바깥에서 벽에 몸을 붙였다.
숨을 참고 안을 들여다보자, 불빛에 비친 두 인형이 보였다. 카델에게 등을 보인 이는 아주 길고 가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뼈밖에 없어 보일 만큼 얇은 몸에, 카델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높은 신장. 감옥의 간수인 듯한 그는 그 가냘픈 몸으로 무언가를 가차 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무언가’를 살피던 카델은 곧 그것이 채찍임을 깨달았다.
‘뭘…… 때리는 거지?’
현실을 회피하듯, 뻑뻑하게 굴러간 눈동자가 간수 너머의 인형을 확인했다. 푹 숙인 머리가 채찍의 반동을 따라 맥없이 흔들린다. 사슬에 묶여 완전히 쓰러지지도 못하고 반쯤 접힌 상체. 그리고 그 너머, 붉은 불빛에 비친 한 쌍의 날개.
“비명을 안 지르니 재미가 없군. 어서 일어나라. 눈을 뜨지 않으면 뜨게 만들 수밖에 없지. 어디, 이 날개를 뜯으면 깨어날까?”
쇳소리를 닮은 기이한 웃음소리, 채찍의 궤적을 따라 흩뿌려지는 핏방울, 흔들거리는 금발, 발밑에 고인 붉은 웅덩이, 사정없이 난도질당해 찢긴 단복. 모든 장면이 차례차례 카델의 머리를 비틀어, 단 하나의 감정으로 내몰았다.
무엇을 참겠는가? 무엇을 참고, 무엇을 기다리고, 무엇을 봐주겠는가. 카델은 마치 홀린 듯이 걸음을 옮겼다. 기척을 내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빈 복도를 울리는 선명한 발소리에 간수가 흠칫 고개를 돌렸으나, 그의 시야를 채운 것은 카델의 얼굴이 아니었다.
“컥……!”
정통으로 불덩이를 맞은 간수가 얼굴을 감싼 채 맥없이 엉덩방아를 찧고. 그 앞에 선 카델이 간수의 복부를 거칠게 짓밟으며 이를 갈 듯 읊조렸다.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간수를 향한 발길질엔 오로지 분노만이 담겼다. 부릅뜬 눈에 살기가 감돌며, 웅크린 몸을 사정없이 짓밟은 카델이 불덩이를 생성했다.
머릿속이 먹을 뿌린 듯 온통 새까맸다. 몸에 뜨끈하게 열이 오르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고, 눈앞의 존재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다는 흉흉한 충동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냥 죽여서는 안 됐다. 평범한 고통으로는 부족했다. 라이돈에게 준 고통의 백 배, 천 배는 더한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할까?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얇은 목을 꾹 짓누르며, 카델이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목을 밟은 신발이 들썩였다. 카델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큭, 크크큭… 크큭…….”
간수의 틀어막힌 웃음을 따라 널브러진 몸이 꿈틀거렸다.
“웃음이 나와?”
더 세게 목을 짓이겼으나, 간수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죽음 앞에 실성이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라도 카델은 녀석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수, 숨소리가 들리나?”
“뭐?”
“녀석의, 숨소리가… 들리나?”
카델의 입가가 움찔 떨렸다. 웃음기 어린 물음에 살기등등하던 눈빛이 흔들리며, 마른침을 삼킨 목울대가 꿀렁였다.
“……닥쳐.”
“화, 확인해, 쿨럭! 확인해 봐…!”
숨통이 틀어막힌 주제에 간수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불덩이에 비친 녀석의 얼굴은 뼈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날 만큼 앙상했고, 퀭한 안색에 음험한 눈빛이 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불쾌감을 남겼다. 그래서일까. 카델은 거대한 불쾌감에 짓눌린 듯, 고개도 돌릴 수 없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간수 녀석의 숨소리는 쓸데없을 정도로 선명했다. 쩌렁쩌렁하게 감옥을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돈은. 사슬에 묶여 벽에 매달린 라이돈에게선, 작은 신음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짧은 들숨과 함께 간수를 향해 손을 뻗자, 두꺼운 [화련]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카델은 열기에 괴로워하는 간수를 뒤로한 채 발을 뗐다. 뻣뻣하게 움직인 시선이 라이돈을 향하고. 아무런 반응 없이 늘어진 몸을 응시하던 그가 라이돈의 앞에 섰다.
