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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첫 번째 원을 택한 루멘. 그는 이동한 순간부터 격렬한 전투를 치르게 된 반과는 달리, 옅은 긴장감 속에서 제법 평화로운 탐색을 이어 갈 수 있었다.
“무기고인가……. 꽤 괜찮아 보이는 무기가 많군. 마도구 같은 신기한 물건들도 보이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곳에 라이돈이 있을 것 같진 않아.”
어둑한 무기고를 비추는 것은 천장에 붙어 발광하는 박쥐들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다. 박쥐의 형태를 갖춘 일종의 조명. 그것은 날개를 움츠린 채 곳곳에 매달려 무기고를 밝혔다. 덕분에 루멘은 드넓은 무기고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무기는 밖에서 전투 중인 고위 마족이 차지한 듯 군데군데가 빈 채였으나, 그럼에도 제법 많은 무기가 남아 있었다. 범상치 않은 약물이 담긴 유리병,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신구들까지. 활용에 따라 인간군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이 차고 넘쳤다.
“나중을 위해 처리해 두는 게 좋겠지만, 섣불리 건드리긴 어렵겠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도구 같은 경우, 괜히 충격을 주었다가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대충 무기고를 둘러본 루멘이 낮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대충 무기나 부러뜨리고 떠나야겠군.”
당연하게도, 무기고엔 라이돈이 없었다. 다른 장소로 이어지는 비밀의 문 따위도 보이지 않았으니, 정말 평범한 무기고가 맞는 듯했다. 이런 심심한 장소에 도착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차라리 카델이 이곳을 골랐다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자연스레 카델을 떠올리며 닥치는 대로 무기들을 깨부수던 루멘이 멈칫하며 몸을 세웠다.
“이건…… 꽤 좋아 보이는데.”
그것은 보란 듯이 벽에 걸려 있지도, 같은 종류의 무기끼리 모여 있지도 않았다. 마치 버려진 고물처럼 무기고의 구석에 기대어졌다. 먼지까지 덩어리째 쌓여 있었다. 그런데도 루멘은 한눈에 그것이 명검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홀린 듯이 손을 뻗어 검을 집어 들자, 일순 약한 진동이 손바닥을 울렸다.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린 그가 신경을 곤두세웠으나, 더 이상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느낀 건가.”
가볍게 먼지를 털어 내자 어둡고 짙은 녹색의 검집이 드러났다. 잠시 검집에 새겨진 문양을 훑어보던 루멘은, 이내 이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검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여분의 검을 준비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무게감도 적당해. 대충 들고 다니다 거슬리면 버리면 되니……. 빨리 나머지 무기를 정리하고 여길 벗어나야겠군.”
무기고에 볼일은 없다. 적당히 정리해 둔 뒤, 성 어딘가에 있을 카델과 라이돈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