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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따라온 거야? 하하! 제 발로 무덤까지 찾아왔네? 이걸 기특하다고 해야 해, 멍청하다고 해야 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던 셀레브가 돌연 표정을 바꿨다. 그녀는 살기등등한 눈을 빛내며, 자연스럽게 등 뒤의 입구를 가렸다. 샛길과 이어진 성벽에 뚫린 구멍.
평소라면 몇 겹의 마법진으로 철저하게 보호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에밀리아가 셀레브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잠시 마법진을 해제해 둔 상태였다. 뒤편의 활짝 열린 입구를 지나면, 어떤 방해물도 없이 곧장 성안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니 빠르게 복귀해 에밀리아에게 입구의 봉쇄를 부탁하려 했건만.
‘카델 라이토스도 못 죽이고 빈손으로 돌아온 주제에 성에 침입자까지 들였다간……. 아무리 나라도 무사하지 못해.’
이미 에밀리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그 분노에 기름을 붓기는 싫었다. 셀레브는 온몸으로 입구를 가린 채 맞은편의 적을 노려보았다.
“네 아버지가 죽는 꼴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어? 무서워서 도망쳤을 줄 알았는데. 하긴. 넌 처음부터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생각했어.”
라이돈의 주위로는 여전히 한기가 맴돌았다. 그가 입을 뗄 때마다 뿌연 입김이 흩어졌고, 피부에는 성에가 꼈다. 폭주의 기운을 완전히 안정시키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라이돈은 괴로운 내색 하나 없이 눈앞의 셀레브를 응시했다.
“제국에서 처음 널 만났을 때,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 버렸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하! 네가 나를 죽여? 꿈도 크시지.”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과거는 바뀌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네가 후회하게 할 거야.”
라이돈이 한 걸음을 내딛자, 그의 발밑으로 웅덩이 같은 빙판이 생겨났다. 느릿한 걸음을 따라 빙판이 넓어지며, 한기의 범위도 늘어났다.
“그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날 죽였어야 했다고. 내 아버지가 아닌 내 심장을 뚫어 버렸어야 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될 거야.”
바람에 날려 흔들거리는 금발 사이, 드러난 붉은 눈동자가 흉흉하게 빛났다. 범상치 않은 기운에 주춤하던 셀레브가 곧장 마력을 끌어 올렸다. 까맣게 물든 두 주먹을 치켜든 그녀는 라이돈의 살기에도 아랑곳 않고 코웃음을 쳤다.
“이미 후회해. 그날 제국에서 너희 모두를 죽여 뒀어야 했는데. 이렇게까지 성가셔질 줄이야, 미처 예상하지 못했거든.”
짧은 시선 교환이 무언의 신호라도 되듯, 두 남녀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