“미안해, 라이돈. 너무 늦었지.”
카델의 낯빛은 창백했고, 표정은 어색했으며, 시선은 불안정했다. 뚝뚝 끊기는 호흡에 말을 잇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으나, 그럼에도 카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라이돈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그러게 누가 그렇게 말도 없이 혼자 떠나 버리래? 깜짝 놀랐잖아. 다시는 그러지 마.”
라이돈을 코앞에 두고 있음에도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꽉 주먹 쥔 손은 그의 뺨 한 번 쓸어내리지 못했다. 그런 카델의 뒤편에선 [화련]에 묶인 간수의 웃음소리가 점점 크기를 키웠다.
“널 어떻게 데리고 갈지도 문제야. 빨리 다른 부하들을 찾아서 성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가르엘을 먼저 만났으면 좋겠다. ……라이돈, 대체 얼마나 맞은 거야? 상처가 너무 많잖아.”
아니야. 그럴 리 없다. 그럴 리가 없어.
“왜 대답이 없어. 기절한 거야? 괜찮아. 널 이렇게 만든 녀석은 내가 책임지고 죽일 테니까. 너무 분해하지 마.”
“크큭, 크크크… 크하하학!”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광기에 찬 웃음소리가 감옥을 우렁차게 울렸다. 카델은 그 소리에 반응하는 대신,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을 들어 라이돈의 얼굴을 감쌌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어 올리자, 혈색 없는 입술과 창백한 피부, 잠이 든 것처럼 온화한 표정이 드러났다.
“……라이돈.”
한참을 머뭇거리다, 핏자국이 난 코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떨리는 숨을 훅 들이마시곤, 더듬더듬 손을 내려 그의 맥을 짚었다. 조심히 손을 얹은 채 맥을 느끼다, 그 언저리를 문지르고, 힘을 주고, 조르듯 감쌌다.
“라이돈.”
아프도록 힘을 준 눈으로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빛에 어두운 절망이 떠오르고.
“아…… 안, 안 돼. 안 돼…….”
발적처럼 손을 떼어 낸 카델이 뒷걸음질 쳤다. 벌어진 입새로는 숨결조차 빠져나오지 못했다. 충격과 혼란, 불신과 절망이 뒤섞인 표정은 처참했다. 간수는 그런 카델의 귓속으로 자지러지는 웃음을 때려 박았다.
“크흐흐! 크학! 크하하하학! 그 표정! 그 반응! 짜릿해, 짜릿해, 아아! 아아아아!”
노골적인 조롱에도 카델은 라이돈만을 응시했다. 반응 없는 그의 몸에서 자그마한 생명의 기운이 피어나길 바라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라이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간수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카델의 주의를 끌었다.
“이걸 봐라, 심장이다! 녀석의 심장!”
“……?”
반사적으로 움직인 시선이 바닥에 묶인 간수를 향했다. 어느새 그의 전신을 물들인 마기. 하지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카델의 마력은 무리 없이 간수를 압박하고 있었으니.
문제는 바로 그의 손. 채찍밖에 들리지 않았던 그의 오른손에, 덩어리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일정한 박자를 맞춰 박동하고 있었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카델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심장. 간수가 움켜쥔 것은 바로 살아 있는 심장이었다. 라이돈의 것일까? 하지만 라이돈의 몸에 구멍이 뚫린 곳은 없었다. 애초에 진짜 심장도 아닐 것이다. 평범한 심장이라면 저렇게 몸에서 툭 떨어진 채로 멀쩡하게 박동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진짜 심장도 아니고, 라이돈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카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간수는 홀린 것처럼 다가오는 카델을 보며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난 산 자의 몸에서 심장을 꺼내 올 수 있지. 심장을 빼앗긴 육체는 껍데기나 다름없지만, 다시 심장을 돌려놓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다. 크큿…….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나?”
