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2화 (44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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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재앙 같은 광경이다. 하늘에선 유성을 닮은 불덩이가 추락했고, 지면을 강타한 불덩이는 요란한 폭발과 함께 사방으로 불꽃을 튕겨 냈다.

천지를 뒤덮은 불꽃. 그 재앙의 불씨에선 만물을 달구는 열기가 피어올랐다. 금방이라도 온몸이 녹아내릴 듯한 지독한 열기에 한 번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것이 정녕 아군의 기술이 맞단 말인가.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 본 반이 이를 악물었다. 태양처럼 솟아오른 쿤라의 주위로 지옥의 업화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버티거나 죽는 수밖엔 없는 열기 속에서 고위 마족은 하늘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마족들이 하나둘씩 지상으로 내려왔으나, 인간들은 그들을 상대하지 못했다. 비늘 갑옷을 두른 인간들 역시 두 다리로 지면을 딛는 것이 최선이었으니.

반은 곳곳에서 차례차례 쓰러지는 마족들을 훑어보았다. 비늘 갑옷을 두르지 못한 그들은 장막을 택했지만, 소용없었다. 허물처럼 흘러내린 장막은 보호력을 잃었고, 곧 체내의 수분마저 바싹 말라 버렸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마족들의 시체는 미라처럼 앙상하게 메말랐다.

‘……두려울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다.’

이것이 카델이 말했던 쿤라와의 ‘협동 작전’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이 난장판 속에서도 카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라이돈이 돌아왔을 때도, 아무런 언질 없이 다시 모습을 감췄을 때도. 카델은 물론 그와 함께 떠났던 하이론도 복귀하지 않았다.

‘적룡을 이곳에 보낸 걸 보면 그다지 위험한 상황은 아닌 거겠지만…….’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적룡이라면 카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고 있을 텐데. 아군마저 버티는 것이 고작인 상황을 만들어 대체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인지.

해결되지 못한 의문은 한층 뜨겁게 달궈지는 열기에 파묻혔다.

‘4할의 힘을 완전히 개방했다. 얼마나 더 많은 마족을 죽여야 날 막을 셈이냐, 이세계의 신이여…….’

본래 카델에게 나눠 주었던 기운의 양을 늘렸다. 이것만으로도 시스템이 경고를 건넬 만했다. 하지만 정원의 마물이 모조리 불타고, 고위 마족이 차례차례 쓰러지는 동안에도. 시스템은 쿤라의 폭주를 방치했다. 그 사실이 껄끄러우면서도, 동시에 자존심을 긁어 댔다.

‘하이론이라는 요정 왕의 존재가 이 몸보다 위협적이라는 말이냐? 불쾌하군.’

시스템이 이 정도까지 하이론을 경계할 줄은 몰랐다. 마족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지는 순간마저 제재를 미루다니. 본체를 끌고 마왕 성이라도 쳐들어가야 관심을 돌릴 것인가?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해 하이론에게 밀려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이론의 참전보다 자신이 날뛰는 쪽이 이 전쟁을 훨씬 더 빠르게 끝낼 터인데. 대체 시스템은 하이론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기에 그를 ‘제거’하는 데 집착하는 것일까.

‘뛰어난 힘을 가진 건 맞다. 하지만 나에 비할 바는 못 돼. 단순한 힘의 총량만 따지자면 터무니없을 정도지. 아무리 요정 왕이래도 지금의 나처럼 정원의 모든 적을 단번에 쓸어버릴 역량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4할을 개방했음에도 기운의 순환은 순탄하다. 마족 학살은 물론 인간들의 회복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대체 여기서 무엇을 더 해야 시스템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단 말인가.

분개하는 쿤라의 시야 속으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들어찼다. 곧 그 점의 정체를 알아챈 쿤라가 음성을 퍼뜨렸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것은 라이돈이었다. 비늘 갑옷을 둘러 줬음에도 굳이 몇 겹의 얼음 장막을 덧씌운 요정. 그는 열기에 질린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며 큰 소리로 물었다.

“캐시를 데려가야 해! 어디 있는지 좀 말해 봐!”

[캐시……?]

“너라면 캐시가 어디 숨어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빨리, 서둘러!”

캐시라면 카델이 길 안내를 위해 합류시켰던 마족이 아니던가. 현재 하이론을 위협하고 있는 고위 마족의 혈육. 그다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존재를 찾는 데에 힘을 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라이돈은 대답을 듣기 전까진 순순히 돌아가지 않을 기색이었다. 데리고 있어 봤자 거슬리기만 할 테니.

짧은 고민을 마친 쿤라가 순순히 지상을 훑어보았다. 메마른 마족의 시체를 건너, 인간들을 가로질러, 무너진 미로까지 순식간에 살펴본 그가 앞발을 움직였다.

[저곳이다. 땅속에서 이 몸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나 보군.]

그의 발톱이 향한 곳은 무너진 미로의 출구. 겹겹이 쌓인 벽의 파편에 아주 작은 숨구멍이 난 더미였다. 그 위로 친히 불덩이를 떨어뜨리자, 더미가 허물어지며 속의 것이 드러났다.

얕은 땅굴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헐떡이는 캐시. 그의 모습을 발견한 라이돈이 눈을 번뜩이며 하강하고. 금세 관심을 거둔 쿤라가 죽은 마족의 수를 헤아리던 순간이었다.

[……!]

눈앞이 새하얗게 질리며, 멀쩡하던 기운의 흐름이 마구잡이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무력하게 끌려다니는 듯한 이 불쾌한 감각은 분명.

‘드디어. 이세계의 신이 주의를 돌린 모양이군.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마족은 이미 대부분 사망했다. 더 죽일 만한 녀석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뒤늦은 제재를 가하다니. 아직 하이론은 죽지 않았을 터인데. 피가 역류하는 듯한 끔찍한 감각 속에서,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던 가설 하나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점차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캐시를 쫓아 하강하는 요정의 뒷모습이 들어찼다.

‘이세계의 신이 경계했던 건 하이론이 아니었던 건가. 놈은 요정 왕이 아닌, 그가 성장시키게 될, 직접적인 저지가 불가능한 존재……. 그 존재의 탄생을 경계했을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가설의 발견에 쿤라의 눈이 크게 뜨였으나.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그의 의식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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