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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내가 왜? 내가 왜 그런 역할을 맡아야 해야 하는데?”
“조금만 참아 주자. 응? 여기서 날 수 있는 게 너뿐이라 그래.”
“아버지도 날 수 있어!”
“정정할게. 날 수 있는 요정 중에 이런 부탁을 할 만한 게 너밖에 없어.”
카델은 라이돈의 허리에 밧줄을 두르며 성난 그를 달래 주기 바빴다. 인간들이 두 다리로 직접 미로 속을 누비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미 여러 차례의 전투로 동나 버린 기사들의 체력도 문제였다.
그러니 누군가 위에서 미로를 내려 보며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준다면. 모두가 편하고 빠르게 미로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카델은 라이돈의 몸에 묶은 밧줄을 제 손목과 연결한 뒤, 그의 안내를 따라 미로를 통과할 계획이었다.
물론 안내자 역할을 맡은 라이돈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길 안내가 귀찮다거나, 고위 마족을 피해 비행해야 한다거나, 다른 사소한 요소들을 머리 아프게 계산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나도 미로를 통과해 보고 싶어! 분명 엄청나게 재밌고 즐거울 텐데……. 왜 나만 빼고 노는 거야? 억울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로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실로 라이돈다운 이유였다. 날개가 달렸다는 까닭으로 자신을 즐거운 체험에서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빽빽대는 라이돈의 옆. 카델 대신 밧줄의 매듭을 단단히 묶어 주던 루멘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우린 놀러 온 게 아니다, 라이돈. 여기 재미있자고 미로를 통과하는 기사는 아무도 없어.”
“아아, 루멘의 재미없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함부로 내 몸에 손대지 말아 줄래?”
“네 몸에 손을 댄 적은 없다만. 이쪽도 네 몸에 닿지 않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는 중이야.”
“이것 봐, 자기! 루멘이 은근슬쩍 내 허리를 만지려고 해!”
요란스러운 밧줄 묶기가 끝난 뒤. 카델은 불안해 보이는 캐시의 앞으로 다가갔다. 움츠러든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카델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넌 라이돈을 데리고 같이 탈출구를 찾아. 당연한 얘기지만, 고위 마족을 찾아 우리의 존재를 알린다거나, 도망을 꾀하면 네 몸에 심어 둔 기운이 터질 거야. 그 전에 라이돈한테 죽겠지만.”
“꼭 나도 같이 가야 해?”
“그래야 라이돈이 고위 마족의 눈에 띄지 않고 우릴 안내하기 편하니까.”
동족을 속여 가며 인간들을 마왕 성까지 안내해야 한다는 점이 찝찝한 것일까. 캐시는 우물쭈물하며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그런 캐시를 응시하던 카델이 가만히 그의 어깨를 짚었다.
“캐시.”
“응……?”
“넌 생존에 대단히 집착하고, 겁도 많고, 심신이 미약한 배신자야. 마족에게 있어선 최악의 동족이라고 할 수 있지.”
“…….”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선 최고의 동맹이야. 비록 우리가 네 소중한 사역마를 죽이고, 이제는 네 동족의 왕까지 죽이러 가고 있지만…….”
속살거리며 말하는 카델의 눈빛에선, 계산적인 신뢰와 꾸며진 온화함, 숨기지 못한 뜨거운 열망이 아른거렸다.
“네가 마지막까지 우리의 편에 서기를 택한다면, 나도 끝까지 널 지킬게. 누구의 손에도 죽게 놔두지 않아.”
단원들이 지금 카델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의 숨겨진 욕망을 간단히 알아차렸을 테다. 하지만 캐시는 아니었다. 그는 카델의 연기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몸을 던지리라는 기이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카델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캐시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고는,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좋아. 믿을게, 캐시.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널 믿어.”
다정하게 눈을 휜 그가 다시 라이돈에게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캐시는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며 중얼거렸다.
“토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