“그게, 라이돈의 심장이라고?”
“그래! 이게 녀석의 심장이다. 내 손안에 녀석의 목숨이 달린 거야.”
“내놔.”
카델이 황급히 심장으로 손을 뻗었으나, 그 손길이 닿기도 전. 심장은 마기에 휩싸여 자취를 감췄다. 허공을 움켜쥔 카델의 공허한 눈빛이 간수를 향하고. 간수는 전율이 인 것처럼 몸을 떨며 속삭였다.
“날 풀어 준다면 녀석에게 심장을 돌려주지.”
“거짓말.”
“믿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너는 날 죽일 수 없거든. 내가 죽는다면, 내가 가진 녀석의 심장도 함께 터져 버릴 테니까.”
“…….”
“선택해라. 날 풀어 주거나, 나와 함께 녀석을 죽여. 혹여 풀려난 내가 널 공격할까 걱정된다면, 괜찮다. 나는 풀려나는 즉시 폐하께 달려가 네 침입을 알릴 생각이니.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너는 이미 죽은 목숨이야.”
이건 덫이다. 녀석은 풀려나는 즉시 뭔가의 술책을 부려 라이돈과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 심장만 있으면, 라이돈이 살 수 있다고?”
“당연하지.”
설령 놈의 제안이 지옥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래도. 지금의 카델은 그 덫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라이돈이 죽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괴롭고, 세계를 잃는 것보다 두려운 일이었으니.
카델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마력을 거두자 간수를 결박하던 [화련]이 사라졌다. 몸의 자유를 확인한 간수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헛짓거리할 생각하지 마.”
“알지, 알아. 나도 내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진 수상쩍게 굴 생각은 없다고.”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머금은 채, 몸을 세운 간수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손바닥 위로 짙은 마기가 모이며 다시금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동하는 심장. 카델은 조급함을 숨기지 못하며 심장을 주시했다.
“어서 돌려놔.”
카델을 일별한 간수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라이돈의 가슴께로 심장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기가 어지럽게 일렁이는가 싶더니, 심장이 서서히 라이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을 확인한 카델이 앞에 선 간수를 거칠게 밀쳐 냈다.
“라이돈! 라이돈, 살아 있어?”
다급하게 얼굴을 잡아끌어 귀를 가져다 댔다. 미간을 구긴 채 소리에 집중하자, 탁 터지는 듯한 호흡이 귓가를 때렸다. 라이돈의 숨소리였다. 그를 확인한 카델의 얼굴로 짙은 안도감이 스치며, 환하게 미소 지은 그가 라이돈을 꽉 끌어안았다.
“진짜 죽어 버린 줄 알았잖아…….”
두려움의 여운이 남은 다리가 덜덜 떨렸다. 카델은 한 손으로는 라이돈을 묶은 사슬을, 한 손으로는 그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심장을 되찾은 라이돈은 곧 앓는 소리를 내며 눈꺼풀을 움직였다. 피가 엉겨 붙은 속눈썹을 들썩이던 그가 조금씩 의식을 되찾고.
“정신이 들어? 너란 애는 진짜……. 후, 됐어. 깨어났으면 된 거야.”
“카, 델…….”
“그래, 나야. 지금 사슬을 풀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왜……?”
“응?”
“왜, 온 거야……?”
왜 왔냐니. 아직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헛웃음을 뱉은 카델이 설설 고개를 저으며 사슬의 위로 마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카델의 얼굴을 발견한 라이돈은 동요를 감추지 못한 채 몸을 움찔거렸다.
“안 돼, 카델, 도망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잠꼬대는 그만하고……!”
끊기지 못한 사슬이 크게 덜컹거렸다. 그 반동과 함께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실이 끊긴 인형처럼. 힘없이 기울어지는 카델의 모습이 들어찼다.
“카델!”
그리고 쓰러진 카델의 너머. 웃음을 참듯 입을 틀어막은 간수가, 손안의 심장을 흔들어 보였다. 허망하게 굳은 라이돈의 표정을 확인한 그가 조롱하듯 말했다.
