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5화 (41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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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사들의 도착이 예상보다 빨랐다. 단장들은 미리 부상의 경중으로 기사를 나눠 두었기에, 곧장 치유사에게 부상자들을 인도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우선 순위는 마법사였다. 그들은 가장 먼저 치유사들의 치료를 받은 뒤, 징벌의 문을 개방하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카델은 마법사들에게 중요한 술식을 강조하며 징벌의 문 개방을 준비했고, 단원들은 이어질 전투에 대비해 무기와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렇게 바삐 움직이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하이론과 라이돈, 두 부자는 감도는 어색함을 내쫓듯 부지런히 날개를 움직였다.

“떠나기 전에 멜피스가 뭐라고 말하던?”

“아버지가 다치지 않게 잘 지키라고요.”

“멜피스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지. 나보다는 라이돈 너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데. 서운했니?”

“아뇨.”

하이론 앞에서의 라이돈은 평소와 달랐다. 좋게 말하자면 차분했고, 나쁘게 말하자면 경직됐다. 그에게 있어 하이론은 아버지라기보단 왕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왕의 후계자임에도 둘 사이의 유대감은 깊지 않았다.

하이론은 딱딱하게 대답하는 제 아들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잠시 자신을 닮은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던 그가 장난기를 담아 말했다.

“카델에게서 눈을 못 떼는구나.”

“…….”

“넌 처음부터 카델을 마음에 들어 했지. 그 아이가 아주 흥미로운가 봐.”

“……네.”

“네가 흥미를 위해 누군가에게 울며 부탁하는 아이인 줄은 몰랐는데.”

놀리는 듯한 말투에 라이돈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그는 답지 않게 당황한 티를 내며 눈을 내리깔았다.

“흥미롭기만 한 게 아니니까요.”

“그럼?”

“카델은…… 대단해요.”

한참 말을 고르던 그가 휙 고개를 돌려 하이론을 마주 보았다. 가까이서 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유하고 온화했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달랐다. 죽은 생선처럼 공허하기만 하던 눈빛은, 어느새 활기와 온정으로 따뜻하게 차올랐다. 그 온정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 라이돈이 용기를 내 말했다.

“카델은 날 계속 꿈꾸게 해요. 불가능을 꿈꾸게 하고, 결국 그 꿈을 현실로 이뤄 줘요. 아무리 무거운 운명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겨 내니까.”

“……멋지구나.”

“내가 사랑하는 인간이에요. 난 카델을 사랑하게 됐어요, 아버지. 그래서 카델이 사는 인간계를 지키고 싶어요. 미래를 주고 싶어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올곧으며 열정적인 눈빛. 라이돈의 눈빛은 꼭 카델을 닮아 있었다. 자유롭고, 눈부시며, 아름답다.

문득 손을 뻗은 하이론이 그대로 라이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멈칫하며 물러서려던 라이돈도, 이어지는 다정한 손길에 몸을 바로 세웠다.

“카델이 네게 그렇게나 소중한 존재라면, 내게도 소중해지겠구나.”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에 라이돈의 입술이 다물렸다. 그는 카델의 부름이 들려올 때까지, 아무 말 없이 하이론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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