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놈 말대로면 미로는 혼자 있는 침입자를 노린다는 건가?”
요젠을 찾아 떠난 카델과 가르엘을 기다리던 중. 홀로 캐시의 말을 곱씹던 반이 물었다. 그에 캐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굴렸다.
“그럴지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는…….”
“죽고 싶나 보군.”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이곳에는 몸을 숨기거나 의지할 만한 인간이 전혀 없다. 잔뜩 기가 눌린 캐시는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적대감에 불편함을 내비쳤다. 그래 봤자 그를 두둔하며 감싸 줄 사람은 없었지만.
“……혼자 있는 침입자를 노리는 거라면, 그 마족은 왜 굳이 혼자 움직였던 거지? 마족끼리 정보를 숨기진 않을 텐데. 따돌림을 당하던 녀석이었나?”
심문하듯 물어 오는 루멘에 캐시가 소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물어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루멘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혼자 탈출했다던 마족과 단체로 이동한 마족 간의 차이점은?”
“차이점……? 갑자기 그런 걸 물어도…….”
떠오르는 것은 없다. 캐시는 진땀을 흘리며 쓸 만한 대답을 내놓으려 애썼다. 계속 모른다는 대답만을 뱉었다간 카델이 돌아오기 전에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한참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던 캐시는, 이내 뭔가 떠오른 듯 눈을 빛냈다.
“생각해 보니까 그 마족, 엄청 급하게 뛰어나왔던 것 같아.”
“뛰어?”
“응. 그리고 ‘잡아먹힐 뻔했다’라는 말 말고도, ‘식사 시간’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것 같아. 무, 물론 이것도 정확한 기억은 아니야. 내가 꿈을 꾼 걸 수도 있고!”
“식사 시간…….”
갈피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애매하기만 하다. 캐시가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린다면 이 궁금증도 쉽게 해결될 텐데. 한숨과 함께 캐시를 흘긴 루멘이 카델이 떠난 길목을 바라보았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데.’
가르엘이 있으니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카델이 제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언제나 불안했다. 찾으러 가 봐야 하는 걸까. 조금씩 불안해지는 마음에 루멘이 한 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엑토 단장님!”
“모, 모리톨 단장님!”
후방에 있던 기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와아, 신기하네. 재미있는 미로잖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라이돈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비친 것은 한껏 돌출된 벽. 일직선으로 뻗었던 길은 후방의 벽이 돌출되며 자연스럽게 구부러졌다. 단숨에 길의 모양이 변했으나, 그보다 문제인 것이 있었으니.
“이봐, 도련님. 저건…….”
“……그래. 이 미로가 정말 침입자를 잡아먹나 보군.”
벽이 돌출된 자리에 서 있던 기사들. 그들은 움직이는 벽을 따라 밀려나는 대신, 그대로 흡수되었다. 머리통, 손, 다리, 발, 신체의 일부가 덜렁 튀어나와 벽 위에서 허우적거렸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그들의 몸을 잡고 끌어당겼으나, 소용없었다. 몸뚱이는 빠른 속도로 벽 안쪽으로 스며들었다.
동료를 잡아당기다 반사적으로 벽에 손을 얹은 기사들 역시, 누군가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벽 너머로 훅 빨려들었다. 벽을 노린 공격 또한 그 위로 흠집 하나 남기지 못했으니. 모두의 패닉 속에서, 마음대로 구조를 바꾼 벽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한순간에 수십의 기사를 잃은 아군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당혹스러운 숨소리와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충격에 굳어 버린 아군의 틈. 조용히 검을 빼 든 루멘이 바로 옆의 벽을 찔렀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모든 것을 흡수하던 벽은, 다시금 단단하게 굳어 검날을 튕겨 냈다.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반과 라이돈의 표정이 굳어지고. 빠르게 납검한 루멘이 라이돈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장을 찾아라, 라이돈. 찾는 즉시 신호를 보내. 우리도 근방을 뒤져 볼 테니.”
의지라는 게 있을 리 없는 미로가 제멋대로 구조를 바꾸고, 자리에 있던 인간들을 벽 속으로 흡수했으며, 모든 행위가 끝난 뒤에는 뻔뻔스럽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미로의 ‘식사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떠난 카델과 가르엘. 그리고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요젠이 미로의 식사로부터 안전할 리 없었다.
“캐시는 내가 맡고 있으마. 어서 다녀오렴.”
하이론은 라이돈의 몸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어 자신의 허리에 둘렀다. 그런 하이론을 잠시 바라보던 라이돈이 곧장 하늘을 날아 카델을 찾기 시작했다. 고도를 너무 높이면 안개에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에, 적당한 높이를 찾아 비행해야 했다.
“무사히 있어 줘야 해, 카델. 무조건 그래야 해…….”
미로에 잡아먹히는 기사들을 코앞에서 지켜보면서도 흥미를 운운하던 그였다. 그러나 그 대상이 카델이 되었을 때. 라이돈은 제가 언제 웃었냐는 듯 잔뜩 겁에 질린 채 불안한 시선을 움직였다.
정신없이 하늘을 날던 그가 어느 지점 위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소리. 단단한 뭔가를 내리치듯 날카로운 타격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조금씩 위치를 옮기던 라이돈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가르엘!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라이돈 경.”
벽을 향해 검을 치켜들던 가르엘이 동작을 멈추고 뻣뻣한 고개를 움직였다. 가면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다.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그의 눈빛에선 당혹감과 낭패감, 두려움과 분노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 눈빛만으로도 라이돈은 알아챌 수 있었다.
“……카델이 이 안에 있어?”
“…….”
“잡아먹힌 거야?”
싸늘한 물음에 가르엘이 천천히 검을 내리고. 라이돈의 표정 위로 살벌한 감정이 떠올랐다. 단숨에 마력을 끌어 올린 그가 가르엘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금방이라도 가르엘을 공격해 책임을 물으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라이돈은 가르엘을 공격하지 않았다. 꾹 쥐었던 주먹이 풀어지며, 그 안에서 얼음 나비 몇 마리가 날개를 펄럭였다. 나비는 곧장 미로를 헤치며 루멘과 반을 찾아 날아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