“아주 훌륭한 미끼로다!”
‘이 상태론 절대 이길 수 없어.’
기척을 숨길 수 없으니 기습은 불가능하다. 정면 승부를 보기엔, 기운은 부족했고 마왕은 강했다.
요젠은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마왕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녀를 이루고 있는 마기는 너무도 기이했다. 화려하면서도 순수했고, 끝없는 파동이 정신을 교란하는 동시에 쥐 죽은 듯 고요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말도 안 되는 기운의 흐름이었다. 모든 변칙성이 한데 모인, 어떤 식으로 상대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 존재.
‘잠깐이라도 좋으니 기운을 모을 시간이 필요해. 이대로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이 서재를 벗어나야 살 수 있었다. 지금으로선 혼자 마왕과 싸워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그에겐 상대의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은 곧 승패를 가늠하는 예지력과 이어졌다. 지금의 그에게는 패배의 결말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망은 꿈꾸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네 기운은 너무 위험해. 살아서 활보하게 두지 않아.”
에밀리아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왔다. 넝마가 된 요젠과는 달리, 그녀와 그녀의 서재는 처음의 모습 그대로 멀쩡하기만 했다. 요젠의 공격을 전부 방어하고, 그 공격의 여파로부터 서재까지 지켜 낸 덕이었다.
에밀리아에게는 여유가 넘쳤다. 그녀의 주위를 넘실거리는 검은 마기 역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즐겁게 부유했다.
그녀가 지휘하듯 손을 휘젓자, 그녀의 손등에 그려진 보라색 마법진이 발광했다. 동시에 손의 궤적을 따라 요젠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큭……!”
공중에서 몸을 틀어 벽을 디딘 요젠이 간신히 착지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도저히 틈이 없다. 마왕의 앞에서, 자신은 손안에 들린 장난감처럼 놀아나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요젠을 보며, 에밀리아가 살포시 고개를 기울였다.
“드디어 포기했어? 항복한대도 편히 죽여 주진 않을 거지만……. 흠, 그래. 역시 항복할 생각은 없나 보구나.”
요젠의 몸에서부터 순도 높은 암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위험한 힘이다. 저 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마족이 죽어 나갔을지. 머릿속에 살육의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체력을 소모했을 텐데도 저 정도다. 회복할 시간을 빼앗고, 그대로 죽여 버려야 뒤탈이 없으리라. 다행히 낡아 빠진 지금의 몸으로는 제대로 반항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꼭 날벌레 같아. 언제든 죽일 수 있으니 놔두려 하면, 도저히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거슬리지. 뭘 믿고 자꾸 덤벼드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에밀리아의 눈빛으로 혐오감이 스쳤다. 주제도 모르고 자신의 서재까지 기어들어 와 활개를 치다니. 죽여도 죽여도 계속 튀어나오는 이 날벌레들을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 걸까.
얕은 한숨과 함께 팔을 뻗은 에밀리아의 손등에서 다시금 마법진이 발광했다. 그리고 그 순간.
“……!”
요젠이 행동을 개시했다. 일순 요젠의 몸이 흐려지며, 그가 향하는 방향을 곧바로 알아챌 수 없었다. 필사의 은신 시도는 에밀리아의 공격을 늦췄다. 요젠을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어딘가를 향해 전력으로 몸을 부딪쳤다.
바로 책장 사이의 좁은 틈.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설 만한 틈새에 암기를 두른 몸을 내던졌다. 미처 에밀리아의 보호를 받지 못한 벽에 고스란히 충격이 전해지고. 힘을 감당하지 못한 벽이 부서지며, 요젠의 몸이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감히 내 서재를……!”
반 박자 늦게 요젠의 저의를 파악한 에밀리아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서재를 벗어났다고 도주할 순 없을 것이다. 이미 기운을 쏙 빼놨으니 추격은 쉽다.
그리 생각한 에밀리아였으나. 요젠은 단순히 도망을 위해 서재의 벽을 부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노리던 것은, 부순 벽 바깥에 자리한 존재.
