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7화 (42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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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카델. 후방 인원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할 테니까.”

캐시를 대동한 행렬의 최전방은 적린 기사단의 차지였다. 카델은 제 뒤에서 들려오는 요젠의 목소리에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적도 아니고, 딱히 갈라진 것도 아니니까. 번거롭게 확인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따라올 거야.”

“……그럼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응?”

고개를 돌렸으나, 요젠은 어느새 동료들 사이로 이동해 말없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잠시 요젠을 응시하던 카델이 다시 시선을 움직였다.

‘걱정되는 건 많지.’

제 앞에 양손을 묶인 채 걸어가고 있는 캐시의 속내도, 고작 한 시간 남짓이 남았을 뿐인 하이론의 안위도, 쿤라의 상태도, 앞으로 치를 전투와 퀘스트, 후계자의 탐색, 시스템의 최후. 모든 것이 걱정되어 미쳐 버릴 지경이다.

그중 카델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 순간들. 이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부하들에게 쏟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조금이나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주어진다면. 캐시를 묶은 밧줄을 꾹 움켜쥔 카델이 깊은 한숨을 집어삼켰다.

‘약한 생각 하지 말자. 감정에 일일이 휘둘렸다간 아무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어.’

번번이 마음을 다잡아도 먼지처럼 흩어지고 마는 반복이 지겨웠다. 지그시 입술을 깨문 카델이 밧줄을 가볍게 당기자, 소스라치게 놀란 캐시가 고개를 돌렸다.

“무, 뭐야? 나 뭐 잘못했어?”

“아니. 마왕 성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궁금해서.”

“아……. 아까도 말했지만, 성에 자주 가 본 건 아니야. 그마저도 성내에 발을 들인 건 딱 한 번뿐이고. 그래서 길이 살짝 가물가물…….”

“그럼 곤란하지. 성까지 제대로 안내해 준다는 조건으로 살려 준 건데. 안 그래?”

“그, 그렇지. 아마 이쪽이 맞을 거야.”

“아마?”

“아마 확실히!”

카델의 차분한 물음에도 캐시는 진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부산스럽게 눈을 굴리던 그가 이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10분 정도 더 걸으면 성의 정원과 이어진 미로가 있어.”

“미로?”

“고위 마족들은 보통 날아서 가니까, 나는 그 미로를 걸어서 통과해 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미로를 탈출하는 방법을 모른다?”

“……응.”

“그걸 왜 이제 말해.”

캐시는 방금 기억이 났다며 허둥거렸으나, 카델은 짜증스레 이마를 문지르며 밧줄을 강하게 당겼다. 급히 진군을 멈춘 카델이 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잠깐 작전 회의 좀 하죠.”

미로의 존재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복잡한 길을 일일이 돌아보며 출구를 찾는 일은 큰 시간 낭비였고, 이후에 합류하게 될 동맹군도 곤경에 처할 터였다.

“미로는 일종의 장애물이에요. 손쉽게 부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캐시의 말로는 웬만한 공격으론 꿈쩍도 하지 않을 거라네요. 게다가 미로 바깥엔 성의 정원이 있다고 하니……. 괜히 소란을 일으켰다가 열약한 환경에서 전투를 치르게 될지도 몰라요.”

최대한 조용히 미로를 돌파해 올바른 길에 표식을 남겨 두어야 했다. 그래야 후방의 인원은 물론 지상에서 내려올 동맹군도 곧장 성을 찾아올 수 있을 테니까.

카델의 말에 까슬한 턱을 문지르던 엑토가 입을 열었다.

“웬만한 공격으론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건,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다면 부술 수 있다는 말이 아니오? 거기 마족. 대답해 보지.”

“예? 아……. 그, 그렇죠. 절대 부서지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예전에 셀레브 님…… 그러니까, 강력한 고위 마족이 미로 탈출을 도전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폭력을 행사했거든요. 그때 미로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

“쓸데없는 부연 설명은 넣어 두지. 시끄럽게 재잘대는 꼴을 보자고 자넬 데려온 건 아니니.”

엑토의 싸늘한 시선에 캐시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캐시를 일별한 카델이 옅은 한숨과 함께 미간을 좁혔다.

“미로를 부술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안 돼요.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로서는 잠입의 형태로, 최대한 고위 마족의 눈에 띄지 않고 미로를 돌파하는 게 최선책이니까요.”

“카델 경의 말이 맞소. 나도 무식하게 벽을 부수며 전진하자는 건 아니오. 다만, 이후에 도착할 동맹군들까지 미로를 통과하게 두는 건 좋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우리는 그 미로의 복잡성과 규모를 모르지. 또 마계에 있는 미로이니만큼, 어떤 기묘한 변칙성을 가졌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전방의 제국군과 황혼 기사단은 은밀하게 미로를 건너되, 정원에 도착해 상황을 파악하는 즉시. 강력한 기술로 미로를 관통하는 일직선의 터널을 만들어, 아군의 합류를 단축하자는 것이 엑토의 의견이었다.

“맞습니다. 마계의 미로, 그것도 마왕 성의 정원과 연결된 미로잖습니까. 탈출구의 위치나 길의 모양이 계속해서 바뀌는 함정이 설치되었을 수도 있죠. 저 마족은 미로를 직접 건너 본 적이 없다고 하니, 그 부분에 관해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고요.”

벌레보다 못한 존재를 보듯 떨떠름한 모리톨의 시선에 캐시가 몸을 움츠렸다. 카델은 슬쩍 제 뒤로 몸을 숨기는 캐시를 무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요. 미로를 부술 만한 기술은 생각해 두신 게 있나요?”

“그건 모리톨 경이 해 줄 거요.”

“예? 엑토 경, 경이 얘기를 꺼냈으면서 제가 왜…….”

“깔끔하게 터널을 뚫기에 모리톨 경의 화살만큼 좋은 건 없지. 자, 그럼 이 얘기는 마무리하고. 후방 인원에게 계획을 전달해 줄 사람이 필요하겠군.”

엑토는 모리톨의 항변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계획을 전달할 기사를 찾아 눈을 굴렸다. 곧 제 단원 중 몇 명을 추려 낸 그가 기사들을 호출하고. 그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카델이 입을 열었다.

“걸어서 미로의 탈출구를 찾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요. 발각의 위험은 커지겠지만, 결과는 확실한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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