“요젠……?”
그는 무기고를 빠져나와 동료를 찾던 루멘이었다. 마침 근방을 달리던 그의 기척을 눈치채고, 타이밍 맞춰 루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난데없이 벽을 뚫고 튀어나온 요젠에 루멘이 일순 황당함을 드러냈으나.
“도와줘.”
요젠이 빠져나온 방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어마어마한 살기. 그것을 감지한 루멘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마왕이라도 만난 거야?”
“정확해. 우리만으론 상대할 수 없어.”
“진짜 마왕을 만났…….”
그는 평화롭기 짝이 없는 무기고로 이동했었으니. 다섯 개의 장치 중 정말 마왕이 있는 장소와 이어진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잠시 놀라움을 드러내던 루멘은 곧장 입을 다물고 몸을 틀었다.
검집에 손을 올린 그의 시야를 채운 것은, 요젠이 빠져나온 구멍 사이로 날아드는 마기. 반원형의 칼날처럼 매섭게 날아드는 마기의 위로 푸른 섬광이 새겨지고. 루멘의 코앞에서 반으로 갈라진 마기가 뒤편의 벽을 강타했다.
콰과광!
루멘의 주위로 강풍이 일었다. 순식간에 뻥 뚫린 뒤편의 벽에서 찬 바람이 불어오며, 흑발이 흩날렸다. 반 뼘 빠져나온 검을 납검한 그는 뒤에 난 구멍을 살피지도 못한 채 다가오는 적을 응시했다.
“성을 보수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아니야. 생각해 보니 보수할 필요도 없지. 이제 이 칙칙한 성은 사용하지 않을 테니까. 혹시 지상에 쓸 만한 성이 있니? 내 소환 마법이 괜찮은 성들을 다 부숴 버린 건 아닌지 몰라.”
새까만 마기를 두른 여자에게선, 마왕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걸음을 따라 좁혀지는 거리가 죽음과의 거리처럼 느껴질 만큼.
‘저 얼굴. 마왕이군.’
밖에서 보았던 석상을 떠올린 루멘이 마른침을 삼키고.
“루멘.”
“……알아. 확실히, 우리만으론 부족하겠군.”
에밀리아의 손등이 발광함과 동시에, 요젠을 둘러멘 루멘이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루멘이 지난 자리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뜀박질과는 고작 1초가량의 오차가 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느려졌다간, 즉시 공격을 맞고 바닥으로 추락할 터.
루멘은 요젠을 둘러멘 어깨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간을 구겼다.
‘출혈이 심하다. 요젠이 이렇게 당했을 정도면 어떻게든 도망가는 게 맞아. 하지만…….’
성안은 위험하다. 언제 새로운 적을 만날지도 모를뿐더러, 자칫 길을 잘못 들어 다른 동료들을 마주치기라도 했다간.
‘자폭이다. 전멸할 위험도 있어.’
적의 주거지에서 최종 보스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컨디션은 갖춰 둬야 했다. 붙잡혀 간 라이돈의 상태도 불분명하고, 요젠마저 상처가 심각한 지금은 아니었다.
성 밖으로 도망가야 한다. 결정한 루멘이 검집에 손을 올린 채 작게 숨을 골랐다.
‘다행히 그리 높진 않아. 벽에 구멍을 뚫고 뛰어내리자. 몇 군데 부러지긴 하겠지만, 여기서 죽는 것보단 낫겠지.’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높여 마왕의 공격보다 3보 앞선다. 그 상태에서 벽에 구멍을 뚫고, 마왕의 공격이 닿기 전에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루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도술이 시작되기도 전.
“어딜 도망가려고?”
내내 멀리서 루멘을 공격하던 에밀리아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 그의 맞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말이 안 되는 속도였다.
‘내 뒤쪽으로는 바닥이 무너져 있을 텐데? 어떻게 여기까지…….’
속도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디딜 바닥도 없는 곳을 어떻게 넘어왔단 말인가. 찰나의 순간, 본능적으로 검을 빼 든 루멘의 시선이 뒤편을 향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에밀리아. 그녀는 여전히 처음 서 있던 그곳에 있다. 그렇다면.
“분신이군.”
분신이라면 요젠의 능력으로 질리게 보았다. 발도술 대신 검을 휘두른 루멘이 분신을 노렸다. 그러나.
“뭣……!”
“날 평범한 분신으로 생각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코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에밀리아의 분신이 루멘의 검을 맞받아쳤다. 기운으로 받아친 것이 아니다. 루멘은 제 검과 교차한 마기의 검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루멘의 검과 똑같은 모양새를 한 검에 힘을 주며, 에밀리아의 분신이 히죽 웃었다.
“이런 실력으로 날 감당하려고?”
요젠을 둘러멘 탓에 루멘은 한 손밖에 쓸 수 없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검을 다루는 에밀리아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가 안간힘을 다해 분신을 상대하는 동안에도 본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루멘은 바닥을 부수는 마기를 피해 달려 나가는 동시에, 검을 휘두르는 분신을 상대해야 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며 강한 진동이 대기를 울렸다.
‘젠장, 이래서는……!’
도망도 마음대로 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은 요젠이라도 대피시켜야 한다. 그의 상태야 두말할 것도 없고, 요젠을 둘러멘 상태로 상대할 만큼 호락호락한 적도 아니었다.
검을 쥔 팔에 댕댕 진동이 울렸다. 일 검, 일 검을 맞댈 때마다 힘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라리 아래에 뚫린 구멍으로 요젠을 던지는 게 낫겠군. 아예 의식을 잃은 것도 아니니 내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도망칠 수 있을 거야.’
그리 생각한 루멘이 자연스럽게 분신과 위치를 바꾸며, 거리를 벌리기 위해 뒤편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분신은 거리를 내어 주지 않았고, 내리찍듯 휘두른 마기의 검을 막아 낸 순간.
챙―
분신의 힘을 버티지 못한 검날이, 반으로 쪼개졌다.
예상치 못한 백부의 등장은 가르엘을 충격으로 몰아갔으나. 그는 굳이 로렌스와 충돌할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숨을 죽인 채 로렌스가 빠져나가길 기다린 뒤. 몰래 지하 계단을 내려가 살펴볼 계획이었다.
로렌스에 대한 반발심은 거대했지만,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일을 망쳐선 안 됐으니. 그에겐 거슬리는 친척의 제거보단 동료들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이제 알겠느냐……? 네가 인간들, 과 뒤섞일 수… 없는 이유를…….”
가르엘은 지금 자신의 상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충동은 걷잡을 수 없이 그를 집어삼켰고, 곧 전혀 바라지 않던 행동을 강요했다.
몸이 뜨거웠다. 온몸이 불타올라 재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덩이 같은 몸보다, 온몸을 적신 핏물이 가르엘의 신체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로렌스의 가슴을 꿰뚫은 검. 그것은 분명 자신의 것이었고, 그 검을 움켜쥔 손 역시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몸에서 피어 나오는 이 마기는.
“어, 떻게… 그 녀석의 핏줄이 이런…… 이런 힘을 남겼는지는, 모르겠다만……. 인간이길 포기해라, 가르엘. 그럼 너는, 살 수 있다…….”
“……닥쳐.”
가르엘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가차 없이 검날을 비틀어 로렌스의 가슴을 헤집었다. 왈칵 솟아나는 피는 그의 지독한 재생력으로도 지혈이 불가능한 듯했다.
양쪽 등을 타고 축 늘어진 검은 날개. 오른쪽 눈을 찌르는 격통.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고, 넘쳐흐르는 마기의 방출을 막을 수 없다.
통제가 불가능했다. 반의 오라 같은 것이 아니다. 마력의 폭주와도 결이 달랐다. 이것은 마치, 잊고 있던 힘이 불쑥 고개를 치켜든 것처럼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한 번도 다뤄 본 적 없는 과도한 힘에 몸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끌려다니는 것이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는가? 왜 하필 지금? 이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거지? 온통 물음표투성이인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아래에 깔려 있던 로렌스가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검을 움켜쥐었다.
“넌 네 각성을 멈출 수 없을 거다……. 이미 그 약의 힘을, 얻어 버린 듯하니…….”
“약……?”
“잠들어 있던… 마족의 힘을 깨우는…….”
그는 검날을 세게 움켜쥐어 빼내기 시작했다. 죽어 가는 이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악력이 조금씩 가르엘의 무게를 밀어 내고.
“너 같은, 반쪽짜리를 위한 약이 아니다. 진정한 마족을 위한… 각성제……. 그 힘을 얻었으니, 이젠 망가지는 일만이…….”
하지만 그 찰나의 괴력이 무용할 만큼. 훅 힘이 빠진 로렌스가 검을 놓치며, 뽑혔던 검날이 다시금 가슴을 난도질했다.
“……이봐.”
“…….”
“이봐, 망할 백부님. 말은 끝까지 해야 할 거 아니야.”
순식간에 안광을 잃은 눈이 흐려지며, 툭, 팔이 떨어졌다. 가르엘은 로렌스에게서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죽었다고?”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허무하게? 차오르는 허무함과 황당함. 그리고 동시에, 그를 불태우던 의미 모를 고통이 사그라졌다. 훅 숨을 내쉰 가르엘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하…….”
로렌스의 시체에서 내려와 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뻣뻣하게 쓰러진 로렌스를 두 눈으로 담아내면서도, 좀처럼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이딴 더러운 감각을 떠안기고 떠나 버린 것인지. 그를 죽인 것이 자신임에도 그저 억울하기만 했다. 피에 젖은 손으로 멍하니 얼굴을 문지르던 가르엘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너저분한 책상 위. 그곳에 놓인 약병들이었다.
‘……로렌스는 내가 약의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하지만 약을 먹은 기억은 없어. 애초에 마계의 약재 따윌 입에 넣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맛은 보지 않았어도, 냄새는 맡았다. 그마저도 독한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곧장 뚜껑을 닫았는데.
“정말 고작 냄새만으로 약효가 돈 거라고?”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가르엘은 침착하게 자신이 느꼈던 변화를 정리하여 약의 효능을 짐작했다.
일종의 각성제인 걸까. 마족의 힘을 극대화하는 약인 듯했지만, 직접 복용 아닌 복용을 해 본 결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상당히 저하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정적 감정이 극대화된다. 일순이지만 동료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눈앞의 거슬리는 백부를 처리하고 싶다는 충동이 더욱 크게 몸집을 부풀렸으니.
‘약효는 언제까지 도는 거지? 설마 냄새 한 번 맡았다고 평생 유지되는 건 아닐 테고.’
저주받은 악마라도 된 듯한 기분이던 좀 전과는 달리, 지금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눈앞에 죽이고 싶은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마계에 로렌스만큼 자신의 살의를 부추기는 존재는 없을 테니. 그 점만큼은 안심이 됐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가르엘이 천천히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느리게 움직인 손끝이 의심 가는 물약을 툭 건드리고. 잠시 노려보듯 물약을 응시하던 가르엘이 병을 챙겨 품속에 넣었다.
“……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중얼거린 그가 지하로 이어진 계단을 돌아보았다. 본래의 목적은 괴상한 소리가 나는 공간을 살피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로렌스는 맨 처음, 곧 폐하가 이곳을 살피러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더 미적거렸다간 마왕을 마주칠지 몰라.’
마왕이 로렌스의 시체를 발견한다면 분명 소란이 일어날 테다. 그 전에 최대한 멀리 내빼는 편이 낫다.
“저곳을 살피지 못한 건 아쉽긴 하네.”
어쩌면 라이돈이 있을지도 모를 공간이다. 하지만 로렌스가 ‘떨거지를 돌봐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으로 보아, 저곳에 인질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들이 돌볼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이겠지.
‘만약 모두 소득 없이 돌아왔다면 다시 이곳에 들러 봐야겠군. 가능성이 높은 건 여전하니까.’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가르엘은 물건을 넣은 품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